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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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날
집 앞에 도착했지만 우혁과 백곰은 차에서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백곰이 뮤지컬 극본 [알람>의 내용을 끝까지 듣고 싶어 했던 것이다.
“혁이 형!”
[알람>의 내용을 다 듣고 나서 백곰이 우혁을 돌아보았다.“형은 이 작품 할 거야?”
“이미 내 마음에 들어와 버렸다.”
“형도 나처럼 느낌이라는 게 오는 거야? 오로라 같은 게 보여?”
“그런 거 없어. 그냥 마음이 끌릴 뿐이야.”
“작품 자체는 [홍길동전>만큼 황홀하진 않은데 주인공은 굉장히 느낌이 좋아. 작품도 지금까지 검토했던 작품들 중에서는 최고야.”
우혁은 백곰의 얘기를 건성으로 들으며 [알람>의 극본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뮤지컬은 너무 힘들잖아. 연기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노래도 잘해야 되고. 형이 노래를 못한다는 얘기는 아니야. 노래 잘하지. 형이 뮤지컬 하는 거 나도 봤으니까.”
우혁은 한때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다. 노래도 무난, 연기도 무난, 배역은 조연.
별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우혁은 뮤지컬을 계속 하고 싶어 했으나 소속사에서 만류했다. 뮤지컬은 드라마나 영화의 조연보다 훨씬 대우가 박하다. 연극은 더 심하고.
백곰은 우혁이 이번에는 영화를 했으면 했다.
영화는 뮤지컬보다 훨씬 많은 개런티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뮤지컬만큼 긴 연습 시간을 가질 필요도 없다.
영화는 샷으로 끊어가기 때문에 긴 대사를 외울 필요도 거의 없다. 반면 뮤지컬은 통째로 다 외워야 한다.
영화는 실수를 해도 다시 찍으면 되지만 뮤지컬은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뮤지컬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한다.
춤, 노래, 연기 삼박자가 고루 갖춰 줘야 하기 때문이다.
뮤지컬의 주인공은 주로 테너에 해당하는 목소리를 가진 배우가 맡게 마련이다.
우혁은 베이스와 바리톤을 넘나든다.
이문세의 ‘옛사랑’이라는 노래를 우혁만큼 잘 부르는 사람을 백곰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뮤지컬은 관객을 압도할 수 있는 성량이 필요하다.
그래서 노래를 잘하는 가수라고 해서 아무나 뮤지컬 배우를 할 수 없다.
뮤지컬 전문 배우가 따로 있을 만큼 연기 중에서도 고유 영역에 해당한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혁은 작은 무대에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는 어울리지만 무대를 압도할 만큼의 성량은 아니다.
뮤지컬 배우로서의 우혁은 특화되어 있지 못했다.
그걸 잘 아는 백곰으로서는 우혁의 뮤지컬 출연을 환영하기 어려웠다.
잘못하다간
“그러니까 내 말은···.”
“내리자.”
백곰이 말을 하려는데 우혁은 [알람> 극본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알람> 극본을 손에 든 채 우혁은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부모님과 아내는 텃밭에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우혁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 문 피디의 오피스텔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될 때까지 우혁은 [알람>을 읽고 또 읽었다.
“이건 꼭 해야겠다. 흥행이 되든 되지 않든 해야겠어.”
***
우혁과 백곰이 문 피디의 오피스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술판이 한창이었다.
술을 하지 못하는 이 피디와 우혁이 도착하기 10분 전에 도착한 박예진은 멀쩡했지만 문 피디, 이 국장, 장 작가는 얼굴이 불콰했다.
오피스텔에 들어서자 술에 취한 문 피디가 우혁과 백곰을 격하게 반겼다.
특히 백곰과는 포옹까지 나누었다.
그러나 정작 백곰은 몹시 조심스러워하며 몸을 사렸다.
이 국장이 백곰에게 술잔을 권하자 백곰은 죄송스러워하며 술을 사양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술을 마시면 인사불성이 되고 다음날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조금 있다가 딱 한 잔만 마시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도 많다. 죄송할 거 전혀 없어. 이기지 못하는 술은 안 마시는 게 좋아.”
이 국장이 너그럽게 받아주었다.
문 피디는 조금 아쉬운 눈치였다.
“이거 박예진이 가지고 온 아주 귀한 술인데 안타깝구만. 보약보다 더 좋은 거라고 이게. 안 마시겠다면 할 수 없지 뭐. 건배는 해야 하니까 술 말고 뭐 없나? 옳거니 잘 됐다. 이걸 주면 되겠네.”
문 피디가 주머니에서 보약을 꺼내 한쪽 끝을 가위로 잘랐다.
백곰은 문 피디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점심식사 후에 자기가 주었던 보약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어, 그거 점심 때 제가 드린 건데···.”
“먹는 척하고 주머니 넣어 두었지.”
“피디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백곰이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드라마도 다 끝났는데 뭘. 이거는 동생이 마셔.”
“차라리 술을 주십시오.”
백곰이 술잔을 내밀었다.
“이기지도 못하는 술은 무슨 술. 자, 이거 받아.”
