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44
보인다. 모든 것이.”
라크는 자신의 눈으로 앞을 보았다. 밀려드는 검격을 인지했다. 이해하지도 못한 채 휩쓸렸던 조금 전과는 다르다. 부릅뜬 눈으로 라크는 모든 것을 보았다.”
틱, 티디디디디딕.”
바르타가 선보인 일격. 그 일격은 닿는 모든 것을 물어뜯고 박살 내고 있다. 공간도, 땅도, 하늘도, 닿는 모든 것을 부숴버린다. 그 어떤 섭리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기에, 부러진 것이겠지.’”
결코 부러지지 않는다는 성검.”
그중에서도 가장 날카로운 최초의 성검조차 저 검격의 앞에선 박살 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검에 담긴 것이 없었으니까. 너무나도 가벼웠을 테니.”
밀려드는 검격을 바라보며 라크가 움직였다.”
우득, 하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육체는 이미 망가졌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뼈와 근육이 비명을 질러댄다. 이런 몸으론 싸울 수 없다고 직감이 경고했다.”
그 모든 것을 라크는 흘려들었다.”
싸울 수 없는 몸이라고? 움직일 때마다 몸이 망가진다고? 힘을 담을 수 없다고?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몸이 울리는 경종을 모조리 무시한 채 라크는 움직였다. 애초에, 이런 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으니.”
형태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완벽에 집착하지 마라.”
내려놓아라, 이거고 저거고 전부.”
탑을 다시 쌓아올리며 라크는 깨달았다. ”
자신이 너무나도 많은 것에 얽매여 있었음을. 필요 없는 것들에 집착하고 있었음을.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처럼, 카일 토벤처럼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자신은 사로잡혀 있었다.”
우스운 일이지, 하고 라크는 웃음을 흘렸다.”
살아온 삶이 다르다. 살아온 길이 달랐다. ”
그들을 동경할지언정,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려 해선 안됐다. 그들이 도달한 경지를 똑같이 흉내 내려 한 게 문제였다. 카일 토벤도, 하물며 눈앞의 바르타 조차 자신의 뜻대로 경지를 재해석하지 않았는가.”
선배들이 걸어온 길은 그저 이정표일 뿐이다.”
그들은 방향을 제시할 뿐, 길을 그려주진 않는다.”
드넓게 펼쳐진 황야에 길을 그려내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몫이었다. 그렇다면, 그 길은 어떻게 그려야만 하는가? 대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라크는 자신이 쌓아올린 탑을 생각했다. 자신의 삶.”
‘나, 나의 삶, 자기 자신(自身).’”
움켜쥔 칼자루에 검기가 휘감겼다. 아니, 검기가 아니다. 정제되지 않은 기(氣)였다. 아직 형태도 방향도 갖지 못한 단순한 기운.”
‘나는 뜨거운 불이요.’”
순수한 상태의 기가 화염처럼 들끓었다.”
‘영원히 담금질 되는 식지 않는 철이다.’”
결코 식지 않을, 영원히 타오를 불길이 칼자루를 휘감았다. 새빨간 불길이 아닌, 눈보라처럼 새하얀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다. 타오르는 불길은 어떠한 형태도 갖추지 않았다.”
칼날도, 창날도, 그 무엇도 아닌 형태.”
철(鐵)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어떻게 망치를 내려치는지에 따라, 담금질하는 방식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는 것. 그렇기에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라크가 손에 움켜쥔 자신의 삶을 휘둘렀다.”
시간이 쪼개지는 소리도, 공간이 찢어지는 소리도, 그 어느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들려오는 것이라곤 철을 두들기는 소리뿐이다.”
캉, 캉, 캉, 카앙!”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불길이 튀어 올랐다. ”
철(鐵)이 새하얗게 점멸했다. 새하얗게 타들어 가는 불길을 끌며 부러졌던 긍지가 바르타가 쏘아낸 검기와 충돌했다.”
정해진 형태가 없기에, 무형(無形).”
정해진 틀이 없기에, 무형(無型).”
