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3)
“형! 또 왔어.”
백곰이 운전석에 오르며 말했다.
“뭐가 와?”
우혁은 [환생 부부> 대본을 읽으며 건성으로 물었다.
“형수님이 자기 딸이라는 분. 이번에는 미국이래.”
“미국?”
“이러다가 전 세계에서 전화가 오는 거 아닌가 몰라. 벌써 다섯 번째야. 아니 여섯 번짼가?”
“기사 내리지 않았어?”
“기사는 내려갔는데 어뷰징 기사가 한둘이어야지.
꿩닭 기자의 청탁 기사에 언급된 아내에 대한 글을 읽고 호기심이 발동한 한 프리랜서 기자가 아내의 출생 비밀을 추적해 소규모 인터넷신문사에 투고 개재한 기사가 있었다.
그 기사가 2주 동안 떠 있는 동안 소속사도, 우혁도 알지 못했다.
전화 한 통이 걸려오기 전까지.
어느 날 회사로 우혁의 아내가 자기 딸인 것 같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정 실장이 흥분해서 우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우혁은 깜짝 놀라 만사를 젖혀 두고 전화를 건 분과 통화를 한 뒤 직접 찾아가서 만났다.
서울의 한 식당에서 주방 일을 하며 힘겹게 사는 분이었는데 얼핏 보기에 아내와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우혁은 장모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어지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전후사정을 들어보았는데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기구한 사연이었다.
그런데 함께 간 백곰이 조용히 다가와서 전하기를 아내가 자기 딸인 것 같다며 전화를 건 사람이 한 명 더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 동안 그런 전화가 다섯 통이나 왔다.
우혁은 아내에게 알리지 않고 친자 확인 유전자 검사를 해보았다.
모두 일치하지 않았다.
아내에게 알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알렸으면 낭패스러울 뻔했다.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우혁은 허탈하고 실망스러웠다.
딸이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하신 분의 실망도 컸을 테고.
첫 번째 전화를 주신 분을 만나고 난 뒤로 후유증이 컸다.
그분은 유전자 검사가 잘못됐다면서 아내가 본인 딸이 확실하다며 만나고 싶다고 떼를 썼다.
할 수 없이 유전자 검사를 한 번 더 하고 유전자 검사를 한 병원까지 데리고 가서 친자가 아니라는 의사의 설명을 듣게 해주어야 했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회사에서는 우혁에게 전화를 연결해 주지 않았다.
유전자 검사부터 요청했다.
“이러다가 형수한테 직접 전화가 갈까 봐 걱정이야.”
백곰이 운전을 하며 말했다.
어떤 전화가 와도 양평집 전화 번호 가르쳐주면 안 된다고 회사에 얘기는 해두었다.
“미국에서 온 전화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우혁이 백곰에게 물었다.
우혁은 유전자 검사 결과에 매번 실망을 하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지우지 못했다.
“유전자 검사부터 하자고 해야지. 너무 기대하지 마, 형!”
“기대 안 해!”
말만 그럴 뿐.
속으로는 일말의 기대를 지우지 못했다.
***
[환생 부부> 촬영은 언제나 그렇듯 화기애애했다.오늘이 마지막 회 촬영이다.
사전제작이라 여유가 있었다.
공선옥 피디는 일을 쉽게 했다.
그까이꺼 대충.
“칸 영화제 출품할 것도 아닌데 뭘 그럽니까. 적당히 갑시다.”
공 피디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그렇게 만들었지만 그의 전작들은 모두 결과가 좋았다.
공 피디는 역사에 남을 작품을 만들 욕심 따위 없었다.
드라마답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드라마답게 만들었다.
우혁이 [환생 부부>를 하기로 결정한 이유 중에는 제작피디가 공선옥 피디라는 것도 있었다.
겪어 보고 싶은 피디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아내가 마음에 들어 했다.
[길 밖의 새>를 촬영하면서 차기작을 고르기 위해 소속사에 들어온 시놉시스와 대본을 가져와 거실 탁자 위에 올려두었는데 아내가 심심했는지 그것들을 읽었다.“마음에 드는 거 있어?”
우혁이 아내에게 물었고, 아내가 [환생 부부>가 재미있다고 대답했다.
아내가 재미있다고 해서 그런지 우혁이 읽기에도 재미있었다.
김성수와 신나라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부부이다.
서로를 사랑해서, 떨어지기 싫어서 결혼을 했다.
신혼 생활은 꿈처럼 달콤하다.
김성수가 방귀를 뀌면 신나라는 깔깔깔 웃는다.
연속 방귀는 그 어떤 개그맨의 개그보다 신나라를 즐겁게 했다.
두 번보다는 세 번.
세 번보다는 네 번.
“천 원 줄 게 한 번만 더 뀌어 봐!”
신나라는 김성수의 방귀를 원했고, 김성수는 나라를 위해 한 번 정도는 남겨 두곤 했다.
