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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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조건
우혁의 액션 촬영이 끝났다.
대역 배우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우혁이 소화했다.
우혁의 대역 배우는 원래 이 역할을 하기로 했던 장일곤의 키에 맞췄기 때문에 우혁보다 키가 작았다.
조감독 박용구가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고, 최 감독도 곧 간파하고서 무술 감독과 우혁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대역 배우 없이 가달라고 요청했다.
무술 감독과 대역 배우들이 배려해 준 덕분에 무사히 잘 마쳤다.
어느새 하루해가 저물고 있었다.
긴 시간 촬영했으나 극장판 최종본까지 살아남는 장면은 몇 분 되지 않을 것이다. 몇 초일 수도 있고.
“수고하셨습니다.”
조감독 박용구가 배우들과 스텝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박수를 쳤다.
이것으로 오늘 촬영은 끝.
우혁은 녹초가 되었다.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들 만큼.
한계를 넘어선 날이었다. 몸은 부서질 것처럼 힘들었으나 말할 수 없는 쾌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 모든 것이 어젯밤 찾아온 ‘추체험 데이터베이스’ 이능 덕분이다.
간밤에 이소룡을 추체험하지 않았다면 이런 괴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추체험 데이터베이스’가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 새삼 깨달았다.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가 그의 이마를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그 손길이 부드러웠다.
우혁은 잠시 그대로 서서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저녁 햇살의 손길을 만끽했다.
그런 우혁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백곰, 정 실장, 윤 실장 등.
민환은 다른 스케줄 때문에 현장을 떠나고 정 실장 혼자 남았다.
“배우님! 감독님께서 잠깐 뵙자는데요.”
박용구가 우혁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우혁은 박용구를 따라 최 감독에게 갔다.
“오늘 고생 많았어요. 덕분에 그림이 잘 나올 것 같습니다.”
최 감독이 우혁에게 맞은편 의자를 가리켜며 말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고문기술자의 분량을 조금 늘렸으면 하는데, 우혁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고문기술자를 죽이지 않고 살려서 이후에도 주인공 조태일과 한 번 더 스칠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요. 가령 고문기술자가 다른 누군가에게 비슷한 짓을 자행하다가 교도소에 갇히게 되고 조태일과 교도소에서 재회한다거나. 어떤가요?”
최 감독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질문을 던졌다.
“감독님 영화에 제 분량이 늘어난다면 저로서는 영광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균형과 밀도를 고려한다면 고문기술자가 원작처럼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혁의 반응에 최 감독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분량을 늘리자고 제안하면 좋아할 줄 알았다.
불쾌함도 잠시, 우혁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우혁이라는 배우를 좀 더 활용하고 싶다는 욕심에 무리수를 두었다. 좀 더 심사숙고했어야 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제 생각에는 고문기술자를 살리기보다는 조태일에게 자행한 과거의 고문 장면이 좀 더 추가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혁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부연했다.
고문기술자가 조태일을 고문하는 장면은 펜션의 창고에서 촬영했는데 우혁으로서는 아쉬움이 많았다.
시간이 너무 짧기도 했고, 고문 장면이 너무 가볍게 묘사되는 듯했기 때문이다.
일개 배우가, 그것도 까메오 대타로 출연하는 주제에 감독에게 의견을 제시할 수 없어 묵묵히 시키는 대로 했지만 촬영이 끝난 지금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뒤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박용구가 우혁의 제안에 동의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박용구도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최 감독에게 그 부분에 대해 제안을 했지만 최 감독은 박용구의 의견을 일축했다.
“우리 영화는 스릴러가 아니야. 잔인한 장면을 최대한 순화시켜서 가야 돼.”
최 감독의 변이었다.
맞는 말이기도 해서 박용구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고문 장면을 좀 더 살렸으면 좋겠다?”
최 감독이 우혁의 의견을 확인했다.
“예, 감독님! 조태일은 고문기술자의 고문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에 영혼까지 곪아 갑니다. 물론 사회적 무관심과 조직의 배신 등으로 인해 망가지지만 그 단초는 고문인 것 같습니다. 생강을 재갈 삼아 물고 고문당할 때의 기억은 고문을 겪어보지 않은 관객이 조태일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기제일 것입니다. 관객들도 생강 맛은 알 테니까요.”