부러지더라도, 끊어지더라도, 녹슬더라도, 다시 한 번 단조 되어 새빨갛게 들끓을··· 영원히 단조 되는 식지 않는 철(鐵).”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충돌의 순간 굉음이 메아리쳤다.”
닿는 모든 것을 박살 내는 바르타의 검기에도, 라크가 쥔 부러진 칼날은 박살 나지 않는다. 부러진 성검에 휘감긴 불길이 검기와 맞부딪칠 때마다 캉, 카앙 하고 망치질하는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카앙, 하는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것은 타들어 가는 소리. 라크의 검이 바르타의 검기를 밀어내며 완전한 궤적을 그렸다. 궤적을 그려낸 순간 칼날이 머금은 불길이 한순간에 토해져 나왔다.”
토해져나온 불길. ”
뜨거운 쇳물을 흩뿌린듯한 흔적.”
흩뿌려진 쇳물은 저마다의 형태를 가진다. 무게로 찍어누르듯이 휘두른 형태, 예기를 머금은 휘두름, 초견살, 파열, 라크가 단련해왔던 모든 기술들이 불길의 형태로 재현됐다. 열기를 머금은 검격이, 밀어낸 바르타의 검기를 휘감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기어코, 바르타의 검기가 부러지고 만다.”
검기가 부러진 순간 굉음과 함께 검기가 머금고 있던 힘의 격류가 휘몰아쳤다. 비산하는 빛무리. 몰아치는 폭풍. 휘감기는 흙먼지.”
투확!”
그 모든 것을 꿰뚫고 바르타가 라크의 앞에 나타났다. 땅을 때려 부수며 거리를 좁힌 바르타가 라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마치, 밀어낼 거라고 알고 있었단 것처럼.”
너라면 그리할 거라 신뢰하고 있었단 것처럼.”
칼날에 맺힌 흉포한 검기와 함께 단두대처럼 내려쳐 지는 검. 처음 조우했을 때의 상황과 같다. 그리고, 이번 역시 라크는 물러서지 않았다.”
쿠웅.”
오히려 자신도 한 걸음 더 내디디며 부러진 칼자루를 쥔 손목을 비틀었다. 치솟는 불길이 칼자루를 휘감으며 이루는 형태는··· 라크에게 있어 가장 익숙한 형태의 무기다. 처음으로 들었던 무기.”
도끼의 형태를 이룬 불길.”
도끼와 바르타가 내리친 검이 맞부딪친 순간 굉음과 함께 일대가 뒤흔들렸다. 쪼개지고, 금이 가고, 파먹혔던 공간들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유리창처럼 쪼개졌다. 그리하여 완전히 세상에서 유리된 공간.”
그들만의 공간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일격을 완성시켰다. 서걱, 그리고 콰작. 두 개의 소리가 동시에 울려퍼졌다.”
마수의 핏물과 인간의 핏물이 치솟았다.”
검과 도끼가 맞부딪친 순간 풍경이 쪼개졌다.”
유리창에 금이 내달리듯이, 깨진 유리의 파편이 흩날리듯이, 쪼개지고 박살 난 공간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꽃잎처럼 흐드러진 파편들 사이로 두 명의 인간은 서로를 마주했다.”
···라크는 바르타가 쥔 검(劍)을 보았다.”
검에 담긴 것은 바르타 자신이요, 스스로가 인간이길 바란 짐승이 살아온 기나긴 삶이다. 바르타가 쌓아올린 탑, 그가 걸어온 길, 최후에 품은 신념··· 그 모든 것이 담긴 검은 무거웠다.”
···바르타는 라크가 쥔 불길을 보았다.”
도끼의 형상을 이룬 불길에서 라크의 삶을 엿보았다. 긍지, 독립,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서야 깨달은 자기 자신. 꺼지지 않는 불길은 몹시도 뜨거웠다.”
그리하여 맞부딪치는 것은 삶과 삶이다.”
혹은 신념과 신념이요, 혹은 자신의 전부이리라. 두 명의 인간은 자신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것을, 가장 찬란한 것을 제 호적수에게 내보였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앙!”
