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80
〈 80화 〉 별종들의 탑(1)
* * *
왕도의 한 브런치 카페.
로셀은 십 년은 더 늙은듯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곤하다. 요즘 들어 삶이 피곤한 느낌이다. 머리칼도 조금씩 빠지고 있다.
‘···아론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군.’
머리숱이 옅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로셀은 새어 나오는 한숨을 참으며, 눈앞을 바라봤다. 피곤함의 원흉인 제자 녀석이 눈앞에 있다.
빵에 치즈를 바르고 있는 라니엘을 보며, 로셀은 입을 열었다.
“···맛있더냐?”
“네? 네. 맛있어요.”
맛있다니 다행이구나.
난 네 덕에 커피 한모금도 제대로 넘어가질 않는구나.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로셀은 삼켰다. 라니엘은 그런 로셀의 속도 모른 채 적당히 식은 밀크티를 음미하고 있었다.
“···후우.”
결국 로셀은 한숨을 내쉰다.
요근래 아플리아 아카데미에는 소문이 하나 돈다. 성녀의 옷을 찢고, 커피를 들이부은 미친 마법사에 대한 소문이.
성녀님의 옷이 찢어져 있었대.
커피를 뒤집어쓰고, 보기 드물게 화를 내셨다던데? 그 자애로운 성녀님이···.
자애로움의 상징인 성녀, 사라.
그녀가 분노하는 일이 벌어졌다. 카페의 점주는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은 아무것도 못 봤다고 증언했고, 성녀 본인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도 미친 마법사에 대해 알지 못한다.
뜬 소문만이 가득할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러나, 로셀은 확신한다.
‘라니엘의 짓이다.’
로셀은 입을 열어 ‘성녀’라고 발음해 봤다. 라니엘이 고개를 들고 로셀을 바라본다. 처음에는 표정을 구긴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피고 성녀가 왜요? 라고 묻는다.
그 표정은 썩 기분 나빠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속이 시원해 보이기까지 하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들키지 않았으면 됐지.
로셀은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하며, 주제를 돌렸다.
“아플리아에 그 고대 리치가 들어왔다지.”
“그랬었죠.”
“다친 데는 없더냐?”
함축적인 질문이다.
라니엘은 빵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두 번 잡아본 것도 아니고··· 멀쩡해요. 그 해골바가지를 잡으면서 다쳤던 건 아마 처음 만났을 때밖에 없을걸요?”
그 목소리는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는다. 임시로 쳐둔 결계의 안에서 라니엘이 말을 계속했다.
“그놈 때려잡으려고, 마법 체계를 개발하고 나선 다친 적이···.”
말을 하다 말고 라니엘이 입을 다물었다.
빵을 내려놓고선, 슬쩍 시선을 돌리며 부끄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배틀 메이지 클래스를 개발하고 나선 다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배틀 메이지.
그 단어에, 로셀의 입가가 씰룩였다.
‘깨달은 모양인가 보군.’
로셀이 커피잔을 기울이며 웃음을 흘렸다.
“근본 없는 클래스의 창시자가 된 기분은 어떠하느냐, 라니엘?”
“그으, 클래스를 개발했다는 건 참 자랑스러워할 일이긴 한데요···.”
“자랑스러운 일이지.”
“아니, 스승님. 왜 말 안 해주셨어요?”
참 새삼스러운 질문이었다.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더냐?”
“예?”
“아무한테나 잡고 물어만 봐도, 배틀 메이지 클래스의 창시자는 위대한 잿빛 마법사···.”
“으아아악!”
라니엘이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로셀은 참 새삼스럽단 시선으로 라니엘을 바라봤다.
그 얼굴이 새빨갛다.
아무래도, 자기 입으로 말했던 말들이 떠오른듯싶었다. 로셀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근본 없는 클래스.”
툭.
“마법사가 주문을 써야지, 쓰잘데 없는 체술을 쓰다니, 무근본도 그런 무근본이 없다.”
툭.
“창시자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어지간히 정신 나간 마법사임이 분명하다.”
전부 라니엘이 했던 말들이다.
테이블을 두들기던 손가락을 멈추곤, 로셀은 라니엘을 내려다봤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만, 스승님, 제발 그만···.”
“부끄러운 줄은 아는가 보구나.”
로셀은 커피를 음미했다.
아까전과 달리 커피가 술술 넘어갔다.
“언제 알게 됐더냐?”
“···중간고사 시험 고치면서요. 다른 교수님들 시험 문제를 보다 보니 지문에 제가 나오더라고요.”
“종종 나오긴 하지.”
잿빛 마법사 라니엘.
역사의 한 축이 되어버린 제자 녀석에 대한 문제는, 단골 문제로 출제되곤 했으니까.
‘아마, 거기서 본 것이겠지.’
로셀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알아보는 게 많이 늦었구나. 배틀 메이지를 지원한 학생들을 보고 바로 알아챌 거라 생각했다만.”
“···애초에 결정적인 게 빠져있는걸요? 그게 제가 만든 클래스라곤 생각을 안했죠···.”
