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4)
────────────────────────────────────
────────────────────────────────────
오디션 결과
문 피디와 이 국장이 술에 취해 어깨동무를 하고서 ‘고래사냥’을 목청껏 부르며 방송국 근처 포장마차를 찾아다니던 그 시각.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어느 감자탕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두 남자가 있었다.
‘나무’의 정의찬 실장과 ‘와우(WOW)’의 윤대성 실장.
두 사람은 영화 [생강> 촬영장에서 강우혁의 연기를 보고 반해 강우혁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다 친구가 되었다.
국내 굴지의 연예인 기획사 매니저로서 자기 일에 자긍심과 기쁨을 느끼는 동갑내기 친구.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오랜 시간 만난 사이처럼 편했다.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매년 새해가 되면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로 결혼을 꼽는 점도 똑같았다.
“너도 그랬어? 나도 그랬는데. 새해가 되면, 올해는 기필코 결혼을 하리라, 다짐을 했거든.”
“별자리 운세나 토정비결에 나온 연애운을 믿으면서 말이지.”
“바쁘게 살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연말이 되지.”
“연말만 되면 인생무상이 찾아와. 잠깐 낫는 듯하다가 다시 재발하는 무좀처럼 말이야.”
“세상에서 내가 제일 못난 것 같고.”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고.”
“작년부터 새해 목표에서 결혼을 지워 버렸어.”
“그러고 나니까 세상이 달라 보이지 않든?”
“결혼을 목표로 삼았을 때는 스스로가 한심하고 모자란 인간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거든.”
“일 끝나고 퇴근해서 집에 들어설 때 특히.”
“결혼 목표를 버리니까 퇴근해서 집에 들어설 때가 제일 행복해.”
“샤워 하고 시원한 맥주 한 캔 따서 첫 모금 마실 때의 그 기분이란! 캬아!”
“결혼 먼저 했던 친구가 이혼을 하네 마네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집에 들어왔을 때는 맥주가 더 맛있지.”
“맥주가 아니라 꿀이지, 꿀.”
결혼의 강박에서 벗어나자 하루하루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취향에 맞는 음악을 듣는 것도 좋고,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영화를 보는 맛도 그 무엇과 바꾸기 싫은 행복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때는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잤다.
이 또한 결혼한 친구들이라면 꿈도 못 꿀 호사였다.
정 실장과 윤 실장은 취향도 비슷했다.
혼자 있는 시간 만끽하기.
동시에 일을 할 때는 미친 듯이.
경쟁 소속사의 직원으로서 라이벌 의식도 가지고 있다.
선의의 경쟁.
케어하고 있는 연예인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연예인이 좋은 성과를 거둘 때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입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가끔은 자랑 배틀을 벌일 때도 있다.
내 배우가 광고 찍었다, 내 가수가 음원 1위 했다, 내 배우가, 내 가수가···.
그러다가 문득 유치하다는 걸 깨닫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가끔은 자기 연예인의 험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자기 얼굴에 침 뱉기니까.
매니저들 중에는 입만 열면 자기가 케어하는 연예인의 성격이 얼마나 더러운지 자랑하듯 떠드는 친구가 있다.
그런 매니저는 오래 가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 두거나 그만 두지 않더라도 하루하루 힘겹게 버텼다.
정 실장과 윤 실장은 가능하면 자기가 얼마나 불쌍한지 알아달라고 칭얼거리는 매니저와는 말을 섞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예의상으로라도 내 연예인의 험담도 조금은 해야 하니까.
그렇게 험담을 하고 나면 내 연예인이 정말 싫어졌다. 그런 험담을 한 자기 자신도 싫어지고.
그래서 담당 연예인을 험담하는 매니저를 피했다.
정 실장과 윤 실장은 매니저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청소부가 청소를 하면서 지구를 깨끗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기 일에 자긍심을 느끼듯이.
더러운 쓰레기를 치우며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청소부는 일이 고통스럽겠지만 지구를 깨끗하게 한다고 생각하는 청소부는 청소가 즐겁다.
정 실장과 윤 실장이 바로 그랬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을 노래나 연기로 보여주는 연예인들을 도와주는 일은 세상 그 어떤 일보다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여겼다.
좋은 연예인을 보면 행복했다.
최근에 그런 배우 하나를 발견했다.
강우혁.
윤 실장은 강우혁이 ‘나무’ 소속사 배우이지만 팬으로서 강우혁을 응원했다.
강우혁이 [홍길동전> 오디션 참가한다는 사실을 정 실장으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만류했고, 발표 시점이 되자 탈락의 아픔을 느낄 강우혁이 걱정스러웠다.
“강우혁 씨, 오디션 잘 봤대?”
“담당 매니저 말로는 오디션 보고 나올 때 표정이 너무 안 좋더래.”
“그러니까 내가 말리라고 했잖아.”
“말렸지. 그런데 본인이 떨어지더라도 해보겠다는데 어떡해.”
