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20
라니엘은 신문 가판대 앞에 멈춰 섰다.”
그곳에 놓인 신문 하나를 집어들었다. 촥, 하고 절도있는 동작으로 신문을 펼친 그녀는, 신문의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쓰인 문구를 바라봤다.”
[인류의 영웅.]”
[라니아 반 트리아스.]”
썩 마음에 드는 문구였다.”
신문을 읽으며 라니엘은 흡족하게 웃었다. 선뜻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로 라니엘은 자신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거리에 늘어선 노점상에서 음식을 사고, 축제에 대해 자세히 적힌 안내책자를 읽으며 그녀는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날씨는 따뜻했고 사람들의 복장은 가벼웠다.”
걸음을 옮기다 말고 라니엘은 자신이 두르고 있는 머플러를 풀었다. 용사 정복의 외투를 벗어 머플러와 함께 돌돌 말아 팔에 걸었다.”
“후우.””
짧게 숨을 뱉으며 그녀는 걸음을 옮겼다.”
근엄한 영웅도, 위대한 신도 아닌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그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인간처럼.”
환호성에 미소 짓고, 자신을 칭송하는 글귀에 흡족해하며, 그리고 그런 것들을 굳이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평범한 인간처럼 그녀는 축제를 즐겼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그들의 환호성에 웃음으로 답하며, 몸에 힘을 빼고 걸음을 옮기던 도중 라니엘은 문득 느꼈다.”
어깨가 가볍다고.”
몸과 걸음이 가볍다고.”
마치, 오랜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
더는 완벽할 필요가 없었기에 더는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어깨와 목에 힘을 주고 걸어 다닐 필요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었고, 인류의 대표가 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때로는 걸음을 헛디뎌 비틀거렸고, 때로는 음식을 바닥에 조금 흘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런 자신이 어이가 없어서 라니엘은 웃음을 흘렸다.”
가벼웠다. 가벼웠기에.”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뭘 할거냐고 물으셨습니까?””
내 질문에 칼트는 흐음, 하고 턱을 매만졌다.”
“글쎄요, 당분간은 이 자리에 앉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두세 달 정도?””
칼트는 자신이 앉아있는 자리를 가리켰다.”
제 옆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업무를 바라보며 칼트는 어깨를 으쓱였다.”
“제국도 혼란스러우니 당분간은 교통정리를 도와야죠. 제가 말이 은퇴지, 아직 여전히 하운드의 수장이니 책임은 다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것들 다 끝나면?””
다 끝나면, 말입니까.”
그리 중얼거리던 칼트가 입을 열었다.”
“그땐 하고 싶은 일을 해야죠.””
“하고 싶은 게 뭔데.””
“아시잖습니까. 검의 협곡의 재건.””
칼트가 집무실의 벽에 걸어둔 자신의 검과, 전대 검성 쿤텔 아저씨의 검을 가리키며 미소 지었다.”
“이래 봬도 제가 검성 칭호를 가지고 있···.””
“카일이 안 가지겠다고 거부한 거?””
“···으니까, 갈라트릭을 재건하는 건 저의 역할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사람이 꿈 이야기를 하는데 초 좀 치지 마십시오 선배님.””
째려보는 칼트의 시선에 피식, 웃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안 끊을 테니까 계속 이야기해봐.”
“검의 협곡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수련생들을 모아야겠죠. 검술 스승들도 모아야 할 테고. 수련생은 제국의 검술 아카데미와 연계를 하면 될 테고··· 스승이야 뭐, 차고 넘치지 않습니까.””
칼트가 웃었다.”
“갈라트릭류 정통파인 저와, 갈라트릭류 개(改)를 쓰는 라크, 그리고 하늘도 반으로 쪼개는 검의 마법사 카일 님까지 섭외하면 스승 모자랄 일은 없을 겁니다. 완벽하군요.””
“···괴물들이라도 키우게?””
“그냥, 검의 뜻을 이으려는 겁니다.””
검의 뜻. 갈라트릭 님의 유지.”
칼트는 그리 중얼거리며 길게 숨을 뱉었다.”
“잊혀지기엔 아까운 기술들이지 않습니까. 이어지게 만들어야죠. 갈라트릭류 라는 이름의 나무가 먼 미래까지 뻗어 나갈 수 있게끔 말입니다.””
“멋있네.””
“예, 멋진 일이지요. 초대 검성 갈라트릭 님이 그러했듯이, 제 스승이었던 쿤텔 님이 그러했듯이, 저도 누군가에게 검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내가 해봤는데 가르치는 거 쉽지 않더라.””
“최소한 선배님보단 잘 가르칠 것 같습니다.””
내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남 가르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데. 나는 칼트가 들려준 이야기를 조금 구체적으로 그려봤다. 무너진 검의 협곡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끝나버린 것들 사이에서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풍경을.”
아마도, 분명 멋진 풍경이리라.”
