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7
〈 47화 〉 깨달음, 그리고 성장(3)
* * *
마나 거래학 교수, 로셀 반 트리아스.
그는 교수실에 앉아 커피 한잔을 홀짝이며, 은은한 미소를 흘리고 있다. 그 모습을 다른 교수가, 혹은 학생이 보았다면 몹시 놀랐을 것이다.
‘로셀 교수가 웃고 있다!’
그런 말들을 하며 호들갑을 떨었을 테지. 그 모습은 도저히 평소의 로셀과 매칭되지 않을 테니까.
로셀은 언제나 날카롭고,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교수다. 그런 교수가 작게나마 웃을 때, 그 이유는 대게 하나뿐이다.
‘열심히도 하는군.’
로셀의 시선은 교수실 한편에서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는 자신의 제자를 향한다. 그녀는 벌써 몇 시간 째 자리에 앉아 무언갈 작성하고 있다.
‘저 아이가 저렇게까지 열을 올리는 건···.’
5년 전까지만 해도 자주 보았던 풍경이다.
그러나, 5년 만에 돌아온 제자에게선 처음 보는 모습이다. 옛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라 로셀은 커피를 홀짝이며 미소 지었다.
“그립군.”
그리 중얼거리는 로셀의 말에, 라니엘이 고개를 들었다. 로셀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예? 뭐라 하셨어요?”
“음,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집중을 방해한 것 같구나. 미안하다.”
“거의 다 끝나서 괜찮아요.”
한번 보시겠어요?
그렇게 라니엘이 묻는다. 로셀은 제자의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나 거래학 담당 교수실은 넓지만 이 넓은 방을 사용하는 건 라니엘과 로셀 둘 뿐이다. 그 탓에 칸막이를 트고, 이어 붙인 책상은 길쭉하다.
테이블 위에 정리된 서류 중, 수업 계획서라고 적힌 서류를 로셀은 집어 들었다.
“어디 한번 보자꾸나.”
책상에 기대어 선 채, 로셀은 계획서를 확인한다.
‘확실히, 이전 계획서와는 다르군.’
그 내용이 체계적이다. 두루뭉술했던 이전 계획서와 달리, 확실하게 정리된 듯한 모습이다. 무엇보다 별표를 쳐놓은 주석들이 무척 마음에 든다.
* 하면 되던데요, 같은 대사는 절대 치지 말 것.
로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맥하트, 그 교수에게서 많이 배운 모양이로구나.’
계획서의 확인은 금방 끝났다.
종이를 내려놓는 로셀에게 라니엘이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기대 가득한 눈치다.
“어떤가요?”
“나쁘지 않더구나. 이대로만 수업 한다면, 앞으로 내가 가르칠 것은 몇 없겠어.”
로셀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열흘간 교수 여럿을 휴강하게 만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한 번 감을 잡으면, 그다음부턴 순식간에 성장하는 아이니까.’
그 괴물 같은 성장 속도를 로셀은 믿는다.
자신이 해줄 것은 옆에서 자잘한 조언을 하며 방향성을 조금씩 잡아주는 일뿐이겠지.
‘조언, 조언이라···.’
자리로 돌아가려던 로셀은 잠시 멈춰 섰다.
그러고 보니, 서류에서 걸리는 게 하나 있긴 했다.
“하나 의문이 드는 점은 있더구나.”
“네?”
“서류에서, 이 ‘학생들이 그릴 수 있는 최선의 회로 분석’ 항목은 어떻게 처리할 셈이냐? 과제로 낼 것이라면, 다음 수업에 들어가야 할 텐데.”
아플리아 학생들의 수준은 결코 낮지 않다.
개중에는 최상급의 주문 회로를 그릴 수 있는 학생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수업 중엔 그릴 수 없을 터인데?’
로셀이 기억하기로 라니엘의 수업은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기량으로 최상급의 주문 회로를 처음부터 그리려면, 못해도 4~50분은 소요될 것이다.
“수업 중에 시키기엔 빡빡하지 않겠느냐?”
“아, 그게요.”
그렇게 묻는 로셀에게, 라니엘은 옆에 쌓아놨던 종이를 꺼낸다. 학생 수에 맞춰 준비된 종이다.
“요걸 준비해 놨거든요.”
“·····.”
로셀은 말 없이 그 종이를 살핀다.
그 재질 부터가 남다르다.
‘···내가 잘 못 본 것인가?’
종이를 살피던 로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잠깐만. 라니아, 이건···.”
“네, 회로 기록지에요.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회로를 곧장 옮길 수 있도록 메모라이즈(Memorize) 주문을 걸어둔 종이.”
메모라이즈 주문이 걸린 종이.
일명 회로 기록지라 불리는 그것은, 로셀도 잘 알고 있다. 마학회에서 난제를 기록할 때 쓰는 문제지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로셀이 놀란 부분은 그 점이 아니다.
‘더럽게 비쌀 텐데?’
