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93
〈 93화 〉 칼과 방패(1)
* * *
시험의 마지막 장소.
크레펠트 가(家) 소유 삼림의 중심부.
“······.”
벨노아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시험의 끝까지 앞으로 한걸음이다. 그러나,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힘든 시험이었다.
숲의 공기는 텁텁했다. 배치된 마수는 까다로웠다. 어디서 마수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했다.
‘피곤하다.’
육체적 부상은 없지만 정신적으로 피로하다. 솔직히 말해서, 한시라도 빨리 시험을 끝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서 쉬고 싶다.
벨노아는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면, 시험의 마지막 장애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저 장애물만 넘는다면 시험은 끝난다. 누군가 이곳까지 온 흔적은 없으니, 아마 자신이 가장 먼저 시험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뭐해?”
그러나.
“안 와?”
넘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벨노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인물의 수준을 가늠한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렇게 불리는 교수의 실력을 벨노아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가 싸우는 장면을 본 적은 있다. 그 기억을 토대로 단편적으로나마 그녀의 실력을 유추해 볼 수는 있다.
고민은 짧았고, 결론은 빨랐다.
‘절대로 못 이긴다.’
‘절대’라는 단어를 입안에서 곱씹으며 벨노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본래, 벨노아는 함부로 승패를 결정 짓지 않는다. 그 어떤 강자라 한들, 빈틈은 존재하는 법이다. 틈을 찌르면 그들 또한 피를 흘린다. 고통스러워하고, 때로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것도 빈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눈앞의 교수에게선 자그마한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수를 쓰던, 전부 가로막히리란 확신이 든다. 주문이든 체술이든, 모든 방면에서 자신이 밀릴 게 분명했다.
벨노아는 입을 열었다.
“그, 교수님?”
“응.”
“왕가의 특수부대, 하운드(Hound)와 백병전이 가능하신 분을······ 제가 무슨 수로 쓰러트립니까?”
사실이 그렇다. 눈앞의 교수는 무려 백병전의 대가라 불리는 하운드와 호각으로 대결을 벌였던 인물이다. 그것도, 무기 하나들지 않은 맨손으로.
‘그런 사람하고 전투를 하라고?’
승산이 없는 승부다.
어이없다는 듯한 벨노아의 시선을 읽었는지, 라니아 교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야, 이대로 싸운다면 네가 당연히 지겠지.”
딱, 하고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벨노아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려 했다. 그러나, 그가 몸을 트는 것보다 주문의 작렬이 더 빠르다.
콰앙!
벨노아의 머리칼이 흔들린다. 벨노아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주문이 작렬한 곳은 바닥이다. 공터와 숲을 가르는 경계선에 주문은 박혀있다.
그 선을 강조하듯, 주문이 박힌 바닥은 움푹 파여 있었다. 꼴깍. 벨노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어느새, 자신은 경계선에 발을 거치고 있었다. 그리고, 저 주문은 일종의 경고였다. 선을 넘으면 주문을 쏘겠다는 경고.
‘······바닥이 아니라, 내게 쐈다면.’
그걸로 시험은 끝났다.
마나의 흔들림은 보았다. 그러나 흔들림과 주문의 발현 간의 간격이 존재하지 않았다. 눈치챈 순간, 주문은 이미 벨노아의 코앞에 박혀있었다.
멀다.
아득히 먼 곳에 위치한 인물이다.
수준 차이를 체감하며 벨노아는 고개를 들었다. 손가락을 쭉 뻗은 자세 그대로, 교수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손가락을 튕기기만 해도 결판은 나겠지.”
“······그렇겠죠.”
“그리고, 이젠 알겠지?”
“······.”
“내가 그렇게 시험을 끝낼 의도가 없다는 걸.”
벨노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벨노아.”
그녀가 나지막이 벨노아를 불렀다.
그녀의 눈동자가 낮게 가라앉았다. 장난기가 빠진 푸르른 눈동자는 서늘하다.
“이번 시험의 주제는 무엇이지?”
이 또한 시험의 일종이라는 듯한 말투다. 벨노아는 잠깐의 여지를 두고 입을 열었다.
“······전장의 환경에 대한 적응과 학습이라 생각합니다.”
“자세히.”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마수들을 상대로 당황하지 않을 것. 그리고,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할 것······ 전장의 기사가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들었습니다.”
벨노아의 답에, 라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지. 그런데, 하나가 더 남았을 텐데?”
“······실패에서 배우는 것 말씀입니까?”
“그래, 그거.”
환영을 통한 죽음이 탈락이 아닌 감점인 이유. 그것은, 실패를 통해 배우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시험을 설계한 라니아는 질문한다.
“너는 실패에서 배웠니?”
