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92
〈 92화 〉 비명이 메아리치는 실습 시험(3)
* * *
크레펠트 가(家) 소유의 삼림.
학생들은 이를 악문 채 숲속을 달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온다. 그러나, 그 비명에 일일이 귀를 기울일 겨를은 없다.
마수가 튀어나온다.
숲속에서, 그늘 속에서, 안개 속에서.
어디로 발을 내딛던 마수가 있다. 심지어, 그 마수의 종류부터가 남다르다. 서적을 통해서만 마주했던 마수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상대해 본 적이 없는 마수다.
단편적인 지식만으로나마 알고 있는 마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식과 경험은 다르다.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것을 곧장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이는 드물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당황한다.
“으, 으아아아악!”
“바닥! 바닥에서 튀어나와!”
“벙, 벙어리 그림자야!”
여기저기서 비명이 쏟아진다. 비명은 또 다른 마수를 부른다. 학생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마수도 마수지만, 이 숲부터가 이상하다.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어디든 그늘지고, 음습한 분위기를 풍긴다. 달리면 달릴수록 숲의 안개는 짙어지기만 한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어두워.”
“습해. 공기가 왜 이렇게······.”
환경 자체가 낯설다.
바깥에서 본 숲과 안으로 들어와 경험하는 숲은 달랐다. 본래, 그들이 알고 있는 숲은 이렇지 않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환경이 불안감을 더한다.
어둡다.
공기가 스산하다.
축축하고, 숨통을 조여오는 듯 하다.
그러고 보니, 나무들의 모양도 조금 이상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리저리 뒤틀린 가지를 뻗은 나무들이 가득하다.
“으, 으으···.”
“잠깐, 천천히 가······!”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풍경이다.
까악, 까악하고 어디선가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학생들은 흠칫하고 어깨를 떨었다.
“이게, 숲이라고?”
누군가 뱉은 의문이 모두의 의견을 대변한다. 학생들은 두려움에 질린 채,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마수들을 경계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학생들은 모를 일이지만.
환혹 마도구를 통해 재구성된 숲은, 어느 풍경과 닮아있다. 그리고, 마도구를 사용하는 인물이 상상하는 풍경을 그려내는 법이다.
마도구를 사용한 건 라니엘이다.
라니엘이 떠올린 건, 마계와 인접한 숲이다.
그녀의 상상을 빌려 만들어진 숲의 풍경은 정교하다. 현실과 분간이 가질 않는다. 보통, 전장을 경험한 인물들이 마도구를 사용한다 한들··· 이렇게까지 정교한 환경을 구현해 내리란 어려운 일이다.
나무의 뒤틀림.
스산하게 깔린 안개.
안개 너머로 풍겨오는 마수의 누린내.
하물며, 이와 같은 사소한 것마저 빠짐없이 구현해 낼 정도라면······ 아예 마경에서 살다 오지라도 않는 이상, 불가능한 수준이다.
“음.”
그리고, 여기 한 마법사가 있다.
“······좀 모자랐나?”
남들과는 사고방식이 다른 이 마법사는, 마경에서 5년을 뒹굴었다.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숲을 보며 턱을 매만졌다.
‘뭔가 아쉬운데.’
라니엘.
‘마기(??)가 안 깔려 있어서 그런가? 하긴, 그걸 까는 건 좀 그렇지 아무래도······.’
라니엘 반 트리아스.
“뭐, 이 정도면 적당하네.”
마경(??)을 제집처럼 누비던 마법사.
그녀는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한 두 번 죽다 보면 어련히 배우겠지.”
시험 시작으로부터 30분이 지났다.
숲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 학생들이 속출한다. 그를 보며, 라니엘은 쓰게 웃었다.
‘실전이었음 다 뒤졌어 이것들아.’
다행히도, 그 중얼거림이 학생들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2.
시험이 개시된 지 30분이 흘렀다.
수많은 학생이 1시간 대기 판정을 받고, 숲의 초입으로 돌아와 있다.
“······.”
누군가는 바닥에 대(大)자로 뻗어있고, 또 누군가는 그루터기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그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다.
“저기.”
문득, 누군가 힘없이 입을 열었다.
“···넌 뭐에 당했어?”
“마나 이터.”
