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489
“잠시만 기다려 봐. 여기서 가속을 해줘야 언덕 중간에 걸려서 시동 꺼지는 일이 없어서···.”
이장은 그리 말하며 말하며 세레스의 악셀을 밟는다. 나는 그러려니 했다. 왠지는 몰라도 그런 사소한 문제보다도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요동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어, 뭐여, 이거 왜 브레이크가 안 먹···”
-우우우우우우우웅!
불혹의 나이를 넘긴 차체가 언덕을 넘어서도 속도를 더해가며 위험천만하게 질주하고 이장도 차량의 속도를 늦추려 핸들을 조심스레 돌리거나 기어를 돌리는데 역시나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문제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흘낏 눈을 돌리니 안전벨트는 끊어져 있다. 왠지 그럴 줄 알았다.
“···스!”
여기서 나는 죽나?
아마도?
왠지 그럴 것 같더라···. 왠지···.
“···리스···!!”
갑자기 그 사실을 자각하자 기이하리만치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까까지 일어나던 마음의 요동이 사라지고 씁쓸한 눈물이 한 방울 맺혔다가 관자놀이 쪽으로 날아가 흩어진다.
그래.
이게 당연한 결과다.
이래야만 했다.
눈앞의 사과나무가 가까워진다. 나는 그곳이 내 삶의 종착지임을 깨닫고 받아들였다. 나는···
“파리스!!!!”
누군가 ‘내 이름’을 외친다.
저게, ‘내 이름’이다.
나는 아겔라오스와 프리아모스의 아들 파리스. 나는 안탄드로스의 양치기이고 대장장이. 이노의 연인이자 남편이자 공동 통치자. 코리토스와 멍멍이의 아빠. 트로이아의 프리아모스의 둘째 왕자이자 안탄드로스의 왕이고 ‘알렉산드로스’이면서 가끔 ‘아이깁토스의 방화자’ 따위 시덥잖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그게 나다.
나야.
“파리스!! 떠나지 마!!!!”
외침. 사과나무 앞에 나타나는 어떤 여인의 형상.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
내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사람.
난···
“···널 떠날 수 없어.”
그리고.
충돌 직전 모든 게 흩어져 사라진다.
다시··· 공허가 되돌아온다.
4륜구동 트럭과 크로노스와 나와 온갖 잡동사니뿐인 이 어두운 공간으로.
“···아.”
나는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졌다.
그리고 울었다.
나, 나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내가 새로운 삶에서 얻은 인연을, 사랑을, 그녀를, 이노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분명, 분명히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어떻게 끔찍하게 삶을 끝내게 될지 알 수 없는데··· 내 이성은 이걸 최선의 길이라 택하고 죽으러 간 건데···
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내게 지켜야 할 이들이 있는 한, 나는 스스로 죽을 수 없다.
크로노스가, 나를 보며 무미건조하게 말한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다.]···나도 잘 안다.
[이 세상이 네게 가할 불가해한 폭력에 떨거라, 가련한 양치기여.파멸이 온다.]
이제 이 세상의 겨울은 끝나지 않으리라.
***
“허억···헉···.”
“오이노네? 괜찮소?”
“파리스를 구했···. 다들, 어떻게···?”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오이노네가 그리 묻자, 헥토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주위를 돌아본다.
모든 상황이 끔찍했다.
-쿠콰콰콰콰쾅!!!!!!
“아이네이아스 님!! 철쇄대, 물러나라!!!!”
아이네이아스가 있던 곳에 결국 포격이 떨어졌다. 철쇄대원들이 만신창이가 된 아이네이아스를 호위하며 쇄도하는 적들을 방어하느라 수도 없이 쓰러지고 있다.
그게, 시작이었다. 겨우 짜놓았던 방어선이 허물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테오는 오이노네가 없는 동안 전방을 돌아다니며 지휘를 병행하다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채 악다구니만으로 싸워간다. 펜테실레이아가 사력을 다해 그를 지켰지만 부상을 입은 이를 함께 두고 싸우는 일은 여왕에게도 부담이었다.
역시나 비슷한 일은 다른 이들 사이에서도 일어났다.
처음 포격을 막아낸 뒤, 아이네이아스가 다친 것을 보고 무리하던 오디세우스는 적들의 포대가 있는 깊숙이까지 쳐들어갔다가 무수한 총상과 함께 돌아왔다. 아킬레우스가 그를 실어나르고 호위하는 틈에 디오메데스와 파트로클로스 역시 다쳤다.
아이네이아스가, 다행히 몸을 일으켰으니 일단은 모두가 싸울 수 있다. 일단은.
