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6
〈 36화 〉 썩은 내가 난다(1)
* * *
2주 차 수업이 끝났다.
카페를 가려던 나는 대뜸 교무실을 찾아온 어느 학생 덕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그것이 보통 학생이었다면, 조금 뒤에 다시 찾아오라고 말하면 된다. 그러나, 날 찾아온 건 보통과는 거리가 좀 먼 인물이었다.
제4 왕녀, 아일라.
그녀가 활짝 웃었다.
“그럼 갈까요?”
“···네?”
“약속하셨잖아요? 수업 끝나고 같이 조사해주시겠다고.”
“약속이라기보단, 그건···.”
반쯤 강요 아니었던가?
나는 은근히 그런 눈빛을 보내 보았지만, 아일라의 태도는 견고하다.
“흐응.”
그녀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나는 눈가를 쓸어내렸다.
“네, 갑시다.”
사실 나도 찝찝하긴 했다.
아일라 왕녀가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뭔가 있긴 있다는 소릴 테니까.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아, 네에···.”
2.
별의 아이 스텔라(Stella).
별에게 축복받는 그들은 별의 속삭임을 듣는다. 그것은 용사의 것과 다르다. 상호 간의 의사 교환은 없다.
그저, 일방적으로 내려올 뿐.
그러나 그 일방적인 속삭임은, 때로는 예지의 영역에 맞닿는다.
제 4왕녀, 아일라.
그녀는 직감의 형태로 예지를 경험한 적이 있다. 많았다. 편의상 직감이라 부르고는 있지만, 틀리지 않는 직감은 예지에 가깝다.
그 직감이, 지금 경종을 울리고 있다.
“······.”
아일라의 시선이 검지로 향한다.
‘거슬리네요.’
그녀는 시큰거리는 검지를 구부린 채, 고개를 들었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교수실이 양옆으로 쭉 늘어진 복도다. 언제나와 같은 복도.
그러나, 걸음을 옮길수록 검지가 시큰거린다.
시큰거림은 이윽고 통증으로 바뀐다.
“기분이 나빠요.”
아일라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 복도 전체가, 기분이 나빠요. 숨이 턱 막힌다고 해야 할까요? 속이 울렁거려요.”
“······.”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듣고 있나요, 교수님?”
“예, 듣고 있습니다.”
아일라의 물음에, 그녀의 옆을 걷던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잿빛 머리칼이 살짝 흔들린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아일라와 묘한 인연이 있는 인물.
사실, 본래대로라면 아일라는 호위 기사 하벨을 불러 함께 복도를 수색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
라니아와 마주친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하벨이 들으면 슬퍼하겠지만···.’
아일라는, 오랜 기간 함께한 하벨보다 지금 자신의 곁을 걷고 있는 그녀가 더 믿음직스러웠다.
‘별도 그렇게 속삭이고 있고요.’
언제나처럼,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느낄 뿐이다.
“음···.”
아일라는 슬쩍, 고개를 돌려 라니아의 옆모습을 흘겨봤다. 언제봐도 조금 독특한 인물이었다.
체구는 자신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기껏 해봐야 키가 조금 더 크고, 성숙해 보인다는 정도일까? 사실, 그것도 조금 틀린 표현이다.
‘육체적인 성숙함이라기보단···.’
분위기의 차이에 가깝다.
그녀가 두른 분위기는 그만큼 이질적이었다. 무겁다. 날카롭다. 학생들의 것과는 물론이고, 보통의 교수들과도 다르다.
마치, 병사의 그것과 같은 분위기.
그 독특한 분위기는 단정한 로브차림에도, 교수라는 직함에도 가려지지 않는다.
그렇게 아일라가 그녀를 흘겨보고 있자니.
문득 그녀가 아일라를 돌아보았다. 돌아보는 시선에는 약간의 거리낌이 묻어 나온다.
‘뭔가, 불편···하다는 눈치네요?’
내가 불편한가?
아일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서 걷겠습니다.”
“네?”
한마디를 내뱉고선, 크게 한 걸음 내디딘다.
턱.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는 아일라와 달리, 그녀는 성큼성큼 앞으로 향한다. 그 모습에 아일라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노골적으로 피했죠? 방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천천히 좀 가요, 교수님.”
“왕녀님 말씀대로 이곳에 무언가 있다면, 빨리 확인해야 할 거 아닙니까?”