바로 이 회로 기록지의 가격이다. 로셀이 기억하는 게 맞다면, 회로 기록지의 한 묶음의 가격은 어지간한 연구실의 한 달 예산과 맞먹는다.
‘못해도 4,50장은 넘어 보이거늘···.’
설마 싶어, 로셀은 라니엘에게 물었다.
“라니아.”
“네?”
“이 전부가, 설마 회로 기록지이느냐?”
“네? 아뇨, 일단 열 장만 받았어요.”
···일단?
“일단이라면···?”
“흑마탑주님이 직접 새겨주신다고 했거든요. 좀 이따 받으러 가려고요.”
“모든 학생에게 나눠줄 생각이느냐?”
“네? 당연하죠. 누군 주고 누군 안 주면 차별이잖아요. 공평하게 줘야죠.”
탁, 로셀은 이마를 쳤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돈이···.”
“카드 열어 보니까 쌓여있던데요.”
“뭣?”
라니엘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로브를 뒤적여 작은 카드를 꺼냈다. 국가에서 발급해주는 금화 저장 마법이 걸린 카드다.
‘분명, 기사들의 월급을 저 카드로 넣어준다고 했던가? 저장된 돈은 별다른 과정 없이 뽑을 수 있고.’
로셀이 그리 생각하는 와중, 라니엘은 카드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이윽고 카드 위로 숫자가 떠 오른다.
“요만큼 쌓여 있더라고요.”
로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액수를 샌다.
십만, 백만, 천만···.
끝없이 이어진 자릿수에 로셀은 눈을 깜빡였다.
“···이게 다 무어냐?”
“토벌 보수금에, 특훈 사례금에, 뭔 구출 작전 사례금에··· 뭘 많이 받긴 한 것 같은데, 저도 이제 열어봤어요.”
“···여행 자금은?”
“예? 기사 지원금으로도 충분하던데요. 카일이랑 다른 년들이야 뭐··· 옷 사고 놀러 다니는데 쓴 것 같긴 하지만 제가 쓸 때가 있어야죠.”
그렇게 말하며 라니엘은 배시시 웃는다.
“좀 많이 모았죠?”
로셀은 웃지 못했다.
‘···조금?’
저게?
찰나지만, 눈앞의 제자가 로셀의 눈에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잿빛 마탑의 원로인 자신도 어디 가서 재력으로 밀리지는 않지만···.
‘이건 차원이 좀 다르지··· 않은가?’
카드에 기록된 액수는, 결코 웃어 넘길만한 액수가 아니었다. 막말로 마탑 한 채 정도는 세울 수 있을 만큼의 액수였다.
2.
“있잖아요, 카일.”
“왜 그러지, 사라.”
“이번에 이렇게 장비 다 맞추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카일은 사라가 가져온 카탈로그를 흘겨본다.
흑색 마탑에서 만든 옷들이다.
주문이 스톡(Stock)된 의복.
그 밑에는 조그맣게 특별 제작만 받는다는 주의사항이 써져있다.
“나도 이거 괜찮아 보여.”
이번엔 레미아가 카탈로그를 건넨다.
엘프와 흑색 마탑의 합작이라고 소개된 방어구다. 엘프들의 의복에 주문을 새겨 넣었다는 광고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박혀있다.
“·····.”
카일은 말없이 레미아와 사라를 흘겨본다.
그 둘이 지금 입고 있는 복장 역시 흑색 마탑에서 특별 제작한 방어구와, 사제복이다.
저걸 얼마 전에 샀더라.
카일은 기억을 떠올려 본다.
오랜 기억을 더듬을 필요도 없었다. 아마, 한 달도 안됐던 거로 기억한다.
‘산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나?’
그렇게 물으려던 카일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사라와 레미아의 눈치를 살폈다.
“응? 카일? 안될까?”
“오늘 밤엔 특별히 카일이 좋아하는···.”
눈을 반짝이고 있다.
자연스레 몸을 밀어붙이며 아양을 떤다.
“·····.”
카일은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마주하며, 이번 달 보상금으로 받았던 것들을 떠올려 본다.
‘···Vip 고객 할인이 몇 퍼센트 던가.’
지금 가진 돈과, 그 할인의 퍼센트를 저울에 올려보자 답은 금방 나왔다.
‘정말, 간당간당하게 되는군.’
왕국에 장비가 상했다고 보고하면, 보상금도 조금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내일 사러 가도록 하지.”
“야호!”
“고마워요, 카일!”
환호성을 지르는 사라와 레미아를 뒤로하고, 카일은 관자놀이를 짚었다.
‘여행 필수품은··· 또 대출의 형식이 되겠군.’
어차피 용사란 이름을 대면 빌려주긴 한다.
그러나, 요즘 그 시선이 옛날과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는 카일도 짐작하고 있다.
···잿빛 마법사님은 안 계십니까?
그러고 보니, 은퇴하셨다고 했었지요.
잿빛 마법사님은···.
