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21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카일은 지금 입으로 넘어가는 게 고기인지 채소인지 구분이 안 간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라가 어지간히도 들들 볶아댄 모양이지.”
내가 피식 웃으며 테이블 밑으로 발을 뻗어 카일의 정강이를 후려깠다. 정신 좀 차리라는 의미에서.”
윽, 하고 신음을 흘리는 카일을 바라보며 난 어깨를 으쓱였다. 꼴 좋다. 뿌린 대로 거두는 거다 이놈아. 고기를 뜯으며 내가 입을 열었다.”
“하긴 다 끝났으니 결혼식 올려야지. 너희 정도면 국혼급의 행사 아니야? 축제 끝나고 또 축제 열리겠네.””
“조금 부담스럽군.””
“이런 거 즐기던 놈이 이제 와서?””
“용사가 아니잖냐, 이제.””
별빛을 잃고 스스로를 검사라 칭하게 된 이후부터 다소 검소해진 카일이다. 하기야, 지금의 녀석에겐 이런 것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겠지. 하지만 까놓고 말해서 내 알 바는 아니었다.”
“그래서 결혼식은 합동이냐?””
내가 포크로 카일의 양옆을 가리켰다.”
한 팔에는 성녀, 다른 한 팔엔 신궁을 끼고 있는 방탕한 용사를 흘겨보며 내가 질문했다.”
“둘이 같이 올리는 거 아냐?””
“···난 아직 준비 안 됐어.””
카일의 오른쪽에 앉아있던 레미아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기다린 귀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부끄러운 듯 고개도 못 든 채 레미아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결혼은, 좀 이르잖아. 난 아직 준비 안 됐어.””
그런 레미아의 대답에 사라는 ‘뭐 그러시겠죠~’ 하는 표정을 지었고, 내 표정도 사라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고 빨고 할 거 다한 연놈들이 이제 와서 새삼스래···?”
“뭐, 식 올릴 때 주례 정도는 봐줄게.””
“필요 없다. 진지하게.””
“필요 없어요.””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나 때도 필요 없어.””
말을 꺼내자마자 카일, 레미아, 사라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단칼에 거절하는 니들을 봐서라도 주례는 꼭 내가 서야겠다. 그리 다짐하며 나는 웃었다.”
“이제부터 뭘 할 거···.””
“결혼이요.””
뭐지, 이 기시감은.”
내 표정이 순식간에 떫어졌다. ”
“일단 이 사람 의수부터 찾아보고, 그다음에 결혼식을 올릴 생각입니다. 북부에서 올릴지 수도에서 올릴지는 조금 고민해볼 생각이구요.””
라크와 팔짱을 낀 채 나티다는 웃고 있었다.”
“의수? 재생은 안 시키고?””
“시도는 해봤는데 아무래도 마수의 왕이 남긴 검격은, 팔과 영혼의 흐름을 끊어버린 것 같더군요. 재생할 수 없어서 의수로 대체해야 할 것 같아요.””
“복잡하네.””
“그리고···.””
나티다가 라크를 흘겨봤다.”
라크는 곤란하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도 이 상처는 남겨둘까 합니다.””
“그래?””
“예, 전사와 싸워 이긴 흔적이니까요.””
라크 본인이 그렇다면야, 뭐.”
“의수는 카르디한테 찾아가보면 될 거야. 얘만큼 실력 좋은 연금술사 없으니까. 말은 미리 해둘게.””
“감사합니다, 은사님.””
은사님, 하고 나티다는 나를 불렀다.”
교단에서 그녀를 꺼내온 이후로 그녀는 나를 은인이라 여기는 듯했으니까. 내 보좌관으로 있을 때는 날 용사님이라 불렀지만, 모든 일이 끝난 지금 그녀는 나를 다시 은사님이라고 불렀다.”
‘그러고 보니 나티다도 많이 변했네.’”
문득 처음 만났을 때의 나티다가 떠올랐다.”
약에 절어 망가지고,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입히고, 초점 잃은 눈으로 세상을 저주하던 성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티다는 으레 그 나이대 소녀들이 그러하듯 행복하다는 듯 미소 짓고 있었다.”
“결혼 미리 축하한다. 나티다, 라크.””
잘 된 일이었다. 정말로.”
“벨노아, 이것 좀 먹어봐.””
“나도 팔 있어.””
“조용히 하고 먹어.””
“나도 팔 있다니까?””
얘들아.”
“아, 선배님. 잠시만요··· 벨노아 입 벌려봐.””
“클로에, 나도 팔 있···.””
얘들아, 지금 내가 말을 하고 있잖아.”
“너희 이제부터 뭐할 거냐고 물었단다.””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클로에는 벨노아의 입에 밀어 넣던 케이크를 내려놨다.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닦아내며 벨노아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흑색 마탑을 잇게 될 것 같습니다. 예투알, 그 아저씨가 준비를 다 해놓았더라고요.””
“흑색 마탑?””