“······.”
벨노아는 답하지 못한다.
그는 실패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채, 숲의 중심까지 도착해 있다.
“그거 봐.”
벨노아의 침묵에, 라니아가 쓰게 웃었다.
“다들 실패로부터 배움을 얻는데, 너만 못 얻고 가면 아깝잖아.”
그러니까 내가 있는 거고.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가 그루터기에서 일어섰다.
“벨노아.”
“예, 교수님.”
“전투 마법학과는 실전의 학문이야. 실전에 가장 가까운 학문이지. 그건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그럼 질문. 과연, 실전에서도 적이 너희의 수준에 맞게 나와줄까? 슬럼가에서 자라왔다는 너라면 알 것 같은데.”
벨노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라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실전은 다르지.”
그녀가 팔을 쭉 펴 기지개를 켰다.
그녀가 머리에 비스듬히 걸어둔 해골바가지가 팔뚝에 스쳐 흔들렸다. 바람에 머리칼이 나부낀다.
나부끼는 머리칼 사이로 푸른 눈동자가 반개한다.
그녀가 두른 분위기가 달라졌다. 교수가 아닌, 기사와도 같은 분위기가 감돈다. 그녀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전이다, 벨노아.”
라니아 반 트리아스.
“하지만 실전이라 해도, 최소한의 싸움은 돼야 배우는 게 있겠지.”
그녀가 팔을 들어 올렸다.
“제약 하나.”
손을 쫙 펼쳤다.
“나는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네가 이 선을 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그녀가 한 손가락을 접으며, 발끝으로 바닥에 선을 그었다. 그루터기에서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제약 둘, 나는 주문의 대상으로 너를 지목하지 않는다. 내 주문은 오롯이 주문의 요격에 쓰인다.”
그녀가 두 개째 손가락을 접으며 말했다.
“이 외에도 세 가지의 제약이 남아있다.”
“······.”
“내게 걸린 다섯 개의 제약을 전부 활용해, 내 몸에 상처를 남기던가······.”
그녀가 자신이 앉아 있던 그루터기를 가리켰다.
“저 그루터기에 신체의 어디가 됐던 접촉 해라. 그게 시험의 통과 조건이다.”
“······남은 제약은 뭐죠?”
“그게 시험 문제다. 스스로 알아내도록.”
그녀가 남은 세 손가락을 전부 접는다.
그리곤 팔을 내리며, 미소 지었다.
“잘 찾아봐.”
라니아는 자신의 머리에 비스듬히 걸어둔 해골바가지를 툭툭 건드렸다.
“아무리 답이 안 나올 것 같은 상대라 해도, 잘 찾아보면 틈이 하나둘쯤은 있는 법이거든.”
그건, 꼭 경험담 같은 말투였다.
벨노아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제약은 다섯 개.’
두 개의 승리 조건 중, 하나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상처를 입히는 쪽은 불가능하다. 불가능 한 것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벨노아는 목표를 확실하게 정했다.
‘그루터기에 접촉하는 것.’
그것이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벨노아는 머리를 굴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경계선을 넘었다.
날아오는 주문은 없다. 공격도 없다. 선제공격은 안 한다는 조건이 지켜지고 있다. 벨노아는 단검을 고쳐잡았다.
‘······어렵다.’
어렵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슬럼가의 악몽, 벨노아.
슬럼가에서 강적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며 살아온 소년은, 단검을 고쳐잡는다.
틈을 드러낸 맹수를 사냥하기 위해서.
2.
철퍽.
도끼를 휘두르니 살점이 떨어졌다. 환영으로 이루어진 살점은 도끼에서 떨어짐과 동시에 눈 녹듯 사라졌다.
“흠.”
라크는 말끔한 도끼날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환영이라 그런 걸까, 베는 맛이 별로였다.
‘조금 더 묵직할 텐데.’
도끼를 찍었을 때, 도끼날을 타고 떨리는 울림이 없다. 근육을 가르고 뼈를 끊어내는 손맛이 없다. 라크는 괜스레 입맛을 다시며 도끼를 내렸다.
“슬슬 끝인가.”
숲의 공기가 조금씩 트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설산에서 뛰논 라크는 공기의 흐름에 민감하다. 불어오는 바람의 결이 다르다.
라크는 시험의 끝이 다가옴을 직감한다.
라크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탁 트인 공터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먼저 도착해 있는 인물의 모습도 함께.
‘벨노아?’
숲의 공터에는 벨노아가서 있다.
그는 팔을 축 늘어트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가 입가를 훔치자 핏방울이 묻어 나왔다.
‘······부상.’
그렇다면, 상대는 누구인가.