그러고보니 쿤텔 아저씨도 그런 꿈을 꿨던 것 같은데. 만에 하나라도 자신의 손으로 가니칼트를 쓰러트린다면, 검의 협곡을 재건할 거라고 술에 취해 중얼거리던 쿤텔 아저씨가 떠올랐다.”
“······.””
나는 말 없이 칼트를 흘겨봤다.”
쿤텔 아저씨의 검(劍)을 이어받았고, 유지를 이어받았으며, 마침내 그 꿈까지 이어받은 것일까. 다음을 이야기하는 칼트에게서 난 쿤텔 아저씨를 겹쳐보았다.”
“좋은 꿈이네.””
“그렇지요?””
“뭐, 그거하고 별개로 스승들은 조금 더 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너희 셋만 놔두면 입문하는 검사들 다 몸 비틀고 쓰러질걸?””
“그것도 맞는 말이군요.””
칼트가 쓰게 웃었다.”
자기가 비범하단 사실은 자각하고 있는 칼트다. 하물며 라크와 카일까지 가면 뭐··· 말할 것도 없고.”
“열심히 해봐라.””
내가 길게 숨을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시려고요?””
“배웅은 나오지 마라. 일 많다면서.””
“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선배님.””
이놈 봐라.”
내가 피식 웃으며 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이걸 보면 너 나한테 그런 태도로 못 나올 텐데.”
“가져가.””
“뭡니까. 또 일입니까?””
“조용히 하고 읽어보기나 해.””
한숨을 푹푹 쉬며 칼트가 서류를 집어들었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참으며 칼트가 서류를 확인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
서류를 읽던 칼트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녀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와 서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허어어어어억, 하고 숨을 헛삼켰다.”
“아니, 이게 무슨···.””
“말했잖아. 약속했던 거라고.””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칼트가 지금 읽고 있는 저거, 수도의 노른자 땅에 지어질 종합 건물에 대한 서류였다. 당연하게도 그 건물의 소유권자는 내가 아니라 칼트였고.”
“거기 황실 소유의 땅인데, 이번에 확장되는 수도에서 중심이 되는 땅이거든? 거 왜, 너 레타른 광장 알지? 수도의 중심에 있는 큰 광장.””
“압니다. 땅값 제일 비싼데 아닙니까?””
“그래, 거기. 지금 네가 보고 있는 서류에 적힌 건물이 올라가는 곳이 확장된 수도에서 제 2의 레타른 광장이라 불리게 될 곳이야.””
칼트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녀석이 서류를 확인하는 동안 나는 말을 이었다.”
“수도 확장하면서 광장 몇 개가 더 생길 텐데, 그중에 거기가 제일 큰 광장이다. 이쯤 되면 알겠지?””
“허, 허어억···.””
눈이 부릅 뜨이지? 이 녀석아.”
좋은 땅이다 거기. 거기 돈 주고도 못사는 땅이야.”
칼트가 숨을 헛삼키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눈동자가 그렁그렁한 게 꼭 눈물이라도 한 방울 흘릴 분위기였다. 하기야,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녀석이니까 저 땅이 가진 가치를 한눈에 알아봤겠지.”
저곳, 이번에 확장되는 수도의 첫 개발지역이자 수도 확장의 본보기가 되는 땅이다. 카르테디아가 제국으로 바뀐 뒤 처음으로 추진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이니, 망하려야 망할 수가 없겠지.”
“세상에··· 선배님···.””
칼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 눈동자가 좀 심하게 반짝였다.”
“약속 안 잊어버리셨습니까···?””
“까먹을 때마다 니가 귀에 대고 소리 지르면서 드러눕는데 어떻게 까먹어?””
“젠장, 선배님······.””
칼트가 나를 우러러봤다.”
눈동자에서 존경심이 뚝뚝 묻어나오는 게, 어째 날 보는 시선이 많이 바뀐 것 같았다. 아무튼, 이걸로 난 약속은 지킨 거다.”
“그럼 난 간다.””
그리 첫 걸음을 뗀 순간이다.”
급히 일어난 칼트가 내가 말릴 틈도 없이 달려나와, 내가 벗어둔 외투를 촥 펼쳐 어깨에 둘러줬다. 그리곤 집무실의 문을 열어젖힌 채 절도있는 각도로 내게 경례를 올렸다.”
“살펴 가십시오, 선배님!””
너 아까 배웅할 생각도 없었다며.”
“미친놈.””
내가 웃으며 칼트의 어깨를 툭, 두들겼다.”
“열심히 해라.””
“예, 선배님!””
”
“이제부터 뭘 할거냐고? 글쎄, 아마···.””
“뭘 고민해요 카일? 당연히 결혼식이죠.””
카일의 말을 사라가 끊었다.”
“다 끝났잖아요. 결혼식 올려야죠. 성대하게. 식은 어디서 올릴까요? 당연히 수도 한복판이 좋겠죠?””
“그으건 조금 고민···.””
“고민할 게 뭐 있어요? 카일이 고민해야 할 건 신혼여행을 어디로 가느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