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7
〈 37화 〉 썩은 내가 난다(2)
* * *
평화로운 오후의 아플리아.
이변이 발생한 건 한순간이었다.
한 번의 굉음, 한 번의 폭발.
그 신호를 기점으로 아플리아는 마수들에게 뒤덮였다. 아니, 뒤덮였다는 표현은 틀릴지도 모른다.
아플리아 곳곳에서 마수들이 솟아났다. 땅에서, 천장에서, 복도의 창문에서, 건물의 외벽에서 토해져 나오듯 마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수는 적지 않다.
질보다는 그 양이 심상치 않다.
이것이 누군가 실험을 실패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면 편할 것이다. 그러나, 아플리아 학사 내에 상주 중이던 기사들은 직감했다.
이건, 테러다.
얼핏 보면 지성이 없는 것 같지만, 마수들의 행동에 일정한 규칙이 보인다. 누군가에게 사육되어 조종당하는 마수라는 뜻이다.
마수를 조종하는 이가 있다.
마기(??)에 이끌리는 마수들은 마인을 따른다. 마수를 조종하는 건 마인이다. 그러나, 이곳에 마인이 있을 리가 없다.
기사들이 그렇게 생각하는데는 마땅한 이유가 있다.
아플리아는 왕도 내에 위치한 아카데미다.
왕도에 둘러쳐진 결계의 보호를 받는단 소리다.
그리고, 어지간한 마인은 결계를 뚫지 못한다. 뚫고 나온다 한들 몸에 변이가 생겨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다.
그러니, 마인은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다.
변절자가 나타났다.
변절자, 인간이되 마족에게 영혼을 판 이들.
그들은 특별하다. 마기를 가지되, 그 본질은 인간이다. 왕도에 쳐진 결계로부터 자유롭단 뜻이다.
“아플리아 내부에, 변절자가 있다.”
왕녀의 호위기사.
이곳에서 가장 직급이 높은 하벨이 입을 연다.
“이 정도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면, 최소 교수급의 기량을 지닌 마법사다. 계약한 마족도 상당한 수준의 마족일 터.”
곧장 결론을 낸다.
“그러니, 당장 색출하기는 어렵다. 그건 나중의 일이다. 우리가 우선 해야 할 것은 학생들의 보호, 그리고···.”
마지막 한 문장을 입에 담는 하벨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다. 그 문장이 가지는 무게를 알기에.
“제 4 왕녀, 아일라님의 보호다.”
기사들은 움직인다.
언제나 그러하듯, 고귀한 존재를 위하여.
2.
“······.”
아일라는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마수들이 학사 내를 돌아다니고 있다.
어디선가 마수들이 쏟아져 나온다. 벽이 무너진다. 이런 상황 자체가 아일라에겐 낯설지 않았다.
‘한번, 경험한 적이 있으니까요.’
그녀가 별의 아이로 각성하기 이전의 일이다.
각성을 앞둔 그녀를 노렸던 테러가 있었다.
당시 대마법사의 반열에 이르렀던 인물.
궁중 대표 마법사, 겔릭.
그가 변절자가 되어 벌인 왕가 테러 사건.
왕도를 발칵 뒤집어 엎었던 그 사건을 아일라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리 오시지요, 왕녀님.
변절자, 겔릭은 마수들을 흩뿌리며 자신을 뒤쫓았다. 아일라는 도망쳤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어리고 약했던 아일라가 겔릭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아일라는 도망쳤다.
목숨을 바쳐 지켜라!
그녀가 겔릭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가진 재능 덕분이 아니다. 그녀의 힘이 아니었다.
왕녀님, 도망치십시오!
이곳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가 보십시오.
수많은 기사가 그녀를 지켰다.
어서 가십시요.
이것이 저희가 할 일입니다.
왕가에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은 기꺼이 그 한목숨을 바쳤다. 오롯이 아일라를 지키기 위해서.
그날 수많은 기사가 죽었다.
쓰러지는 기사들을 뒤로하고 아일라는 달렸다.
‘계속해서, 달렸었지요.’
누군가 도와주리라 믿으며 달렸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도착한 곳은,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뜬금없는 장소였다.
‘왕립 도서관.’
왜 그곳으로 도망쳤는지는 모른다.
별의 아이로서 각성하기 이전의 이야기니, 직감이란 편한 핑계를 댈 수도 없다.
우연.
그 우연의 종착점에는.
왕녀님?
“왕녀님?”
한 마법사가 있었다
깜빡.
아일라는 눈을 한번 깜빡였다. 뇌리를 맴돌던 기억을 떨쳐내고, 지금을 바라보았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으십니까?
떨쳐내려 했지만, 묘하게 기억이 겹친다.
아일라는 몽롱한 눈동자로 자신의 앞에 선 여인을 바라보았다.
