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345
전초전
“저 멀리서 봐도 역시 하투샤의 신들이 내뿜는 기세가 살벌하군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까지 온 것 같습니다. 온 에게 해의 영웅들이 모두 모여서, 심지어 아이깁토스로 향했던 다르다노스의 혈족까지 함께 거대한 제국에 맞서 싸우다니요? 이 신화적인 순간에 저희가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니 이보다 더 거대한 영광을 필멸자가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에 주군께서 이렇게 주축에 서계신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파리스 님, 저는 두려움 따위 벌써 벗어던졌습니다. 저, 카시우스의 아들 아노이토스는···”
“조용히.”
“옙.”
내 말에 아노이토스는 벌벌 떨면서 발작하던 것을 멈췄다. 그렇게 한참 가만히 서 있던 아노이토스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일단, 마구는 모두 장비해 놓았습니다. 기병대원들 역시 준비되어 있다 하는군요. 바로 출발하시면 됩니다.”
“잘했네.”
내가 휘파람을 길게 불자 아노이토스의 말대로 마갑으로 완전무장한 부케팔로스가 달려들어온다. 내가 그 위에 뛰어들자 나를 배웅하러 나온 헥토르가 말한다.
“파리스, 조심해야 한다. 결국 너 말고는 이 작전을 지휘할 사람이 없으니 맡기지만···”
“걱정 마십시오, 형님.”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지. 네 반려도 벌벌 떨던데.”
“어쩔 수 없습니다.”
기병의 특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역할이란 무엇인가?
졸지에 세계 최초의 중갑 기사이자, 마찬가지로 세계 최초의 기병부대 창설자가 된 입장으로서 나는 근본적인 기병의 쓸모부터 고민해야 했다.
기병이 이 시대에 널리 쓰이는 전차병과 뭐가 다른지, 파리스 개인이 말달리는 것과 기병 수십 명이 함께 달리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우선은 압도적인 기동성을 빼놓을 수 없겠고.
거기다 지형에 덜 얽매인다든지, 기동이 유연해진다든지 하는 이런저런 장점들을 취합하자면 결론은 명확했다.
“적들은 이제 하루에서 이틀 정도면 도착할 겁니다. 우리는 병력에서부터 열세고요.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가기 전에 최대한 많은 이점을 얻어놔야 합니다.
기습이라도 한번 해봐야 합니다. 적어도 적들의 동태는 살펴야죠.”
정찰, 습격, 교란.
지금의 우위가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일단 기병은 안탄드로스만 보유한 비대칭 전력이다.
그것도 본격적인 전투가 펼쳐지기 이전에 특히 빛나는 무기라면, 한번도 이 칼을 빼들지 않고 싸움에 나선다는 건 사치고 오만이다.
“···기억해. 너는 이제 ‘알렉산드로스’니까.”
물론 위험부담 역시 적지 않다. 기병은 고급 병종이고, 나는 안탄드로스인들의 최고 지휘관이니까.
나는 헥토르의 말에 흠칫 떨면서도 내색 않고 부케팔로스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너는 안탄드로스의 왕이고, 지난 전투의 영웅이다.”
“압니다.”
“네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전력의 공백만 생기는 게 아니야. 우리 동맹 군대의 사기가 떨어질 거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이렇게 갑옷도 단단히 걸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나는 손가락을 튕겨 ‘망치’를 손에 쥐었다가 다시 감춘다.
“신들께서 저를 가호하실 겁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 공백이 그리 대단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헥토르 본인이나 아킬레우스 같은 1선급 무장도 아니고, 특출난 천재 지휘관도 아니다. 내가 없더라도 안탄드로스군을 지휘할 이들도 충분히 확보해 놓았다.
그렇다면 그나마 할 수 있는 데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내 행간의 의미를 알아들은 듯 헥토르는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뜨면서 말한다.
“전략적으로만 생각하지 마라.
너는 우리 가족이니까.”
“···조심하겠습니다.”
내가 부케팔로스의 배를 뒷꿈치로 살살 건드리자 녀석은 천천히 구보하기 시작한다. 군영 바깥으로 나서자 아노이토스의 말처럼 미리 준비된 기병대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됩니까?”