“떨어지면 내상을 입을 텐데.”
“그러게 말이야. 김길빈은 잘 봤대?”
“잘 본 모양이야. 오디션 다녀와서 표정이 좋더라고.”
“김길빈이 처음엔 홍길동 역할 안 하기로 했다면서?”
“회사에서 간신히 설득을 했지.”
“김길빈은 왜 안 하겠다는 거야? 사극이 더 잘 어울리던데.”
“본인은 그걸 몰라. 시청자들도 사극에서 김길빈을 보고 싶어 하거든. 현대극에서도 성적은 나쁘지 않은데, 그게 사극하면서 얻은 인기거든. 그런데 이제 약발이 떨어져 가고 있어. 이대로 가면 가라앉을지도 몰라. 그래서 회사에서 적극 권하는 거지.”
“오리가 하늘을 날아야지 뭍에서만 놀려고 하면 날개가 퇴화될 텐데.”
“그러게 말이야. 그래서 대표까지 나서서 설득했잖아. 그렇게 해서 간신히 마음을 돌려놓았나 봐. 사실은 공개 오디션 하기 전에 문 피디가 김길빈한테 홍길동 역을 제안했거든. 거절하기도 미안했는지 전화를 끊고서 잠적해 버렸지 뭐야.”
“그때 한다고 했으면 오디션도 없었겠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왜 그렇게 돌아서 가는지 원. 오디션이 없었으면 다른 배우들이 헛고생하지 않아도 되잖아.”
“왜 아니야. 문 피디가 제안했을 때 받아들였으면 좀 좋아. 그런데 정작 김길빈 본인은 오디션이 좋대. 문 피디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모양이야.”
“문 피디가 그렇게 아껴주는데 왜?”
“문 피디가 자기를 애 취급한대나 봐. 스텝들 보는 앞에서 야단도 치고, 승마 연습을 더하라는 둥, 궁술을 배우라는 둥 학교 선생님이 숙제 내주듯이 몰아세워서 부담스럽다는 거야. 자기도 이제 컸다 이거지.”
“문 피디가 괘씸해서 안 뽑아주면 어쩌려고.”
“까놓고 말해서 김길빈만큼 어울리는 배우가 있겠어? 김길빈 본인도 그걸 알더라고.”
“문 피디 당신이 숙이고 들어와라?”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고. 배우 대 감독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킬 건 지켜 달라, 뭐 그런 생각인 모양이야.”
“김길빈이 오디션 나가면 떨어뜨리기 어렵지. 문 피디가 설사 김길빈한테 화가 나 있더라도 다른 심사위원들이 있을 테니까.”
“문 피디도 화가 나 있을망정 김길빈을 내치지는 않을걸. 한 번 꽂히면 쉽게 안 변하는 사람이잖아. 그리고 이번 작품 문 피디한테 엄청 중요한 작품일 테고.”
“나이가 젊은 것도 아니고 한 번 내리막으로 들어서면 곧바로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지.”
“그러니 문 피디가 보증수표 김길빈을 버릴 수 있겠어?”
“그렇겠네. 그건 그렇고 오디션 결과 나올 때 되지 않았나?”
“내가 알기로는 오늘 최종 심사한다고 하더라고. 내일쯤 합격자한테 연락하겠지.”
“내일 와우 분위기 좋겠네.”
“우혁 씨 잘 좀 위로해줘.”
“내일 연차나 쓸까 보다. 어디 가서 한잔 더하자.”
***
다음 날 오후 5시.
하루해가 저물어 가고 있건만 우혁은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오후 2시까지만 해도 일말의 기대를 했었다.
오후 3시가 지나면서 포기했다.
오디션 결과는 대체로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개인 통보를 하게 마련이다.
떨어졌구나!
각오는 했지만, 쓰리다.
쓰리고 아프다.
쓰리고 아프고 비참하다.
내색하지 않을 뿐.
백곰은 우혁의 속마음을 잘 안다.
전 소속사에서 3년 동안 우혁과 함께 다니며 여러 차례 오디션에 떨어지는 걸 지켜보았다.
낙방 결과가 나오면 우혁은 사흘 정도 폐인처럼 지냈다.
좀처럼 아파도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않는 사람이건만.
4시가 지나면서 백곰도 포기했다.
드라마 [홍길동전>과 홍길동 역할은 느낌이 너무 좋았는데···.
우혁이 꼭 홍길동 역을 하길 바랐다.
오디션 심사위원이 보기를 바라며 승마, 궁술, 검도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공연한 짓을 한 것 같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홍길동전> 오디션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위로해 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날은 술벗이라도 되어 주면 좋겠는데 술을 못한다는 게 안타깝다.
맥주 한 병을 마신 적이 있다. 일어나 보니 서울역 지하도였다.
소주 반 병을 마신 적이 있다. 일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4시에 우혁의 전화가 왔다.
“지금까지 들어온 작품 좀 가져다줘.”
