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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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매니저, 백곰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우혁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두 번째 소속사에서 3년 동안 우혁의 매니저였던 백동수였다.
몸집이 커서 백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28세 청년이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백곰에겐 놀라운 재능을 가졌다.
배우나 가수, 감독을 보면 뜰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시나리오나 TV 대본, 희곡, 소설의 성공 여부도 알아맞혔다. 제목과 줄거리만 듣고서.
백곰은 글자 읽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심한 난독증 환자였던 것이다.
시나리오 한 권 읽는 데 족히 한 달은 걸린다.
그렇게 힘겹게 읽고 나서 내용을 떠올리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귀로 들은 것은 달랐다.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 수업 내용을 모두 기억했다.
그러나 성적은 항상 꼴찌.
왜냐하면 학교 시험은 글자로 된 시험지였으니까.
그렇다고 시력이 나쁘냐.
그건 아니다.
글자 해독 능력만 떨어질 뿐, 그림, 사진, 사람이나 건물, 길 등은 한 번만 보면 잊지 않았다.
소설을 읽는 데는 힘들어하면서도 만화는 매우 빨리 읽었다. 그림만 보니까.
만화의 대사나 지문을 읽지 않고도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할 뿐 백곰은 지능이 매우 뛰어났다.
지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힘도 셌다.
괴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힘이 센지 모른다.
백곰은 착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백곰을 좋아했지만 아주 가끔 그를 무시하고 놀리는 사람도 있다. 발로 걷어차거나 뺨을 때려도 대거리를 하지 않으니까.
우혁은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런 작자들을 만나면 불 같이 화를 냈다.
백곰은 매니저로서 유능했다.
인사성도 밝고 친화력도 좋아서 아무리 악독한 감독이나 피디, 배우 등 영화계와 방송계 사람들과도 잘 지냈다.
순박한 미소와 뜬금없는 눈물 바람으로 사람을 설득시키는 재주가 있었다.
백곰이 우혁의 매니저였을 때 좋은 작품을 많이 물어 왔다.
그러나 소속사 사장과 실장은 백곰이 물어온 배역을 걷어차고, 자신이 섭외한 작품에 꽂아 넣기 일쑤였다.
당시 우혁은 이제 막 매니저를 시작한 백곰보다 경험이 많은 사장과 실장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작품 말아먹고 나니 3년이 후딱 지나갔고, 사장의 방만하고 무능한 경영과 부족한 자금력 때문에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놀랍게도 백곰이 물어왔던 작품들은 모두 대박이 났다.
두 사람은 형제처럼 친하게 지냈으나 소속사가 문을 닫으면서 헤어져야 했다.
백곰의 능력을 알아챈 타 소속사에서 백곰에게 접근해 감언이설로 꾄 뒤 서류에 사인하게 해서 데리고 간 것이다.
매니저와 배우의 관계가 끊어졌지만 백곰은 우혁에게 안부 전화도 자주 걸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 식사를 했다.
백곰은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백곰이 찾아낸 맛집에서 만났다.
“잘 있었어?”
– 형형, 혁이 형! 오늘 점심때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엄청 맛있는 집을 찾았어.
“오늘 점심은 안 될 것 같다. 촬영이 있어서.”
– 저녁때도?
“저녁에는 괜찮아. 근데 네가 되겠어?”
지금까지 평일 저녁때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주로 휴일이나 일요일 낮에 만났다.
오늘은 화요일이다.
– 나 회사 짤렸어.
“왜?”
– 내가 좀 멍청하잖아. 애들이 날 싫어해. 나랑 같이 일 못하겠대.
걸그룹을 맡았다고 좋아하더니 문제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 전에는 유명한 남자 배우를 맡았는데 그 배우가 백곰을 거부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백곰이 어떤 대접을 받았을지 짐작이 되었다.
– 형하고 일할 때가 좋았는데···. 형은 소속사 구했어?
“아직.”
– 차기작은 뭐야? 이번에도 영화?
“그것도 아직 못 정했어.”
– 좀 전에 촬영하러 간다고 그러지 않았어?
“까메오 출연이야. 10시까지 가평으로 가야 돼.”
– 소속사가 없으면 매니저도 없을 텐데, 혼자 가는 거야?
“그래.”
– 내가 따라가도 돼?
“그동안 바빴는데 이참에 집에서 좀 쉬지 그래. 어디 여행을 다녀오든가.”
– 집에 혼자 있으니까 무서··· 아니, 답답해.
“지금 어디야?”
– 집.
백곰은 우혁의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원룸에 거주했다.
회사 근처에도 원룸이 있었으나 백곰은 3년째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아침은?”
– 점심때 많이 먹으면 돼.
아침을 먹여야겠다.
“같이 가자. 집으로 와.”
– 헤헤헤. 알았어, 형! 지금 바로 갈게. 꼼짝 말고 기다려.
