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5
〈 35화 〉 하니까 되던데요?(3)
* * *
마나의 거래학 기초 강의실.
2회차 수업.
그 수업을 듣기 위해 모인 학생들로 강의실은 소란스럽다.
대강당에서 했던 공개 강연 때와는 다르다. 사전에 수강을 신청했던 학생들만이 수강할 수 있는 수업이다.
우리도 저 수업을 듣게 해주시오!
기초에 대해 더 알고 싶단 말이요!
해당 수업을 참관하겠다며 몇몇 교수들이 날뛰었으나, 그 부탁을 아론 학장이 들어 줄 리가 없다. 그들에게도 할당된 수업이 있었으니.
조용히들 하시오.
아니면, 내가 한마디 거들어야겠소?
결국 로셀이 나서고 나서야, 교수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아쉬운지 그들은 녹화하겠다며 강의실에 회로를 그려놓고 나갔다.
교수들의 그런 반응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의 이름값은 나날이 치솟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공개강연을 기사로 쓴 기자들이 있다. 그녀의 수업에 매료된 마법사들이 있다. 아주 많았다.
「두 명의 마탑주가 기립박수를 쳤다.」
기사에 실린 한 줄의 문장.
그 한 줄의 문장이 가진 의미는 크다. 마탑주란 각자의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인물들이다. 그런 마탑주들의 인정을 받았다는 건, 어마어마한 영광이다.
그리고, 그 수업을 들었던 이들은 알고 있다.
그 평가는 덜할지언정, 과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드르륵.
이윽고 강의실의 문이 열린다.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소란스러웠던 강의실에 침묵이 감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또각.
감색의 단화가 바닥을 밟는 소리만이 울린다.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던 발소리가 어느 순간 멈춰선다.
“아.”
단상에 선 그녀가 가볍게 목을 풀었다.
잠깐의 뜸을 들인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정면을 향한다.
그곳엔 언제 나와 같은 단정한 로브 차림의 소녀가 서 있다. 가늘게 뜬 푸른 눈동자가 학생들을 쓱 훑고 지나간다.
“결석자는 없군요.”
그녀가 품 안에 들고 있던 종이를 내려놓는다.
차라락, 종이가 흔들리는 소리가 맴돈다.
“마나의 거래학 2주 차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별다른 인사도 없이 곧장 수업은 시작된다.
바스락거리며 필기구를 꺼내는 학생들을 뒤로하고, 그녀는 판서를 시작했다.
마나의 거래학 2주 차.
주제, 제약의 도식화.
칠판에 적힌 주제.
그것을 가리키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별과의 거래에 있어 활용되는 ‘제약’의 도식화. 여러분이 로셀 교수님의 수업으로 들은 내용일 겁니다.”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약을 도식화시켜 회로에 적용.
자신의 기량 이상의 주문을 발현시키는 방법.
이틀 전 로셀 교수가 수업에서 다룬 내용이었다. 수업을 듣긴 했으나, 그 내용을 이해한 이는 드물다. 그런 게 있구나, 하고 넘어갔을 뿐.
“제가 오늘 다룰 것은 그것입니다.”
딱,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단상에 놓여있던 종이들이 바람에 흩날린다. 허공에 흔들리는 종이의 움직임은 일정하다.
차라락.
자리마다 종이가 내려앉는다.
학생들은 멍하니 자신의 앞에 놓인 학습지를 바라봤다.
“수업을 들으며 채워보시기 바랍니다.”
열댓장 가량의 학습지다.
문장마다 빈칸이 파여있는 종류의 학습지.
“어···.”
그것을 보던 누군가 신음을 흘렸다.
“으,으음.”
신음은 전염된다.
학습지를 받아든 학생들은, 저마다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필기구를 딸깍거리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저, 교수님?”
결국 누군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예, 무슨 일입니까?”
“이거··· 주문 언어 아닌가요?”
그 의문은 당연하다.
주문 언어는 통상의 언어체계에 해당되지 않는 언어다. 주문을 읊거나, 회로를 기록할 때 쓰이는 언어.
‘그런데, 이걸 학습지에 심었다고?’
읽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읽는 과정조차 버겁다. 제발 잘못 줬다고 말해주기를 바라며, 학생들은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예, 주문 언어 맞습니다.”
그러나, 눈앞의 교수는 예쁘게도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문제 있습니까?”
“네, 네에?”
“마나의 거래학, 천칭에 대한 이론을 다루는 여러분이라면 가능하다고 생각되어 준비해 왔습니다.”
“그, 그게···.”
