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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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같은 배우
“30프로!”
구석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30프로를 말한 사람은 데이빗이었던 것이다.
내기에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내기에 져서 배우들에게 간식을 쏘고 싶다는 뜻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난 50프로다.”
민달수가 손을 번쩍 들면서 외쳤다.
“그건 너무 현실성이 없잖아요.”
민달수의 극중 아내인 정윤정이 민달수를 타박했다.
“내가 쏘고 싶어서 그래.”
“60프로!”
또 데이빗이다.
첫 방 촬영 현장에서 첫 방 시청률을 두고 내기를 했었다.
그때도 민달수가 제안했다.
당시 5프로 미만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장 낮은 엄 피디가 5프로였다.
6에서 15프로까지 나왔다.
지금처럼 터무니없는 수치를 얘기해 간식을 쏘겠다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들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현실 가능한 시청률 수치를 얘기했다.
그러나 결과는 3.1프로.
시청률 3.1프로도 최악의 시청률이라고 할 수는 없다. 3프로가 되지 않는 드라마도 허다하니까.
하지만 3.1프로에 만족할 피디나 배우는 없을 것이다.
3.1프로라는 시청률이 나왔을 때 모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시청률과 달리 댓글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실망에 빠져 있던 배우들과 엄 피디, 유 작가의 표정이 희망으로 밝아졌다.
기분이 좋아진 민달수가 다시 한 번 간식 쏘기 2회 시청률 내기를 제안했고, 권 여사가 20프로를 말했다.
권 여사는 내기에 이기려는 목적보다 시청률 목표치와 희망을 제시하고 내기에 지면 흔쾌히 간식을 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데이빗이 30프로를 제시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데이빗이.
출연진들과 잘 어울리지 않던 데이빗이.
“7···.”
승부욕이 발동한 민달수가 손을 들고 숫자를 외치려는데 옆에 앉아 있던 권 여사가 옷깃을 잡아당기며 퉁을 준다.
“우리 손주 민준이가 쏘고 싶다는데, 애비가 어째 자식을 못 이겨서 난리야.”
데이빗은 대본에 시선을 부려놓은 채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때 재채기가 탁자 아래에서 데이빗의 팔꿈치를 툭툭 건드렸다.
테이빗이 재채기를 내려다보자 재채기가 데이빗의 팔꿈치에 부비부비를 했다.
데이빗은 탁자 아래로 손을 내려 재채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 시간 전, 대본 리딩을 위해 자리를 잡을 때 데이빗은 우혁 옆으로 와서 앉았다.
이미 우혁 옆자리를 잡고 있던 민달수에게 옆으로 가달라고 굳이 부탁까지 하면서.
그 모습을 엄 피디도 보았고,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데이빗이 마음을 붙일 사람을 찾은 것 같아서 반가웠던 것이다.
데이빗의 소속사 대표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엄마와 새아빠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어요. 미국에 도착하면서부터 새아빠의 폭행이 시작되더랍니다.”
“미국은 아동 폭행에 매우 엄하잖아요.”
“경찰에 신고하면 엄마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더랍니다. 무서워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했대요.”
“엄마한테라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엄마도 폭행에 시달렸던 모양이에요.”
“그랬군요.”
“데이빗이 중학교에 입학하니까 새아빠의 폭행이 사라지더랍니다. 더 이상 두드려 맞지는 않았지만 집이 그렇게 싫더래요. 빨리 어른이 돼서 집에서 나갈 궁리만 했다고 합디다. 걔가 고등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두었을 때 우리 회사가 미국에서 오디션을 했어요. 그때 왔더라고요. 외모도 좋고, 춤도 잘 추고, 노래도 곧잘 해서 뽑았지요.”
데이빗은 미련 없이 미국을 떠났다.
그때 나이 열일곱.
7인조 아이돌 멤버로서 이름을 날렸다.
승승장구를 거듭했으나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멤버 중 한 친구가 성추행 사건에 휘말리면서 자진 탈퇴를 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군입대, 일반인과 쌍방 폭행 등의 불상사가 연이어 터지더니 계약 기간 종료와 함께 팀이 와해되어 버렸다.
데이빗은 팀을 잃은 데다가 엄마의 자살이라는 충격까지 겪으면서 깊은 수렁에 빠져 버렸다.
실의에 빠진 데이빗은 한동안 술에 절어 살았다.
데이빗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소속사 대표의 권유로 연기를 시작했고, 울분과 독기와 슬픔을 연기에 쏟아내면서 연기자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훤칠한 키, 준수한 외모, 카리스마 있는 눈빛, 춤과 노래 실력, 그리고 기존 팬들의 응원에 힘입어 이번 드라마 주연까지 따내게 되었다.