인기척을 죽인 채 라크는 한걸음 옆으로 내디뎠다. 수풀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공터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 명의 인물이 더 서 있다.
라크는 그 인물을 확인한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
한눈에 봐도 저 인물이 벨노아와 대치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 상황 자체가 라크에겐 이해하기 어렵다.
‘라니아 교수님이 왜?’
라크는 눈을 깜빡였다.
그가 눈을 깜빡이는 와중에도, 벨노아는 숨을 몰아쉬며 팔을 들어 올렸다. 단검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 눈빛은 여전히 또렷하다.
벨노아가 땅을 박찬다. 날렵한 움직임으로 라니아 교수에게 접근한다.
휙.
그가 그림자 비수를 투척한다. 쇄도하는 비수를 보며 라니아 교수는 왼손 검지를 까딱인다.
콰직!
내려 찍힌 강타(Smite)에 비수가 꺾인다. 그녀가 비수에 한눈 팔린 사이, 벨노아는 그녀에게 접근해 단검을 휘둘렀다.
쉭!
그녀는 맨손으로 단검의 날을 붙잡았다. 놀라운 일이지만, 그쯤은 예상했다는 듯 벨노아가 단검을 놓는다. 놓으며 손가락을 접었다.
단검이 두른 그림자가 폭발했다.
투확!
폭발한 그림자가 그녀를 집어삼킨다. 그 틈에 벨노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꺾는다. 우두둑, 소리를 내며 꺾인 손가락이 공양(Offering) 된다.
별은 제물에 보답한다.
완성된 주술이 그림자를 강화하려는 순간이다.
“경고했을 텐데.”
투확, 그림자를 뚫고 팔이 튀어나온다. 튀어나온 손아귀가 벨노아의 손등 위로 피어오른 회로를 붙잡았다.
“새로운 회로를 새기는 건 힘들 거라고.”
그대로 잡아 뜯는다.
투둑, 투두두두둑!
회로가 잡아 뜯긴다. 수평을 이루던 저울이 박살 난다. 공양은 실패했다. 제물은 반환되고 현상은 허공에 흩어진다.
파사삭.
흩어지는 그림자 사이로, 그녀가 벨노아의 복부에 발차기를 먹인다. 벨노아의 몸이 공중에 붕 뜬다. 그 눈동자가 크게 뜨인다.
“커헉!”
걷어차인 벨노아는 바닥을 몇 바퀴 굴렀다.
몇 바퀴 바닥을 구르고 나서, 겨우 일어선 그가 거친 숨을 몰아쉰다.
꾸욱.
그림자를 빠져나온 라니아 교수는 장갑을 쭉 끌어당긴다. 그리곤 가볍게 손을 털었다.
“더 할 거야?”
그렇게 묻는다.
그 물음에 벨노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
그 모습을 지켜보던 라크는, 마른침을 삼켰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충 이해했다.
‘시험의 마지막 관문이 라니아 교수님이군.’
라크는 마른침을 삼켰다. 도끼를 쥔 손에 자연스레 땀이 맺혔다. 요 몇 달간 익숙해졌다곤 하나, 라크에게 라니아 교수는 여전히 두려운 존재였다.
‘마치 맹수와도 같은 사람.’
그러나, 그 모습이 평소와는 다르다. 평소보다 두려움이 덜하다. 맹수의 송곳니가 빠져있다. 발톱이 날카롭지 않다. 그 모습은 사슬로 묶인 맹수를 떠올리게 한다.
그 점이 이상했다. 라크는 벨노아와 교수의 전투에서 위화감을 느낀다.
‘한 가지.’
한가지지만,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존재했다. 아무리 봐도 그 동작은 어색하다. 거기서 그런 동작을 할 필요가 없다.
‘교수님의 모든 움직임은 효율적이다. 단련되어있다. 그런 사람이,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줄 리가 없다.’
비효율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움직임.
그것도, 꼭 눈치를 채라는 듯 ‘반복’적으로 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라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가.’
······라크는 자신보다 수준이 높은 북방의 전사들과 몇 번이고 결투했다. 그 결투 속에서, 전사들은 스스로에게 제약을 걸곤 했다.
그들은 손속에 사정을 둔다.
눈 크게 뜨고, 제대로 보십시오.
무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그들은 일부러 제 약점을 보이곤 했다.
약점을 파악하는 연습을 하십시오, 도련님.
어떤 적이든 약점 한둘씩은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강조해서 보여드릴 뿐입니다.
라크는 보았다.
라니아 교수가 의도적으로 노출하는 약점을.
보았으므로, 라크는 판단한다.
‘제약을 걸고 치르는 시험이로군.’
이것이 제약 아래 이루어지는 결투임을. 그리고, 그 제약을 파고든다면 맹수에게 닿을 수 있음을.