“천칭의 거래는 결국 주문 언어로 진행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미리 익숙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담담한 목소리로 묻는다.
“아닙니까?”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더 질문이 없다면 수업 진행하겠습니다.”
학생들은 넋이 나간 얼굴로 학습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2.
북방 대공의 아들, 라크.
왕도의 신문물에 신기해하며 검은 물을 즐겨 마시는 그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몇 가지 있다.
라크는 절대로 멍청하지 않았다.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그 또한 필기시험을 최상위권으로 통과한 학생이었다.
그렇다.
라크는 모자랄지언정, 멍청하진 않다.
라크 본인도 자신이 멍청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으, 으음···.’
그러나, 지금.
‘저게 다 무슨 소린가?’
라크는 어쩌면 자신이 멍청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하여, ■■■■해서. ■■■■■■하면.”
단상에 선 여인.
라니아 교수가 무언갈 말하고 있긴 하다.
“■■■■하면, 이렇게 됩니다.”
학습지를 채우기 쉽도록, 무려 주문 언어를 섞어 말해주고 계시다. 그 세심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라크는 학습지 한 장 조차 다 채우지 못했다.
‘도대체 뭐라 말씀··· 하시는 거지?’
모르겠다.
자글거리는 소음으로 들릴 뿐이다.
“■■■■ 라는 뜻이죠. 이해하셨습니까?”
문득 그녀와 눈을 마주친다.
그녀가 라크를 바라본다.
라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는 못 했지만, 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라크는 슬쩍 옆을 돌아봤다.
대부분의 학생이 넋이 나가 있다. 자신과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어쩌다 눈이 마주쳤을 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러나, 졸거나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은 없다.
“그럼, 예시를 보이겠습니다.”
바로, 저것 때문이다.
“제약의 일종, 표기명으론 ■■를 도식화 하면.”
허공에 회로가 떠오른다.
상급 주문, 연쇄 폭발(Chainexplosion).
절륜한 위력만큼이나 많은 마나를 잡아먹는 주문. 그러나, 그 주문을 시행하는 교수가 흘려보낸 마나는 극히 소량이다.
본래라면 발동될 리가 없는 주문.
“이렇게, 소량의 마나로도 주문을 발현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회로에 쪼개진 곡선을 그려 넣는다.
그것이 스며든 순간, 회로가 빛을 발하고 주문이 발현된다. 그렇게 일어난 폭발은 볼품없다.
팡!
폭죽이 터지듯 자그마한 폭발이 대여섯 번 정도 일어났을 뿐이다.
“물론 제약이 강한 만큼, 이리 축소되긴 하지만··· 어쨌든 간 발현은 된다는 게 중요한 점이겠죠.”
회로에 그려 넣었던 쪼개진 곡선.
그것을 따로 빼어내 학생들 앞에 보인다.
“이게 제약의 기본, ■■입니다.”
누군가 손을 들었다.
“예, 질문하세요.”
“그, 교수님. 다시 한 번만···.”
“네, ■■ 입니다.”
“그, 주문 언어 말고 그냥 언어로도 한 번···.”
라니아 교수는 잘 모르겠단 눈치로 물었다.
“혹시 잘 안 들렸습니까?”
“아뇨, 잘 들렸는데···.”
“그럼 적으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 그냥 발음으로도 한번 들어 보고 싶어서···.”
별 이상한걸 묻냐는 듯한 눈치다.
이윽고 그녀가 마지못해 말했다.
“절감입니다.”
그제서야 사각사각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절감(Reduction).
아,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라크 또한 겨우 빈 공간 하나를 더 채웠다.
‘어렵군. 너무 어렵다···.’
라크는 속으로 신음했다.
어렵다. 알아듣기도 힘들다. 그래도, 집중을 끊을 수가 없는 게 바로 저 툭툭 던지는 예시들 때문이다.
느릿느릿하게.
보기 좋게 던져주는 예시들.
그 완벽한 예시를 보고 있으면, 마치 깨달음이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그런 느낌이 든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마냥 어렵다면, 이해할 수 없는 수업이라면 그건 교수의 기량이 잘못된 거다. 듣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 수업은 달랐다.
어렵다. 미치도록 어려운 건 맞지만.
분명히 이해가 파고들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실제로, 지금 라크가 학습지에 채워넣은 열개의 단어. 그것을 이해한것만으로도 라크는 제약의 회로를 몇개 정도는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종이 귀퉁이에 그 모양을 끄적여봤다.
예상대로, 회로가 반짝이며 빛난다. 성공적으로 그렸다는 소리다.