엄 피디는 데이빗이 아이돌 시절 꽁트 드라마에 출연했을 때부터 연기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눈독을 들였다.
이번에 [서울 가로등>의 민준이라는 역할과 딱 어울린다고 판단해 제일 먼저 캐스팅했다.
캐스팅 과정에서 데이빗의 소속사 대표로부터 데이빗이 겪은 일들을 듣게 되었고, 그때부터 데이빗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엄 피디 역시 어린 시절 계모의 학대에 시달린 사람이었으니까.
데이빗이 배우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걱정했으나 다행히 우혁이 오면서 우혁을 잘 따르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우혁과 가까이 지내면서 데이빗의 표정이 한결 밝아지고 배우들을 대하는 행동이나 말투도 조신해졌다.
게다가 오늘은 시청률 맞히기 내기에 참가했다. 그것도 모자라 간식을 쏘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우혁이 합류하기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출연 배우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던 데이빗이 우혁에게는 어떻게 그리 쉽게 다가가는지 불가사의했다.
“보물을 얻었어.”
엄 피디는 종종 혼잣말을 하곤 했다.
우혁을 만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우혁은 데이빗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과 스텝들이 좋아했다.
무엇보다 우혁의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따뜻한 눈빛 하나로 화면을 가득 채웠다.
압도적 존재감.
대본 리딩 때만 해도 욕쟁이할멈이 첫 방에서는 가장 부각될 거라고 예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대본상으로는 가로등지기의 존재감이 약해 보였는데 막상 영상 편집을 하고 보니 가로등지기가 가장 두드러졌다.
첫 방이 방영되고 나서 주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가로등지기 눈빛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요.”
“외제차를 타고 멋진 슈트를 입은 남자 주인공 데이빗이 눈에 들어오지 않던데요.”
시청자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가로등지기와 재채기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첫 방에 이렇게 뜨거운 반응은 오랜 만이었다.
우혁의 연기는 단순히 ‘잘한다’를 넘어 마력의 힘이 있었다.
무엇에 홀린 것처럼 빨려 들어가는 느낌.
우혁은 절제된 몸짓과 감정으로 가로등지기라는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특히 재채기 복화술 연기는 압권이었다.
가끔 재채기가 독립된 개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촬영 현장에서 너도나도 한 번씩 재채기 인형으로 우혁을 따라했지만 우혁만큼 잘하지 못했다.
잘하기는커녕 비슷하지도 않았다.
스텝들 중에는 우혁이 실제로 마법을 부리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마술사가 아니라 마법사.
극중에서나 일상에서 말이 많은 것도 아니고, 액션이 큰 것도 아닌데 우혁의 존재감은 어디를 가나 두드러졌다.
“보물 같은 배우야.”
***
“뭘 어떻게 했길래 엄 피디가 그렇게 좋아하나 몰라. 유 작가는 우혁 씨 팬이 됐다고 하더구만. 하하하!”
안창현 대표가 호탕하게 웃었다.
“두 분께서 저를 좋게 봐주신 모양입니다.”
우혁이 대답했다.
“아무튼 고마워. ‘나무’ 초창기 때 엄 피디한테 신세를 많이 졌는데, 막상 엄 피디가 힘들 때 도움을 줄 수 없게 되니까 마음이 무겁더라고.”
안 대표는 탁자 위에 커피 잔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엄 피디 지금은 비록 한물간 것처럼 평가받고 있지만 연출에 대한 열정은 대단한 양반이야. 연출이라는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굉장한 사람이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직업이라나?”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커피 잔을 이리저리 관찰하며 말했다.
“난 그 양반의 그런 면이 좋아. 우혁 씨도 겪어 보면 알겠지만 사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야. 배역 달라고 돈을 싸 짊어지고 가도, 1원 한 푼 안 받거든.”
커피 잔을 도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대신 역할에 맞는 배우라고 생각이 되면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지. 가로등지기는 별로 중요한 역할이 아니라 그렇게까지 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말이야.”
소파에 등을 기대앉으며 두 팔을 팔걸이에 올리고 다리를 꼬았다.
“그 양반이 배우를 보는 안목은 정확해. 나만큼은 아니지만 말이야. 하하하!”
안 대표가 다시 호탕하게 웃어젖힌 뒤 정 실장을 바라보았다.
“엄 피디가 그러데. 우혁 씨가 회의실로 들어서는 순간 알아봤다고. 아, 이 배우는 뜨겠구나! 떠도 크게 뜨겠구나! 싶더래요. 가로등지기 같은 작은 배역을 할 배우가 아니더라는 거지.”
“엄 피디님이 사람 볼 줄 아시네요.”
정 실장이 거들었다.