그 질문에 누군가 답한다. 그 목소리에는 생기가 없다. 허망함이 느껴진다. 그 목소리에 공명하듯, 하나 둘 씩 입을 열기 시작한다.
“나도 마나 이터.”
“···검은 이리 떼.”
“나는 벙어리 그림자. 바닥에서 갑자기 그림자가 치솟더라. 그대로 목···이 붙잡혀서 탈락했어.”
마나 이터.
검은 이리 떼.
벙어리 그림자.
마계와 인접한 전장에서 출몰한다고 알려진 마수들이었다. 도대체, 그게 왜 이런 실습 시험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잡으라면 잡을 수 있다.
마나 이터는 단순한 벌레다. 달라붙으면 성가시지만, 멀리서 화염구만 던져도 손쉽게 잡을 수 있는 마수에 불과하다.
검은 이리 떼는 지성이 낮다. 지성만 낮은 게 아니라, 그 시야도 좁다. 시야의 사각을 노리면 사냥이 어렵지는 않다.
그림자 벙어리는 주문으로 꾀어내 잡을 수 있다. 달고 다니면 성가시지만, 있는 것만 안다면 쉽게 잡을 수 있는 마수란 것이다.
‘하나씩 잡으라 하면, 잡을 수 있어.’
그렇다, 모든 마수가 따로 두고 보면 그리 어렵지 않다. 교과서에도 실려있을 정도로 그 사냥법 또한 유명하다.
‘···문제는 따로 있지.’
크게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
‘하나는, 이곳이 숲이라는 것.’
안개가 잔뜩 깔린 숲이라 시야 확보가 어렵고, 풀숲이 우거져서 어디서 마수가 튀어나올지 알 수가 없다는 것.
‘둘은, 하필이면 그 셋이 같이 있다는 점.’
그렇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세 종류의마수가 서로 간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그 배치 자체가 심히 악의적이다.
‘그림자에 숨은, 벙어리 그림자를 잡으려면 필연적으로 주문을 사용해야 한다.’
주문을 사용하면 검은 이리 떼가 반응을 한다.
‘몰려드는 검은 이리떼를 토벌하려면, 광역 회로를 그려야 한다.’
회로를 그리려 하면, 어디선가 마나 이터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숲속에서는 도망치느라 바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바깥에 나와서 생각해보니, 그 답은 금방 나왔다.
“다양한 종류의 주문을 스톡(Stock)·····.”
단순한 주문만을 스톡해선 안된다.
그런 마수들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폭의 주문을 스톡 해 두어야 한다.
“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문득 시험 전에 라니아 교수가 경고했던 말이 떠오른다.
회로를 충분히 스톡 해 두시길 권장합니다.
과연, 이런 뜻이었는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난이도가 너무하지 않은가?
학생들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수의 배치에서 악의가 느껴질 정도다.
난이도가 높아도 너무 높은 것 아닌가? 최소한, 1학년에게 내줄만한 시험은 아니었다.
‘맥하트 교수님이 이랬을 리가 없지.’
그리고, 이런 정신 나간 난이도의 시험을 맥하트 교수가 생각해냈을 리가 없다. 성격이 좀 더럽긴 하지만, 시험 자체는 쉬우니까.
그럼 이 시험을 설계한 이는 누구인가?
‘라니아 교수님.’
라니아 반 트리아스.
아플리아의 악몽.
학생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 악몽이 앉아 있을 곳으로 향한다. 분명, 그녀는 큼지막한 바위에 앉아 있었을터다.
“···응?”
그러나, 바위를 바라본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곳에 앉아있던 라니아 교수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라니아 교수님, 어디 갔어?”
“그러게? 방금까지 저기 계시지 않았나?”
어디를 보아도 교수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3.
숲 인근의 막사.
맥하트 크레펠트는 숲속을 헤매는 학생들을 마도구로 감시하고 있었다. 유사시에 크레펠트 가(家) 소속의 기사들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흐음······.”
확실히, 난이도가 있는 시험이다.
학생들이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당장 1학년 학생에게 치루기에는 어려운 시험이었으니까.
‘난이도를 감안하면······.’
