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90)
박동일은 K&B 사무실 복도로 나오자마자 이진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호야, 허락받았어.”
– 정말?
“윤 실장님한테 부탁을 드리고 있는데, 강우혁 배우님이 회의실에서 나오면서, 보게 해주지요, 그러는 거야.”
– 그래서?
“그래서는 뭘 그래서야. 그걸로 끝났지.”
– 디카프리오 연기를 볼 수 있는 거야?
“그렇다니까.”
– 고마워, 형! 맛있는 거 사줄게.
“됐고! 내일 촬영장에 가려면 의사한테 외출 허가를 받아야 해.”
– 외출 허가 안 해주면, 탈출이라도 할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다. 나한테 생각이 있으니까 기다려.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갈 테니까.”
– 알았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 없어. 형이 보고 싶을 뿐이야.
“닥쳐!”
– 참, 윤 본부장님께 입사 부탁드렸어?
“말도 못 꺼냈다.”
– 그 얘기를 먼저 꺼냈어야지.
그때 통화중 착신 알림음이 울렸다.
윤대성 실장님.
발신자명을 확인하고, 박동일은 이진호에게 말했다.
“끊어야겠다. 윤 실장님한테 전화 왔어. 촬영장 어딘지 알려주실 모양이야. 끊어.”
박동일은 이진호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은 뒤, 윤대성의 전화를 받았다.
“예, 실장님! 아니, 본부장님!”
– 박 대리님! 저 윤대성입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전화했어요. 죄송한데 사무실로 잠시 와 주실 수 있나요?
“사무실로요? 예, 알겠습니다. 지금 곧바로 가겠습니다.”
– 예, 그럼 기다릴게요.
박동일은 전화를 끊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궁금한 게 있다? 뭐가 궁금하지?
통 모르겠다. 가보면 알겠지.
빠른 걸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K&B 사무실 입구 앞에 도착했다.
양쪽 어깨를 툭툭 털고, 옷매무시를 다듬은 뒤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 앞에 윤대성이 나와 있었다.
“죄송해요. 오라 가라 해서.”
“아닙니다, 실장님! 아니, 본부장님! 죄송합니다. 실장님이 입에 올라서.”
박동일이 죄송해하며 사과했다.
“괜찮아요. 편한 대로 불러요. 저도 본부장보다 실장이 편해요.”
윤대성이 웃어 보였다.
“아닙니다. 본부장님이 훨씬 어울리십니다. 와우에서도 진작에 그렇게 되셨어야 했는데···.”
박동일은 윤대성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와우 본부장이 윤대성을 밀어낸 것도.
“박 대리도 대리보다는 실장이나 팀장 직함이 어울려요.”
“저는 아직 능력이 안 돼서···.”
박동일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윤대성이 빙그레 웃으며 그 모습을 보다가 박동일을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박동일은 윤대성을 뒤따라갔다.
직원들이 박동일에게 눈인사를 한다.
직원들 표정이 좋다.
박동일은 직원들에게 머리를 숙여 보이며 윤대성을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에는 강우혁이 앉아 있었다.
“들어오세요.”
강우혁이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배우님! 차 뭘로 하시겠습니까?”
윤대성이 물었다.
“보이차 한잔할까요?”
“알겠습니다. 박 대리, 차 뭘로 할래요?”
“저요? 저는 안 마셔도 되는데···.”
“보이차 괜찮아요?”
“예예.”
박동일이 황송해했다.
윤대성이 나가고 박동일은 강우혁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와우에서 퇴사하셨나 봐요?”
“예.”
“퇴사하셨으면 이제 이진호 씨 매니저가 아닌데, 왜 이진호 씨를 아직도 케어하시지요?”
“퇴사했다고 해서 인간관계까지 끊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서로 바쁘게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락도 뜸해지고 소원해지겠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매일 붙어 지내던 사인데, 회사 그만 뒀다고 연락을 끊기가 그래서요. 진호가 워낙 저한테 살갑게 굴기도 했고요. 잘 풀리고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일이 잘 안 풀려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친구를 모른 척할 수 없어서요. 아직 회사에서 담당 매니저를 붙여 주지 않아서 그때까지라도 제가 케어해 주려구요.”
“이진호 씨가 복이 많네요. 대리님 같은 담당 매니저를 만났으니 말입니다.”
“아닙니다. 좋은 매니저를 만났으면 진호가 저렇게 되지 않았을 겁니다.”
박동일은 이진호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퇴사 이후에도 이진호 곁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진호 문제를 해결해야, 휴식을 취하든 다른 회사에 취직을 하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연기도 잘하고, 외모도 좋고, 인성도 좋고, 무엇보다 열심히 하거든요. 운대만 맞으면 대성할 친군데, 아직 운이 안 트여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우혁은 박동일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배우님은 진호 연기하는 거 직접 보셨는데, 진호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대리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대성할 겁니다.”