“우혁 씨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생각을 바꿨대. 역할을 키우고 이 배우를 잡자! 그러고 있는데, 유 작가가 먼저 얘기를 꺼내더라는 거야. 대본 좀 바꿔야겠다고. 그래서 엄 피디가 좀이 아니라 많이 바꿉시다, 그랬다더구만.”
이 부분은 우혁이 알고 있는 얘기였다. 앞에서 직접 본 장면이니까.
“대본 바뀌면서 배우들이 혼란스러워했겠는데요.”
정 실장이 우혁을 쳐다보았다.
안 대표가 끼어들었다.
“드라마 판이 언제는 안 그랬나? 대본 바꾸는 거야 다반사지. 엄 피디는 대본 수정 아주 만족스러운 모양이더구만. 첫 방 봤는데, 아주 좋더군. 대박 조짐이 보여. 특히 재채기하고 가로등지기는 뜰 거야. 장담하는데, 드라마 끝나기 전에 광고 섭외 들어와.”
안 대표가 호언했다.
“이런이런! 바쁜 사람 잡고서 말이 많았구먼. 계속 고생 좀 해줘요. 시청률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우혁은 안 대표에게 대답 대신 목례했다.
대표실을 나와 복도를 걸을 때 정 실장이 우혁과 나란히 걸으며 말을 걸었다.
“저렇게 말 많은 분인 줄 몰랐죠?”
우혁은 대답 대신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우혁 씨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증거입니다. 대표님, 아무리 잘 나가는 스타라 해도 마음이 가지 않은 사람에게는 절대 말 길게 하지 않으시죠.”
계약하던 날 우혁은 안 대표와 짧은 면담을 가졌다. 그날 안 대표는 의례적인 인사 이외에 별 말이 없었다. 그래서 과묵한 분인 줄 알았다.
“대표님이 이렇게 말 많이 하시는 거 오랜만에 봅니다. 쉽게 마음을 여는 분이 아니거든요. 제 생각에는 우혁 씨가 [서울 가로등> 가로등지기 배역을 맡겠다고 한 점이 대표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습니다.”
우혁은 복도를 걸으며 정 실장의 말을 듣기만 했다.
“모든 직원들이 별로라고 했지만 대표님은 [서울 가로등>이 뜰 거라고 하셨지요. 아, 한 명 더 있네요. 백 대리도 뜬다고 했다면서요.”
정 실장이 고개를 돌려 한 걸음 뒤에서 따라오는 백곰을 바라보았다.
“아뇨!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
백곰이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우리 대표님, 아까 농담처럼 말씀하셨지만 연예인을 알아보는 안목이 뛰어나신 분이에요. 딱 보면 대성할 건지 아닌지 보인다고 하시더라구요. 100프로는 아니지만 거의 맞히셨어요.”
우혁은 정 실장의 말을 들으며 백곰을 흘낏 돌아보며 눈으로 말했다.
‘대표님도 너하고 비슷한 능력이 있는 모양이야.’
백곰도 눈으로 대답했다.
‘어떻게 나 같은 사람하고 대표님을 비교해. 난 로드에 불과한데.’
“저는 아직 잘 모르겠거든요. 잘될 사람인지 아닌지 감이 안 잡혀요. 될 것 같은데 안 되고, 안 될 줄 알았는데 되고 그러더라구요. 하도 답답해서 대표님께 비결을 여쭤 봤더니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정 실장이 우혁을 따라 모퉁이를 돌았다.
“저 얼마 전에 우혁 씨 덕분에 대표님께 칭찬 들었습니다.”
“?”
“대표님께서 우혁 씨를 처음 보시고 나서 저한테 그러시더라구요. 안목이 많이 늘었구나.”
정 실장은 면전에서 아부를 한 모양새라는 걸 뒤늦게 깨닫고는 쑥스러운지 말문을 돌렸다.
“곧 2회 시작할 시간이네요. 본방 사수하러 가야겠습니다. 시청률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네요.”
그때 정 실장의 휴대전화 착신음이 울렸다.
정 실장이 전화번호를 확인한 뒤 전화를 받았다.
“예, 실장님! ···예? 그게 사실입니까?”
정 실장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백곰이 무슨 사고가 일어났나 싶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 실장은 통화를 하면서 우혁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으로 보아 통화 내용이 우혁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정말 믿기지가 않네요. 이제 겨우 첫 방이 나갔을 뿐인데 어떻게···?”
정 실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예예, 알겠습니다.”
정 실장이 통화를 마치고 우혁을 바라보았다. 멍한 눈길로.
“실장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백곰이 겁먹은 표정으로 정 실장에게 물었다.
“재채기하고 가로등지기한테 광고가 들어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