못해도 2학년 현장 실습 정도겠는가. 확실히, 1학년 학생들에게 내줄만한 시험은 아니다. 맥하트도 처음에는 이 실습 시험을 반대했다.
‘난이도가 너무 높았으니까.’
그러나, 결국 시험은 변경 없이 치러졌다.
마땅한 이유가 있는 까닭이었다.
“······.”
맥하트는 눈을 감고, 얼마 전 라니아 교수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결국, 전투 마법학과 학생들 중 태반이 전장에 가게 될 거잖아요. 꼭 전장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전장과 관련된 곳에 말이에요.
실습 시험을 반대하는 맥하트에게, 라니아 교수는 그렇게 말했다.
‘맞는 말이지.’
다른 학과와 달리, 전투 마법학과는 졸업 후 진로가 전장으로 집중되어있다. 애초에, 그럴 마음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많다.
기사 가문의 자녀들.
공훈을 쌓으려는 약소 귀족의 자제들.
그도 아니라면 재능있는 평민 아이들.
그들은 졸업 후 전장으로 향하게 된다.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많은 이들이 전장으로 향할 것이다.
솔직히, 별로 내키진 않아요. 졸업할 때까진 시간이 많이 남긴 했다지만······ 지금 이대로 전장에 던져 넣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죽겠지, 아마도.
뭐, 학년이 가면서 뭘 많이 배우긴 하겠죠. 그래도, 이런 건 빠를수록 좋지 않겠어요?
라니아 교수는 그렇게 말했다.
충격은 빠를수록 좋아요. 원래, 전장을 구르면서 깨닫게 되긴 하지만······ 이렇게 실습으로 배울 수 있음 훨씬 좋잖아요. 애초에, 실습을 그러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실습이 무엇인가.
실패하면 감이 잡히겠죠. 아, 여기서 이렇게 해야 되는 구나. 여기선 이걸 하면 안 되겠구나. 그런 식으로, 깨닫게 되겠죠.
현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실패에서 배우지 않는다. 대부분의 이들은 실패에서 좌절한다. 의욕을 잃는다.
그러나, 이곳은 아니다.
여기, 아플리아잖아요.
라니아 교수의 말마따나, 이곳은 아플리아니까.
“······.”
맥하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왕국에서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인 곳인데, 이 정도 시련은 던져줘야 뭐라도 배우지 않겠어요?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은, 숲의 초입부다.
숲에서 튕겨져 나와 1시간 동안 대기 중인 학생들을 맥하트는 보았다.
『아니, 여기서는 이렇게······.』
『마나 이터가 떨어지니까, 아예 처음부터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이렇게 하면······.』
『그럼 이리 떼는? 이리떼도 달려들 거 아냐.』
마도구를 통해 학생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숲의 초입부에 모여 앉은 학생들은 머리를 맞대고 공략법을 생각하고 있는 양 했다.
『에이씨, 일단 해보게.』
『하고 안되면 다시 하면 되잖아. 애초에, 실패해도 감점이야. 탈락이 아니고.』
『일단 해보고 안되면 다시 하면 되지.』
이윽고 그들은 무작정 숲으로 향해본다.
그들의 모습을 맥하트는 지켜봤다. 시험 시작과 동시에, 1분 남짓 만에 탈락한 학생들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여기야!』
『화염구, 화염구 빨리!』
『이리 떼 유인한다! 벙어리 그림자랑 한 번에 날려 버리게!』
나름대로 전략을 짜 재도전한다.
그들은 20분 남짓을 버티고 다시 숲의 초입으로 튕겨져 나왔다.
“흐음.”
맥하트는 턱을 매만졌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학생이 탈락하고, 다시 도전하기를 반복하며 숲의 깊은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
『빨리, 쏴버려!』
도전하고.
『아씨, 하필 거기서···.』
『지형 파악을 잘못했어.』
실패하고.
『이리 떼를 이쪽으로 유인하면?』
『회로 종류를 차라리 이쪽으로.』
『응, 타격계를 좀 지우고, 이런 쪽으로 스톡을 구성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아쉬운듯한 표정을 지으며, 숲의 초입에 앉아 다음 작전을 생각한다. 한 시간 동안 새로운 회로를 새기고, 다시 도전한다.
‘마법사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
맥하트는 그들을 보며 미소지었다.
