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71
〈 71화 〉 차기 마탑주, 레스티(上)
* * *
사람은 저도 모르게 자신을 속박하곤 한다.
속박의 이유가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어렸을 적의 악몽, 실수로 인한 후회··· 그런 것들로 하여금 사람은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곤 한다.
그리고.
그건 잿빛의 차기 마탑주, 레스티 엘레노아도 마찬가지였다. 레스티는 자신의 과거를 반추한다.
떠올린 과거는 꽤 오래전의 일이다.
그녀가 아직 엘레노아라는 성을 받기 전의 이야기.
그러니까, 고아원에서 머물 적의 이야기다.
레스티는 고아원에서도 조금 독특한 아이였다.
아이들이 바깥에서 뛰놀 때, 레스티는 고아원의 서재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곳에는 온갖 책이 있었다. 고아원의 원장이 은퇴한 마법사였던 까닭이다.
레스티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무언가를 분석하고, 탐구하는 것이 좋았다. 그녀는 날 때부터 마법사로서의 천성을 타고났다. 그런 레스티가 회로에 관심을 가지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독특한 아이라니까요.
서재에 틀어박혀 있다죠?
뭐 어때요, 얌전하면 좋은 거죠.
그녀가 책을 읽는 것을 본 선생들은 웃었다.
그들은 레스티를 보며, 그런 가벼운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마법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어린아이가, 마법서에 그려진 사역마의 소환진을 완성할 거라곤.
사락.
퍼즐을 맞추듯 레스티는 회로를 그렸다.
조각 하나하나를 짜 맞추는 느낌으로 회로를 완성했다. 완성한 것만으로 대단한 재능이다.
그저 완성했을 뿐이었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레스티는 거기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게 회로를 진정한 의미로 ‘완성’ 시키는 거라고 레스티는 알고 있었다.
그야, 한두 번 해보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레스티는 밤에 몰래 나가 정령들을 소환하고 놀곤 했다. 그래서, 레스티는 이번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사역마를 정령과 같을 거라 착각했다.
어?
행운은 레스티가 재능이 있었다는 것이고.
불행은, 그 재능이 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어린 레스티에겐 마나가 부족했다.
마나가 부족하면 회로는 발동되지 않는다. 그게 정상이다. 문제는, 레스티의 재능이 정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끼기긱.
부족한 마나를 채울 방법을 레스티의 재능은 찾아낸다. 별빛을 품은 눈동자는 자연스레 ‘어떤 식’으로 마나를 충당해야 할지 깨닫게 만든다.
회로를 고친다.
레스티가 원한 건 회로의 발동이다.
재능은 레스티의 바람에 답한다.
마나를 많이 잡아먹는 ‘통제’의 회로가 해체된다.
그렇게 반푼이의 회로가 완성된다.
완성된 회로가 빛을 뿜는다.
이계의 사역마가 현실로 소환된다.
원, 원장님!
아이들을 대피시켜, 빨리!
소환된 사역마는 레스티의 상상과는 다르다.
정령처럼 귀엽지 않다. 친절하지도 않다. 벌린 아가리 사이로 침이 뚝뚝 떨어진다.
날카로운 이빨,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시뻘건 눈동자.
그건 맹수였다.
사역마는 정령과는 다르다.
태생이 온순하고 지성이 있는 정령들과 달리, 사역마는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그 고삐를 쥐는 게 소환사의 역할이다.
레스티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통제의 회로를 빼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하다.
그워어어어어어!
통제되지 않는 사역마가 날뛰었다.
뒤늦게 나타난 경비병들이 사역마를 제압했으나, 그 과정에서 피해가 생겼다.
누군가 다쳤다.
피가 튀었다.
죽지는 않았지만,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죄송해요, 죄송···.
레스티는 그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이 가진 재능에 공포를 느꼈다.
결국.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불빛을 꺼트렸다.
그것을 꺼트렸단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네가 소문의 그 아이구나.
얼마 안 가 레스티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잿빛 마탑의 장로에게 거둬졌다.
장로에게 거둬진 이후로도, 레스티는 자신의 재능만큼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 빛무리를 눈동자에 씌우지 않았다.
그렇게 본 세상이 두려웠으니까.
무엇이 일어날지 상상이 안 갔으니까.
그래, 두려운 거겠지.
장로는 레스티를 이해해 주었다.
그는 쓰러지는 순간까지 레스티에게 재능의 사용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마지막 순간에 조언했을 뿐이다.