아일라가 툴툴거려 보았으나, 그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다. 아일라는 잰걸음으로 흔들리는 로브의 끝을 쫓았다.
‘그치만, 뭔가 불길한걸요···.’
불길함은 여전히 떨쳐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크기를 불러나간다.
분명 겉보기에는 이상할 것이 없는 복도지만, 복도의 깊은 곳으로 향하는 지금.
아일라는 짐승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혹은,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를 어두컴컴한 동굴의 내부로.
‘도대체 뭘까요?’
왕국 제일의 아카데미, 아플리아.
왕도의 한복판에서 이렇게 손가락이 시큰거릴 일이 뭐가 있을까.
‘마치, 무언가 발밑을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감각.’
몸이 근질거린다.
옷 안에 벌레가 들어간 것 같다. 등줄기를 타고 무언가 기어오르는 것 같은, 불쾌한 감각.
그리고.
“아.”
마침내 그 불쾌함이 극에 다다른다.
“저기.”
복도의 끝.
굳게 닫힌 교무실의 문.
“저기, 에요.”
아일라의 손 끝이 그 문을 가리킨다.
손가락이 끊어질듯한 고통을 참으며, 아일라가 말을 이었다.
“저기에···.”
그때였다.
“잠깐 실례.”
“네?”
툭.
라니아가 아일라를 밀쳤다.
영문도 모른 채 떠밀린 아일라는 의문 어린 시선으로 라니아를 바라봤다.
“갑자기 왜?···.”
그 의문이 끝을 맺기 전.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벽의 한쪽이 폭발했다.
돌무더기가 튀어 오른다.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 폭발이 향하는 곳은, 방금까지 아일라가 서 있던 곳이다.
그리고.
그곳은 라니아가 서 있던 곳이기도 하다.
후둑, 후두둑.
머리 위로 돌가루가 떨어진다. 가라앉는 먼지 사이로, 복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무너진 벽의 잔해가 가득하다.
문으로 향하는 복도가 돌무더기로 완전히 틀어막혀 있다.
“아···.”
시야를 가득 메운 돌덩어리.
그것을 바라보며, 아일라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보이지 않았다.
방금까지 자신의 앞에 서 있던 라니아 교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라니아 교수, 님?”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3.
깜빡.
중앙학관의 3계층.
자신의 방의 침대에 드러누워 있던 라크는 눈을 떴다. 피곤해 낮잠이라도 잘 생각이었으나, 아무래도 낮잠을 자기엔 그른 것 같았다.
“·····.”
그는 말없이 상체를 들어 올렸다.
이어서 손을 뻗었다. 그 손이 향하는 곳은 책상에 놓인 손도끼다.
‘뭔가 온다.’
손도끼를 양손에 하나씩 든다.
침대에서 내려와 빙글, 팔을 한 번 돌렸다.
“썩은 것의 냄새가 난다.”
카앙!
손도끼를 맞부딪친다.
작은 불똥이 튀고, 스톡(Stock) 해둔 주문이 라크의 마나를 빨아들인다.
가속(Haste).
근력 강화(EnhanceStrength).
팔뚝에 핏줄이 도드라진다.
라크는 오른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곤, 방의 문고리를 잡았다. 속으로 수를 셌다.
하나, 둘, 셋···.
‘지금.’
벌컥!
키에에에에에엑!
그가 문을 엶과 동시에, 문고리를 붙잡고 있던 언데드가 끌려 나온다. 방안으로 썩은 좀비의 상체가 밀려 들어온다.
그리고.
라크의 오른팔이 움직인다.
위로 치켜들었던 손도끼가 아래를 향한다. 그대로 휘두른다. 단두대처럼 휘둘러지는 손도끼가 언데드의 등허리에 맞닿는다.
서걱!
도끼에 결림은 없다.
깔끔한 궤적을 그리며 휘둘러진 도끼가 언데드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분리한다.
촤악!
핏물이 튀어 오른다. 라크는 멈추지 않는다. 분리된 언데드의 상반신이 바닥에 떨어지기 무섭게, 라크는 문고리를 놓았다. 왼손에 든 손도끼를 휘둘렀다.
‘언데드는 머리를 박살 내야 한다.’
북방의 전사들에게 그렇게 배웠다.
라크는 배운 것을 그대로 행했다.
콰직!
마수의 두개골을 으깬 손도끼를 뽑아낸다.