우혁 형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디션을 준비하는 동안 차기작 선별 작업은 중단했다.
[홍길동전>에 출연할 수도 있었으니까.오디션 결과가 나왔으니 차기작을 골라야 한다.
며칠 쉬면서 골라도 될 텐데···.
한편으론 이해가 된다. 차기작을 고르면서 [홍길동전>을 하루라도 빨리 털어 버리려는 거다.
백곰은 군말 없이 그동안 들어온 시놉과 시나리오를 챙겨 들고 나갔다.
카페에는 우혁이 먼저 도착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내가 도착해서 전화하면 나오지 왜 벌써 나왔어.”
“맥주 한 모금이 마시고 싶어서. 원고는?”
“가지고 왔어.”
원고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우혁은 원고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우혁의 모습은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혁이 오디션을 끝내고 나왔을 때의 그 풀죽은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디션 장에서 뭘 했는지 진이 빠진 모습으로 녹초가 되어 걸어 나왔다.
“분위기 어때? 합격할 것 같아? 어떤 질문이 나왔어?”
형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그날 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분위기가 어땠는지 충분히 파악되었다.
“오디션 때 문웅현 피디님이 질문을 전혀 하지 않으시더라.”
우혁이 원고를 훑어보며 말했다.
나흘 전에 백곰이 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뭐 그런 ㄱ···.”
백곰은 얼른 입을 닫았다. 하마터면 욕할 뻔했다.
“떨어뜨리더라도 앞에서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잘 됐어. 그딴 피디하고 상종하지 마. 나도 앞으로 문 씨하고는 상종도 안 할 거야. 성에 미음(ㅁ) 자 들어간 사람하고는 밥도 안 먹어.”
“희망고문 하는 것보다 그게 고마운 거야.”
그렇게 해준 문 피디가 고마웠다.
덕분에 오디션 결과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어서 탈락으로 인한 아픔이 다른 때보다 적은 편이다.
“연기 잘하시네요.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속아 희망에 부풀어 기다렸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을 때의 그 씁쓸함, 서글픔, 비참함이란!
“내 느낌인데, 문 피디가 전화를 할 것 같아.”
백곰이 말했다.
“홍길동 말고 다른 역을 할 생각 없냐고 물으면 형은 어떻게 할 거야?”
“홍길동이 아니어도 좋은 역할이라면 생각해볼 수 있겠지.”
“하지 마. 홍길동 아니면 절대 하지 마.”
“연락 오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생각할 거 없다니까.”
“화장실 좀 다녀올게.”
우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뒤, 백곰의 휴대전화 착신음이 울렸다.
“여보세요? 저는 강우혁이 아닌데요. 강우혁 매니저입니다만. 누구시죠? 문웅현 피디라구요?”
문웅현 피디라면, [홍길동전> 총괄 피디?
“제 번호를 어떻게···? 오디션 지원서 전화번호에 이 번호가 적혀 있다구요?”
백곰은 그제야 지원서를 작성하면서 우혁의 전화번호 대신 자기 전화번호를 적었다는 걸 깨달았다.
예상대로 홍길동 말고 다른 역할을 제안할 모양이다.
턱도 없는 소리.
문 피디 목소리, 참 마음에 안 든다. 소도둑놈 같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죠? 강우혁이 지금 전화를 받을 상황이 못 되거든요. 저한테 말씀하시면 전달하겠습니다.”
백곰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서 콧구멍을 후비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통화를 했다. 목소리는 예의를 갖추었지만 태도는 불량하기 그지없다.
“강우혁을 만나고 싶으시다구요? 아이고, 이를 어쩌지요? 지금 좀 멀리 가 있는데요. 홍길동 말고 다른 역할 필요하신 모양이시죠? 아예, 홍길동 역할요.”
그럴 줄 알았다. 홍길동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가만! 홍길동이라고?
잘못 들었나?
“홍길동 역할··· 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럼 강우혁이 오디션에 합격한 건가요? ···안녕하십니까, 피디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차렷 자세로 서서 정면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였다. 숙일 수 있는 최대치를.
마음은 180도였으나 실제로 숙여진 각도는 15도 남짓?
“예, 알겠습니다. 멀리 간 건 아닙니다. 곧 돌아올 겁니다. ··· 예예! ··· 예,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옙! 안녕히 들어가십시오, 피디님!”
다시 한 번 고개를 깊이 숙였다.
한 3초쯤 그 자세를 유지했다.
고개를 들자 화장실에 다녀온 우혁이 그 앞에 서 있다.
“뭐 해?”
“형!”
“?”
“홍길동 됐어! 오디션 합격했다고!”
백곰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문웅현 피디 선생님께서 손수 전화를 주시었다니까. 내일 만나자고 하시는 거야. 목소리가 정말 중후하고 멋있더라. 주인아저씨, 여기 맥주 하나 주세요.”
병원에 실려 가더라도 오늘은 한잔해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