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490
그러나 외로움 역시 그만큼 끔찍했다.
차라리.
차라리, 지금이라도 아폴론의 제안을 다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덜컥.
···어?
갑자기 덜컹거리는 소리에 카산드라는 고개를 든다.
아, 여기가 그 괴짜의 집이라고 했었지. 영웅과 신들에 대한 온갖 잡동사니를 모은다는.
선반과 진열장에 저렇게 정성들여 보존한 무구들이 손님용 방에도 진열되어 있다. 개중에서 ‘아르고 호의 잔해’라고 적힌 물건이 마구 흔들리며 소리를 낸다. 그야 그럴 것이다. 아르고 호는 위험을 감지하면 소리를 내는 배였으니까.
지금은 어디든 위험하니까.
온갖 불가사의한 물건들이 손님용 방 안에 놓여 있었다. 영원히 불타는 깃털, 절대 깨지지 않는 비늘, 녹슬지 않는 칼날···.
생각해보면··· 들은 바가 있다.
기이한 ‘상인’이, 저런 불가해한 권능을 가진 물건들을 사고 팔며 어느 순간 사라지도록 만들어버린다고.
그 속에 깃든 불가사의한 축복을 지워버리고 파괴하거나 보통의 골동품으로 만들어버린다고.
그건··· 오라버니도 해준 말이었고.
그 상인의 이름은 아우톨리코스.
왜, 신들은 그런 일을 벌였을까? 영웅들에 대한 질투심? 말도 안 된다.
카산드라는 안다. 신들은 인간이 아니다. 신들은 더 심원한 존재들이다. 인간의 두뇌로는 상상하지 못할 거대한 존재가 바로 신이다.
그런 존재를 거부했기에··· 카산드라는 이 세상에서 튕겨나가 홀로 살 수밖에 없게 된 것이고.
대체, 신들이란 무엇이기에 인간의 이해 바깥에 존재하는가?
그러면서도, 대체 왜 그런 불가해한 이들이 인간의 기도에 응답하는가.
어째서···
[그야 우리가 그들을 믿으니까. 기도를 올리고, 제사를 지내니까.]···아.
아.
작은 깨달음의 순간이 그녀에게 닥쳐온다. 지식의 파편들이 단번에 맞춰치며 큰 그림을 그린다. 그렇다. 신들은···
[카산드라.]“···어?”
‘목소리’의 부름에 그녀의 상념이 깨진다. 카산드라가 급히 뒤돌아보자 그곳에서··· 아주 익숙한 누군가의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카산드라, 도와줘.네가 필요해.]
카산드라는 홀린 듯 눈을 깜빡인다.
그러자 공허가 보였다.
그 속에서 번민하는 파리스가.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옆에는, 아주 익숙한 얼굴이 그녀를 부드러운 미소로 바라보고 있다.
“···아노이토스?”
“예, 카산드라 님.”
“이게 보이나···?”
“뭘 말씀이십니까?”
“···.”
[아직은 내가 저들에게 보이지 않겠지.네가 도와줘야 해. 카산드라.]
형상의 말에 카산드라는 입을 열었다.
“아, 아노이토스?”
“예, 카산드라 님.”
“이 도시의 알렉산드로스 신자들을 모두 모으게. 아니, 모을 수 있는 이라면 모두 모아 할 수 있는 한 큰 불을 피우게!!”
“···예? 수만 명은 될 텐데요?”
“수십만 명이 될지라도 모으게! 광장으로든 어디로든 모아놓고서 불을 피우고 기도를 올리게!”
“누구를 향해서 말입니까?”
“누구겠나!!”
카산드라의 외침에 아노이토스는 잠시 멍해졌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방 밖으로 급히 나서는 걸 본 카산드라는 심호흡을 내쉬며 한발짝 앞으로 발을 내디딘다.
공허가 그녀에게 엄습한다.
저 눈앞에 파리스가 보인다. 크로노스의 앞에 무릎 꿇은 파리스가.
[자, 가서 저 불쌍한 아이를 구해줘.]카산드라는 달렸다.
