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14)
“옐로우 동생 역할 어때요?”
타란티노 감독은 데이빗에게 옐로우 동생 역할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늘어놓은 뒤 질문을 툭 던졌다.
“좋은 역입니다.”
데이빗이 대답했다.
“지금 이 역할을 해줄 사람을 찾고 있어요. 해볼 생각 있습니까?”
“해보고 싶습니다. 잘할 자신 있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데이빗이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옐로우 동생은 옐로우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역할입니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물론입니다. 옐로우는 주인공이고 옐로우 동생은 조연인데 당연하죠.”
타란티노 감독은 데이빗이 마음에 들었다.
데이빗은 옐로우 동생 역할에 어울리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기무라만큼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만난 배우들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든다.
눈빛 뒤에 강한 질투심, 약간의 비열함, 욕망과 절망이 보인다.
한국에서 드라마 주연까지 했다니 연기력은 믿어 보기로 하자.
연기보다 중요한 것은 느낌이다.
영화는 배우의 연기력보다 외모와 눈빛이 주는 느낌이 훨씬 중요하다.
영화의 연기는 카메라와 편집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향 편집으로 목소리까지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영화다.
지금까지 느낌이 배반하는 일은 드물었다.
배역에 어울리는 느낌을 가진 배우와 작업했을 때 실패한 적이 없다.
“배역의 비중이 적다고 분량을 늘려 달라거나 하지는 마세요.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저는 그런 배우가 아닙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좋아요. 며칠 뒤에 제작사에서 인터뷰 요청 전화가 갈 거예요. 인터뷰를 잘해야 합니다. 모든 걸 다 보여 주세요. 춤, 노래, 연기, 무술 뭐든지 다요. 필모그래피도 준비하시고,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자료들은 모아서 ppt로 작업한 뒤에 브리핑해 주세요.”
“잘 알겠습니다. 성실하게 인터뷰에 응하겠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정말 닮았어요. 형제는 아니더라도 사촌 아니에요?”
“아닙니다. 아니지만 제가 형을 친형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죠. 제 멘토입니다.”
“강에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강이 당신을 추천한 게 내가 데이빗을 캐스팅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으니까요. 강의 한마디는 왠지 무게가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맞습니다. 강의 말에는 무게가 있죠.”
얘기를 듣고 있던 우혁이 타란티노 감독을 바라보며 타란티노 감독이 했던 농담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백인의 이 아부 근성··· 정말 마음에 드네요.”
“우하하하···.”
타란티노 감독이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타란티노 감독의 전화벨이 울렸다.
“···하하하! 기무라!”
– 안녕하세요, 감독님? 즐거운 일이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웃음소리가 들리네요.
“즐거운 일 있지요. 옐로우 동생 역을 맡을 배우를 찾았거든.”
– 하하하! 결정하셨나 보군요.
기무라가 왜 웃지?
옐로우 동생 역의 비중을 높여 달라는 제안을 받아들인 줄 아는 모양이군!
“맞아요. 결정했어요.”
–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뭐가요?”
– 저를 옐로우 동생 역으로 결정해 주셨으니 당연히 고맙죠.
“누가 그래요? 존이 그래요? 난 그런 결정한 적 없는데요?”
– 그럼 제가 아니라 다른 배우를 캐스팅하기로 결정했단 말씀인가요?
“예! 아직 제작사 인터뷰가 남아 있긴 하지만 나는 결정했어요. 내가 확신을 가진 이상 절대 내 결정을 바꾸지는 못할 겁니다. 감독을 바꾸지 않는 이상.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내가 썼으니까 나 아닌 다른 감독은 찍을 수 없을 거예요. 내가 시나리오를 팔지 않을 테니까.”
– 두 번씩이나 저를 실망시키는군요.
“기무라! 실망하지 말아요. 당신은 좋은 배우잖아요. 더 좋은 배역이 나타날 거예요.”
– 그거야 당연하죠. 날 선택하지 않은 걸 후회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제가 출연하는 영화가 감독님의 [쓰레기들>보다 10배 이상 많은 관객을 동원할 거니까요.
“기무라! 화났어요?”
– 아뇨!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또 하나 사실을 말씀드리죠. 감독님 영화들은 죄다 쓰레기예요. 아시겠어요?
“크아! 동양인들의 이 옹졸함··· 정말 귀여워!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내 앞에 나타나지 마. 깨물어 줄 거니까!”
그렇게 말한 뒤 전화를 끊어 버렸다.
“기무라가 내 영화는 죄다 쓰레기랍니다. 두 사람이 출연하게 될 영화보다 자기가 출연하는 영화가 10배 이상 많은 관객을 동원할 거라는군요. 푸하하하하!”
