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20
살려달라고.”
우리를 구해주러 오신 것이냐고.”
위대한 존재여, 저 자가 우리를.”
수많고 수많은 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메아리치는 비명 사이에서 스케발은 광인을 돌아보았다. 광인은 웃고 있었다. 제 입가를 쭉 찢은 채, 광소하고 있었다.”
“새로운 신의 탄생이 필요한 시점이야.””
비명 속에서 광인이 스케발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더 다가가선, 스케발에게 속삭였다.”
“새로운 신이 이 탑을 오르는 그날, 그 순간 모든 것은 무너질 것이다. 그날 이 바벨은 더는 등천을 위해 쓰이지 않겠지.””
아아, 하고 광인이 미소 지었다.”
“그날 너는 진리를 목격하게 될 것이야.””
비명은 더는 비명이 아니게 됐다.”
단지 소음으로 전락해버린 비명 속에서 광인이 스케발에게 손을 내밀었다. 진리에 매몰된 어느 마법사에게 제안했다.”
“함께하지 않겠나, 스케발?””
“···그것이 광인의 목적이라고?””
“단서는 많이 있었어.””
라니엘이 손가락을 펼쳤다.”
“스케발이 아플리아에 쳐들어와서, 그늘을 불러왔던 그날 스케발의 배후에는 광인이 있었어. 그날 광인이 의도했던 것은 무엇이었지?””
라니엘이 툭, 하고 난간을 두들겼다.”
“새로운 그릇.””
그릇을 담을 새로운 존재.”
별에게 사랑받는 아이, 별에게 축복받은 아이, 별의 맥락을 읽는 아이. 그날 광인은 그들을 제물 삼아 새로운 그릇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때야 광인은 그늘을 담아낼 그릇을 찾는다고만 생각했지.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이상한 거야. 위화감을 깨달은 건 왕도의 중심에 광인이 나타났을 때였지.””
잿빛 마탑을 점거하고, 왕도의 중심에서 광인은 또다시 그늘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때 제물로 지목되었던 것은 다름 아닌 레스티 엘레노아. 와쳐(Watcher)였다.”
“더욱더 과거로 내려가면, 와쳐와 스텔라가 동시에 존재하던 시기가 있었어. 켈르할름의 제자. 그녀는 두 가지 재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던가?”
“배교자에 의해 망가졌다고 했지만, 켈르할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건 배교자의 방식이 아니야. 배교자였다면 그녀를 자신의 사역마로 만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날 켈르할름의 제자는···.””
무언가를 품으려 했다.”
품으려 했지만, 견디지 못하고 망가졌다.”
“구정물을, 그늘을 품으려 했던 거야. 켈르할름이 다스렸던 학원도시 전체가 제단이었던 거지.””
“그 말은 곧···.””
“그래.””
라니엘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광인이 노리고 있는 건, 새로운 신의 탄생이야. 실패해버린 마왕의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신(神). 그 신을 앞세워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하는 거겠지.””
“신을 만든다는 것, 그게 가능하나?””
“이미 한번은 성공한 놈이야. 두 번이라고 못할 건 없겠지. 충분한 시간과 실험, 그리고 마지막으로 명분만 주어진다면 말야.””
그리고 시간은 주어졌다.”
실험 또한 수차례 진행되었다.”
이젠 남은 것은 명분이었다.”
“···명분은 무엇이지?””
“마왕의 완전한 소멸.””
인류의 비원이었다.”
라니엘이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마왕이 소멸한 그 순간 균형은 박살 나. 마왕이 탄생하기 이전처럼, 신은 인류의 쪽에만 존재하는 상황이 되고 말지.””
“그건··· 다시 말해.””
“새로운 신, 별의 대척점에 설 또 다른 신이 탄생할 명분이 된다는 뜻이야.””
그렇기에, 하고 라니엘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마왕을 토벌하는 것보다 먼저, 광인을 죽여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마왕이 토벌된 그 순간 또 다른 신이 나타나고 말 테니까.””
『스텔라와 와쳐는 폰(pawn)이다.』”
『체스판의 끝에서, 그들은 여왕(Queen)이 된다.』”
“다름 아닌 스텔라와 와쳐를 그릇 삼아서.””
『자신이 만들어낸 신을 앞장세워 광인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즉, 광인의 목적을 위해 스텔라와 와쳐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라니엘은 수기를 떠올렸다.”
『필요했기에 그는 나의 여왕을 살려둔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뜻대로 하게 둘 리가 없지.””
『그렇기에, 광인은 스스로 약점을 드러냈다.』”
라니엘이 미소 지었다.”
