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88)
와우(WOW)의 본부장이 팀장급 매니저 두 명과 함께 최 감독을 찾아왔다.
“윤 실장, 오랜만이야. 아참, 여기서는 본부장이라고 했던가? 윤 본부장! 입에 착착 감기지는 않는다. 발음하기는 윤 실장이 낫네. 하하하!”
복도에서 윤대성을 만난 본부장이 비아냥거렸다.
우혁과 최 감독, 박 감독이 기다리고 있는 회의실로 들어온 본부장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밑에 애들이 감독님께 사과 말씀을 드렸다고 합니다만, 제가 찾아뵙는 게 도리일 것 같아서 이렇게 왔습니다. 진작 왔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거느리는 식구가 많아서 눈코 뜰 새가 있어야지요. 머릿수가 많은 탓인지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이건 뭐 눈만 뜨면 사고예요. K&B는 다섯 명이 안 되죠? 오붓하니, 가족 같은 분위기겠네요.”
본부장의 태도는 예의 발랐으나 그의 말 속에는 빈정거림이 녹아 있었다.
최 감독은 그 빈정거림이 귀에 거슬렸다.
상대를 비웃는 듯한 표정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본부장을 몇 차례 직간접적으로 대면한 적이 있는데, 좋은 기억이 없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최 감독이 팔짱을 끼고서 물었다.
“내 정신 좀 봐라. 바쁘신 분들 붙잡고 쓸데없는 사설을 늘어놓았네요.”
본부장이 자세를 바로하고 양복을 매무시하고 나서 머리를 조아렸다.
“이진호 문제, 사과드립니다. 용서하십시오!”
진정성이 전혀 없는 행동과 입에 발린 사과였다.
표정에는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웃고 있었다.
웃으면서 하는 사과.
“윤 실장, 아니 윤 본부장은 와우에 있어 봐서 잘 알고 있겠지만, 와우는 애들 몇 명 데리고 있는 구멍가게가 아닙니다. 책임지겠습니다.”
본부장이 왼손을 들고 검지를 까딱거렸다.
그러자 뒤쪽에 서 있던 와우의 팀장급 매니저가 카탈로그를 본부장에게 건네주었다.
본부장은 카탈로그를 한 손으로 받아 두 손으로 최 감독 앞에 공손히 놓았다.
약강강약!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한 태도였다.
“이십 명입니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배우로 고르십시오. 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만, 이진호보다 훨씬 경력도 많고, 연기력도 검증된 배우들입니다. 연기나 경력으로 비교하자면, 이진호 걔는 이 친구들한테 쨉이 안 되죠. 우스개소리입니다만, 이래서 저희 기획사 이름이 ‘와우!’ 아니겠습니까? 고객에게 감동을 주거든요. 하하하하!”
본부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본부장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최 감독은 카탈로그의 겉모양을 힐끗 한 번 보고는 카탈로그를 본부장 앞으로 밀었다.
스으윽!
본부장이 카탈로그와 최 감독을 번갈아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표정에 불쾌함이 얼핏 스치고 지나갔다.
애들을 보내도 되는데 본부장인 자기가 직접 와서 사과를 하고 카탈로그까지 내밀었건만 카탈로그를 펼쳐 보지도 않아?
이거 열 받네!
본부장은 안경을 치켜 올리며 불쾌함을 지우고서 미소를 머금었다.
마치 변검술이라도 하는 것처럼.
“혹시 마음에 두고 계신 친구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 회사 소속 배우라면 제 선에서 애를 써 보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미 이진호 씨를 대신할 배우를 구했으니까요.”
“아, 벌써 구하셨어요?”
본부장의 표정에 낭패스러움이 떠올랐다.
다시 한 번 안경을 치켜올리며.
“아이고, 다행입니다. 워낙 비중이 약한 배역이라 쓸 만한 배우를 구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빨리 구하셨네요. 연기 좀 되고 경력 있는 애들은 배역 설명 듣고는 다들 안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저한테는 그런 거 안 통합니다. 까라면 까야죠. 스타급도 아닌 것들이 깝죽거리는 거, 저는 못 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이진호 대타 배우가 누군지 여쭤 봐도 될까요?”
본부장은 듣보잡 배우 이름을 예상하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다리를 꼬려다가 말았다.
카탈로그는 탁자 위에 두고 갈 생각이다.
자기가 가고 난 뒤에 카탈로그를 보고서 속상해하라고.
“박 감독 영화에 출연했었지? 그 배우 이름이 정확하게 어떻게 되나? 나는 그 양반 이름을 발음하기가 어렵더라고.”