“기다려보게.”
전략적인 정탐 및 기습 작전이다. 나는 이 순간 어떤 신에게 제례를 올려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품 안에서 아테나의 목상(木狀)을 꺼내 양손으로 쥐고서 입을 맞춘다. 그러자 구름 사이에서 어둠을 가르고 한 마리 올빼미가 내려온다.
올빼미는 우리들 앞에서 한 바퀴 빙, 돌더니 곧 앞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저 올빼미를 따라간다.”
그렇게, 어느덧 수십 명으로 늘어난 기병대원들이 움직였다.
방향은 동남동쪽이었다.
***
유대인 병사 오난은 꾸벅꾸벅 졸면서, 흐린 시야 속에서 저 너머의 어둠을 주시한다. 물론 달도 밝지 않은 밤중에 보이는 건 없었다.
그는 하필 오늘 이렇게 망 보는 일에 걸린 자신의 운을 저주했다. 곧 있으면 싸움이라는데, 적들 가운데는 괴물이 그렇게 가득하다는데, 문득 숨어들어온 아카이아인 전사가 한 손으로 그의 목을 꺾어놓는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오난의 눈이 뜨인다. 마침 뒤에서 발소리도 여럿 들려오는 게 높으신 분이 오는 것 같은데 다행이었다.
“별일 없는가?”
“예,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적당적당히 배운 네샤어로 크게 외치니 화려한 갑옷을 걸친 누군가가 손짓하면서 옆에 있는 부관들과 쑥덕거린다.
“적들의 위치도 파악했지만, 어차피 전장은 정해졌네. 결국 전차부대가 크게 활약하기는 어려울 걸세.”
“허면···”
“일단은 대왕께 상언하지. 전차를 앞세우되 후퇴 시기를 이르게 잡아야 한다고. 개활지에서의 싸움이라고 해서 전차가 대단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말이 이어질수록 제대로 알아듣기는 어려워진다. 자기들끼리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국의 언어로 이어지다 보니 유대인 병사로서는 내용을 파악할 수도 없고, 파악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다만 하필 왜 이 외곽으로 나와서 자기들끼리 떠드냐가 불만이었을 뿐. 뻣뻣한 자세를 오래 유지하다 보니 허리가 아팠다.
‘그냥··· 저 작자들, 죄다 꺼져줬으면.’
그는 신들의 왕 야훼와 그 여왕 아세라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고향 떠나 멀리 이곳까지 와서 고생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웬 이상한 놈들 앞에서 눈치보고 굽실거리고···
-콰득.
“···어?”
그 순간, 오난은 신들께서 자신의 소원을 너무 확대해석하신 게 아닌가 의심했다.
분명 자기는 저기 무슨 나라의 왕이 꺼져줬으면 생각했지만.
“와, 왕이시여! 왕이시여··· 컥. 커컥.”
-후우웅!!!!
-피쉬시시싯!!!!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다.
“기습이다!! 기, 기습이라고!!”
“자네!! 유대인, 자네 뭐 하나!! 당장 가서 알리지 않고!!!!”
네샤인으로 보이던 왕과 귀족들의 머리가 쪼개진다. 무슨 으깨진 포도알처럼 뇌수와 피를 줄줄 흘리면서.
순간 얼어붙은 오난은 발이 떨어지지 않아 창을 꼬나쥐고 있다가, 급히 내달린다.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도망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할 일을 완전히 잊지는 않았다.
“저, 저, 적습이다!!!! 적들이 왔다!!!!”
그리 반쯤 정신이 나가 외치면서 그는 아군 천막을 향해 내달렸다. 도망치고 싶었다. 하필, 하필 내가 경계를 설 때 이런 일이···
“···어?”
그렇게 달리던 오난은 무언가를 뒤늦게 깨닫는다.
주위가 밤 치고는 너무 밝다. 너무 따뜻하다. 무슨 하늘에서 땅 가까이로 별이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물!! 물 가져와!!!!”
“적들이 왔다!! 적들이 왔어!!!!”
게다가 다른 병사들도 이미 그와 똑같이 외치면서 저마다 손에 물이 가득 든 동이 하나씩을 지고 달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정신을 차리고서 주위를 둘러보니.