투덜거리며 라니엘이 설명을 늘어놓았다. 배틀 메이지의 골자가 되는 육체 강화에 대한 설명이었다.
“···강화 주문을 통한 육체의 부하를, 마나의 소모로 대체해?”
“네, 그렇게 해야 카일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 거 없이 육탄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 아니에요?”
이런 결점이 발견 안된 게 더 신기하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라니엘을 보며, 로셀은 쓰게 웃었다.
“확실히, 네 말대로 그건 결점이 맞다. 하지만 말이다, 라니엘.”
“네?”
“그걸 감안하고도, 배틀 메이지는 실전 능력이 뛰어난 클래스다. 전장에서의 유용성도 증명되었고.”
사실이 그렇다.
주문의 스톡(Stock)개념을 활용한 전투 체계.
딜레이가 없는 주문의 연사.
접근전에서도 밀리지 않는 전투 능력.
라니엘처럼 최전선에서 거물급의 간부를 상대하지 않는 이상··· 배틀 메이지가 가진 결점은 크게 두드러지는 부분이 아니다.
‘오히려 장점이 훨씬 크지.’
마법사의 운용체제를 갈아엎었으니까.
그만큼 배틀 메이지는 혁신적인 클래스였다.
“네 말대로 근본이 조금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배틀 메이지란 클래스는 전장에서 그 가치를 증명했다. 하자가 있는 클래스는 아니란 것이지.”
“그렇다면야 다행이긴 한데요···.”
썩 만족스럽지 않은 듯한 제자를 보며, 로셀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마음에 걸린다면, 네가 직접 가르치면 될 문제 아니겠느냐?”
“제가요?”
“마침 관련 과목도 가르치고 있지 않더냐.”
부하를 넘어서 거는 육체 강화 주문.
그 골자는 지금 라니엘이 맡고 있는 과목인 마나의 거래학에 있다.
‘대가의 대체.’
천칭(Balance)을 통한 별과의 거래.
단순히 주문을 발현 하는 게 아닌, 무언가를 대가로 바쳐 현상을 일으키는 것.
‘마나 거래학의 궁극적인 목표지.’
그걸 전제조건으로 삼는 클래스라니.
로셀은 헛웃음을 흘렸다.
‘전제조건이 많아도 너무 많지 않은가.’
주문의 스톡(Stock) 개념을 숙달해야 한다. 육체 강화 주문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하며, 체술에도 능해야 한다.
‘게다가, 천칭까지 다룰 줄 알아야 한다니.’
이토록 복잡한 클래스가 또 있을까.
“뭐, 하루 이틀 사이에 될 문제는 아닌 것 같구나. 천천히 가르쳐보도록 하거라.”
“음··· 저도 카일이 달리는 걸 보고 배운 거라, 이건 예시가 좀 있어야 배울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어디서 용사라도 주워와야 하나.
그리 중얼거리는 라니엘을 보던 로셀은, 문득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건 그렇고, 라니엘.”
“네?”
“초대장이 왔더구나.”
얼마전 저택으로 날라온 초대장.
로셀은 학회의 문양이 새겨진 편지지를 라니엘의 앞에 내려놓았다.
“어디서 온 건데요?”
“마학회.”
“···예?”
로셀이 편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학회에서 상아탑으로의 초대장을 보내왔다.”
2.
상아탑이라는 탑이 있다.
상아탑은 내가 속했던 잿빛 마탑이나, 각자의 대표색(色)을 가진 마탑들과는 다르다.
상아탑은 마학회의 학자들이 머무는 탑이다.
그들은 정해진 주제를 가지고 연구하지 않는다. 고대 유적에서 발견된 회로와 같이 쉽게 풀리지 않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회로를 해석하곤 한다.
‘그리고, 그를 토대로 문제를 내지.’
난제를 풀고, 난제를 만드는 곳.
그곳이 바로 마학회의 상아탑이다.
‘···가, 표면상의 상아탑.’
세간에선 고상한 학자들이 모여 회로를 푸는 탑으로 알려진 모양이지만, 직접 이 미친놈들과 언쟁을 했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음습하고 깐깐한 새끼들이 가득한 탑.’
그게 내가 아는 상아탑이다.
허구한 날 회로 해석만 하고 있는 이놈들의 사고방식은 조금 이상하다.
애들은, 회로에서 예술을 추구한다.
이 부분은 곡선이 좀 그렇네요.
조금 더 예술적으로 그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이 난잡함! 회로는 이렇게 난잡해선 안 됩니다···!
새로운 회로를 그린다는 건, 고대용의 마법사께서 만들어낸 300여개의 회로에 도전한다는 것···!
내가 시그니쳐 주문을 만들어, 그 회로를 등재하려고 할 때마다 저런 레퍼토리로 지랄을 하곤 했다.
‘씨팔, 회로가 발동만 잘하면 됐지.’
그 사고방식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여하튼, 상아탑은 효율을 중시하는 마법사들이 모인 마탑과는 다르다. 상아탑은 주문 회로를 가지고 예술을 하는 별종들이 모인 탑이다.