그러나 결혼한 지 6년이 지나자 김성수가 방귀로 캐롤송을 연주해도 웃지 않는다.
“그만 해라!”
김성수가 어쩌다 연속 방귀를 뀌면 신나라는 정색을 하고서 김성수를 노려볼 뿐이다.
방귀로 아내를 웃길 수 없게 될 때쯤 성수는 의무 방어전을 치르기 시작했다.
아내가 샤워하는 소리만 들려도 불편하다.
신혼 초에만 해도 반대였다.
신나라는 달아나기 바빴고, 김성수는 애걸복걸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역전이 된다.
김성수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움켜쥐고서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뒹굴 때, 신나라가 야시시한 옷을 입고 김성수 눈앞에서 알짱거린다.
“화면 가린다. 왜 그렇게 알짱거리니?”
김성수가 눈치 없이 신나라에게 핀잔을 주곤 한다.
다음날 아침은, 삼키기도 퍽퍽한 고구마.
우유도 없다.
방어전을 치르고 났을 때의 아침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다르지만 회사에 다녀오면 피곤하다.
김성수는 아침으로 고구마를 먹는 쪽을 선택한다.
두 사람은 다섯 살짜리 딸아이의 부모로서 평범하게 살아간다.
연애 시절의 감정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두 사람에게는 책임감과 의무감, 약간의 정과 의리만 남았다.
두 사람 모두 열심히 산다.
열심히 사는데 늘 제자리걸음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다들 행복하게 사는데 나 혼자만 초라하게 사는 것 같다.
사는 게 지겹고 재미없다.
부부는 그 원인을 상대에게 떠넘긴다.
“손에 물 한 방을 안 묻히게 해주겠다며? 손에서 물 마를 날이 없다.”
신나라는 설거지를 하다가 분통을 터트리고.
“돈돈돈! 노는 것도 아니고 쎄가 빠지게 일해서 다 갖다주는구만 더 어쩌라는 거야? 마누라 보기 싫어서 집구석에 들어가기가 싫다니까!”
김성수는 퇴근길에 운전을 하다 말고 울화통을 터트린다.
그렇게 악감정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 폭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서로가 꼴 보기 싫다.
신나라는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이럴 거면 헤어져!’라는 말을 했고, 언제부턴가 김성수도 ‘그래, 헤어지자! 헤어져!’ 하고 대거리를 했다.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그 모양이냐? 양반 가문이라며?”
“당신 집안은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명절만 되면 족보 타령은 왜 그렇게 하는지···. 8대조 할아버지가 정승을 한 게 뭐가 대단하다고!”
“너 지금 말 다했어? 우리 집안 무시하는 거야?”
“당신이 먼저 우리 집안 무시했잖아.”
그렇게 격해진 싸움은 결국 “이혼해!” “그래, 헤어지자!”까지 나왔다.
이제는 하도 많이 하고 들은 말이라 크게 충격적이지도 않다.
좀 더 상대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수위를 높일 궁리를 하다가 신나라가 목각 원앙의 수컷을 소파 위에 던진다.
목각 원앙은 김성수의 어머니가 시집 올 때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물건이었다.
그 모습을 본 김성수도 목각 원앙 암컷을 휙 던졌다. 창문 밖으로.
그러자 화가 난 신나라가 소파 위에 던진 원앙 수컷을 주워 창문 밖으로 던진다.
신나라는 딸아이가 잠든 안방으로, 김성수는 작은 방으로 문을 쾅! 닫고 들어간다.
그런데 창문 밖으로 던진 목각 원앙에서 이상한 빛이 나더니 두 명의 월하노인으로 변한다.
두 월하노인은 신나라와 김성수를 찾아가 몹시 화를 내며 과거로 보내버리겠다고 한다.
김성수와 신나라는 내심 반갑다. 결혼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신나라, 김성수와 결혼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예! 보내 주세요!”
김성수와 신나라는 둘 다 월하노인에게 대답한다.
잘못했다고 반성하며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고 빌기를 바랐는데 과거로 보내달란다.
“오냐! 알았다! 원한다면 보내주지! 너희들 조상 중 한 사람의 과거이니라! 가거라!”
펑!
김성수와 신나라가 원하던 대로 과거로 왔다.
과거는 과거인데 너무 멀리 왔다.
200년 전 과거로.
김성수와 신나라는 둘 다 양반이 아니라 양반집의 종살이를 하고 있다.
김성수의 이름은 개똥이.
신나라의 이름은 말순이.
성씨? 그런 거 없다.
두 사람은 각자 결혼을 해서 자식을 하나씩 둔 가정을 꾸리고 있다.
과거에 도착한 두 사람은 200년 뒤의 미래 일을 기억한다.
“양반이라며? 이게 양반이야?”
“그러는 넌? 꼴좋다!”
두 사람은 그날 이후로 사사건건 티격태격한다.
개똥이와 말순이는 행여라도 후세에 인연이 닿지 않기를 기원한다.