[···나를 도와줘.]파리스를 향해서.
***
[프리아모스의 아들 파리스. 나는 네가 아는 것들을 모두 안다.]“···그게 무슨 뜻이오?”
[예를 들자면, 아킬레우스의 약점이라든가.]시계반을 덮는 크리스탈 글라스에 무언가 비쳐보인다. 괴물 같이 커다란 바다뱀을 때려잡는 아킬레우스의 뒤쪽에서, 어느 미군 저격수가 천천히 조준경을 옮겨 그의 머리를 노린다.
[내가, 저자에게 한마디만 해주면 지금 아킬레우스는 죽는다.]“···.”
[사실 내가 그리하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이 땅을 밟은 모두가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시기가 빠르고 늦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필멸자의 아들아. 너는 무엇을 기대하였느냐?‘악당’을 꺾고서 세상을 구원하려 하였느냐?
그렇다면 틀렸다. 나는 악당이 아니다.]
일순간 수억 개의 시곗바늘, 시계 무브먼트들이 하나두씩 합쳐진다. 마치 별처럼 많은 금속과 목재 기자재들이 한곳으로 모이더니 작은 회중시계가 된다.
그리고, 한 왕관 쓴 노인이 그 회중시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한다.
[나는 섭리다. 그리고 너는 섭리에서 어긋났을 뿐.여기에는 선과 악도, 주동인물과 반동인물의 갈등도 낄 틈이 없다. 기름이 불에 타오르고 태양의 광선이 지구의 대기권에 부딪혀 반사되는 것에 어떤 선악과 갈등이 있더냐?
그러므로 받아들여라.]
···불합리하다.
[그것이 불합리하더라도. 세상은 본래 불합리한 것이니.]···부당하다.
[세상은 한낱 진화된 포유동물 한 종이 만들어낸 타당함과 부당함의 감각에 맞춰주지 않는다.]나는, 그저 이 세상에 던져졌을 뿐이다. 이 시대에 던져졌을 뿐인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고통이 주어지는 데는 이유가 없다. 이유를 따지는 것은 너희 필멸자들의 어리석은 습속이지.]노인은, ‘시간’은, 허공에서 낫을 들어올린 뒤 엄숙하게 선언한다.
[받아들여라.이 세상의 불가해함을.
그는 필연일지니.]
나는 아까 내가 내렸던 세레스를 바라본다. 그러자 크로노스가 낫을 들어올리더니 그 차체를 통째로 반으로 갈라버린다.
“···.”
[너는, 이미 선택을 내렸다. 두 번째 기회는 없다. 망설이고 고민할 시간조차 더는 줄 수 없다.]크로노스가 낫을 들어올린다. 우라노스의 성기를 자르고, 그를 왕위에 올린 낫이 서늘하게 번뜩인다.
[모순은 이곳에서 끝나리···.]그리 말하며 낫날이 나를 향해 쇄도한다.
나는 피하지도 않았다.
이게··· 최선이라면···.
“오라버니? 오라버니!!!!”
“···카산드라?”
[죽어라.] [싫어!!!!]-쿵!!!!!!
대낫의 궤적이 비틀린다. 그 순간, 크로노스의 무감정하던 얼굴이 살짝 비틀린다.
[무얼 하느냐? 너희는 섭리에 대해 가장 잘 알아야 할 이들이다. 어찌하여 내 말을 가로막느냐.] [그깟··· 섭리··· 불합리할 뿐이야.] [세상은, 불합리하다.] [맞아.]카산드라가 두 눈을 빛내며 말한다.
[그래서 신이 있는 거지. 그 불합리함을 메워주려고.]고개를 돌린 그녀가, 이번에는 나를 향해 말한다.
“오라버니? 모르겠어요? 태양은 하나뿐인데, 어째서 족속들마다 태양신이 따로 있죠?
태양 마차를 타고 다니는 헬리오스와 아폴론이 전쟁에 참전했는데도 여전히 태양은 하늘을 돌아다녔어요. 그럼 두 신은 가짜 태양인가요?”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우리는 왜 신을 믿는가?