-화르륵.
사방의 천막들이 불타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불꽃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가 너무 놀라 바닥에 주저앉으니, 곧 불 붙은 화살 한 대가 그를 향해 날아온다. 오난이 눈을 질끈 감으며 기도를 올리니.
[허를 찔렸다. 적지에서 다투다 보니, 시야는 좁아지고 권능이 제한되는군.] [왕이시여, 그래봐야 하찮은 장난일 뿐입니다.] [필멸자들은 장수하는 신들처럼 멀리, 많이 보지 못한다. 하찮은 장난에도 이들의 마음은 흔들리니.]다시 눈을 떴을 때, 방금의 화살은 누군가의 손에 붙들려 있었다.
···아니, ‘무언가’의 손이라 하는 편이 낫겠다.
마치 ‘바람’이 실체를 갖추고서 화살을 붙잡은 것 같아 보였다.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불화살들 역시 공중에 멈춰있었다. 그 기적에 모두가 놀라 무릎을 꿇고 각자의 신들을 향하여 읊조리니··· 오난의 앞에 서 있던 ‘바람’은 손을 내젓는다.
-콰직.
그러자 한 줄기 돌풍에, 화살들은 모두 부러지고 그 끝에 붙어있던 불들 역시 꺼진다. 천막마다 옮겨붙던 불꽃 역시 빠르게 그 기세가 사그라진다.
[폭풍을 일으키는 타르훈트여, 어찌하시겠습니까?] [대왕에게 상황을 전하라. 아마 병사들을 내어 적들을 추적하겠지. 당장 다치거나 상한 이들은 많지 않으나 모두가 겁에 질렸으니.]‘바람’은 곧 거인처럼 거대하게 자라난다. 흩날리는 재와 불꽃과 여러 잔해가 그의 왕관이 되고, 밤의 별빛이 그것의 눈이 된다.
[나 역시 그들을 도우리라.]그러자, 마치 환상이었다는 듯 신들의 형상은 오난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는 벌벌 떨며··· 저 머나먼 고향 땅을 다스리는 신들께 기도를 올릴 뿐이었다.
***
“움직인다!! 당장 후방으로 움직여!!”
내 말에 기병대원들은 일제히 적진 가까이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면서도 상체는 뒤로 틀어 마지막 남은 불화살들까지 쏴제끼는 걸 잊지 않았다.
50명 정도 되는 병력으로, 그 수십 배 되는 병력을 어떻게 괴롭힐 수 있을까?
여러 방법을 고민해봤지만, 그 중 가장 확실한 게 이거였다.
유황, 역청, 기름을 섞은 혼합물에 적신 화살.
다른 곳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불화살’이라는 투사체.
그것을 수십 명이 동시에 쏘아낸 다음,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 방금의 과정을 반복한다.
“저기, 화려한 갑옷을 걸친 이들이 나옵니다!!”
“다들 비키게!!!!”
거기다가, 나는 일리아스에서 가장 뛰어난 궁수다. 파리스는 원전에서도 수많은 영웅들을 저격해낸다.
내 말에 다른 기병대원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내 시야를 터준다.
한밤중이라도, 내 시야는 희끄무레한 형체들 사이에서 표적을 감지해낸다. 수많은 호위들이 주요 인사로 보이는 이를 감싸고 있다.
-쉬시시시싯!!!!
첫 번째 화살이 내 손을 떠난다. 호위 무사 중 한 사람이 몸을 던져 방패로 화살을 막아내고 어깨까지 꿰둟린다.
경악한 병사들이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경계할 때.
-쉬이이이익!!!!.
“허억··· 컥···.”
두 번째 화살이 크게 곡선을 그리며 그들의 사각을 찌른다.
화살은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다. 즉사다.
적들과의 거리는 못해도 300미터쯤 떨어져 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구릉지 사이 적들의 사각을 오가니 하투샤군 역시 우리를 쉬이 탐지해내지 못했다.
요인으로 보이는 이들만 서넛 저격했고, 수백 명이 잠들어 있는 천막에 불을 질렀으니 적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목표는 이미 달성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잠시 구릉지 위에 올라 적 군영을 내려다본다. 잿물을 발라 탁하게 만든 갑옷은 불빛을 튕겨내는 일 없이 어둠 속에 녹아든다.