‘조금만 더 이해를 한다면···.’
뼈가되고 살이되는 가르침이다.
색다른 배움이었기에,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심장이 두근 거린다.
그러니, 집중을 끊을 수는 없다.
물론 집중해도 알아듣기 힘든 건 매한가지다.
‘그렇군, 나는 멍청이였던 건가···.’
라크가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수업은 계속해서 진행된다. 이윽고 수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남은 10분간은 정리하시면 되겠군요.”
짝, 하는 박수 소리와 함께 그녀가 단상에서 내려왔다. 강의실을 떠나는 건 아니었다. 그 발걸음은 학생들이 앉은 곳으로 향한다.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학습지를 흘겨볼 심산인듯싶었다.
“아.”
그리고, 라크는 맨 앞자리였다.
자신의 앞에 멈춰 선 라니아 교수가 학습지를 내려다본다. 그 눈동자가 가늘어진다.
“라크 학생?”
“네, 넵.”
“혹시, 수업 안 들었습니까?”
“드, 들었습니다.”
라크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설산의 사냥꾼들 앞에 선 토끼의 심정이 이러할까? 라크는 여태껏 자신이 사냥했던 동물들의 심정을, 지금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두렵다!’
라크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왜 빈칸이 많습니까.”
“그, 못… 못 알아들었습니다.”
“흐음···.”
그녀가 턱을 매만진다.
그리곤 라크의 옆에 있는 학생의 학습지도 흘겨본다. 그 또한 빈칸 투성이었다.
“으음.”
그녀가 짧게 신음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듯싶다. 이윽고,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올려 학생들을 바라봤다.
“혹시, 주문 언어가··· 잘 안 들렸습니까?”
이때다 싶어, 모두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안 들렸다기보단 들어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지만··· 결국 그게 그것 아니겠는가.
그런 학생들의 반응에.
라니아 교수는 입가에 손을 얹은 채 고민했다. 그리고, 그 시선은 문득 칠판에 향한다.
칠판에는 주제만이 적혀있을 뿐이다.
“아.”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한 짧은 탄성.
“죄송합니다. 제가 판서에 익숙치 않아서.”
다시 단상으로 올라선 그녀는 한 손에는 학습지를, 한 손에는 분필을 든다.
“적어 놓고 갈 테니, 못 들으신 분들은 천천히 확인해 보십시오.”
빠른 속도로 답안이 칠판을 메운다.
거침없이, 순식간에 칠판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글자가 빼곡하게 채워진다.
그리고.
댕.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쳤다.
“마나의 거래학 기초, 2주 차 수업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보죠.”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손에 든 학습지를 흔들었다.
“못 채우신 분들은, 다음 시간까지 채워보심 좋을 것 같군요.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뜬다.
그 발걸음은 여전히 가볍다. 드르륵, 탁 하고 문이 닫히는 공허한 소리만이 강의실 안에 울린다.
그리고.
“비, 비켜봐!”
“칠판!”
“잘 안 보이니까 비켜 보라고!”
앞자리로 학생들이 튀어나온다.
그들은 혈안이 된 채로 칠판에 쓰인 단어를 훑어본다. 손에 든 학습지와 칠판을 번 갈아 바라본다.
“이런 미친.”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저것도 다 주문 언어야···.”
모든 학생의 말을 대변하는 한마디였다.
3.
“말아먹었구나.”
“예?”
“거하게 말아먹었구나, 라니아.”
“뭐를요?”
“네 수업 말이다, 이 못난 제자놈아···.”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름 잘 한 것 같은데요?”
“도대체, 주문 언어로 수업을 하는 교수가 어디 있단 말이냐. 나는 네 사고방식이 정말 궁금하구나···.”
“스승님이 하셨는데요?”
“···뭐?”
“스승님이 그러셨잖아요. 경험 살려서 가르쳐보라고.”
나는 학습지를 가리켰다.
“이거, 예전에 스승님이 저 열세 살 때 주신 학습지하고 비슷한 거예요. 그때 이거 내주면서 풀어보라 하셨잖아요.”
“···그랬, 었지.”
“이거 풀다 보니까 이해가 되길래, 준비해 온건데···.”
나름대로 해석도 적었다.
마지막 장에 해석을 적어놨으니, 보고 푼다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을 텐데.
“내 죄가 크구나···.”
“예?”
스승님은 이마를 탁, 하고 치시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부터, 나랑 차근차근 해보자꾸나.”
“아, 네에···.”
왜인지 모르게, 스승님은 몹시 지쳐 보이셨다.
‘이상하다.’
난 하니까 되던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