왜?
***
-쿠쿠쿠쿠쿵!!!!
스파르타의 궁전 문이 열린다. 눈에 집이 무너져 떠도는 이들, 조난당한 이들, 집안이 너무 추웠던 이들이 모두 여왕의 궁전에 모여 자기들끼리 빵을 주워먹는다.
“여왕이시여!”
“내 백성들이니, 내가 먹이겠네. 결국 저들이 수확하고 만든 것 아닌가.”
헬레네는 그들에게 직접 빵을 나눠주며 그들 사이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어느 노래를 듣는다.
“헤파이스토스께 아낌받는 분이시여··· 디오니소스의 사랑받는 분이시여···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그들은 올리브나무를 깎아만든 작은 나무 망치를 쓰다듬으며, 기도를 읊조렸다.
그 기도가 파도처럼 퍼져나가 노래가 되고, 울림이 되고, 거대한 불길이 된다.
-화륵.
누군가 궁전의 중정에서 불을 피운다. 경악한 시종들이 그를 끄려 했으나 헬레네는 말렸다.
이곳까지 온 난민들 모두가 그 불이 구원자라도 되는 듯, 불꽃을 향하여 손을 내밀었으니까.
“···말리지 말게나.”
“여왕이시여, 궁전에 불이라도 옮겨붙으면 모두 얼어죽습니다!”
“사람에게서 희망을 빼앗으면 그 전에 죽어버리지. 그들의 희망을 뺏지 말게.”
“희···망이라뇨?”
헬레네는 시종을 보고, 그이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군중들을 보며 말한다.
“사람이 왜 신들께 기도 올리는지 아나?”
문득, 메넬라오스에게 사로잡혀 있을 그 시절을 떠올려본다.
그날의 간절한 기도들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 보일 때, 무엇이라도 하기 위해서야.”
“···.”
“이 작은 조각배가 저 파도에 뒤집힐지 아닐지 알 수 없을 때, 막을 수도 없을 때, 우리는 기도하는 거야.
그러면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세상의 피해자가 아니라··· 주인이 될 수 있으니까.”
기도함으로써.
신들에게 흥정함으로써.
그들은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으니까.
···헬레네는 그리 읊조리며 뒤돌아보려다 갑자기 군중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탄성에 문득 뒤돌아본다.
그러자 불꽃이 사람의 형상으로 변한다.
똑같은 기적이 안탄드로스에서, 트로이아에서, 미케네와 크노소스와 하투샤와 피람세스와 티레와 비블로스에서···.
온 문명세계에서 펼쳐진다.
불타오르는 망치를 든 남자가 불꽃의 몸을 입어 솟아오른다.
헬레네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 꿇는다.
이 자리의 모두가 그랬다.
문명세계의 모두가.
***
사람들은 왜 신을 섬기는가.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사물들을 불러 이름 붙이고 경배하며 제물을 바친다. 비가 오지 않으면 비를 불러달라 청하고 거대한 파도가 배를 삼킬 때면 자비를 청한다.
나는 카산드라의 말을 듣고 조용히 읊조린다.
“···지배하려고.”
자연을, 지배하려고.
“우리는 불합리한 자연 어딘가에 질서가 있으리라 믿고, 우리 손으로 통제할 수 있으리라 믿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으니까.”
이름 없는 폭풍은 포세이돈의 이름을 입고 나서 달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끔찍한 폭우와 저 하늘의 재앙을 위해 제우스라는 이름과 신상을 바치자 그와 교섭할 수 있었다.
전염병이 도시를 덮치고 모든 걸 무너뜨릴 때, 그들은 아폴론을 찾아가 치유를 청했다. 그렇게 자기자신과 질병 모두를 다스릴 수 있었다.
인간은 신을 통해 자연을 지배한다.
신이 인간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카산드라가 무릎꿇은 내게 손을 내뻗는다.
