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174
그러나 ‘이제 어쩝니까?’ 따위 헛소리를 지껄이며 술렁이는 머저리는 이 자리에 없다. 그런 머저리들은 이미 데미스키라 뒤쪽 벌판에서 염소나 치면서 영광 없는 삶들을 살아가고 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는 단 두 가지 계율만이 있었다.
첫번째, 적이 있으면 싸운다.
두번째, 살거나 죽는다.
적들이 아군보다 더 강하면 어쩌겠나?
죽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감히 21세기의 코인투자자와 비견될 무쇠의 심장을 지닌 전사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앞으로 나선다.
개중에서도 그들의 여왕이자 오트레라의 딸 펜테실레이아는 한발짝 더 나아간 뒤 칼날을 높이 들고 외친다.
“내 여기서 예언 하나 하겠다!!!!”
“펜테실레이아아아!!!!”
“흑해의 암사자!!!!!!”
“우리는 여기서!! 승리하거나!!!! 패배하리라!!!!”
내일 비 올 확률이 0%에서 100%쯤 된다고 말하는 일기예보 같지만, 그런 예언에도 전사들은 만족스러운지 방패를 연신 두드리며 전쟁의 노래를 부른다.
펜테실레이아는 그 노래를 따라부르며 다시 목놓아 부르짖었다.
“그리고 너희는!!!! 죽거나!!!! 이기거나!!!! 도망치거나!!!! 내 명에 따른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우리의 위대한 아버지, 아레스를 위하여!!!!!!”
“아레스를 위하여!!!!”
“우리의 긍지를 수호하는 아르테미스를 위하여!!!!!!”
“아르테미스를 위하여!!!!”
펜테실레이아는 머리 위로 쳐들었던 칼날을 내리며 저 수평선 너머의 함대를 가리킨다.
“그들에게 영광을!!”
그녀들은 그 어떤 시인도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용맹하게 싸웠다. 무수한 아카이아인들이 그날의 해안과 언덕에서 피를 흘렸다.
그리고, 전사들의 수가 2,000명 정도 줄은 것을 확인한 펜테실레이아는 빠르게 판단했다. 원초적인 판단이라 해서 항상 이성적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여기 버려야겠는데?”
아마존 전사들은 전투 전의 맹세에 착실히 따랐다.
그녀들은 어떠한 유감도 없이 데미스키라를 버리고 다른 도시로 향했다. 이런 일 한두 번도 아니고, 애초에 그녀들은 유목민이다.
펜테실레이아는 아카이아인 3명 정도의 모가지를 전리품으로 어깨에 매단 채 다음 거점지를 향해 내달렸다.
뭐, 이 정도면 패배 치고는 나쁘지 않았···.
“여왕이시여! 허리띠는 어디로 갔습니까?”
“어, 아까 디오메데스인가 뭔가 하는 머저리랑 싸우다 떨꿨···”
펜테실레이아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곧 아마존 족의 전사들은 그녀들의 여왕이 무슨 꼬리에 사흘 굶었다가 사슴 발견한 사자처럼 미친 듯이 날뛰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개만도 못한 새끼들!! 내 무구를 가져와라!! 저 개자식들을 갈가리 찢어죽여버리겠다!!!!] [흠··· 일단 진정하시죠, 아레스 형님. 다른 신들의 사랑을 받는 이들을 해쳐서 무엇을 얻겠습니까?] [내 딸들의 명예를 얻지!!]올림포스에 머물러 있던 여러 운좋은 신들 역시 전쟁의 신이 자기 딸처럼 날뛰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헤르메스의 말에 광분한 듯 가슴을 쾅쾅 두드리며 노호성을 이어가던 아레스도 슬슬 마음을 진정시키고 푹 한숨을 쉰다. 그라고 헤르메스가 말한 것을 몰라서 그랬던 것은 아니니.
헤르메스의 간단한 감사와 사과의 말을 전한 아레스는 곧 구름과 구름 사이 정순한 공기를 밟으며 어딘가를 향하여 달려간다.
갈 곳 없는 분노를 토해내는 시간은 이미 지났다. 지금부터는 협상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는 누구와 협상을 진행해야 할지 잘 알았다.