촬영 내내 대사 이외에 거의 말을 하지 않던 우혁이 다소 길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최 감독와 박용구는 우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우혁의 말은 길었으나 정곡을 정확히 찌르고 있었다.
“조태일에게 있어서 고문은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조태일은 그 장면을 계속해서 반추, 회상하며 괴로워합니다. 요컨대 고문은 조태일의 무의식에 잠재해 있으면서 영혼을 갉아 먹는 암세포 같은 존재죠.”
우혁은 다시 한 번 고문 장면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장면 추가 촬영을 에둘러 요청했다.
우혁에게 시나리오가 전달된 것은 오늘 아침이다. 차를 타고 촬영장까지 이동하는 그 짧은 시간에 영화 전반에 대해 통찰하고 있다는 사실에 최 감독과 박용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제넘게 주절거렸습니다. 일개 배우의 사견이니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아니에요. 타당한 지적입니다.”
최 감독이 손사래를 쳤다.
의자에 일어나며 우혁에게 악수를 청했다.
“고문 장면 추가 촬영을 하자면 조만간 다시 뵈어야겠네요. 오늘 찍을 수도 있지만 저도 준비를 좀 해야 될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촬영 일정 정해지면 연락 주십시오.”
“이건 내 개인 연락처인데 혹시 하실 말씀 있으면 연락 주세요. 우혁 씨 연락처 좀 찍어 줘요.”
최 감독이 명함과 휴대전화를 우혁에게 내밀었다.
뒤에 서 있던 박용구가 눈을 크게 떴다. 흔치 않은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최 감독의 명함을 배우에게 주는 일도, 배우의 개인 번호를 따는 일도.
“우혁 씨, 다음에 꼭 제대로 된 작업 한번 해봅시다. 빈말로 하는 게 아니라 꼭요.”
최 감독이 우혁으로부터 휴대전화를 돌려받으며 말했다.
제대로 된 작업.
주연 또는 무게 있는 조연으로 캐스팅하겠다는 의미였다.
최 감독은 빈말이 아니었다. 강우혁은 연기력뿐만 아니라 작품 해석력까지 겸비했다. 탐나는 배우다.
“저도 번호 좀···.”
박용구도 자신의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박용구 또한 말은 하지 않았으나 최 감독과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강우혁! 이 배우하고 꼭 작업해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입봉작부터.’
이번 작품이 끝나면 감독으로 입봉할 계획이다. 경험은 충분히 쌓았다. 몇 해 전부터 시나리오를 준비해오고 있다.
우혁은 연출부를 비롯해 스텝들, 연기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백곰과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고생했어, 형!”
“너야말로 고생했다. 기다리느라 지루했지?”
“지루하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어. 매니저 생활하면서 오늘처럼 재미있고, 가슴 뭉클하고, 보람차고 또···. 암튼 오랜만에 너무 좋았어.”
“고맙다.”
“형이랑 다니니까 참 좋다. 마음이 편해.”
“취직해야지?”
“그래야지.”
“매니저 생활은 계속할 거고?”
“계속하고는 싶은데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어.”
회사에 쫓겨나면서 어떤 대접을 받았기에 저토록 의기소침해 있을까?
“매니저 생활을 계속한다면 어떤 연예인을 맡고 싶어?”
“음···. 강우혁!”
백곰의 대답에 우혁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형은 어떤 매니저랑 함께 다니고 싶어?”
백곰이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우혁을 바라보았다.
“음···. 글쎄! 난 아무나 괜찮아.”
우혁의 대답에 백곰이 나라라도 잃은 표정을 짓는다.
백곰의 차 근처에는 우혁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정 실장과 윤 실장.
“여태 기다리셨군요.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배우님께서 기다리라고 한 것도 아닌데요 뭐.”
“시간 있으면 식사라도 하시면서 말씀 나누실까요?”
정 실장과 윤 실장이 차례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피곤해서 일찍 집에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러세요.”
정 실장과 윤 실장이 동시에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대역 없이 액션 연기까지 모두 소화했으니 피곤할 법했다.
“혹시 계약 때문이라면 지금 말씀하시죠.”
우혁이 두 실장에게 말했다.
“여기에서요?”
“여기는 좀···.”
정 실장과 윤 실장이 난감해했다.
“제가 실장님의 차에 가서 말씀을 나누면 어떨까요? 한 분씩 차례로.”