적들이 곳곳에 피운 불이 수백, 수천 줄기의 연기를 내뿜으며 공기를 탁하게 만든다.
역시 많다.
머릿수는 우리보다 많고, 전열도 우리보다 정돈되어 있다.
전차의 수는 못해도 1,000대쯤··· 대왕의 것으로 보이는 천막 근처에 몰린 정예병의 머릿수는···
몇 개의 도시를 모아놓은 듯 압도적이다. 우리가 불을 붙이고 난리를 피워 혼란해진 곳을 보니 벌레가 손가락을 문 수준일 뿐이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젓는다. 겁 먹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크고 강한 인간이라도 벌레가 세게 물면 아프겠지. 그 정도만이라도 충분하다. 어차피 그 정도를 생각하고 온 것이니까.
“파리스 님!! 적 전차들이 추적해옵니다!!”
“적들이 오는 방향은?”
“3면에서 달려옵니다! 저희의 위치를 특정한 게 분명합니다!!”
놀라지 않았다. 적들이 우리를 어떻게 발견했는지도 묻지 않았다. 지금 고개를 들면 하투샤 만신전의 신들이 불러온 폭풍이 우리 어깨를 짓누르고 있을 테니.
올빼미가 내 어깨에 앉은 다음, 다시 서쪽으로 날아오른다.
“···서쪽으로 간다.”
“그곳으로 가면 적 전차들과 정면으로 부딪힙니다!”
“그럼 정면으로 뚫고 간다.”
내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병사들은 없었다. 대신 그들은 각자 투창과 활을 집어들 뿐이었다.
“내가 앞장선다. 쐐기 형태로 대오를 유지하며 따라오라.”
-푸르릉!.
부케팔로스는 가볍게 투레질치더니 곧장 질주한다. 수십 마리의 말이 대지를 두드리며 산사태 같은 폭음을 낸다.
적 전차부대는 우리가 질주해오자 당황했는지 급하게 활을 장전한다. 화살과 투창이 조금씩 날아오지만 거기에 맞은 이들은 없었다.
나는 조용히 헤파이스토스께 기도를 올린다.
“망치.”
그러자 신의 불꽃이 손 안에서 피어올랐다. 나는 방향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직진했다. 적 전차와 충돌하기 직전까지.
“저, 정신나간···!!”
적 기수가 네샤어로 외치며 급하게 고삐를 잡아당긴다. 그들이 급정거하기 전에 나는 옆으로 빠르게 방향을 틀어 적 전차의 옆을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쾅!!!!
망치로 적 기수의 머리를 날려버린다.
전차는 구동부가 탑승부보다 한참 앞에 놓여 있는데다 바퀴도 둘뿐이다. 구조적으로 선회가 어려울 뿐더러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
-쾅!!
-콰직!!
기병대원들이 창으로 적들을 찌르며 그대로 통과하는데도 적 전차부대는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랐다. 급선회를 시도하다가 전차끼리 부딪히거나, 멈춰선 상태에서 말이나 병사가 우리 병사들의 습격에 죽어갔다.
“포위망을 뚫었습니다!”
“이대로 아군 진영까지 돌아간다!”
수확이 나쁘지 않다. 바로 하루나 이틀 뒤에 전투로 들어갈 것이라면, 이 정도로 적들의 기세를 꺾어놓는 것도 크게 작용···
[교만하구나.]-쿵!!!!
나는 순간 정신이 멍해진다.
마치 육중한 차량이 내 옆구리를 들이받은 것 같은 충격을 느낀다. 겨우 고삐를 놓치지 않고서, 나는 부케팔로스의 위에 매달려 있을 수 있었다.
옆을 보니 아무것도 없다.
다가오는 폭풍 말고는.
폭풍.
하투샤의 거친 땅에 부는 바람.
그들이 쇠를 벼려낼 수 있도록 도와준 돌풍.
“다들 조심하라!! 신들의 공격이다!!”
-쿠콰콰콰콰콰쾅!!!!