피를 털었다. 라크는 머리를 잃은 시체를 밟고, 방 바깥으로 나왔다. 복도에 바로 섰다.
“썩은 냄새다.”
언데드들의 썩은 내가 난다.
라크는 눈살을 찌푸렸다. 복도를 배회하는 언데드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수가 적지는 않다.
‘어디서 나타났지?’
알 수 없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그 또한, 알 수 없다.
“음.”
라크는 손목을 빙글 돌렸다.
당장 알 수 있는 게 없다. 수수께끼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크는 북방의 전사들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도련님?
거, 우리가 뭡니까 도련님.
전사다.
명예로운 북방의 전사.
예, 맞습니다. 전사죠. 전사가 해야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사실 하나밖에 없죠.
“음.”
뭔지 모르겠으면 말입니다, 도련님.
라크는 빙글 돌리던 손목을 멈췄다.
대체로 휘두르고, 찍다 보면 답이 나옵니다.
팔을 들어 올렸다.
“과연.”
휘둘러, 내려찍었다.
“그러면 되는 거군.”
하나의 언데드가 쓰러졌다.
바닥에 고인 핏물을 밟으며, 라크는 언데드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4.
“아, 아아···.”
아일라의 입이 벌어졌다 다물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자리에 주저앉은 채, 손으로 입가를 틀어막았다.
‘벽이, 무너졌어.’
아일라는 기억을 더듬었다.
‘뭔가 터졌어? 아니야, 뭔가··· 후려쳤어.’
벽이 폭발하던 그 순간, 거대한 형체를 본 것만 같았다. 당장은 무너진 잔해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이 잔해의 너머에 무언가 있을 것 같았다.
도망쳐야 한다.
그러나, 아일라는 그러지 못했다.
벽이 무너졌고.
무너진 자리에, 라니아 교수가 있었다.
‘벽이 무너지던 순간에.’
분명, 그 교수는 자신을 밀쳤다.
그 사실을 떠올린 아일라는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읏···.”
먼저 눈치채고 밀칠 정도였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피하지 못했다.
왜 피하지 못했는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금방 나온다.
‘나를 지키려 했으니까.’
자신을 지키려다, 대신하여 폭발에 휘말렸다.
이만한 폭발에 휘말리고, 무사할 거란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아일라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벽이 무너져 내렸다.
돌무더기가 쌓여있다.
누군가, 자신을 지키려다 휘말렸다.
일련의 상황이 아일라의 기억을 자극한다. 오래전, 잊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싫어.”
돌무더기에 손을 뻗었다.
크고 무거워, 돌무더기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
“싫단 말야.”
옛날처럼 짐 덩어리가 되고 싶진 않다.
그때처럼 자신을 지키려다, 누군가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윽, 읏···.”
떨리는 손길로 돌덩어리를 치우며, 아일라는 목에 핏대가 서도록 소리를 질렀다.
“라니아 교수님! 제 말 들리시면···.”
“예, 뭡니까?”
어라?
“어?”
아일라는 손길을 멈췄다.
“···라니아 교수님?”
“예, 왜 부르십니까.”
목소리가 들린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무척이나 평온하다.
“그, 괜찮···.”
“멀쩡합니다. 좀 떨어져 보세요.”
“아, 네···.”
‘내가 지금 뭘 듣는 거지? 환청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일라는 순순히 벽에서 떨어졌다. 이윽고, 돌무더기가 들썩인다.
“아, 씹. 먼지.”
신경질적인 목소리.
강타(Smite).
쿠웅! 돌무더기가 들썩이더니, 이내 우르르 쏟아진다. 그 잔해더미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콜록, 켁. 어우···.”
마른기침 소리.
손을 휘둘러 먼지를 걷어내는, 누군가의 모습을 아일라는 멍하니 바라봤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돌무더기에 깔린 줄 알았던 그녀는, 무척이나 멀쩡한 모습이었다. 작은 생채기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그 로브조차 먼지가 조금 묻었을 뿐, 찢어지거나 해진 부분은 없었다.
“예, 그래서.”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부르셨습니까?”
문득, 아일라는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을 바라봤다.
‘···머리?’
녹색 피가 뚝뚝 떨어지는 마수의 머리.
아일라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 괜…찮으세요?”
“멀쩡합니다.”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닌, 진짜로 멀쩡해 보였다.
아일라는 할 말을 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