상인들이 자꾸 그 녀석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그리곤 라니엘이 없음을 확인하곤 인상을 찌푸린다. 어느 날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카일님, 말씀드리는 게 조금 송구스럽지만··· 저희가 그동안 무료로 빌려드린 건 잿빛 마법사님께서 저희 마을을 종종 방문하여 자질구레한 마수 토벌들을 처리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잿빛 마법사님이 뒤에서 직접 제작하신 방호 회로를···.
라니엘님이 뒤에서 돈을 좀···.
그러면서 상인들은 은근한 눈치를 보낸다.
‘뭐라도 줄 건 없습니까?’
꼭 그렇게 묻는듯한 눈치를 말이다.
“·····.”
카일은 눈살을 찌푸렸다.
고개를 살짝 들어, 환호성을 지르는 사라와 레미아를 흘겨본다. 그 둘은 카탈로그를 보며 흑색 마탑의 디자인에 감탄하고들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씨발련들이, 돌았냐?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야, 산 지 얼마나 됐다고 그걸 또 사? 니들은 돈이 땅 파서 나오냐? 뭐 씨발? 이게 필요해? 걸린 주문 회로라곤 청결밖에 없는데?
당장 주문 취소해라. 내가 지금 늬들이 입고 있는 것도 다 찢어버리기 전에.
카일의 마음 한구석엔 존재하던 말들.
그 말들을 속 시원하게 쏘아대던 잿빛 머리칼 마법사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
카일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그 녀석이 그리웠다.
3.
흑색 마탑의 최상층.
마탑주, 예투알의 개인 연구실 겸 사무실.
그곳에는 한 명의 손님이 와 있었다.
그것도 방문이 아닌, 초대를 받은 손님이다. 어지간한 손님을 받지 않는 예투알이 직접 초대를 했단 점에서 그 손님의 특별함을 알 수 있다.
“·····.”
예투알은 말없이 맞은편에 앉은 손님을 흘겨봤다. 현재 왕도에서 관심을 한목에 사고 있는 인물이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사무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뭔가 흥미로워 보이는 눈치다.
‘···관심을 가져준다면 좋은 일이지.’
그 사실에 흐뭇해 하며 예투알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궁금한 게 있는가?”
그렇게 묻는 예투알에게, 소녀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곤 손가락을 뻗어 잡지를 가리켰다.
‘저건···.’
흑색 마탑에서 자랑하는, 회로를 새긴 고급 의복을 소개해 둔 카탈로그였다.
“저 카탈로그 말인데요?”
“음, 흑색 마탑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지. 혹시 관심 있는가?”
예투알은 그리 말하며 소녀의 복장을 쓱 훑어보았다. 겉보기에도 그 복장은 예사롭지 않다.
‘···심지어 왕가의 문양이 찍혀있군.’
왕가에서 선물했다는 뜻이다.
비록 흑색 마탑의 회로 각인 기술에는 못 미치더라도, 옷감 자체에 마나를 먹이는 왕실의 기술은 일류의 것이었다.
‘···옷에 관심이 있는 건가?’
그렇다면, 조금 비싸긴 하지만 한 벌 정도야 선물해 줄 수는 있다. 이만한 마법사의 환심을 사는데 그 정도야 가벼운 값일 테니까.
‘어디 보자, 옷감이 남은 게···.’
예투알이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소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건 아닌데요.”
“그럼?”
“저 옆에 Vip로 붙어있는 고객들 있잖아요?”
그녀는 카탈로그에 붙어있는 이달의 VIP 항목을 가리켰다. 보다 정확히는, 항목의 맨 상단에 위치한 K 라는 이니셜을.
“아, 우리 흑색 마탑의 VIP분이시지.”
예투알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니셜로 기재 해두긴 했지만, 그 정체를 예투알은 알고 있다.
의복 사업의 초창기부터, 신상품은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적이 없는 고객 K.
‘용사, 카일.’
그 정체가 바로 용사 카일이었으니까.
‘소비한 돈만 해도, 마탑 한 채는 족히 세우고도 남을 돈이었지.’
그 덕에 흑색 마탑의 의복 사업은 성공적으로 그 크기를 불러나갈 수 있었다.
“참 고마운 고객분이시지. 음, 저 고객분의 정체를 알려주는 건 힘들겠군. 손님의 신원은 보호해줘야 하니 말일세.”
“아니, 정체는 별로 안 궁금하고요.”
소녀가 질문했다.
“저 K라는 고객분, 지금도 구매 많이 하시나요?”
“음? 저번 달 카탈로그에서도 VIP를 갱신하셨지. 꾸준히 구매하고 계신다네.”
그 대답에, 소녀는 무척이나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이가 없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통쾌해 하는 것 같기도 한 묘한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무언가 속에서 결론이 난 듯 소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흑마탑주님.”
“왜 그런가.”
“신상품을 낼 때 새기는 회로의 품질은 상관없고, 디자인만 예쁘게 뽑으셔도 될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린가?”
예투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한번 그렇게 내보세요.”
라니아는 은은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잘 팔릴 거에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