그렇지만 이제 멀쩡한 기량으로 싸움을 이어나갈 수 있는 건 두 사람뿐이다.
“헤, 헥토르 님? 이제 어떻게 해야···”
“네 연인은 우선 후방으로 빼왔나···? 잘했군. 그럼, 우리끼리 버텨봐야지.”
헥토르와 아킬레우스.
그들이 시간을 벌어야 한다.
헥토르는 다시 지쳐 쓰러져가는 오이노네를 천천히 부축해 앉힌 다음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시야의 반을 가리는 거체가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헥토르는 저 괴물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그저 입을 벌려 집채 하나를 삼킬 수 있을 정도의 괴물 같은 늑대라는 사실만을 알 수 있었을 뿐.
아마 파리스였다면 그것을 ‘펜리르(Fenrir)’라 불렀으리라.
헥토르는 조금의 긴장과 함께, 그러나 두려움은 없이 손가락을 들어 그 괴물을 가리켜보였다.
“이제 ‘저것’을 사냥한다.”
그리고 헥토르는 달려나가 그것의 무릎에 장창을 찍고서 날아올랐다. 아킬레우스 역시 그 왼쪽 눈을 향해 투창을 던진다.
-콰드득!!
-쿵!!!!
그러나 ‘이것’은 지금껏 만났던 다른 괴물과는 차원이 달랐다. 펜리르는 그를 향해 달려드는 헥토르를 왼발로 쳐낸 다음, 아킬레우스의 투창을 눈꺼풀만으로 붙잡고 부숴버렸다.
“맙소···”
“아킬레우스, 피해라!!”
-쿵!!!!
[크르르르르르!!!!]괴물은 성큼성큼 나아가며 아킬레우스에게 발톱 세운 발을 내던졌다. 아킬레우스가 가까스로 그를 피해내자 옆에서 비틀거리며 착지한 헥토르를 곧장 그 발로 내리찍는다.
-콰쾅!!!!!!
헥토르는 이를 갈아내며 그 무지막지한 압력을 버텨낸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도우려다 그가 고개 젓는 것을 보고는 무언가 깨닫는다.
아킬레우스는 뒤돌아본다.
자기 자신과 테오에게 붕대를 감고 있는 펜테실레이아, 붕대를 감아지며 총을 쏴대는 테오, 기절한 오이노네와 디오메데스 그리고 파트로클로스, 이를 악 문 채 실로 상처를 봉합하는 오디세우스···.
헥토르는 지금, 시간을 벌려는 것이다.
자신이 짓뭉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다친 동료들이 조금이라도 더 회복할 시간을 벌어주려고.
아킬레우스는 악다구니를 쓰며 늑대의 아랫배 쪽으로 향해 미친듯이 투창을 던져대기 시작한다. 기절한 아이네이아스로부터 가져온 투창이 펜리르의 아랫배를 미친듯이 찔러대기 시작한다.
헥토르는 서서히, 자신이 밟고 있는 지반이 버티지 못해 균형을 잃고 무릎 꿇는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을 짓밟고 찢으려 이빨과 발톱을 들이대는 펜리르의 공격을 피하며 숨이 찬 듯 헉헉거린다.
···이제는 정말 얼마 안 남았다.
정말로.
희망이 사라졌다 판단한 아킬레우스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늑대의 머리통과 이빨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그 너머의 하늘에서.
무언가 반짝임을 본다.
***
이다 산 깊은 기슭을 파헤치던 이들은 곧 인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발자국은 하늘에서 떨어진 재와 눈 때문에 모두 가려졌지만, 다행히 부러진 나뭇가지와 요정들의 속삭임이 그녀의 행적을 가르쳐주었다.
마침내, 그들은 어느 동굴에 닿았다. 아노이토스가 앞장선 가운데 어느 시종이 큰 소리로 외치며 횃불 쥔 손을 흔들었다.
“저, 저기!! 카산드라 님께서 계신다!!”
“아노이토스 님? 카산드라 님이십니다!!”
“젠장··· 어서 옮겨! 다들 뭐 하나? 주군의 누이동생을 얼어죽게 만들 셈인가!!”
아노이토스는 손수 눈을 헤쳐가며 동굴 안쪽 깊숙한 곳까지 닿았다. 거기서 눈에 반쯤 파묻힌 카산드라를 발견하고 꺼낸다.
카산드라의 눈꺼풀이 흔들리다가, 잠시 열린다. 그녀는 입을 우물거린다.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그리고 작게 속삭인다.