문 피디가 술잔에 보약을 따라 주었다.
“이게 오늘 동생 술이야. 이거 다 마셔야 집에 갈 수 있어. 건배할 때마다 마셔.”
백곰은 할 수 없이 보약을 받았다.
그러나 문 피디가 다른 곳을 볼 때 얼른 자신의 술잔과 문 피디의 술잔을 바꿔치기 했다.
백곰이 술잔을 바꿔치기 하는 장면을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았지만 모른 척해 주었다.
“자, 그럼 건배할까요. [홍길동전>의 시청률 1위를 위하여!”
이 국장이 술잔을 들고서 구호를 선창했다.
모두 구호를 따라한 뒤 술잔을 비웠다.
“음? 술맛이 왜 이래?”
문 피디가 인상을 찌푸렸다.
“술맛 좋은데 왜 그래?”
“저두요.”
“술맛이 아주 독특합니다. 뭐랄까 보약 맛이 좀 나네요.”
이 국장, 박예진, 장 작가가 한 마디씩 했다.
문 피디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술잔을 비웠다.
술에 취했나?
영 맛이 이상한데.
하지만 다들 맛있다니 그냥 마셨다.
술잔이 비자 문 피디가 깨끗이 비운 백곰의 술잔에 보약을 따라 주었다.
이번에도 문 피디의 눈을 피해 술잔을 바꿔치기 했다.
다른 사람들이 술잔 바꿔치기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이 국장이 장식장에 진열된 트로피에 대해 질문하며 주위를 다른 곳으로 돌릴 때 박예진은 ‘저거요?’ 하면서 동조했고, 장 작가는 트로피를 보는 척하면서 백곰이 술잔을 바꿔치기하는 모습을 문 피디가 보지 못하도록 몸으로 가렸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두 번째 건배가 이어졌다.
백곰은 두 번째 잔도 깔끔하게 비웠다.
그러나 이미 백곰의 상태는 매우 위태로웠다.
세 번째 잔도 바꿔치기에 성공.
“이번에는 제가 구호 한번 외쳐도 되겠습니까?”
백곰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보약을 먹고도 취하는 수가 있나? 이봐 동수 동생, 괜찮아?”
문 피디가 의아해하며 백곰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아휴 피디님도 참. 보약을 먹고 취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피디님이 취하셔서 세상이 취한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그럼 구호 외치겠습니다. [홍길동전> 종방 시청률 25프로를, 위하여!”
백곰의 선창에 모두들 ‘위하여’를 따라했다.
“보약이 상했나?”
문 피디가 보약 맛을 보았다.
“거참 이상하다! 술 맛 하고 보약 맛이 똑같네.”
문 피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하하하!”
“호호호!‘
“흐흐흐!”
“킄킄킄!”
이 국장, 박예진, 장 작가, 이 피디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술이 좀 들어갔기로서니 보약 맛하고 술 맛도 구분 못하나?”
이 국장이 문 피디에게 퉁을 주었다.
문 피디가 그제야 눈치를 차리고서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동수 동생! 양주 두 잔을 마신 거야? 한 잔을 마셔도 취하는 사람이 두 잔을 어떻게! 괜찮아?”
“괜찮습니다! 헤헤헤!”
누가 봐도 백곰은 취했다.
한 잔을 마시고도 다음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벌 써 두 잔을 마셨으니 취할밖에.
“우하하하! 문 피디 말대로 술 취하니까 더 귀여워지는구만. 우하하하!”
이 국장이 호쾌하게 웃었다.
“국장님에 비하면 저는 귀여운 것도 아닙니다. 국장님이 저보다 훨씬 귀여우십니다.”
백곰이 정색을 했다.
“살다살다 귀엽다는 소리는 내 평생 처음 들어본다.”
“예진 씨, 국장님 귀여워요, 안 귀여워요?”
“어엄청 귀여우시죠.”
“형님! 국장님 귀엽습니까, 안 귀엽습니까?”
백곰이 이번에는 문 피디에게 물었다.
“귀엽긴 뭐가 귀여워. 전혀 귀여운 건 아니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말을 바로 해야지.”
문 피디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하긴 국장님이 형님보다 귀엽지는 않습니다.”
백곰이 말했다.
“이건 또 좀 섭섭하네. 내가 문 피디보다야 낫지. 인상 쓴 거 좀 봐. 저게 불독이지 사람 인상인가?”
이 국장이 문 피디를 흘겼다.
“인상 가지고 저한테 뭐라고 그러시면 안 되죠. 적어도 형님은.”
문 피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국장이 술잔을 들고서 한마디했다.
“자자, 건배나 합시다. 오늘 정말 기분 좋습니다. [홍길동전> 내 평생 잊지 못한 드라마가 될 거예요. 다들 너무 고마워요.”
모두 건배를 하고 술잔을 비웠다.
우혁은 백곰의 잔에 미리 물을 따라 놓았다.
“그러고 보니 동수 동생이 말한 대로 되었네. 시청률 1위 할 거라고 했거든.”
문 피디가 말했다.