“······.”
그러나 쉽게 발이 떨어지진 않는다.
제약을 발견했다 한들, 그것은 라크가 파고들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제약이 만들어놓은 틈은 좁고 가늘다.
‘나와는 맞지 않다.’
약점을 공략하기 위한 작전은 떠오르나, 그것이 라크의 전투방식과 맞지 않는다.
“음.”
그 틈을 찌를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무기는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벨노아.”
라크는 자신이 발견한 무기의 이름을 발음했다.
3.
다섯 번의 도전을 했다.
다섯 번의 실패가 남았다.
‘사냥, 같은, 소리 하네······.’
벨노아는 헛웃음을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 구역질이 치밀었다. 눈앞이 핑핑 돌았다.
“큭······.”
구토를 참으며, 벨노아는 제 발로 경계선을 넘었다. 이 상태로 달려들어 봐야 얻어맞고 엎어질 뿐이다.
“여섯 번.”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벨노아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본다. 그곳에는 시험의 시작 전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모습으로서 있는 라니아 교수가 있다.
그녀의 셔츠는 여전히 새하얗다.
작은 얼룩 하나 묻지 않았다. 그에 비해, 자신의 옷은 어떤가. 벨노아는 자신의 옷을 보았다.
걷어차이고, 바닥을 굴렀다.
흙먼지가 잔뜩 묻어있다. 자신의 몸을 보고 있자니, 잇새 사이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저만한 제약을 걸고도.’
여전히, 상대가 되질 않는다.
너무나도 먼 곳에 있는 사람이다.
‘그래도, 실패하기만 한 건 아니다.’
다섯, 지금 것을 포함해 여섯 번의 도전을 벨노아는 마냥 낭비하지 않았다. 도전을 거듭하며 그는 하나의 제약을 더 발견했다.
그것은 치명적인 제약이다.
그를 이용하면 승기가 눈앞에 보일 듯도 하다.
‘······모자라다.’
그러나, 이용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결정적인 무언가가 모자랐다. 그리고, 벨노아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뚫고 들어갈 맷집.’
수많은 작전이 떠오르지만, 한대를 견딜 것을 전제로 삼는 조건이다. 그리고, 벨노아에게는 그것을 견딜만한 맷집이 없었다.
‘맞는 순간 정신이 흔들린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경계선 바깥까지 밀려 나간 뒤다. 대응책이 필요했다.
‘그러나, 어떻게?’
주문으로 만들어진 방패는 소용이 없다. 그림자를 통해 대체해보려 했지만, 쓸모가 없었으니까. 몸으로 맞고, 견디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맷집은 늘린다고 당장 늘려지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해야······.’
벨노아가 머리를 굴리는 와중이다.
“벨노아.”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벨노아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익숙한 인물이 서 있었다. 백발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소년. 그의 양손에는 상징적인 손도끼가 들려있다.
라크 반 그레이스.
몇 번이고 대련을 해본 상대. 맷집만큼은 좋은 야만인 전사······.
“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이다.
벨노아는 문득 든 생각에 입을 열었다.
“라니아 교수님.”
그 목소리가 향하는 곳은 라크가 아니다. 고개를 돌려, 숲의 공터에 앉은 라니아 교수를 바라보며 벨노아는 질문했다.
“······시험은 1:1로 이루어집니까?”
“그런 조건은 없지.”
대답이 돌아왔다.
벨노아는 고개를 돌려 라크를 바라봤다. 벨노아가 줄곧 생각하던 문제의 해답이 눈앞에 있었다.
‘한 대를 맞고 버텨줄 방패.’
벨노아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찾았다.”
“음? 찾았다니?”
라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벨노아는 속으로 뒷말을 삼켰다. 그리곤, 라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라크.”
“무엇이지.”
“협력할 생각 있어?”
“우연이군. 나도 그렇게 말하려 했다.”
벨노아가 뻗은 손을 라크는 붙잡는다.
라크가 힘을 줘, 벨노아를 일으켜 세웠다. 둘은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무기를 고쳐 잡고 발걸음을 옮긴다.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학기 초부터 줄곧 대련해 왔던 둘이다.
서로의 전투방식은 알고 있다. 무엇이 자신에게 부족하고, 무엇이 상대에게 있는지 얼추 알고있다. 따로 합을 맞춰볼 필요는 없다.
턱.
그들은 나란히 경계선에 선다. 각자의 무기를 쥔 채 공터에 선 인물을 노려본다. 둘의 시선은 한 곳으로 모인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아플리아의 악몽이라 불리우는 재앙.
······인간은 때로는 협력한다.
혼자선 넘을 수 없는 재앙을 상대하기 위해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