자신이 떠올렸던 방법. 그리고 수백 년 전 어느 인간이 집념으로서 발견해낸 방법. 그 방법을 곱씹으며 라니엘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야말로 광인을 박살 낸다. 철저하게. 완벽하게 짓밟는다. 그렇기 위한 준비가 필요해.””
그리고, 그 작전의 핵심이 될 인물은···.”
“다름 아닌 너와 여왕님이겠지. 레스티.””
라니엘이 카르디의 어깨너머를 바라봤다.”
카르디가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잿빛 마탑의 주인이 서 있었다. 초대 잿빛 마탑주와, 전대 잿빛 마탑주가 모인 자리에 현대의 잿빛 마탑주가 바로 섰다.”
“서신은 받았어요.””
잿빛 마탑주, 레스티 엘레노아가 말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세요.””
최초의 광인, 아크리타 클렌 아르카디아.”
그 존재를 이 땅에서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토벌전을 라니엘은 준비하기 시작했다. 본래대로라면 다음은 광인의 차례가 아니었을 터다. 라니엘이 다음으로 점찍어둔 토벌 대상은 광인이 아닌 ‘가장 두려운 재앙’ 이었을 테니까.”
죽음의 칼, 가니칼트.”
본래 다음 토벌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죽음의 칼이었으나, 계획이 바뀌었다. 광인을 추적할 방법을 알게 된 지금 구태여 광인을 내버려둘 필요는 없었으므로.”
‘여왕 전하의 주도하에, 레스티가 협력하여 광인의 진체를 특정하고 있다.’”
이는 카르테디아의 건국 시조가 발견해낸 방법이자, 라니엘이 검증한 방법이다. 방법이 확실하니 진체의 특정까진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으리라. 곧 광인의 위치는 특정될 것이요, 그곳을 습격하여 광인의 목적을 사전에 처단하면 될 일이었다.”
광인의 토벌전의 준비는 충분한가?”
라니엘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체스판을 보았다. ”
아마, 광인 또한 보고 있을 체스판이다. 흑과 백으로 나뉘어진 체스판 위에는 기물들이 어지러이 놓여있다. 인류가 백(白), 마경의 세력이 흑(黑)의 기물로 놓인 체스판.”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체스판은 흑이 압도하고 있었다. 백은 밀려나고 밀려나서, 흑의 기물 아래 짓밟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정 반대다. 이제는 백이 전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배교자 토벌전에서 말을 잃긴 했지만···.’”
아직 라니엘이 가진 기물들은 건재하다.”
오히려 배교자 토벌전을 거치며 더욱 강해졌다.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게 된 이들이다. 그러는 반면 흑의 기물은 어떠한가?”
광인이 다룰 수 있는 기물은 소수에 불과하다.”
흑의 세력을 상징하는 왕(王)은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왕의 곁을 지키는 검(劍) 역시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은 무언가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존재들이다. 광인이 다룰 수 있는 기물이라 해 보아야···.”
‘기껏 해봐야 스케발과···.’”
라니엘이 짐승의 형상을 띤 기물을 보았다.”
‘마수의 왕뿐이겠지.’”
투욱, 하고 라니엘이 턱을 괸 채 제 입가를 검지로 두들겼다. 생각이 많아질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툭, 투욱 하고 입가를 두들기며 라니엘이 눈을 감았다.”
“···유리하다.””
내가, 유리한 상황이다. ”
그것도 압도적으로 자신의 쪽이 유리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라니엘은 더더욱 의문이 들었다. 작금의 전황을 광인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정말로, 내가 마왕을 쓰러트리기만을 기다리는 건가?”
‘그 한 가지 수만을 노리고 있다고?’”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라니엘은 광인을 안다. 그를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가 어떠한 사고방식으로 움직이는지는 알고 있다.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지만, 자신과 광인이 추구하는 목적지는 얼추 비슷했으므로.”
동류(同流)이기에, 동류(同類)이다.”
양극단에서 라니엘과 광인은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니엘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체스판의 너머를 바라봤다. 자신의 맞은 편에 앉아있을 이. 자신과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이. 인류사에 암약한 그림자.”
일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판을 지배한 존재.”
그만한 존재가 고작 하나의 계획만을 준비해 두었을 리가 없다. 수많은 ‘만약’을 가정해 두었을 것이 분명했다. 라니엘이 미간을 조금 더 좁혔다.”
“뭘 노리고 있는 거냐.””
라니엘이 손을 뻗었다.”
백(白)의 기물을 움직여 흑을 조금 더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기물을 판 위에 쿠웅, 하고 무겁게 내려둔 뒤 라니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해야 할 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