“도전하는 것.”
과연, 그런 것인가.
“이게, 자네가 생각한 그림인가?”
그렇게 묻자, 마도구에서 목소리가 돌아왔다.
『네. 괜히 3일로 잡은 게 아니죠.』
“그렇군. 확실히, 도움이 되겠어.”
맥하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가 탈락이 아니라, 감점인 이유도 그런 거 아니겠어요?』
실패해도 좋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겠죠. 그리고, 그런 걸 한번 경험하면··· 이게 좀 달리 보이거든요.』
실패에서 답을 찾아라.
그러기 위한 실습이다.
소녀는, 그리 말하려는 듯 했다.
맥하트도 전장을 경험한 마법사다. 최전선에서 머무르진 않았으나, 전장에서 끔찍한 경험은 많이 해 보았다.
끔찍하긴 하나.
살아남으면, 그것은 교훈이 된다.
‘······그런 것 하나하나가 곧 배움이지.’
그리고, 그런 경험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중한지는 맥하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군.”
맥하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로군.”
시험이 진행되는 사흘간, 학생들은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힘들긴 하겠지만, 본래 배움이란 다소의 수고로움을 감안하는 행위다.
“학생들 수준이 많이 오르겠어.”
맥하트는 소녀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이런 수준 높은 시험을 맥하트로서는 구성 할 수 없으니까.
‘나는 마도구를 이렇게까지 다루지는 못한다.’
이정도로 정교한 환혹을 만들어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맥하트는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마도구에 비추는 소녀를 바라봤다.
‘역시, 그 로셀 교수의 제자답군.’
보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첫 만남에서 그녀를 무시했지만, 보면 볼수록 깊이가 있는 소녀였다.
확실히, 좋은 구성의 시험이었다.
좋은 구성이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맥하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말일세?”
『네?』
“그, 시험의 조건 말일세. 보스를 잡으라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지 않겠는가?”
슬쩍 시선을 돌리자, 마도구에 비춘 보스의 모습이 보인다. 그것을 바라보며, 맥하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걸 잡으라고?’
저것을 학생들이 잡는 장면은, 도저히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애초부터, 숲속에서 사흘 동안 굴릴 생각밖에 없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마저 든다.
맥하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마도구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에이, 뭘요.』
소녀는 미소지었다.
『답이 안 나오는 상대를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거 굉장히 중요한 문제잖아요?』
그리곤 어디서 꺼낸 지 모를, 해골바가지를 자신의 머리에 툭, 하고 얹었다. 이윽고, 환영 마도구가 그녀의 머리 위에 한 단어를 표기한다.
맥하트는 자신의 이마를 탁, 하고 쳤다.
“······돌아버리겠군.”
로셀 교수가 제 이마를 자주 때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맥하트는 왠지 모르게 알 것만 같았다.
시험의 끝.
그곳에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마수 따위가 아니다. 이 시험을 계획한 장본인이 그 곳을 지키고 있다.
아플리아의 악몽, 라니아 반 트리아스가.
* * *
온갖 마수들을 해치며 학생들은 숲의 중심으로 향한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몇 번이고 실패하고, 몇 번이고 다시 도전한다.
그렇게 마수들을 뚫고.
숲의 미로와도 같은 지형을 돌파하고.
끝끝내 숲의 안개까지 전부 걷어내, 숲의 중심에 도착하게 되면······.
학생들은 탁 트인 공터를 마주하게 된다.
공터에는 그 어떠한 환혹 마도구도 놓여있지 않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이 공터를 비춘다. 숨 막히던 공기도 탁 트여서, 이젠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 소녀가 앉아있다.
길게 늘어트린 소녀의 잿빛 머리칼이 바람에 살랑인다. 그녀는 어울리지도 않는 조잡한 해골바가지를 머리에 쓰고 있다.
“아, 왔어?”
그녀가 고개를 돌린다.
그 시선의 끝에는 한 학생이 서 있다.
“······라니아 교수님?”
그림자 단검을 고쳐잡은 벨노아는 눈을 깜빡인다. 그러나, 이내 상황을 이해한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마.”
“응.”
“보스라는 게?”
“응, 난데.”
벨노아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때려치울까?’
진지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