[팔라스 아테나!!!!]올림포스 한 구석의 어느 광장에서, 누군가 장기놀음을 하다가 아폴론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입술에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위대한 전쟁의 여신이다.
전쟁의 여신 앞에 전쟁의 신이 다가가 하계(下界)를 가리키며 일갈한다.
[너도 알고 있겠지. 네가 총애해 마지 않는 디오메데스, 그놈이 결국 내 딸을 모욕했다. 내가 내려준, 그것도 두번째로 내려준 성물을 갈취했어!!]그리 말하며 아레스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지상의 한 지점에는 두 남자가 서 있었다.
큼직하고 길쭉하게 뻗은 목조 건축물이었다. 특히 기둥과 서까래에 조각이 들어가는 등 다른 건축물보다 확실히 화려한.
그곳에서 디오메데스는 말했다.
“필록테테스, 자네에게는 이걸 주면 좋겠군. 아니, 이것들은 대체 아카이아를 얼마나 털어먹었기에 나오는 보물마다 아카이아 양식으로 되어있는 거지?”
데미스키라의 구조는 여타 정주민의 도시처럼 복잡하거나 하지 않았다.
도시의 구성은 반이 천막이고, 반이 목조주택이었는데 혈족 구성원들이 모여서 취사를 진행하고 숙식을 해결하는 큰 집과 그들이 약탈한 보물을 모아두는 창고가 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디오메데스와 필록테테스는 이번 전투의 일등공신이자, 가장 영광된 영웅들로서 왕가의 창고를 뒤질 권리를 얻었다.
“자네는, 아, 그렇지! 이 정교하게 세공된 청동 방패를 가지게나! 나는 여기 이 투창들이 탐이 나는군그래. 갑옷이야, 뭐, 나는 안탄드로스산 강철로 새로 맞췄으니 필요 없겠고.”
“···나는 이쪽에 있는 황금 항아리와 거기에 담긴 것들을 가져가도록 하지.”
“그러게나! 대신 그 옆에 있는 것들은 내 차지일세.”
필록테테스는 자기보다 꽤나 어린 디오메데스가 자신을 스스럼없이 ‘자네’라 부르는 것에 눈살을 찌푸렸으나, 그가 이번 원정의 총사령관임을 되뇌이며 불편한 속을 감췄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 얻은 포로들(몸값을 요구할 수 전사들)과 노예들(아마존에게 붙들려 있던 다른 부족의 사람들)을 배에 실어놓고서, 아테나 신상을 세워 번제물을 바치기 시작한다.
아테나는 올림포스까지 올라오는 그 그윽한 향내를 맡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고, 그때쯤 이미 아레스의 속에서는 천불이 났다.
[네가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는 안다, 형제여.]아테나는 잔뜩 화가 난 아레스를 달래듯, 또는 조롱하듯 말을 꺼낸다.
[네 위엄과 위신에 간 금이 크겠지. 네가 보호하던 족속들이 저리도 ‘무참히’ 깨졌으니.]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아레스는 아테나가 내민 손을 치워버리고 눈을 부릅떴다.
[디오메데스에게 신탁을 내려라. 어차피 데미스키라를 떠난 아마존인들에게 더 이상의 보물은 없으니 추격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호··· 딸자식들을 먼저 챙기다니 다정하군.]아테나는 웃으며 자신의 어깨에 앉아 있던 올빼미를 날려보냈다. 필멸자들 중에서도 새점을 치는 이들이 자신의 의지를 알아볼 수 있도록, 특정한 방향과 자세로.
[이제 되었나? 아마 아니겠지.] [물론 아니지. 네가 아끼는 디오메데스에게 나의 저주가 깃드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더 제대로 된 대가를 내놔야 할 거다. 네가 저놈의 모험심을 충동질한 것쯤은 알고 있으니!!] [그래, 그렇단 말이지···.]아테나는 웃으며 손가락을 튕겨 아레스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디오메데스와 필록테테스를 비롯한 아카이아인들이 퇴각하는 모습을 불편한 마음으로 내다보던 아레스가 시선을 돌리자, 아테나가 입을 열었다.
그 두 이름을 들은 아레스의 얼굴이 굳는다.