[그리고 나는··· 나는 오라버니를 믿겠어요.]나는 무심결에 그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나는 느낀다.
수많은 이들의 기도를 느낀다.
그들이 외친다.
이 끔찍한 재앙을 넘어서게 해달라고 아우성친다.
내일을 달라고, 희망을 달라고 울부짖는다.
그리고, 나는 카산드라를 마주본다.
인간이 세상과 교류하며 신이 나오니, 그 신을 거부하여 온 세상에서 거부당해버린 불쌍한 예언자.
그러나.
[내가··· 오라버니의 첫 번째 무녀가 되겠어요.]이제 우리는 구원받으리라.
[소용 없다! 프리아모스의 아들아!! 여전히 모순은 해소되지 않는다!! 이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이 세상을 만든 너는? 너는 어디서 나온다는 말이냐!!]크로노스가 낫을 휘두르며 뭐라 외친다.
그러나 그의 낫날은 내게 닿지 않는다.
나는··· 마치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그래. 그 모순을 끌어안겠다. 불가해한 것을 지배하겠다. 나는 그것을 포용할 의지의 신이니.] [모순이다!!] [그래. 나는 모순의 신이다.]내 등 뒤로 불꽃이 타오른다. 불타오르는 망치가 내 손에 쥐여진다.
[나는 모순의 담지자이자 그것의 해소자다. 나는 수많은 삶의 궤적이며, 약동이고, 종합이다.나는 역사다.
나는 계몽이다.
나는 ‘문명’이다.]
나는 이제야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한다. 마치 내 몸이 광속으로 우주로 쏘아지는 것만 같다. 이 세상이 너무나 초라한 푸른 점이 되고 내 앞에는 광활한 허공과 별들의 바다가 펼쳐지는 듯하다.
왠지 그래야 할 듯하여, 나는 망치를 들어올린다. 그러자 등 뒤에서 문이 열린다.
[나는 알렉산드로스다.]그리고 번뜩이는 빛과 함께 내 등 뒤로 10여 명의 ‘동료’가 함께 선다.
올림포스의 신들.
[···새로운 신이 우리를 승리로 이끌었으니.]제우스가 읊조리니.
[나의 비열한 아버지 크로노스여, 당신이 있을 곳은 이곳이 아닌 듯합니다.]마침내 그의 몸은 수억 개의 번개로 변한다. 전하가 끊임없이 튕겨나오고 움직이기를 반복하는 거대한 구름이 되어 퍼져나간다.
그리고 ‘야금술’이, ‘가정’과 ‘황홀경’과 ‘태양’과 ‘달’과 ‘바다’가 거기에 합세한다.
‘화로’와 ‘사랑’과 ‘전쟁’과 ‘지혜’와 ‘방랑’과 ‘대지’가 그들 옆에 선다.
크로노스 역시 ‘시간’이 된다. 그는 우주의 섭리가 되고, 그는 수많은 시계바늘이 된다.
나는···
나는 내 몸속에서부터 움터오르는 수많은 모순을 느낀다. 동시에 그것들이 해소되며 다시 변화하고 움트는 세상을 느낀다.
나는··· ‘문명’이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부딪힌다.
싸움은 시간 속에서 펼쳐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얼마나 길게 이어졌는지 묘사할 수는 없다. 필멸자의 언어를 통해서라면 더더욱.
그러나.
겨울은 여기서 끝났다.
마지막 스타시몬
-타타타타타타탕!!!!
···끔찍하게 아프다. 작고 무수히 많은 구리로 된 탄환들이 아킬레우스의 등과 가슴을 두드리는데 아프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의 몸에는 작은 멍 하나 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기에, 아킬레우스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갔다.
그는 다치지 않는다. 그의 육신과 불사신의 육신 사이에는 아주 얇은 벽만이 있을 뿐이었다. 결코 죽지 않는 몸을 가진 자에게 싸움이란 곧 정신력으로 얼마나 버티느냐에 달려있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했는데···.
“저, 저건··· 아킬레우스잖아!”
“뒤꿈치!! 뒤꿈치를 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