***
10분 만에 백곰이 왔다.
“형수님! 안녕하세요?”
집으로 들어서며 백곰이 예은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뱃살 때문에 실제로는 15도밖에 굽혀지지 않았지만.
“어서 오세요. 왜 이렇게 오랜만이에요.”
예은이 백곰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거 드세요.”
예은이 좋아하는 사과를 사왔다. 한 박스를.
40개쯤 들었을 것 같은데 박스를 예은에게 내민다.
자기에게 가볍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가벼운 줄 아는 것이다.
예은이 사과 박스를 받아들었다간 허리가 나갈 텐데.
우혁이 박스를 대신 받았다.
‘이렇게 무거운 걸···.’
“금방 상 차릴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예은이 백곰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형수님! 지금 촬영장 가야 돼요.”
“아침 먹고 가도 시간 충분해. 신발 벗고 올라와.”
“내 차 시동 끄고 올게. 형 바로 가는 줄 알고 시동 켜놓고 왔거덩.”
백곰은 급하게 서두르다가 현관문과 부딪혔다.
다행히 뱃살이 완충 작용을 해서 얼굴을 부딪지는 않았지만.
“어휴, 에어백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헤헤헤.”
백곰은 우혁과 예은을 돌아보며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백곰이 문을 열고 나간 뒤 예은이 웃으며 말했다.
“너무 귀여워. 곰돌이 푸 같아.”
우혁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백곰이 시동을 끄고 돌아왔다.
“형형, 혁이 형! 집 앞에서 유치원에 가는 아이를 봤거든. 너무 귀엽더라. 형은 애기 안 낳아?”
백곰은 예은의 임신과 유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백곰의 말에 우혁은 주방에 있을 예은을 의식하며 백곰을 데리고서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백곰에게 모든 사실을 말해 주었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에잇!”
짝!
솥뚜껑만 한 손바닥으로 제 입을 때렸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백곰이 주먹을 그러쥐었다. 조물주가 앞에 있으면 펀치를 날리기라도 할 것처럼.
“우씨!”
백곰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미안해 형. 내가 경솔했어.”
“미안하긴. 모르고 한 소린 걸. 괜찮아. 형수 앞에서만 조심해 줘.”
“알았어.”
“울지 말고.”
백곰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때 문자 메시지 도착 알림음이 울렸다.
시나리오와 콘티를 보냈다는 민환의 메시지였다.
컴퓨터를 켜고서 이메일을 확인한 뒤 파일을 다운받아 출력했다.
콘티는 오늘 촬영할 분량만 사진으로 찍어 보내 왔고, 시나리오는 영화 전체 내용의 한글 파일이었다.
영화 제목은 [생강>.
우혁이 맡은 역할은 ‘고문기술자’.
“형이 맡은 역할이 뭐야?”
“고문기술자.”
“고문기술자? 형 이미지랑 잘 안 맞는 것 같은데. 이렇게 선한 얼굴로 무슨 고문을 해.”
백곰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우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콘티를 뚫어져라 보고 또 보았다.
콘티를 보니 감이 왔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걸.
잘못 건드렸다간 작살나는 수가 있겠다.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 왔다.
‘민환이가 나를 과대평가한 것 같은데.’
우혁의 표정을 살피던 백곰이 콘티를 살펴보았다.
“우와, 멋지다. 그런데 이건 연기 잘하는 사람이 해야 되겠다.”
백곰이 정확하게 파악했다.
“이걸 형이 한다고?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백곰은 그 누구보다 우혁의 연기력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말리는 것이다.
우혁은 좋은 배우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연기가 있고, 없는 게 있다.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도 좋지만 할 수도 없는 역할에 욕심을 부렸다가 배우 생활에 커다란 오점을 남길 수가 있다.
“못 간다고 연락해라, 형!”
“아니!”
“하려고?”
“그래.”
“잘못 건드렸다간···. 헙!”
백곰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우혁이 백곰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씹어 먹을 것 같은 눈빛으로.
살인마의 눈빛.
“혀, 형! 왜 그래?”
백곰이 뒤로 물러나며 더듬었다.
“뷰티풀! 아주 아름다워! 이 흉터, 내가 만들어 준 거지?”
우혁이 손가락으로 백곰의 이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고문살인자를 연기한 거였다.
백곰은 입을 헤 벌린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콘티를 집어 들고 우혁의 표정과 비교했다.
“형!?”
“네가 보기에 어떠냐? 못 간다고 연락할까?”
“연락을 왜 해. 가야지.”
백곰이 콘티를 들고서 방 안을 서성였다.
“형! 내가 장담하는데 이거 영화 개봉되면 난리난다. 나 지릴 뻔했어, 형!”
“이 역할 내가 해도 될까?”
“응!”
백곰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거 해야 돼!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