“아··· 안 돼. 오이노네 님께 전해야···”
“일단 불을 가까이 가져와!!”
“···전해줘야···”
“어서 카산드라 님을 모시게! 어서!!”
그 속삭임은 너무도 작아서 다른 이들에게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카산드라는 온 힘을 짜내가며 말하고 있었다.
“전해야···해.
지원군이··· 올 거라고···.”
카산드라는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반짝이는 빛을 보았다.
얼음처럼 차갑게 반짝이는, 예리한 낫날의 빛.
***
그리고.
-카카카카카칵!!!!!!
[···신들이시여, 이 낫의 위대한 권능으로써 이 불가해한 장소에 왔나니.]그 반짝이는 낫이 높은 곳에서 떨어져 펜리르의 목을 베어버린다.
“···.”
“···.”
곧 늑대의 거구가 쿵,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 그 탓에 적들의 전차 몇 대가 찌그러지고 무너진다. 그 틈에 철쇄대원들이 진격해 적들을 향해 총알과 투창을 난사하며 승기를 쥐어잡는다.
하지만 막 살아난 헥토르와 아킬레우스 두 사람은 조용히 무기를 고쳐쥐며 낫이 떨어진 쪽을 노려본다.
저 낫의 주인이 아군일지, 적군일지 알 수 없었으니.
[신들의 대계가··· 틀어지고 틀어져 여기까지 왔구나.]그리고.
그들은 망토를 벗은 한 남자가 낫을 들어올리는 것을 본다.
군데군데 생자(生者)의 몸에 날 수 없는 상처와 흰 뼈가 드러나 있었지만, 그는 분명 그들이 아는 사람이었다.
어깨에 멘 리라가 그가 헤르메스의 신도임을 드러냈고, 기이하게 잽싼 손동작이 그의 직종을 알려주었으니까.
“아, 아우톨리코스···.”
그들 역시 헤라클레스의 스승이던 위대한 도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났으니까.
헤르메스의 아들 아우톨리코스는 조용히 시선을 돌려 주위를 돌아보고는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내 손자는··· 살아있군. 좋아. 내 외손의 시신을 거둘 일은 생기지 않아 좋구나.]아우톨리코스는 뒤돌아서서, 저 수많은 적들을 향해 낫을 들어올린다. 하늘에는 여전히 낫으로 갈려나간 듯한 상처가 허공에 남아 있었다.
그 허공의 상처로부터 아우톨리코스와 마찬가지로 뼈와 상처가 드러난 전사들이 떨어진다.
[오게나, 나의 오랜 벗들이여. 헤르메스 님께 맹세코 이번 전투가 끝나면 그대들은 엘리시온에 갈 터이니.멜레아그로스, 이아손, 오르페우스. 악타이온, 아탈란테··· 그리고 모두들.]
수십 명의 전사들이, 적들을 노려본다. AK-47을 든 소련군부터, 경기관총을 든 조선군까지 모두가 그 존재감만으로 멈춰선다.
아우톨리코스는 그들을 노려보다가 곧 여유 넘치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한다.
[적을 죽일 시간일세.]그렇게 아르고 호에 올라 황금양털을 훔치고, 칼리돈의 멧돼지를 사냥한 영웅들이 모였다. 그들은 적들에게 돌격했다.
한 사람의 양치기를 지키기 위하여.
우화
“어··· 어?”
오이노네는 비틀거리는 머리를 붙들며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자 다른 동료들이 눈에 띈다.
붕대로 서로의 몸을 칭칭 감던 테오와 펜테실레이아든, 기절해 있던 디오메데스와 파트로클로스든, 제 상처를 스스로 치료하던 오디세우스든··· 이제 다들 일어나서 무기를 쥐고 있다.
다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어··· 다들, 뭐해요?”
다들 멀뚱멀뚱 서있기만 했다는 점이다.
분명, 그럴 때가 아닐 텐데.
그녀가 비몽사몽 중일 때 이미 방어선은 크게 후퇴했고 지금은 더한 열세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상황에서 여유를 부리다니?
테오에게 붕대를 감고 있는 펜테실레이아, 붕대를 감아지며 총을 쏴대는 테오, 기절한 오이노네와 디오메데스 그리고 파트로클로스, 이를 악문 채 실로 상처를 봉합하는 오디세우스··· 그들이 전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니 답답하면서도 의아할 뿐이었다.
‘혹시 정신을 세뇌하는 괴물이라도 있나?’
마치 세이렌처럼?