잿빛 머리칼.
푸른 눈동자.
기억 속의 마법사와 겹치는 특징을 가진 사람.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자신을 향한다.
“왕녀님.”
그녀가 묻는다.
“방금 전언이 울렸는데, 들으셨습니까?”
간신히 정신을 차린 아일라가 답했다.
“···아뇨, 죄송해요. 못 들었어요.”
“기사들이 왕녀님을 찾는다더군요. 당장은 그곳까지 모셔다드릴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아일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고마워요.”
“잠시 기다리고 계십시오. 일단은, 길을 조금 뚫어야 할 것 같으니.”
“네?”
“저길 그냥 지나갈 순 없잖습니까.”
그녀가 복도를 가리켰다.
복도에는 마수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마수들이 당장 달려들진 않지만, 가까이 갔을 때도 달려들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일단 치워야죠.”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어깨를 풀었다.
손목을 빙글 돌렸다.
턱.
그리곤,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다. 그 걸음걸이는 그녀가 강의실에 들어오던 때와 같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적당한 속도와 적당한 보폭이다.
그 걸음에 차이가 생긴 건, 마수들과의 거리가 세 걸음 안팎으로 떨어진 순간이었다.
쿠웅.
순간, 그녀의 발걸음에 무게가 실린다.
근력 강화(EnhanceStrength).
주문이 반짝인다.
콰직!
복도의 바닥에 균열이 인다. 땅을 박차며 그녀가 마수를 향해 달려든다. 잿빛 머리칼이 나부낀다.
가속화(Haste).
주문이 반짝이는 건 순간이다.
그녀가 팔을 휘두른다. 낚아채듯 짧게 휘두른 팔이 마수의 머리를 움켜쥔다. 터뜨린다.
후두둑.
떨어지는 핏물과 함께 그녀가 앞으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을 튕겼다. 무형의 충격파가 마수의 아가리를 찢고, 그 몸을 관통한다.
마수들의 시체가 쌓인다.
아일라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
마수들 사이에서 괴물이 날뛴다.
그 수는 중요치 않다. 잿빛 머리칼이 흔들릴 때마다, 마수들은 조금씩 뒤로 물러선다.
지능이 없을 마수들이 뒷걸음질을 친다.
본능이 감지한 공포다. 수십 마리의 마수가 한 명의 인간 앞에 뒷걸음질 친다.
그러나, 달려들든 도망치든 그 결과는 같다.
달려드는것은 찍어 죽인다. 도망치는것은 충격파를 날려 갈아버린다. 그 일련의 동작에는 일말의 거리낌도 없다.
문득 보인 그녀의 옆모습은 한없이 무표정하다.
“읏···.”
아일라는 눈을 감았다.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감았던 눈을 다시 떴을 때, 상황은 이미 끝나 있었다.
복도를 가득 메우던 마수들은 온데간데없다.
그 자리를 대신하듯 핏자국이 복도에 가득하다.
고개를 돌리면, 목을 잃은 마수가 있다. 심장이 뚫린 마수가 있다. 구멍이 뚫리거나, 몸이 으스러진 채 벽에 처박힌 마수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많았다.
아주 많았다.
핏물로 물든 복도는 꼭, 짐승이 날뛰고 지나간 듯한 모습이다.
주륵.
아일라의 발치까지 핏물이 흐른다.
그 핏물을 따라 아일라는 시선을 옮겼다.
“·····.”
그 핏물의 시작점에 라니아 교수가 서 있다.
손에 묻은 피를 털며 가볍게 고개를 터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잿빛 머리칼이 바람에 흔들린다.
조금 전과 차이는 거의 없다.
그저 로브에 피 몇 방울이 튀었을 뿐이다.
“아.”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
그리곤, 별거 아니라는 듯 한마디를 덧붙인다.
“이제 괜찮습니다.”
라니아가 아일라를 향해 다가왔다.
아일라는 자신의 앞에 멈춰선 그녀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음···.”
무언가 고민하는듯한 눈치였다.
이윽고 그녀가 로브에서 무언갈 꺼내 들었다.
검은 장갑.
그녀가 강의할 때 끼고 있던 장갑이다.
꺼내든 장갑을 끼고선,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마치 잡고 일어나라는 듯한 모습이다.
“일어나시죠.”
일어나시죠.
그 모습에서.
일어 나시죠, 왕녀님.
아일라는 다른 인물을 겹쳐 보았다.
그날, 마수들을 등지고서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던 어느 마법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잿빛 머리칼, 푸른 눈동자.
그리고 저 무덤덤해 보이는 표정까지.
그 기억들이 한대 뭉뚱그려진다.
겹쳐진 풍경에 아일라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라니엘님?”
“제 이름은 라니아 입니다.”
“앗! 아, 죄송···.”