타란티노 감독이 웃어젖혔으나 우혁은 씁쓸했다.
기무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왠지 다음에 또 만날 것 같은 예감이다.
동양인 배우 중에 할리우드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는 많지 않다.
기무라와 캐스팅 중복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제대로 꺾어 주고 싶다.
“기무라 자오 말인가요?”
데이빗이 우혁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혁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기무라 자오라면 잘 안다.
데이빗이 좋아하는 배우이다.
그가 출연한 이소룡 일대기를 다룬 TV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뒤로 그의 팬이 되었다.
그런데 그 기무라가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쓰레기라고 했다고?
기분 더럽다.
기무라 말대로라면 자기는 쓰레기 속 썩은 밥알이란 말인가?
타란티노 감독은 은인이나 마찬가지다.
수렁에 빠져 있는 자기를 끌어올려 주기 위해 손을 내밀어준 은인.
그런 은인에게 뭐?
쓰레기?
기무라에 대한 호감이 적대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출연료입니다. 제작사에서는 개런티에 매우 민감해요. 인터뷰 때 반드시 물어볼 거예요. 데이빗이 원하는 출연료를 알아야 내가 사전에 딜을 할 수 있어요. 데이빗! 개런티 얼마를 원합니까?”
타란티노 감독이 데이빗에게 물었다.
데이빗은 말문이 막혔다.
노개런터로 출연하라고 해도 할 수 있다.
필모그래피에 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다음 작품을 찾는 건 따 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감이 안 잡히는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제가 제안할 게요.”
타란티노 감독이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였다.
데이빗은 손가락 다섯 개가 얼마를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5만 달러?
한화로 5000만 원이 넘는 돈이다.
많은 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불만 없다.
설마 50만 달러는 아니겠지?
5억인데···.
한국에서라면 상위급 배우의 개런티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개런티는 5000만 달러가 넘는다.
1000만 달러를 넘으면 스타급에 해당한다.
반면 5만 달러가 안 되는 배우들도 수두룩하다.
데이빗 입장에서는 5만 달러도 감지덕지다.
50만 달러를 받는다면?
기절할지도 모른다.
타란티노 감독이 생각하고 있는 금액은 500만 달러.
기무라가 1000만 달러를 제시했다.
우혁은 2000만 달러를 주었다.
옐로우 동생 역할로 500만 달러면 적은 금액이 아니다.
제작사에서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나중에 협상을 하며 물러서더라도 일단 최대치로 높이 불러보는 거다.
우혁도 타란티노 감독이 얼마를 제시하는지 알아들었다.
데이빗이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우혁이 대신 대답했다.
“곱하기 2를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10만 달러?
데이빗은 타란티노 감독의 표정을 살폈다.
타란티노 감독이 미간을 찌푸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러다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는 거 아닌가 싶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형! 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게. 나한테 맡겨 줘.”
데이빗이 애원하는 표정으로 우혁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타란티노 감독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감독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내가 제시한 금액에 곱하기 2를 하려고 하면 내가 제작사를 설득하는 데 너무 힘들어져요. 틀림없이 제작사는 500도 많다고 할 거예요.”
500?
500만 달러라는 건가?
데이빗은 귀를 의심했다.
“어, 얼마라구요?”
“제작사에선 100도 많다고 할지도 몰라요. 500이 안 될 가능성도 높아요. 일단 그렇게 던지고 보는 거예요. 나도 옆에서 거들 테니까.”
타란티노 감독이 식사를 하며 말했다.
5만 달러도 아니고, 50만 달러도, 아닌 500만 달러란다!
500만 달러라면 50억이 넘는 돈이다.
그런데 우혁 형은 거기에 곱하기 2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 형, 혹시 5만 달러라고 들은 건가?
500이라는 말을 분명히 들었을 텐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잖아?
손가락 다섯 개가 500만 달러라는 걸 알았다는 거야?
이 형, 뭐지?
그런데.
형은 이번 영화에서 무슨 역에 캐스팅되었지?
옐로우?
제발 그래라!
점심식사가 끝나갈 무렵 타란티노 감독이 약속이 있다면 먼저 일어났다.
데이빗은 우혁과 둘만 남게 되었을 때 우혁에게 물었다.
“그런데 형은 무슨 역이야?”
“옐로우!”
“이럴 줄 알았어! 역시 형이야. 축하해, 형!”
“아직 축하하기는 일러. 개봉되고 나서 평가가 좋지 않으면 여기서 끝날 수도 있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지.”
“나도 열심히 할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거야.”
“인터뷰 때 네가 잘하는 거 아낌없이 다 보여줘. 너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르잖아.”