“배우님!”
“···.”
“진호, K&B에서 키워 주시면 안 될까요? 정말 괜찮은 친구입니다.”
박동일은 윤대성이 자기를 다시 사무실로 부른 이유가 K&B에서 이진호와 계약하고 싶어 하는 거라고 짐작했다.
“이진호 씨, 와우하고 계약 기간이 남아 있지 않나요?”
“파기할 수 있습니다. 진호, 와우에 있으면, 기회 못 얻습니다.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거든요. K&B에서 계약하겠다는 확답을 주시면, 제가 어떻게 해서든 진호 계약 파기하게 만들겠습니다.”
그때, 노크 소리에 이어 윤대성이 들어왔다.
윤대성은 찻잔을 우혁과 박동일 앞에 놓고, 우혁 옆에 앉았다.
“본부장님! 이진호 씨, 어떤가요?”
우혁이 윤대성에게 물었다.
“이진호 씨요? 배우 계약 문제는 대표님 결정 사안이라 대표님께 여쭤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윤대성이 한 발 뺐다.
배우와 계약할 때 최종 결정은 백곰이 하고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본부장으로서 의견을 낼 수는 있는데, 윤대성은 발언을 꺼렸다.
윤대성은 이진호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박동일을 설득해 입사시키고 싶을 뿐이었다.
박동일이 입사한다면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배우님! 혹시 그 얘기 나누셨나요?”
윤대성이 우혁에게 물었다.
“아직 못 나눴습니다. 본부장님이 하시죠.”
우혁은 그렇게 말한 뒤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차 마셔요.”
윤대성이 박동일에게 차를 권했다.
박동일이 찻잔을 들어올려 한 모금 마셨다.
“박 대리.”
“예, 본부장님!”
“우리 회사에서 일해 보실 생각 없으세요?”
“예?!”
박동일이 놀란 눈으로 박동일을 바라보았다.
“어떠세요?”
이번에는 우혁이 물었다.
“···.”
박동일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실장이 한 분 필요한데, 대리님께서 맡아 주셨으면 해서요.”
우혁이 말했다.
“와우에서 있었던 사람으로서 말씀드리자면, K&B가 와우보다 훨씬 좋은 회사입니다.”
이번에는 윤대성.
“본부장님께서 박 대리님을 적극 추천하셨어요.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한 분이라고!”
이번에는 우혁.
“사실은 배우님께서 먼저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전화 드린 거예요.”
이번에는 윤대성.
박동일은 우혁과 윤대성이 발언할 때마다 시선을 옮겼다.
“지금 바로 답변하지 않아도 됩니다. 충분히 생각해 보시고 말씀해 주세요.”
우혁이 말했다.
“지금,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박동일이 황급히 물어왔다.
우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일하고 싶습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이진호를 여기서 케어해 주신다는 약속을 해주시면 내일이라도 당장 출근하겠습니다. 진호 쟤, 와우에 두면 기회 없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본부장한테 찍히면 어떻게 되는지.”
박동일이 윤대성에게 애원의 눈빛을 보냈다.
윤대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진호 계약 문제는 자기가 결정할 사안도 아니거니와 계약이 남아 있는 이진호를 당장 데려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하시죠!”
우혁이 대답했다.
윤대성이 우혁을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박동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우혁과 윤대성에게 허리를 굽혔다.
***
“그게 무슨 말이야?”
이진호가 놀란 표정으로 박동일을 쳐다보았다.
“K&B로 옮긴다니까.”
“형이? 내가?”
“둘 다.”
“형이 가는 건 알겠는데, 내가 어떻게 가? 와우랑 계약이 남았는데.”
“방법이 있어. 내 말대로만 하면 돼.”
“무슨 방법?”
“그건 그렇고. 너 K&B에 가는 건 괜찮아?”
“형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어. K&B가 신생 기획사라서 좀 그렇긴 하지만, 강우혁 선배님이 계시니까 뭐···.”
“와우에 미련이 있는 모양이구나. 미련 접어. 본부장이 와우에 있는 한, 넌 못 커.”
“내가 오디션 봐서 배역 따면 된다며?”
“본부장 그 인간, 파토 놀 거야.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라고. 되게 만들기는 어려워도, 고춧가루 뿌리는 건 쉬워.”
“형이 K&B로 가는 건 확실해?”
“계약서 사인하고 왔어. 실장이다. 연봉도 올랐고. 본부장이 윤대성 선배야. 뭘 더 바래. 너만 와우에서 빼내면 돼.”
“본부장이 날 놓아 줄까?”
“놓게 되어 있어. 그리고 어쩌면, 본부장 모가지 날아갈 수도 있고.”
“정말? 형이 본부장 모가지를 날릴 수 있어?”