너는 충분히 네가 가진 것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단다. 너는 이미 훌륭한 마법사야.
그때는 차마 듣지 못했던 조언.
네가 만족할 때까지 해보란 이야기란다.
그러나, 이제는 알게 된 조언.
그 조언을 떠올리며 레스티는 눈을 감는다. 빛무리가 그녀의 눈동자를 감싼다.
언젠가 꺼트려 버렸던 불길.
그 불길을 눈동자에 품는다.
“·····.”
빛무리를 끌며 레스티는 눈을 떴다.
눈을 뜨면, 보이는 건 아플리아의 정경이다.
아플리아의 외곽에 놓인 정원.
그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벤치에 앉아 레스티는 정원을 바라본다.
오후의 햇살이 나른하게 정원을 비춘다.
봄바람에 꽃잎이 흔들린다.
살랑이는 풀잎과 함께 봄의 향기가 맴돈다.
백금색이 감도는 눈동자로 바라본 세상은, 이전보다 조금 더 밝고, 선명하다. 레스티는 손에 든 커피잔의 온기를 느끼며 생각한다.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아.’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
언제나 무언가에 쫓겨 살았다.
무언가를 억누르고 살았다.
그것을 풀어헤친 지금은 마음이 한결 편하다. 묘한 해방감을 느끼며 레스티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모든 것이 조금씩 바뀌어 보인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면.
“·····.”
그곳에는 한 마법사가 앉아있다.
그녀의 머리칼은 잿빛이다.
그녀의 눈은 푸르다. 여리여리한 팔다리나, 체형으로 보나 자신과 그다지 나이 차이가 있어 보이진 않다.
그 외모는 학생들과는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교복 차림의 학생들과는 다른 각 잡힌 정장이 그 외모에 관록을 붙인다. 그녀가 두른 특유의 신비한 분위기도 한몫한다.
그녀는 다리를 꼰 채, 벤치의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있다. 한쪽 팔을 벤치에 걸치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커피잔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게 커피를 홀짝인다.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와 같다.
마치 별빛을 품은 것처럼, 은은한 빛을 가진 사람이다. 그 빛이 레스티는 포근했다.
“그래서.”
이윽고, 그녀가 커피잔에서 입술을 뗀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레스티를 바라봤다.
“묻고 싶은게 뭔데?”
2.
“학년 수석, 레스티.”
아플리아의 학장, 아론은 종이를 넘긴다.
‘레스티 엘레노아.’
잿빛의 장로가 들인 양녀.
그리고, 잿빛 마탑의 차기 마탑주. 그녀가 처음 입학 의사를 밝혔을 때, 아론은 적잖게 당황했다.
‘다른 마탑도 아닌, 잿빛 마탑이었으니까.’
본래, 마탑은 각자의 색(色)마다 전공으로 하는 분야가 다르다.
가령, 백색은 가장 기초적인 마나의 운용과 원소 마법학을 연구 주제로 삼는다. 흑색은 주문을 각인하는 스톡(Stock) 개념에 대해 연구한다.
적색도, 녹색도, 그 분야는 다르지만 전공으로 하는 분야가 있다는 점에선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니, 다른 마탑의 차기 마탑주였다면··· 입학 의사를 밝혀도 그리 놀랍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공이 아닌 다른 분야를 배운다고 생각하면 됐으니까.
‘실제로, 벨노아와 라크가 그 예시였지.’
그러나 잿빛 마탑은 다르다.
잿빛 마탑은 전공으로 하는 분야가 없다. 모든 분야의 마학(??)을 다룬다.
‘그런 잿빛의 차기 마탑주라는 것은···.’
대부분의 분야를 마스터하고 있단 뜻이다.
이미 학생의 수준이 아니다. 교수들과 어깨를 견주어도, 그다지 밀리지 않는 수준이다.
그런 뛰어난 아이가 아플리아에 입학했다.
아론은 아플리아의 학장으로서, 그녀가 무언가 배움을 얻어가길 원했다.
‘···꼭 마학적 발전이 아니어도 좋다. 그만을 위해 세운 아플리아가 아니니까.’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곤 아론 나름대로 답을 내놓았다.
“그래서, 자네에게 부탁했었지.”
아론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턱을 괸 자신의 친우가 있다.
로셀 반 트리아스.
현인이라 불리는 그에게 아론은 부탁했었다.
“쓸만한 교수를 찾아와 달라고.”
“기억하네.”
언젠가 나누었던 대화다.