최 감독이 팔짱을 풀고서 박 감독을 바라보았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레오라고 불렀습니다. 본인이 그렇게 불러달라고 하기도 했고요. 한국사람들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고 하는데, 미국에서 그렇게 말하면 아무도 못 알아듣습니다.”
본부장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눈을 깜빡였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배칠수, 조영필, 너훈아 같은 이미테이션 연예인인가?
박 감독이 가방에서 [플럼범 바이러스> 홍보 리플릿을 꺼내 본부장에게 보여 주였다.
“이분입니다.”
박 감독이 손가락으로 레오의 사진을 가리켰다.
본부장은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카탈로그를 슬그머니 집어 들었다.
***
레오의 출연 소식이 전해지자 [침묵의 소리>에 대한 언론 보도가 부쩍 늘었고, 네티즌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레오와 같은 신을 찍게 될 출연 배우들은 신이 났다.
연출부를 만날 때마다 레오가 정말 출연하는 게 맞는지 확인했다.
전례가 없었다면 레오의 카메오 출연을 믿지 않았겠지만, [플럼범 바이러스>에 카메오로 출연한 적이 있기 때문에 다들 그 소식을 믿었다.
레오가 프로듀서로 참가하는 영화 촬영을 위해 한국에 올 것이고, 우혁이 그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한다는 사실이 여러 매체를 통해 공개되면서, 레오의 [침묵의 소리> 출연은 더욱 개연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가장 신이 난 사람은 최 감독.
지금까지 영화감독 생활을 해오면서 캐스팅이 가장 큰 난제였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순조롭게 풀렸다.
술술.
그것도 매우 짧은 시간에.
강우혁 덕분이다.
강우혁이 남주로 출연하지 않았다면, 여주를 비롯해 무게 없는 조연까지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모여 들었을까?
어림없는 소리.
턱도 없다.
강우혁에게 고맙다.
그리고 아들.
하늘에서 아들이 도와주는 것만 같다.
강우혁을 만나게 해준 것도 아들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비논리적인 줄 알지만.
최 감독은 촬영을 하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곤 하는 버릇이 생겼다.
하늘을 보면, 슬픔과 행복,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요즘에는 고마움이 크다.
하늘을 보고 나면 힘이 생긴다.
스태프들도 고맙고, 출연 배우들도 고맙다.
이진호의 이탈로 잠시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레오의 출연 소식으로 반전되었다.
이런 분위기와 속도라면, 예정보다 촬영 기간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
그로부터 3주일이 빠르게 지나갔다.
[침묵의 소리> 촬영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들을 수 없는 자’들에 대한 ‘들을 수 있는 자’들의 횡포가 극에 달하면서 전 세계 곳곳에서 끔찍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들을 수 없는 자’들이 단결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들을 수 없는 자’들이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게 되자 ‘들을 수 있는 자’들에게 그동안 당했던 수모를 갚아주기 위해 복수전을 펼친다.
‘들을 수 있는 자’뿐만 아니라 그들을 도왔던 부역자들을 향한 복수도 가혹하다.
‘들을 수 있는 자’들은 이제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에 불과하다.
‘들을 수 있는 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들을 수 없는 자’ 흉내를 내기도 하고, 멀쩡한 고막을 찢어 ‘들을 수 없는 자’가 되기도 한다.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죄악이다.
하늘의 저주이고, 악마의 요건이며, 죽어 마땅한 이유가 된다.
음악은 악마의 메타포.
‘들을 수 있는 자’들에 대한 응징의 의미로 세상의 모든 악기들을 부수고 불사른다.
졸지에 악마의 자식이 된 송강우.
‘들을 수 없는 자’들의 편에서 그들을 도와주었으나 이제는 그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악마의 자식일 뿐.
송강우에게 도움을 받았던 이들 덕분에 생명을 유지하지만 도망자 신세가 되어 숨어 지내게 된다.
‘들을 수 있는 자’를 보호하거나 숨기다가 들키게 되면 곤욕을 치른다.
반대로 ‘들을 수 있는 자’를 신고하면 엄청난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포상금을 노린 ‘들을 수 있는 자’를 사냥하는 헌터가 생겨난다.
독고다이 헌터들이 나타나는 것도 이때.
레오는 독고다이 헌터들 중 한 명.
원래 이진호가 맡았던 배역이다.
‘들을 수 있는 자’들에게 부모형제를 잃고 숨어 지내다가 세상이 바뀌자 ‘들을 수 있는 자’를 찾아 잔혹하게 살해한다.