그 생각이 들자 오이노네는 급하게 귀를 막고 눈을 감은 뒤 쪼그려 앉는다. 나, 나라도 무사해야 해! 그래야 파리스를 구할 수···!
“케브렌의 딸이여, 뭐 하시오?”
“어··· 여, 여, 여왕님은요?”
어깨를 툭툭 치는 펜테실레이아에게 무심코 반응해버렸다!
오이노네가 당황한 채 말을 더듬으며 묻자 아마존의 여왕은 그저 손가락으로 저 너머를 가리킬 뿐이었다. 오이노네는 키가 작아 동료들 너머의 풍경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자존심이 상해 굳이 그를 언급하지 않고 까치발을 들었다.
그리고···
-콰콰콰콰쾅!!!!
-콰드드득!!!!
반쯤 시체처럼 보이는 이들이, 그들을 대신해 싸우고 있다.
그들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고, 저들의 싸움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저들은··· 무한한 적들 앞에서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다.
“맙소사··· 옛 영웅들···.”
-짝!!
“오, 오이노네? 뭘 하는···”
“다들, 뭐하고 있어요? 우리가 버티고 있잖아!!”
상황을 파악한 오이노네는 오디세우스의 등짝을 내리치며 입을 열었다.
“나가서 싸워야지!! 시간을 벌어야지!!
파리스를 위해서라도!!!!”
“···.”
“···.”
“···.”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듯 영웅들은 각기 일어난다. 그리고 전장으로 달려나간다.
오이노네는 그 자리에 남아 남은 철쇄대원들의 숫자와 새로 충원된 영웅들의 십수 명의 전력을 비교해본다. 그리고 짜낼 수 있을 최적의 전략을···
‘···모자라.’
어떤 적이, 언제, 얼마나 쳐들어올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최적의 전략을 짤 수 있겠나? 지금도 곳곳에 포격이 쏟아지니 영웅들과 남은 철쇄대원들이 아무리 분전해도 한계가 보인다.
쓰러지기 전까지는 카산드라가 있었기에···
카산드라.
오이노네는 슬며시 관자놀이 부근을 만지며, 속삭이다.
“어디에··· 있는 거야, 카산드라?”
***
“아윽··· 끄으윽···.”
“카산드라 님께서 깨어나셨어요!”
“어서 물부터 가져와!!”
시녀들이 급히 카산드라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고 그녀의 몸을 덮은 무거운 이불을 젖혀준다. 그러자 숨이 통하는 듯 카산드라의 호흡이 가빠지더니 곧, 눈을 뜬다.
“여, 여···긴···?”
“카산드라 님!”
-쿵.
방으로 들어선 것은 아노이토스와 그의 시종들이었다.
“죄송합니다. 우선 가까운 저희 저택의 손님용 방으로 모셨습니다. 일단 요양을 하시다가 궁전으로 옮겨가시면···”
“안 되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해···! 오이노네 님이···”
카산드라의 목구멍에서부터 어떤 간지러운 느낌이 올라온다. 오랫동안 참아온 토악질이 올라오듯 그녀의 것이면서 그녀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올라온다. 그녀의 의지와 상관 없이.
[나, 나는, 가야 한단 말이다!! 다른 모두를 구해야 해!!!! 모두가 위험해질지 모른단···.]···나와 버렸다.
그 이름 모를 목소리의 도움도 없이, ‘예언’을 해버렸다.
“하하, 하··· 카산드라 님께서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으셔도 그분들은 잘 해낼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위대한 영웅께서 이끄시는 항해 아닙니까?”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아노이토스의 예의바른 거절과 불신 어린 시선에 카산드라는 깊은 좌절감을 느끼면서도··· 이제 상황이 손쓸 수 없을 지경까지 왔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몸은 한계까지 쇠약해졌다. 다시 저 설산을 향해 나아가 무엇을 한들 금방 그녀는 지쳐 쓰러지고 말리라.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했다.
울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참아내자 어깨가 들썩인다. 무력감이 온몸으로 뻗쳐나간다. 아노이토스는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옆으로 비켜서주었다. 그녀가 홀로 그녀의 감정을 곱씹을 수 있도록.
일평생 동안··· 그녀는 벌을 받는 듯했다.
왜?
평생 동안 신에게 봉사하고, 신을 향해 사랑을 바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도 헬레노스처럼 그런 삶을 살아야만 했나?
아폴론을 모시기를 거부한 뒤, 그녀의 삶은 끔찍해졌다. 세상으로부터 떨어져나와, 홀로 떠돌며 살아가는 이 외로움을 견디고 싶지도 않았다.
복종과 예속은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