말로는 쓸만한 교수라고 하였지만, 그것이 어떤 인물을 의미하는지는 로셀 역시 눈치채고 있었다.
로셀의 기준에서 뛰어난 마법사.
그건, 잿빛 마법사 라니엘 밖에 없었으니까.
“자네가 기대한 건 내 첫 번째 제자였겠지.”
“그래, 자네만큼은 잿빛 마법사의 행방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꼭 라니엘이어야 할 필요가 있었나?”
그렇게 묻는 로셀에게, 아론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 아이.”
툭, 하고 그가 가리킨 페이지에는 ‘레스티 엘레노아’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나는 잿빛 마탑의 장로님이나, 자네처럼 눈이 좋지 않아. 재능있는 아이들을 구분하는 능력도 썩 좋지는 않지.”
하지만, 하고 아론은 말했다.
“이 아이가 아직 껍질을 깨지 못한건 알겠더군.”
개화(?花)하지 않은 재능.
그 재능이 무엇인지 아론은 알지 못한다. 다만, 오랫동안 교육자로서 살아온 그는 직감한다.
그 재능은 개화를 앞두고 있으나.
결정적인 계기를 맞이하지 못하고 있음을.
그 계기가 되어줄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잿빛 마법사와 관련됐다는 것도,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어.”
“·····.”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말했지 않은가. 가능하다면 특강이라도 좋으니··· 어떠한 방향으로든 초빙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그랬었지.”
아론은 쓰게 웃었다.
“가능하다면 그 둘이 만나게 해주고 싶었거든.”
“왜인가?”
“둘러싼 껍질을 깨는 건, 의외로 큰 계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법이니까.”
짧은 몇 마디.
몇 줄의 문장만으로도, 깨달음은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그걸 말하는 인물이다. 공감해줄 인물의 존재다.
아론은 레스티에게 있어, 그런 존재가 잿빛 마법사 라니엘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도 뭐···.”
탁, 하고 아론은 서류를 덮었다.
“이건 내 욕심이겠지.”
욕심이란 건 알고 있다.
꼭 레스티만을 위한 건 아니고, 모든 학생들의 발전으로 이어질 일이긴 하지만··· 전장에서 은퇴 후 휴식 중인 현자를 불러오는 건 못할 일일 테니까.
‘잿빛 마법사에게도 실례일 것이고.’
그가 어떠한 방향으로든 모습을 드러낸다면, 왕가가 그를 놓칠 리가 없다. 주변의 국가에서도 라니엘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래서야, 모처럼 얻은 안식이 방해되겠지.’
아론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쪼록, 레스티는 눈여겨 봐주길 바라네. 이 아이에게 가르침을 줄 만한 건 자네 뿐일 것 같으니.”
“글쎄.”
로셀은 안경을 벗고 콧잔등을 매만졌다.
“거기에는, 나보다 더 어울리는 적임자가 있을 것 같군.”
그가 고개를 돌린다.
로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햇살이 내리쬐는 창문이다. 그 뜬구름 잡는듯한 소리에 아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런 게 있다네.”
3.
묻고 싶은것이라.
묻고 싶은 것이야 많았다.
어떻게 그곳에 교수님이 나타났나.
그 쪽지는 무엇이었나.
스케발의 습격을 예상했던 것인가?
자신에게 로브를 덮어주고, 숲 깊은 곳으로 향했을 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런 의문들이 들었지만.
굳이 캐물어서 답을 듣고 싶진 않았다. 그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중요한 건···.’
라니아 교수가 자신을 봐주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도와주었다는 것.
그 둘 뿐이었으니까.
정작 물어보고 싶은것은 달리 있었다.
“음···.”
레스티는 잠시 머뭇거렸다.
입이 잘 떨어지질 않았다. 이걸 물어보는 것 자체가 실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까닭이다.
그렇게 레스티가 침묵하고 있자니, 라니아 교수는 웃음을 흘리며 먼저 입을 열었다.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말해. 괜찮으니까.”
“···라니아 교수님은.”
레스티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로셀 원로님께 마법을, 굉장히 오랫동안 배웠다고 들었어요.”
“그렇지, 한 십 년 정도 배웠으니까. 제자로 인정 받은 건 최근이긴 하지만 말야.”
“그럼.”
꼭 한번은 물어보고 싶었던 것.
레스티는 그것을 입에 담았다.
“라니엘 님을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그 물음에, 라니아 교수는 쓰게 웃었다.
“응.”
그리고 답했다.
“많지. 엄청나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