대본에서는 그 과정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었다.
그러다가 하나의 사건이 터진다.
이미 혼례를 하고 자식이 둘씩이나 있는 큰아들이 말순이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개똥이는 미래의 아내였던 말순이를 못 본 척할 수가 없다.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큰아들에게 주먹질을 한다.
그 틈을 이용해 말순이는 달아나지만 개똥이는 하인들에게 멍석말이를 당한다.
큰아들은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개똥이를 죽이기로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말순이가 개똥이에게 달아나라고 말해 준다.
“빨리 도망 가. 자기를 죽이려고 해.”
그런데 그 장면을 큰아들에게 들킨다.
개똥이과 말순이가 큰아들에게 용서를 빌지만 큰아들의 화를 풀어주기에는 역부족이다.
다음날 아침, 큰아들은 하인들을 모두 마당으로 모이게 한 뒤 개똥이와 말순이가 정을 통했다고 말한다.
개똥이의 아내와 말순이의 남편은 큰아들의 말을 믿고 충격에 빠진다.
그때부터 말순이의 남편은 술에 취해 말순이를 폭행하고, 개똥이는 아내에게 시달림을 당한다.
남편의 폭행을 견디다 못한 말순이는 딸아이를 데리고 야반도주한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개똥이의 아내와 말순이의 남편도 사라져 버린다. 정분이 난 것이다.
며칠 뒤 개똥이도 아들 녀석을 데리고 집을 나와 도적의 무리에 합류한다.
그러던 어느 날, 병든 걸인 하나가 거적을 뒤집어 쓴 채 개똥이 앞에 나타난다.
그 걸인은 다름 아닌 말순이였다.
딸아이와 함께 달아났는데 말순이는 혼자였다.
말순이라는 걸 알아본 개똥이는 말순이에게 먹을 것을 준다.
말순이도 개똥이를 알아보고 눈물을 흘린다.
말순이는 회복되기 힘든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맨다.
개똥이는 말순이를 타박한다.
“왜 이렇게 됐어. 좀 잘 살지. 이 꼴이 뭐냐!”
“도둑이나 거렁뱅이나 그게 그거지.”
“이 짓밖에 할 게 없더라. 자식이 있는데 굶길 수는 없잖아. 딸아이는?”
“우리 딸? ···잃어버렸어.”
“저런!”
“어쩌면··· 버렸을지도 몰라.”
말순이는 200년 미래의 남편 김성수가 그립다.
김성수 또한 신나라와 살던 때가 행복했던 시절임을 깨닫는다.
미래를 돌아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어떻게 돌아갈지 알 수 없다.
200년을 기다리는 수밖에.
다시 부부가 되어 만난다면, 잘해 주고 싶다.
“나 죽거든 아무데나 버려줘. 화장하지도 말고, 묻지도 마. 딸자식 버린 인간이야.”
“죽기는 왜 죽어. 잘 먹고 쉬면 나을 수 있어. 그리고 딸 생각은 잊어버려. 다 자기 운명인 거지.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거야. 잘 좀 살지, 왜 이 모양이야? 200년 뒤에도 남편 잘못 만나서 불행하더니···.”
“당신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좋기는 개뿔!”
“200년 뒤에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200년 뒤에, 다시 만나면··· 잘할게.”
“고마워··· 성수 씨!”
신나라였던 말순이는 그렇게 눈을 감는다.
“나라야! 나라야!”
김성수였던 개똥이는 말순이의 시신을 흔들어댄다.
그 순간 월하노인이 나타난다.
김성수는 월하노인에게 말순이, 아니 신나라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오열한다.
“제 아내 좀 살려주십시오. 제발···.”
펑!
김성수가 흐느끼며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깜짝 놀란다.
그곳은 200년 뒤의 작은 방이었던 것이다.
신나라가 눈을 뜬 곳은 안방.
김성수는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다.
신나라도 마침 안방문을 열고 나온다.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응시하다가 포옹한다.
창문 밖으로 던졌던 목각 원앙 수컷과 암컷을 찾아 원래 있던 자리에 가져다둔다.
***
“고생했어. [환생 부부> 빨리 텔레비전으로 보고 싶다.”
우혁이 [환생 부부>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들어왔을 때 아내는 말했다.
“유치하다고 욕할까 봐 걱정이야.”
“드라마는 원래 유치해야 재미있는 거야. 진지한 드라마도 있고, 이런 드라마도 있어야지. 난 이런 드라마가 좋더라. 아마 어머니도 [홍길동전>이나 [안중근 장군>보다 [환생 부부>를 훨씬 재미있게 보실걸.”
그때 우혁의 휴대전화 착신음이 울렸다.
정 실장이었다.
“네 실장님!”
– 일치합니다.
“일치하다니요?”
– 일전에 미국에서 전화하신 분이 있다고 했지 않습니까. 유전자 검사 결과 나왔는데, 일치하는 걸로 나왔습니다.
[ 유전자 검사 결과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