‘그래서, 썩 가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상아탑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이곳에 발을 들일 일은 없었을 것이다.
‘스승님이 부탁만 하지 않았더라도 말야.’
편지지를 내밀며 스승님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네가 만들었던 기말고사 문제가 있지 않더냐.
그걸 아론 학장이 상아탑에 추천했다더구나. 애당초, 상아탑에서도 네가 만든 문제에 눈독을 들인 모양이고.
처음엔 거절할 생각이었다.
딱히 별종들하고 어울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니까. 물론, 상아탑에 문제를 싣는 것 자체가 교수로서는 엄청난 커리어라고는 하지만··· 난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거절하려 했는데···.’
그런 내게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그것 알고 있느냐, 라니엘.
아플리아에서 쓰는 교과서나 교본의 태반이 상아탑에서 받아오는 것을.
듣다 보니까, 마탑 때와는 사정이 좀 달랐다.
마탑에선 상아탑이 걸림돌과 같은 존재였지만, 아플리아는 아닌 모양이었다.
‘상아탑과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던가?’
아플리아는 상아탑에게 학술지나, 교본등을 무료로 제공 받는다. 그 대가로 졸업자 중 학자로서 길이 보이는 이들을 상아탑에 추천한다.
아플리아로선 무료로 교본을 제공받아 좋고, 상아탑에선 인재를 찾는 수고를 줄일 수 있다···는 거겠지.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딱 잘라 말하는 스승님의 말씀에 떠밀려, 결국 나는 지금 상아탑의 앞에 서 있었다.
“흠.”
내 기억 속의 상아탑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내가 여길 마지막으로 찾아왔을 때가 언제더라.’
대충 6~7년 정도 된 것 같다.
번번이 내가 등재하려는 회로에 퇴짜를 놓는 놈들에게, 엿 먹으라고 문제를 던지고 왔을 때가 마지막 방문 이었으니까.
턱.
그런 생각을 하며, 상아탑의 입구를 지나치자 누군가 내게 다가왔다.
“아, 라니아 교수님이십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학자가 환히 웃었다.
그는 로브 자락을 펄럭이며 고개를 숙였다.
“안내역을 맡은 브릭입니다. 반갑습니다, 라니아 교수님.”
“네, 반가워요.”
“상층부에서 상아탑의 기둥 분들이 기다리십니다. 그분들에게 문제의 간단한 풀이와 출제 의도를 설명해 주심 될 것 같습니다.”
상아탑의 다섯 기둥.
마탑의 원로와 비슷한 개념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네, 뭐.”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브릭의 뒤를 따랐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통로를 걷다 보니, 문득 복도에 걸린 액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상아탑 선별 44선의 난제.
그런 팻말이 걸린 액자의 안에는 회로가 그려져 있다.
마치 예술품을 전시하듯 걸린 회로들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얘네는 여전하구나.’
통로를 걸으며 회로를 흘겨보다 보니, 문득 조금 더 화려한 액자에 걸린 회로가 눈에 들어왔다.
“···응?”
그 액자 앞에 나는 멈춰 섰다.
회로가 눈에 익었다. 어째, 어디서 본듯한 회로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브릭이 내게 다가왔다.
“오, 그 회로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예? 아뇨, 그냥 눈에 익어서···.”
“그 회로는 잿빛 마법사, 라니엘님이 저희 상아탑에 기증하신 회로입니다.”
아, 어쩐지.
‘이거 그거네.’
이건 사사건건 걸고넘어지는 마학회 놈들에게, 엿 좀 먹어보라며 던졌던 문제다.
‘온갖 회로를 다 섞은 문제.’
풀지 말라고, 대놓고 좆 같으라고 낸 문제.
악의를 꾹꾹 담아눌러 놓은 문제였다.
‘난제라고 평가받긴 했는데, 설마 이렇게 전시까지 해놓을 줄은 몰랐는데.’
뭔가 기분이 묘했다.
나는 브릭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개 쓰레···.”
“정말 아름다운 문제죠.”
“예?”
“네?”
이 개 쓰레기 같은 문제를 왜 전시해놨답니까?
그렇게 물으려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름다워? 이게?’
눈을 깜빡거리고 있자니, 브릭이 입을 열었다.
“저 곡선의 기울기, 완벽한 기하학적 문양을 그리는 회로를 보십시오. 수십의 회로가 얽히고 섥히며 만들어낸··· 아름다운 문양이죠.”
브릭은 황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난제로 평가받는 문제 중에서도, 이건 가히 예술의 영역에 도달한 문제입니다. 잿빛 마법사님이 괜히 현자라 불리는 게 아니지요.”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인 브릭이 날 돌아봤다.
“정말 아름다운 문제 아닌가요?”
“·····.”
브릭의 눈동자가 심히 초롱초롱하다.
그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차마 ‘니들 엿먹이려고 만든 문젠데?’ 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예, 뭐···.”
나는 딱한 눈초리로 브릭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름다운··· 문제네요.”
문제를 푼 늬들이 그렇담 그런 거겠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