[그래, 네 소중한 아들들이지. 걱정 말게. 저주를 내리기는커녕 축복을 내려줄 테니.] [그놈들이 뭘 하려는지는 알고 말하는 건가?] [페니키아로 쳐들어가서 바알 신상을 빼앗으려고 하지. 그 이교도들의 신상을 제우스 신상으로 바꿔놓고 자기네들 신전을 장식하려고.] [···.] [걱정 말게. 내가 다 잘 알아서 할 테니.]아테나는 그리 말하고서는 손가락을 다시 가볍게 튕긴다.
그러자 어느새 아레스의 앞에는 눈보다도 새하얀 올빼미 한 마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스치듯 구름 사이를 날아 활강하더니, 키프로스 인근에 정박해 있는 어느 갤리선의 선두에 내려앉았다.
다음 순간, 그것은 올리브 나무를 깎아만든 지팡이를 쥔 노파의 모습으로 화(化)했다.
그녀는 천천히 굽은 허리를 씰룩거리며 움직였다.
아레스의 두 아들에게, 페니키아 각 도시의 공략법을 가르쳐주기 위하여.
그리고 빛나는 눈을 가진 어느 여신이 지상에 강림함과 더불어, 어떤 젊은 남신 역시 구름을 밟으며 스치듯 지상에 내려오기 시작한다.
마치 계단을 밟듯, 자연스럽고 가볍게.
그의 날개 달린 신발은 공중을 휘젓는 젊은 신의 움직임을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신들의 전령, 위대한 헤르메스가 바닥에 착지했을 때는.
어느 ‘상인’이 그를 향해 무릎 꿇고 있었다.
[그래, 나의 종복아.] [소임을 다하지 못하여 송구하옵니다.] [네가 그럴 필요는 없다. 다만, 다른 신들이 제 자식들, 종복들을 챙겨주느라 신이 나서 기적을 행하고 있을 뿐이니.책임이 있다면 신들의 것이겠지.]
헤르메스는 그리 말하며 근처의 바위에 걸터앉는다. 이곳은 어느 산적들의 버려진 산채, 도적들의 신인 헤르메스를 위하여 신당이 갖추어져 있던 폐허.
그곳에서 스산한 기운을 내뿜는 시체 전사들과 상인이 헤르메스를 향하여 머리를 조아렸다.
[어찌 불멸하는 신들께 책임을 돌리겠습니까? 다, 저의 모자람 때문이지요.] [신경쓰지 말고 너는 한동안 근신이나 하거라. 이 귀기 어린 흥분이 가라앉을 때까지.]그리 말하며 헤르메스는 무심코 고개 돌려 멀리를 내다본다.
막 기지개를 켜며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도시, 안탄드로스가 자리한 방향이다.
[양치기 꼬마가, 이렇게까지 큰일을 벌일 줄 누가 알았겠느냐? 하여튼 재밌는 녀석이야. 우리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찾아헤맸던 헤라클레스의 보물도 찾아내고···]헤르메스는 즐겁게 웃으며 뱀이 휘감긴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렸다.
[하, 하하, 하하하···.]그러니까, ‘즐겁게’ 웃었다.
[이, 이 짓을 우리가 몇 년을 해왔는데, 그게 깡그리 망했네?] [주인이시여.] [아무 말도 하지 말게. 잠시만, 가만히 있어주게.] [···.]상인은 고개를 낮추어, 주인의 눈물을 못 본 체했다.
아마 피눈물일 것이다.
희랍천지 복잡괴기 (2)
“많은 영웅들이 이 한 자리에 모였소.”
이 원정의 물주이자, 최대 수혜자가 될 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우스가 서두를 열었다.
그는 단언컨대, 아카이아에서 가장 부유한 인간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흑해와 지중해의 연결목이 트로키아와 트로이아의 힘으로 철통 같이 지켜지니, 에게 해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크레타는 전례없는 호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살라미스의 왕 텔라몬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기회는 이토록 귀중한 것이오. 후세의 사람들은 이리 찬탄할 것이오!
‘아르고 호의 항해자들이 그토록 위대했던 것과 같이, 아이깁토스로 향하던 저 영웅들 역시 참 대단했었지! 저 위대한 나일을 거슬러 올라가, 파라오의 부를 갈취했으니!’”
“갈취보다는.”
한 남자가 이도메네우스의 말을 이으며 조용히 읊조린다.