삶과 삶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오는 충격파에, 풍압에, 쪼개지는 공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둘은 단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쿵, 하고 서로를 향해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카, 가가가가, 가가각.”
맞부딪친 두 개의 생(生)은 결코 자신을 꺾지도 굽히지도 않는다. 결국 칼날과 불길은 서로를 긁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칼날을 타고 불길이 미끄러졌다. 불길을 타고 칼날이 미끄러졌다.”
촤악.”
그렇게 두 개의 궤적은 각자의 길을 완성한다. ”
그 무엇과도 닮지 않은, 오직 자신만의 삶을. 완전한 궤적을 그리는 칼. 완전한 궤적을 그리는 도끼. 휘두름이 먼저고, 소리가 잠깐의 틈을 두고 뒤따랐다.”
서걱, 그리고 콰작.”
바르타의 검이 라크의 왼팔을 베었다. 라크의 도끼가 바르타의 왼팔을 베었다. 조금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같은 순간에, 둘은 무기를 움켜쥔 상대의 팔을 베어냈다.”
촤악.”
마수의 피와 인간의 피가 솟구쳤다. ”
솟구치는 핏물 사이로 쿠웅, 하고 다시 한 번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팔이 모두 잘려 검을 쥘 수 없게 된 바르타이나, 그는 그런 사실에 개의치 않는다. 마지막까지 검을 놓지 않은 자신의 왼팔. 잘려나가 허공에 떠오른 제 왼팔을 바르타는 쩍 벌린 아가리로 물어뜯었다.”
검이란 곧 자신의 일부.”
떨어져 나간 왼팔을 물어뜯은 순간, 검기(劍氣)가 바르타의 왼팔을 휘감았다. 떨어져 나간 제 팔을 검(劍)으로 삼아 바르타는 검로를 이어붙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간결하고, 깔끔한 쾌속의 검격이 향하는 곳은 라크의 목덜미.”
그리고, 라크는.”
등 뒤로 늘어트렸던 오른팔을 앞으로 당겼다.”
그 손에는 이미 불길로 이루어진 도끼가 쥐어져 있었다. 처음부터, 라크는 양손에 한 자루의 도끼를 쥐고 있었다. 양손에 한 자루씩 도끼를 쥐고 휘두르는 것이야말로, 라크가 본래 쓰던 전법이었으니.”
화륵.”
불길을 끌며 라크의 도끼가 움직였다. ”
공교롭게도 라크가 노리는 것 역시 바르타의 목덜미다. 서로가 서로의 목을 노리고 무기를 휘둘렀다. 라크의 도끼가 그리는 궤적과, 바르타의 검이 그리는 궤적은 또다시 겹쳐진다. 겹쳤지만···.”
이번에는, 조금 전과 달리 결판이 났다.”
한순간 가속한 라크의 도끼가 바르타의 검기를 찢어발겼다. 바르타가 악문 그의 왼팔을 찢어발겼다. 흐드러지는 마수의 핏물을 가르며, 라크의 도끼가 바르타의 목덜미에 박혔다. 파고들었다.”
“—————!””
라크가 괴성을 내지르며 팔을 휘둘렀다. ”
뼈를 가르고 살을 찢는 감각.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라크의 도끼가 완전한 궤적을 그렸다. 궤적을 따라 치솟는 불길. 시뻘건 열선(熱線)이 바르타의 목에 그어졌다.”
그 순간 정지했던 시간이 제 속도를 찾았다.”
바르타의 검이 휘둘러졌던 궤적을 따라 쩌억, 하고 풍경이 비스듬히 잘려나갔다. 라크의 등 뒤로 폭풍이 휘몰아쳤다. 라크의 도끼가 휘둘러진 궤적을 따라 치이이이이익! 소리를 내며 그어진 열선이 닿는 모든 것을 불태웠다. 한껏 달궈진 풍경이 흐물거리며 녹아내렸다.”
쿵, 쿠궁. 쿠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