거액의 현상금 포스터를 본 뒤로 독고다이 헌터가 된다.
꿩 먹고 알 먹고.
‘들을 수 있는 자’를 사냥해 복수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다니 마다할 이유가 있나.
독고다이 헌터 레오는 ‘들을 수 있는 자’를 찾는 데 귀신이다.
총을 쏘았을 때 놀라서 움찔하거나 뒤를 돌아보는 자가 바로 ‘들을 수 있는 자’.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총을 쏘고, 그 소리에 반응하는 자가 있으면 그 자를 쫓아가 포획한다.
개집을 개조한 우리에 가두고 포상금을 받기 전에 집으로 데려가 잔혹한 짓을 한다.
송강우는 임신을 한 아내가 출산이 임박하자 의사를 찾아 밖으로 나간다.
그런데 총소리가 들린다.
다다다다다다다!
총소리에 놀란 송강우는 몸을 웅크린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걸어가는데 송강우 혼자 그러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눈이 있다.
바로 레오.
송강우는 서둘러 몸을 일으킨다.
‘들을 수 있는 자’라는 게 발각되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송강우는 산부인과 병원을 찾아다닌다.
누군가 그를 미행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병원을 찾았다.
병원으로 들어가려는데 레오가 다가와 칼을 겨눈다.
다음 장면은 레오의 집.
송강우는 개집을 개조한 우리에 갇혀 있다.
송강우의 얼굴에는 폭행 흔적으로 엉망진창이다.
“음악 듣고 싶지? 어떤 음악 좋아해? 모차르트? 베토벤? 오늘 같은 날은 비탈리의 샤콘느가 어울리겠어. 한때 내가 좋아했던 곡이지. 귀머거리가 되기 전에 말이야.”
레오가 음악을 틀어준다.
아름다운 선율이 송강우의 몸을 감싼다.
송강우는 눈을 지그시 감고 음악을 감상한다.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이게 얼마 만에 듣는 음악이란 말인가.
그런데 볼륨이 점점 커진다.
레오가 볼륨을 올렸던 것이다.
바이올린의 선율이 송곳처럼 고막을 찔러댄다.
송강우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은 채 고통스러워한다.
레오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송강우를 향해 다가간다.
비탈리의 샤콘느 선율을 흥얼거리며.
탕!
총 소리가 음악에 섞여 들리고.
레오가 바닥으로 허물어진다.
한 남자가 우리의 자물쇠를 풀어준다.
송강우는 우리 밖으로 나오자마자 턴테이블을 향해 의자를 던진다.
턴테이블이 박살나면서 음악이 뚝 멈춘다.
송강우를 구해준 남자는 ‘들을 수 없는 자’.
송강우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
산부인과 병원 앞에서 송강우가 레오에게 잡혀가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고 그 뒤를 미행했던 것.
송강우는 그 남자의 도움으로 산부인과 병원에 들러 의사와 함께 집으로 간다.
그런데 이미 아내는 출산을 마치고 아이와 침대에 누워 있다.
아내와 아이, 둘 다 무사하다.
송강우가 ‘들을 수 있는 자’라는 걸 눈치 챈 의사가 송강우의 집을 나가면서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무장 군인에게 그 사실을 말한다.
창문을 통해 그 모습을 본 송강우가 몸을 피한다.
간신히 위기를 넘긴 송강우는 레오로부터 그를 구해준 남자의 도움을 받아 거처를 옮긴다.
그곳은 깊은 산골의 오두막집.
새소리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우리 아기가 ‘들을 수 있는 자’가 되면 어쩌지?”
아내가 걱정한다.
송강우는 혼란스럽다.
“우리 아이가 이토록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을 수 없기를 바라다니!”
“뭐라고 했어?”
아내가 묻는다.
“아무것도 아니야.”
“뭐라고?”
송강우는 대답 없이 집 밖으로 나간다.
새소리가 유난히 아름답다.
그러나 송강우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는다.
풀들을 마주 잡아 뜯어 귀에 집어넣는다.
하지만 여전히 새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손바닥으로 양쪽 귀를 때린다.
양쪽 귀에서 피가 흐른다.
고통스러워하는 송강우.
하늘을 올려다본다.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비로소 웃음 짓는 송강우.
그 미소가 비릿하다.
새들이 파란 하늘을 날아다닌다.
소리 없이!
***
“컷!”
최 감독이 큰소리로 외쳤다.
이로서 [침묵의 소리> 촬영이 끝났다.
레오가 출연할 장면만 빼고.
[ [침묵의 소리> 촬영 막바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