“예, 흑색 마탑에 주술 계파를 추가하고 분탑을 지어 제게 관리를 맡기셨습니다. 아마 충분히 규모가 커지면 다시 본탑으로 불러들여 마탑주 자리를 넘기실 것 같은데··· 열심히 해 봐야죠.””
벨노아는 예투알의 후계자로서 흑색 마탑의 차기 마탑주로 내정된듯싶었다. 벨노아도 싫은 기색은 아니었고, 예투알과의 사이도 좋아 보였다.”
‘처음엔 서로 엄청 견제했던 것 같은데.’”
어느샌가 예투알은 벨노아의 후견인이자 아버지 정도의 존재가 된 듯싶었다. 하긴, 그 아저씨 겉보기엔 음습한 흑막 같지만 까보면 그냥저냥 평범하게 좋은 사람이니까.”
“저도 비슷할 것 같아요.””
클로에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벨노아가 분탑을 관리하는 동안, 전 예투알 아저씨 밑에서 본탑의 관리를 배울 것 같거든요. 다음대 마탑주는 너희 둘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고요.””
마탑주가 둘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뭐, 사이가 좋아 보이니 상관은 없겠지.”
“그건 그렇고.””
내가 떫은 눈초리로 두 사람을 흘겨봤다.”
듣자하니 광인 토벌전이 끝난 직후 사귀기 시작한 것 같은데, 뒤늦게 불이 붙어서 그런지 두 사람 사이에 깨가 쏟아지고 있었다. 보기 좋긴 한데, 정도가 심하니 옆구리가 조금 쑤셨다.”
“공공장소에선 자제하렴.””
“···명심하겠습니다.””
“네···.””
상황보니 얘들도 결혼 곧 하겠네.”
결혼식이 대체 몇 개나 열리는 거지. 손바닥을 펼쳐 수를 세보다가,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분간 마탑 관리에 집중할 생각이에요.””
잿빛 마탑의 최상층.”
레스티는 술을 홀짝이며 입을 열었다. 취기가 돌았는지 레스티는 투덜대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으니 확 잡아야 할 필요가 있거든요. 요즘 축제라고 분위기가 해이해졌는데, 카르테디아가 제국이 된 지금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 해야 할 건 다름 아닌 마법사들 아닌가요?””
“그렇지.””
“진행되는 국책사업마다 이름 올리고, 빡빡하게 경력 올려도 모자랄 시간에 풀어져서 돌아다니는 마법사들 보면 마음이 아프네요.””
네가 뭘 좀 아는구나.”
“특히나 연애한다고 축제 싸돌아다니는 마법사들이 많은데, 연애가 대체 뭡니까? 시간 낭비에요. 쯧, 마탑의 연구에 평생을 바쳐도 모자란 데··· 서로에게 제 반평생을 바칠 것을 맹세해? 어이가 없어서 진짜.””
“맞지. 마법사의 동반자는 마학이잖아. 마학에 한평생을 바쳐도 모자란데··· 뭐? 인생의 반쪽? 결혼?””
내가 쯧 혀를 찼다.”
“배가 쳐 불렀지 아주.””
“그렇죠. 하여간 요즘 것들은···.””
“그러니까 우리 같은 인재가 안 나오는 거야. 애들이 기본적으로 배가 불렀어. 나 때는···.””
술잔을 기울이며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역시 선배님이세요.””
“역시 내 후배야. 잘 배웠어.””
너 밖에 없다 레스티.”
이곳은 한때 내 집무실이었던 곳이었지만, 이제 이곳에서 나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잿빛 마탑주는 라니엘 반 트리아스가 아니라 레스티 엘레노아였으니까.”
“선배님이랑 오랜만에 이야기하니까 좋네요.””
레스티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털털하게, 그리고 가볍게.”
스스로의 재능을 두려워하고, 남들의 시선에 어깨를 움츠렸던 마법사는 그곳에 없었다. 당당하게 어깨를 편 채 마법사들의 위에 군림하게 된 잿빛 마탑주 레스티 엘레노아를 바라보며 나는 미소 지었다.”
“잘 컸네.””
“장로님께서도 그리 생각하시겠죠?””
“그러실 거다. 분명.””
쨍, 하고 우린 술잔을 맞부딪쳤다.”
“뭘 할 생각이냐고? 보면 알지 않나.””
아플리아 아카데미의 교수실.”
마나의 거래학 심화, 원소 주문의 기초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가 차를 홀짝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지.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하게 될 것 같군. 은퇴하게 되기 전까지 말야.””
켈르할름 벨 아르티아.”
한때 광인(狂人)이라 불리던 초인 마법사이나, 마나를 잃고 광기에서 해방된 인물. 그는 아플리아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었고, 그를 추천한 장본인으로서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적응은 잘한 모양인가 봐?””
“적응할 필요는 딱히 없지. 본래부터 난 교육자에 근본을 두고 있었으니까. 지난 백 년간이 일탈이었을 뿐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본래부터가 교육자였으나, 제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켈르할름은 전장으로 향했던 거니까. 약속을 지키고 광증으로부터 해방된 지금, 켈르할름은 어쩌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