내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다시 충격이 나를 향해 부딪힌다. 다른 기병대원들 역시 크게 휘청이다가 다시 나아간다. 한둘은 말의 다리가 부숴졌는지 그대로 거꾸러졌다.
[나의 백성들을 해하고서, 무사히 나가리라 생각하였더냐.]나는 입 안 가득 퍼지는 쇠비린내를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귓가에서 바람과 바람이 부딪히며 기이한 쇳소리를 냈고, 그것이 내게 속삭여댔다.
[고개를 들라.]그 압도감에, 나는 정신없이 내달리다가 문득 머리를 살짝 들어올렸고.
나를 향해 정통으로 부딪혀오는, 바람으로 이루어진 거인의 형상을 보았다.
그것의 손아귀가 내 머리를 으스러뜨리려 한다. 피할 수가 없을 듯했다.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내 관자놀이를 찌그러뜨리려 한다. 나는 그 고통에 뇌가 박살나는 고통을 느끼며 비명질렀다.
-화륵.
내 가슴팍에서부터 미약한 불꽃이 타오른다.
내 가슴팍에 매여 있는, 호루스의 눈 문양의 작은 목걸이. 나는 파라오가 가르쳐준 주문의 내용을 떠올린다.
“켄티이···멘투(Khenty-imentu).”
신들의 이름은 힘을 담고 있나니.
위대한 사후세계의 지배자시여.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오신 영원불멸한 분이시여.
그러자 황금빛의 섬광이 폭풍의 손을 찢어발긴다.
‘폭풍’은 가벼운 신음성과 함께 손에서 내 머리를 놓쳤고, 그것이 다른 손으로 나를 옥죄려 하자 이번에는 올빼미 수십 마리가 달려들어 그 폭풍을 흩어놓는다.
[안탄드로스의 왕이여! 돌아가라!! 내가 그대의 등 뒤를 지킬 터이니!!]나는 그 목소리에 무심코 뒤돌아본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 깃털이 강철로 화(化)한 올빼미들이 맞서는 가운데, 셀 수 없이 많은 ‘무언가’들이 작은 새떼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수십의 신들, 수백의 괴물들.
그것들의 권능이 서로 뒤엉켜 내 이해를 넘어서는 광경을 자아낸다.
이빨이 달린 폭풍 속에서 불꽃이 물을 태우며 반짝이고, 흙과 나무가 수백 개의 눈을 깜빡이면서 제 몸을 휘두르며, 어느새 나뭇가지와 잎이 돋아난 짐승들이 서로를 씹어먹으며 몸집을 불린다.
나는 망설임 없이 정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몇몇 기병대원들이 그 광경을 보고 정신이 나가 말에서 떨어지지만 그들을 붙잡을 시간은 없었다.
고삐를 꽉 쥔 채, 몸을 숙이고 질주한다. 잠시 대열에서 떨어져나갔던 기병대원들도 내가 다시 앞서나가자 내 좌우로 정렬하여 내달렸다.
그렇게 말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땀과 피를 흘리며 휘청이게 될 때까지.
해가 다시 떠오를 때쯤에 우리는 겨우 아군 진영에 닿을 수 있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나와 나를 배웅했다.
“파리스!! 너, 몰골이···!!”
“···어떻길래?”
내 말에 이노는 아무 말 없이 거울을 내민다.
눈, 코, 입, 귀에서 온통 피가 흐른다. 그 모습을 보고 나마저도 놀라 흠칫 떨었다.
이노는 곧장 내 입에 약초를 여럿 쑤셔넣었고, 그 다음에 뭔가를 끓인 물로 얼굴을 씻어내자 내상은 사라진 채였다.
“···후우우.”
“파리스? 이제야 좀 나아보이는군. 상황은 어땠나?”
내가 고개를 들자 여러 왕들이 세수를 마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내게 말을 꺼낸 레소스에게 답했다.
“진지 곳곳에 불을 지르고 들쑤셔 놓았으니 아마 내일쯤 만나면 꽤나 피로한 상태겠지요. 왕들도 여럿 죽였습니다.”
전투 직전에 적들의 사기를 떨구고, 지휘 체계를 어그러뜨렸다.
괜찮은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