“쟁취라 합시다. 우리는 이 여정을 통해 신들의 이름을 빛내우며, 우리가 얻은 것의 상당한 부분을 신들께 바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필멸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행동들을 하는데, 이를 어찌 갈취라 할 수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옳소!! 아트레우스의 아들이 하는 말이 백 번 옳소!!!!”
메넬라오스는 빙긋이 웃으며 주위를 돌아본다.
그의 말에 맞장구치는 이들, 신중하게 이 근처의 수로를 읽는 이들, 낯설기 짝이 없는 아이깁토스의 가옥들을 구경하는 이들.
모두가 왕이나 왕자들이다.
“적들의 왕도(王都)가 머지 않았습니다. 프리아모스의 아들 파리스가 가닿았다는 저 피람세스도 곧 우리의 손에 불타지 않겠습니까?”
이도메네우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부유한 크레타의 왕이다.
애처가로 소문난 오디세우스가 집에는 언제 돌아가는지 물어보며 초를 친다. 그 또한 얼마전 이타카의 왕위를 물려받았다.
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 두 형제가 조용히 지도를 응시한다. 살라미스의 두 용맹한 왕자들이다.
필록테테스, 헤라클레스의 마지막 제자고 멜리보이아의 왕이다.
마카온,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아들, 트리카인들의 지휘관이 가져온 붕대를 점검한다.
거기에다 아르고스의 젊은 왕이자 테베의 정복자 디오메데스가 칼을 갈고 허리띠를 조이니, 아마존인들에게서 빼앗은 저 허리띠에는 힘을 키우는 마술이 걸려있다 한다.
이들 외에도 모두가 강력한 군주들이다. 명성 드높은 영웅들이다. 그것도 그동안의 모험에서 얻은 신물(神物)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이들 사이에 형님만 없군.’
원래대로라면 아가멤논이 당연히 이 자리에 참석해 지휘관 노릇을 했어야 하리라. 왕중왕이자 숙련된 지휘관으로서 형님은 직접 이들을 이끌고 선두에 섰으리라.
아이깁토스인들의 혈관 속에 공포를 새겨주기 위해.
“아가멤논 님은 몸이 좀 괜찮으시오?”
“마지막으로 전해들었을 때는, 어지럼증이 조금 있을 뿐 문제 없다고 하시더군요. 괜찮을 겁니다. 회복 중이시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가멤논의 몸상태가 악화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누구도 그 전까지 병색을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 때문에 아가멤논 형님보다 훨씬 못 미치는 지휘관인 이도메네우스가 이렇듯 총사령관 노릇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나? 아가멤논의 동생인 메넬라오스의 지위를 존중하긴 하지만.
“그럼, 더 말할 것도 없겠소, 메넬라오스? 그대가 우리의 갈길을 알려주오.”
이도메네우스는 몸소 지도를 접으며 말한다. 메넬라오스는 다시 이 군중의 중심에 서서 말한다.
“더 남하하도록 하지요. 피람세스, 그 금빛의 도시가 우리를 기다리는데 뭐가 문제겠습니까?”
이들 모두가 그의 동료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가 형님이 걸어가는 패권국으로의 행보에 불만을 품고는 있다.
이 귀중한 기회에, 이들 중 상당수를 포섭할 수 있으리라.
모두의 얼굴이 기대감으로 물든다. 그 거대한 도시를 사로잡아 살을 발라낼 생각에 가슴이 들떠온다.
회의가 대강 마무리되자 아카이아에서 온 영웅들은 천막을 걷고 밖으로 나선다. 남쪽의 태양이 그들의 눈을 괴롭히지만, 인근의 풍경은 선명히 그들의 눈에 들어온다.
불타오른 저택들, 헐려나간 신전들, 두려움에 질려 여기저기 숨어다니는 아이깁토스인들과 무너진 성벽.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승리의 발자취란 말인가? 다른 모든 왕들이 자랑스레 그 광경을 바라보는 가운데 메넬라오스만이 시선을 피한다.
왕과 왕자들이 각자의 병사들을 모아 승선을 준비한다. 강의 물결을 거슬러 적의 심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쿵! 쿵! 쿵! 쿵! 쿵!
“뭐지?”