“그럴게. ···고마워, 형!”
데이빗은 붉어진 눈시울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식사를 했다.
기적.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
새아빠가 건네준 엄마의 동전이 생각났다.
동전이 행운을 불러온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0.5%정도는.
나머지 99.5%는 우혁 형 덕분이다.
형이 아니었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소중한 기회가 왔다.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 기회를 놓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는 겉멋에 젖어 연기했다.
암기력이 좋은 편이라 대본 몇 번 읽고 촬영에 임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 된다.
그런 식으로 하다간 망한다.
이번에도 망하면 더 이상 희망은 없다.
미국의 오디션들은 서류 제출 시 추천서가 중요하다.
하다못해 사설 연기 아카데미 강사 추천서라도 넣어야 하는데 데이빗은 단 한 번도 추천서를 제출한 적이 없다.
서류 심사에서 통과하더라도 1차 오디션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았다.
1차 오디션에 합격하면 심층 인터뷰 기회가 온다.
심층 인터뷰는 두 번 이상 할 때도 있다.
인터뷰에 통과하면 계약 조건 협상.
스타들은 곧바로 마지막 단계로 가지만 신인들은 통과해야 할 과정이 너무나 많다.
산 너머 산, 강 너머 강이다.
데이빗은 처음으로 서류 심사와 1차 오디션 없이 곧바로 심층 인터뷰 단계에 왔다.
우혁 형 덕분에!
데이빗은 우혁과 헤어져 혼자 집으로 돌아가며 꽃집에 들러 장미꽃 한 다발을 사고, 새아빠에게 드릴 지팡이 하나를 구입했다.
“오디션을 잘 봤니?”
“타란티노라는 감독을 만났어요. 다음 인터뷰를 준비해야 돼요. 참, 이거···.”
데이빗이 새아빠에게 지팡이를 드렸다.
새아빠는 지팡이가 마음에 드는지 웃음을 지어 보였다.
“ppt를 만들어야 하는데 노트북이 고장 났어요.”
“진작 얘기를 하지 그랬어. 알았다. 얼마 필요하니?”
“곧 갚아드릴게요.”
“갚기는 뭘 갚아. 아들 노트북 수리비 받는 아버지가 세상에 어디 있냐. 그런 소리 마라. 꽃 사 왔구나. 엄마한테 갖다 드리거라.”
“예··· 아버지!”
아버지!
새아빠는 의붓아들 데이빗에게 처음으로 들은 호칭이었다.
데이빗은 우혁 형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며 수도 없이 연습을 했다.
연기자니까 연기자답게 연기한다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하려고 했는데 누가 봐도 발연기였다.
데이빗은 장미꽃 다발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데이브 앞에 놓여 있는 꽃병에서 시든 장미를 빼고 방금 사 온 장미를 꽂았다.
새아빠는 창문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들이 처음으로 ‘아버지’라고 불러 주었다.
오늘 따라 세상을 떠난 아내가 간절히 그립다.
***
LA 공항 일각.
[언더커버 보스> 프로그램 촬영팀들은 LA 공항 곳곳에 미리 설치해 둔 카메라가 이상 없는지 검토했다.승객으로 가장한 카메라맨들이 비밀 소형 카메라가 장착된 캐리어, 모자, 안경 등을 숨긴 채 승객이나 공항 직원으로 가장해 공항 여기저기에 흩어져 촬영을 하고 있었다.
LA 공항의 CEO 알렉산더 마틴은 경비업체 직원으로 위장을 하고서 공항을 돌아다녔다.
한 백인 남자가 과자 봉지를 바닥에 투기했다.
그 남자는 프로그램 제작진이 고용한 연기자였다.
카메라를 장착한 비밀 카메라맨들이 그 장면을 찍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대부분 과자 봉지를 피하거나 밟고 지나갔다.
그때 한 동양인 남자가 과자 봉지를 발견하고는 허리를 숙여 봉지를 주워 올리더니 10미터나 떨어져 있는 쓰레기통에 가져가 넣었다.
그 모습을 여기저기 미리 설치된 카메라와 카메라맨들 찍고 있었다.
타깃이 정해졌다.
이제 그 동양인 남자에게 거듭해서 몇 가지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쓰레기 투기, 길을 잃은 애완동물, 돈이 든 가방 등이 그 남자를 기다리고 있다.
LA 공항 직원들이 그 남자에게 생긴 일들을 어떻게 도와주는지 관찰하게 된다.
동양인 남자는 바로 우혁이었다.
우혁은 자기 앞에 놀라운 행운과 인연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 놀라운 인연과 행운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