“나한테 그럴 힘이 있었으면 이렇게 쫓겨났겠니?”
“그럼 누가 본부장 모가지를 날려?”
“넌 모르는 게 좋아.”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라? 알았어. 그러지 뭐. 와우 본부장, 모가지 날아가는 것 좀 빨리 봤으면 좋겠다.”
“일단 너부터 와우에서 빼내고 나서.”
“내가 어떻게 하면 돼?”
“하나하나 차근차근 하자. 우선 내일 촬영장에 가서 디카프리오 연기를 봐야 될 거 아니야. 그러려면 담당 의사한테 외출 허가를 받아야 돼.”
“그건 내가 해결했어.”
“어떻게?”
“엄마 도움을 좀 받았지. 외할아버지가 위독하셔서 돌아가시기 전에 뵈어야 한다고 뻥쳤어.”
“말이 씨가 되면 어쩌려고. 너처럼!”
“외할아버지, 10년 전에 돌아가셨어. 아, 떨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연기를 볼 수 있다니!”
“이 꼴을 하고서 꼭 봐야 되겠냐?”
“응! 꼭 봐야겠어!”
“직접 본다고 별 거 있을 줄 아니? 스크린으로 보는 게 훨씬 좋아. 현장에서 보면, 실망한다니까.”
“귀찮으면 나 혼자 갈게.”
“혼자 간다고? 목발 짚고?”
“기어서라도 갈 거야!”
“퍽이나!”
***
“업혀!”
박동일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이진호에게 등을 보이고 앉았다.
촬영장에 왔는데, 사람들이 앞쪽에 서 있어서 휠체어에 앉은 채로는 촬영 장면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박동일이 이진호를 업겠다는 건데, 키가 작은 박동일이 키 큰 이진호를 업으면 이진호의 다리가 땅바닥에 질질 끌릴 것이다.
휠체어에 앉은 것보다 시야가 높아지긴 하겠지만.
“목발이나 줘.”
“한 팔로 어떻게 목발을 짚어. 넘어지면 어쩌려고.”
이진호는 다리만 다친 게 아니라 왼쪽 팔도 부러져 깁스를 한 상태였다.
“왼쪽은 형이 부축해 주면 되잖아.”
“자식, 업히라니까.”
“무거워서 안 돼. 형 허리 나가. 어서 목발이나 갖다 줘.”
할 수 없이 박동일은 차에서 목발을 꺼내 이진호에게 건네주고, 부축을 해주었다.
그제야 촬영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폭행 흔적으로 엉망진창인 강우혁이 개집을 개조한 우리 속에 들어가 있다.
“음악 듣고 싶지? 어떤 음악 좋아해? 모차르트? 베토벤? 오늘 같은 날은 비탈리의 샤콘느가 어울리겠어. 한때 내가 좋아했던 곡이지. 귀머거리가 되기 전에 말이야.”
레오가 턴테이블에 음반을 올려놓고 볼륨을 조절한다.
음악 소리는 전혀 없다.
나중에 편집 과정에서 음악을 입히게 될 것이다.
우리 속에 갇힌 강우혁이 들리지 않는 음악에 감동한 연기를 한다.
이진호는 강우혁의 연기에 눈을 뗄 수 없었다.
평생 동안 사막에서 살던 사람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았을 때 저런 표정을 짓지 않을까?
레오가 볼륨을 올린다.
레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독초처럼.
이진호는 그 미소에 전율했다.
촬영 현장에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지만, 강우혁은 귀청을 찢을 듯한 음악 소리에 고통스러워한다.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이 고통스러울 지경이다.
시나리오에서는 한 씬에 불과하지만, 벌써 한 시간째 촬영 중이다.
여러 컷들로 쪼개져 있고, 그 한 컷을 반복해서 찍고 또 찍었으니까.
“다리 안 아파?”
박동일이 이진호에게 속삭였으나 이진호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한 시간 동안 계속 선 채로 두 배우의 모습을 관찰했다.
오늘의 마지막 컷.
레오가 총에 맞고 쓰러지는 장면이다.
총 소리는 나지 않는다.
“흡!”
레오의 몸이 튕기듯이 움찔한다.
실제로 총에 맞은 것처럼.
총을 쏜 자를 향해 돌아서는 레오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인다.
그런데 그 시선이 하필이면 이진호를 향하고 있다.
이진호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간신히 버텼다.
‘연기는 저렇게 하는 거다. 만약 내가 했다면 저런 그림이 나올 수 있었을까? 어림없다.’
이진호는 눈물이 찔끔 날 만큼 비참하면서도 행복했다.
자신은 저렇게 연기를 잘할 수 없다는 것이 비참했고, 저런 연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사실이 행복했다.
[ 대배우의 연기에 전율을 느끼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