“우리 쪽 신호가 아닌데?”
“무슨 일인지 아는 사람 있나?”
북 치는 소리.
그러나 아카이아의 것보다 덜 경쾌하고, 더 묵직한.
마치, 선박의 노잡이들을 지휘하는 듯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으로 울린다.
마치.
“저, 저기 상류 쪽을 봐!!!!”
“젠장, 칼들을 뽑아라! 적들이 온다!!”
적들을 물리치러 온 군선의 신호음 같이.
저 멀리서, 적들이 오고 있다.
여유롭던 아카이아인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돈다.
나일강을 빼곡히 메운 수십 척의 배들에서 개떼처럼 많은 병사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아카이아인들보다 굽어있는 칼을 쓰고, 가벼운 형태의 무장을 걸친 전사들이 그들을 노려본다.
개중 특히나 화려한 모자를 걸친 이가 나와서 무어라 외쳐댄다.
“#$#%%@!!!!”
“누구, 통역 있나?”
“왕명을 어기고 들어왔으니 죽으랍니다.”
“하, 하하하하!!!!”
“으하하하하!!!!”
왕들이 먼저 웃음을 터뜨리자 병사들도 웃음을 터뜨린다. 그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생각한다.
저들이 아무리 많아 봐야 질 수 없다.
아카이아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신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이곳 아이깁토스에서는 아니었다.
이들은 신들에게서 외면받았다. 아이깁토스인들의 신들은 아이깁토스인들을 버렸다.
“아이깁토스인들이여! 그대들의 전언은 잘 받았다!!”
디오메데스가 대오의 앞으로 나와 외치더니 투창을 집어들고 겨눈다.
“그럼 답신을 보내야지!!”
아이깁토스인들이 눈을 감았다 떴을 때, 그들의 장교는 투창에 머리가 터진 채 죽어 있었다. 게다가 그 뒤에 서 있던 호위무사들 두세 명 역시 같은 투창에 배와 심장이 뚫려 죽었다.
아이깁토스인들 사이에서 눈에 띄게 동요가 일어난다. 비명 같은 소리와 함께 도주를 시도하던 병사 하나가 목을 잘리고 나서야 그런 동요는 가라앉았다.
그렇게 두 군대가 대치하고 있었다.
수가 많고, 하나로 단결되어 있는 아이깁토스인들의 군대.
그리고 수적으로도 열세이며, 수많은 지휘관들을 각각 두고 있는 아카이아인들의 군대.
본래라면, 바보라도 처음 보는 순간에 승패를 짐작할 수 있는 싸움이겠지만···
“왕들이여! 말들을 준비시키시오!! 전차가 언제든 뛰어들 수 있도록 하시오!!”
이 세계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메넬라오스는 승리를 기대했다.
“죽여라!!!!!!”
아카이아인들의 전차가, 먼저 대치를 깨고서 돌진한다.
대오도 진형도 갖춰지지 않은 두 군대가 서로를 향해 미친 듯이 돌진한다.
메넬라오스는 필록테테스의 화살을 본다.
그 화살이 헤라클레스의 활 위에서 날아올라, 방패 세 겹을 부숴버리고 적 다섯을 순식간에 해치우는 모습을 본다.
또, 메넬라오스는 아이아스를 본다. 그가 전차에서 내린 다음 근처의 나무를 뽑아 휘둘러 장정 4명을 동시에 날려버리는 모습을 본다.
다시 고개를 돌리자 디오메데스가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리며 사람들의 모가지를 잘라버리고 있었다.
마치 농부 같았다.
그가 손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두서너 개씩 머리가 떨어졌다. 그 피분수로 디오메데스는 기꺼이 목욕하며 활짝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메넬라오스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 메넬라오스 #%%#$!!!!”
오.
아이깁토스인들 중에서도 아카이아에 대해 잘 아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자신의 이름을 아는 것을 보니.
방금의 외침과 동시에 메넬라오스의 전차를 향하여 예닐곱 대의 전차가 동시에 따라붙기 시작한다. 그들이 쏘아오는 화살을 바라보다 메넬라오스는 비릿하게 웃었다.
“이보게. 절대 속도를 줄이지 말고 이 근처를 돌고 있게.”
“예, 주군.”
“나는 여기서 내릴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