“형님! 보약 남은 거 갖고 왔습니다. 매일 점식 식사 후에 꼭 드십시오. 안 드시면 안 됩니다.”
“알았어알았어.”
“다음에 우혁 형이랑 작품 하나 더 하시려면 건강하셔야 합니다.”
“알았다니까.”
“보약 꼬박꼬박 드시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새끼손가락 걸어?”
“예.”
“좋아!”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민망해서 못 보겠다. 다 큰 어른들이 새끼손가락을 걸고 그래.”
이 국장이 고개를 돌렸다.
“저희는 이런 사이입니다.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한 거 이번이 처음도 아니에요. 왜? 부럽습니까?”
문 피디가 이 국장에게 이죽거렸다.
“부러울 것도 많다. 하나도 안 부러워. 문 피디는 동수 씨하고 한 약속이나 잘 지켜. 건성으로 하지 말고. 동수 씨 말마따나 [홍길동전> 같은 거 하나 더 해야 될 거 아니야. 나 회사에서 쫓겨나기 전에.”
“알겠습니다. 장 작가하고 잘 준비해서 또 하나 합시다. 우혁 씨, 박예진 씨, 그때도 같이할 거지?”
“그럼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박예진과 우혁이 차례로 대답했다.
“장 작가, 다음 작품은 어떤 걸로 준비하고 있어요?”
이 국장이 장 작가에게 물었다.
“아직 말씀드릴 단계는 아니구요. 피디님하고 논의 중에 있습니다.”
“잘 준비해서 기획안 나한테 제일 먼저 줘야 돼요.”
이 국장이 장 작가와 문 피디를 번갈아보며 눈을 부라렸다.
“당연히 형님한테 먼저 드리지 누구한테 주겠어요. 형님도 건강 잘 챙기슈. 혼자 술 마시고 그러지 말고. 술이 마시고 싶으면 이렇게 여러 명이서 마시란 말이에요. 얼마나 좋아요.”
“문 피디 말이 맞아. 술은 이렇게 여럿이서 마셔야 돼. 앞으로 혼자 안 마실게. 우리도 뭐 새끼손가락 걸까?”
“됐수. 징그럽게 무슨···.”
“나도 됐네. 농담일세.”
그때 갑자기 동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 피디와 이 국장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매니저에 불과한 저를 이렇게 술자리에 끼워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부터 늘 바보 취급을 받았는데 우혁 형은 저를 단 한 번도 바보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우혁 형을 잠시 떠난 적이 있었는데 다시 바보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혁 형한테 다시 돌아왔더니 모두가 저를 귀엽다고 하십니다. 못난 저를 예쁘다고 해주시고 귀엽다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백곰이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이 국장이 백곰의 손을 잡고서 자리에 앉혔다.
“앉어앉어. 다시는 형 떠나지 말고 옆에 꼭 붙어 다녀. 그러면 되는 거야. 내가 살아 보니까 가까이 할 사람이 있고 거리를 둬야 할 사람이 있더라고.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이야. 특히 자네!”
이 국장이 백곰의 어깨를 툭 쳤다.
“고맙습니다, 국장님!”
백곰이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그런데 자네는 왜 나한테 꼬박꼬박 국장님이라고 하는가? 문 피디한테는 형님이라고 하고 말이야. 나 문 피디하고 나이 차이 별로 안 나.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나? 섭섭하구만.”
“SBC 사장님이 되실 분한테 형님이라고 하기가 좀···.”
“내가 사장이 된다고?”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던 문 피디가 끼어들었다.
“아이고 축하합니다, 이 사장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사람은 또 왜 이래?”
“동수 동생이 사장이 된다면 되는 겁니다. 형님 사장 된다니 내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겁니까. 하하하!”
“백동수 이 친구,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재주가 있구먼. 만약 내가 사장이 되면 자네한테 선물 하나 큰 거 사 줌세. 하하하하!”
이 국장이 정말 기분이 좋아졌는지 만면에 웃음꽃이 피었다.
기분 좋은 술자리였다.
이번에도 백곰은 다음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만 전혀 실수는 없었다.
지난번에는 선을 넘을까 봐 아슬아슬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술에 안 취했을 때보다 더 예의 바르고 반듯했다.
근본이 착한 친구라 그런지 다음날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할 만큼 취했어도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
대리운전으로 차를 타고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백곰은 밴에서 내리자마자 아버지의 똥차, 늙은 소에게 비틀거리며 걸어가더니 깍듯이 인사를 했다.
“다녀왔습니다! 오늘 굉장히 높은 분들이랑 술 한잔했어요. 같은 술자리에서 친구처럼 건배도 하고 그랬다니까요. 그래서 기분이 되게 좋아요. 헤헤.”
우혁은 백곰을 향해 빙그레 웃어 보인 뒤 집으로 들어갔다.
백곰은 우혁이 들어간 뒤에도 10여 분 동안 늙은 소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백곰이 집으로 들어올 때까지 우혁은 2층 베란다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기분 좋은 날이다.
인복이 참 많은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알람>이라는 좋은 작품을 만나기도 했고.밤하늘의 별이 유난히 아름다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