아일라는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이 입 밖으로 뱉은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아일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무슨···!’
여자에게 남자의 이름을 부르다니. 아일라가 생각하기에, 이건 굉장히 실례되는 일이었다.
“읏···.”
부끄러움을 느끼며 아일라는 고개를 숙였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라니아 교수님···.”
“괜찮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목소리에 떨떠름함이 묻어나온다. 아일라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녀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섰다.
‘기분 상하셨겠지?’
그리 생각하며, 아일라는 앞서 걷는 그녀의 뒷모습을 흘겨보았다. 흔들리는 잿빛 머리칼 사이로 새하얀 목덜미가 드러나 있었다.
‘···땀?’
그 목덜미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지치셨구나.’
하긴, 이만한 마수를 짧은 시간 안에 상대했다면 지칠 만도 하다. 그런 사람에게 이게 무슨 실례람.
‘죄송해요···.’
아일라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녀의 뒤를 쫓았다.
3.
‘어우, 소름 끼쳐라.’
나는 괜스레 뒷목을 문질렀다.
라니엘이란 이름을 들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도대체 눈치가 얼마나 좋은거야?’
슬쩍 뒤를 돌아봤다.
아일라 왕녀는 고개를 숙인 채 따라오고 있었다. 적어도, 의심하는 기색은 없어 보인다.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기사들의 주둔지다.
“왕, 왕녀님!”
“아, 하벨.”
주둔지에 도착하자마자, 아일라를 알아본 기사들이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그 선두에 선 어느 기사가, 아일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사하셨습니까!”
“보시다시피, 무사해요. 하벨.”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곁에서 모시지 않은 점, 정말·····.”
“괜찮아요, 하벨. 제 잘못인걸요. 그리고···.”
아일라는 나를 가리켰다.
“여기, 라니아 교수님이 지켜주셨어요.”
기사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하벨이라 불린 기사가 내게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했다.
“아일라 왕녀님의 호위 기사, 하벨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라니아 교수님.”
“본분을 다했을 뿐입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시간 외 근무라는 느낌이 강하긴 했지만, 어쨌든 간 여기까지는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설마 거기서 봤던 그게, 그딴 식으로 이어져 있을 줄은 몰랐지만.’
당장은 아일라 왕녀를 보호하는 게 우선이라, 내버려 두고 왔지만···.
‘치우긴 해야겠지.’
나는 다시 그 복도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 전에, 나는 기사들에게 몇 가지 확인했다.
“현재 학생들은 어디로 대피했습니까?”
“아, 주문 훈련실을 빌려서···.”
“여러 교수분들과, 기사분들께서 그곳을 지키고 계십니다.”
확실히, 좋은 선택이었다.
주문 훈련실의 외벽은 튼튼하다. 어지간한 마수로는 부수기 힘들 테지.
‘그리고 대충 보아하니···.’
마수들의 급도 그리 높진 않다. 적어도, 주문 훈련실의 문을 뚫을 만한 마수는 없어 보였다.
“아, 라니아 교수님.”
나를 알아본 듯한 기사가 덧붙였다.
“대피실에는 로셀 교수님도 계십니다.”
“그럼 안전하겠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이 계신다면, 그곳에 변절자가 있다 한들 별다른 수작을 부리진 못할 것이다.
‘그쪽은 신경 안 써도 되겠네.’
할 일이 보다 명확해졌다.
“어디 가십니까?”
“잠시 들릴 데가 있어서.”
“그럼 저희가 함께···.”
“괜찮습니다.”
따라오려는 기사들을 물리고, 나는 홀로서 건물 내로 들어갔다. 건물에 들어선 순간 악취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썩은 내.”
문득 그렇게 중얼거린다.
“썩은 내가 난다.”
코끝을 찌르는 악취는 익숙하다.
익숙함이 느껴져선 안 될 장소에서, 익숙함이 느껴진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장갑을 낀 손가락을 쫙 펼쳤다.
엄지를 접는다.
침묵(Silence).
발걸음 소리가 사라진다.
인기척이 지워진다.
더이상 나를 보고 달려드는 마수가 없다.
이어서 검지와 중지를 접는다.
추적(Tracking).
주문 포착(SpellCapture).
눈앞에 길게 이어진 흔적이 보인다. 흔적을 따라 걷는다. 목적지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복도의 끝에 놓인 문.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내가 복도를 오가면서 본 적은 없는 문이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문.
나는 그 문의 앞에 섰다. 문 앞에 서서, 남은 약지와 소지를 모두 접는다.
주문 해제(Anti Spell).
해제(Unlock).
문을 걸어 잠그던 마법이 찢겨 나간다.
문고리에 손가락을 건다. 잡아당긴다.
끼이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다.
문을 여는 순간 악취가 한층 더 심해진다. 나는 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
나는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날 만하네, 썩은 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