“이렇게 하시지요. 배우님이 차에 타고 계십시오. 저희가 한 사람씩 들어가겠습니다.”
정 실장이었다.
윤 실장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먼저 들어가 있겠습니다.”
우혁은 백곰의 차 뒷좌석에 올랐다.
잠시 뒤 윤 실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위바위보에서 제가 이겼습니다. 하하하!”
윤 실장이 옆자리에 앉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우혁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잘 아시겠지만 저희 회사는 국내 최고 기획사로서···.
윤 실장이 회사 소개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실장님! 말씀 끊어서 죄송합니다만, 와우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핵심 계약 조건만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혁은 장황한 윤 실장의 말을 부드럽게 끊고서 본론으로 곧장 들어갔다.
“핵심 계약 조건이라면···.”
“계약금, 계약 기간만 우선 말씀해 주십시오.”
두 번의 소속사를 경험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소속사를 정하고 계약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첫째, 소속사의 재정 상태가 탄탄할 것.
둘째, 계약금을 최대한 많이 받을 것.
셋째, 계약 기간은 가능한 짧게 할 것.
그리고 계약할 때는 인정, 감정, 친분 관계를 개입시키지 말 것.
“그게 사실, 배우님과 협의할 사안이라서 함부로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회사와 논의도 해야 하고요.”
“그럼 계약금의 최고 금액, 계약 최소 기간을 포함해 핵심 계약 사항을 회사와 논의해서 전화나 이메일로 저에게 알려주십시오. 문서로 주시면 더 고맙겠구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정 실장님께도 똑같은 조건을 요구할 것입니다. 두 회사의 조건 중에서 더 좋은 쪽을 결정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셔야지요.”
“한 가지 요구 조건이 더 있습니다.”
“어떤···?”
“매니저를 제가 선택하게 해주십시오.”
“매니저를 말입니까? 혹시 저희 회사에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매니저라도 있으신지요?”
“밖에 서 있는 백동수 씨를 제 매니저로 데려가고 싶습니다. 백동수 씨의 연봉 등 입사 조건은 저와 협의해 주셔야 합니다.”
“아, 예! 제가 가타부타 확답을 드릴 입장이나 위치는 아닙니다만, 그 정도는 회사에서 수용할 것 같습니다. 회사에 문의해 보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우혁이 문을 가리켰다.
벌써 끝?
윤 실장은 조금 아쉬웠다.
“동생을 밖에 세워 두기가 미안해서요.”
우혁이 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백곰을 가리켰다.
윤 실장은 미소를 지었다. 우혁이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 알 것 같았다.
부러웠다. 계약 조건으로 함께 가겠다고 하는 배우를 가진 백동수가.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윤 실장이 환한 표정으로 나갔다.
곧이어 정 실장이 들어왔다.
우혁은 윤 실장에게 요구했던 사항을 그대로 말했다. 맥시멈 계약금, 최소 계약 기간, 백곰 입사와 전담 매니저 요구 등에 대해서.
두 회사의 핵심 계약 조건을 비교한 뒤에 결정하겠다는 말도.
“솔직해서 좋네요. 내일까지 답변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 실장이 밖으로 나갔다.
차창 밖으로 백곰을 찾았다.
백곰은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두 팔을 허공에 든 채 뒤꿈치를 들고서 살금살금 걸어가고 있었다.
잠자리라도 쫓는 모양이다.
그 모습이 귀여워 미소가 절로 나왔다.
차창을 열고 백곰을 부르려다가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우혁은 차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서 백곰의 모습을 구경했다.
“에쿠, 날아가 버렸네!”
백곰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쉬움의 탄성을 흘렸다.
한숨을 크게 한 번 내쉬고는 돌아서다가 우혁을 발견하고 서둘러 이쪽으로 달려왔다. 100미터를 2박 3일에 주파할 것 같은 속도로.
“형, 추운데 왜 나와 있어. 땀을 많이 흘려서 감기 걸릴 수가 있다고. 어서 차에 들어가.”
백곰이 우혁에게 달려오며 말했다.
전생에 무슨 복을 지은 걸까? 이렇게 착한 사람을 만나게 되다니!
“동수야,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맛있는 거? 좋지. 이 근처에 잣칼국수 맛있게 하는 데가 있거든. 거기 갈까? 국물이 끝내줘.”
“그래.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