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super-class hunter with 10 times the experience RAW novel - Chapter 263
263화 마(魔)의 화신(3)
마족들의 사전에 패배란 단어는 없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
그들은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으므로.
“이 개같은 고블린들부터 치워!”
“마도 비석을 중심으로 모여라!”
치욕의 밤이라고 불리는 유일한 오점이 있기는 하나.
그것조차 실패였지, 패배는 아니었다.
마족에게 치욕의 밤을 안겨준 종족은 범차원의 역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결국 승리하는 건 마족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수만 년의 역사는 마족들의 승리를 입증하고 있었다.
“마계왕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크하하하!”
“찢어라, 죽여라! 저열한 인간들은 부활하지 못한다!”
전장을 넘나드는 강렬한 마기가 인간들을 죽이고, 그들의 장비를 파괴했다.
“마계왕이 대적자를 처치해 주실 거다!”
“남은 비석을 지켜!”
아직 남아 있는 6개의 마도 비석들 중심으로 마족은 인류에 대항했다.
“인간들이 조금 늘어났다고 달라질 건 없다. 비석을 지켜라!”
“다신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짓밟아라!”
신성마법계, 초기술마도계가 문명계의 전장에 가세했으나.
6개의 비석은 끝끝내 파괴되지 않았다.
인류의 병력과 아슬아슬한 균형이 맞추어진다. 밀어내지 못하지만, 결코 밀리지 않는 방어선이 형성되었다.
“함께 폭사해도 좋다. 모든 힘을 쏟아부어서 인류를 죽여라!”
그러나 마족들은 알고 있었다.
이 싸움이 길어질수록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가지고 있는 힘 자체는 비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아라.
인류는 연약하다.
인간들은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만으로 전투 불능에 빠진다.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일어설 수조차 없지 않은가.
각자의 재능과 능력의 한계가 뚜렷하다.
반면, 마족은 팔 다리가 잘려도. 심지어 머리가 날아가도 마기만 있다면 얼마든 재생할 수 있다.
마기만 충분하다면, 마족은 그 모든 일을 스스로 해낼 수 있다.
인류는 약하고.
마족은 강하다.
그것 하나로 정리가 된다.
이 싸움이 길어진다면······.
혹은 마계왕께서 대적자를 쓰러뜨리신다면.
필히 마족은 승리하리라.
마족들은 그리 자신하고 있었다.
인류 측에 새로운 병기가 나오기 전까진 말이다.
“응?”
마족 중 누군가가 먼저 눈치를 채고 고개를 돌렸다.
“자, 잠깐······. 정면을 봐라!”
“정면? 그래봤자다.”
“또 뭘 가져왔길—.”
콰아아아아앙!
지면에 꽂힌 푸른 마력 에너지가, 마족들과 비석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그들의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반경 1km 이내에 있는 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리는 일격.
파직, 파지직.
어떠한 충격파도 없었다.
그저 푸른 스파크가 잔류처럼 남아 번쩍일 뿐.
“어······?”
아슬아슬하게 폭발의 반경에서 살아남은 마족이 숨을 삼켰다.
고개를 올려 바라본 정면.
콰과과과과!
인류의 측에서 거인이 돌진해오고 있었다.
그냥 거인이 아니었다.
철갑으로 이뤄진 거인.
놈은 무기질적인 두 눈에서 푸른 마력 섬광을 흩날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콰아아앙!
등 뒤에 달린 날개를 통해 로켓과도 같은 마력을 내뿜으며 전장 가운데로 뛰어 들었다.
“크아아악!”
“도, 도망쳐라!”
“저, 정체 불명의 병기부터 없애라!”
마계의 전함들이 즉시 기갑 거인을 향해 화력을 집중했지만, 방어막처럼 형성된 초월역장을 뚫을 순 없었다.
“그, 그래! 이거지!”
조종석에 있던 시공의 마족 트레이아가 환희에 차서 소리쳤다.
기갑 거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인류가 숨긴 비장의 수였다.
초월 병기(超越兵器) 엑시아.
인간의 형상을 본따 만든 이 병기는 본래 초월자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콰아앙, 콰아앙—!
초월 병기 엑시아가 오른손을 펼치자, 팔목에 장치되어 있던 고출력 마력빔이 하늘의 전함들을 박살냈다.
마기 방어막을 전부 무시한 공격이었다.
산산조각이 난 전함의 잔해들이 비처럼 전장에 쏟아져 내렸다.
전함 세이비어도 이처럼 빠르고 손쉽게 전함을 쓸어버리지는 못했다.
조종석에 앉아 조종간을 당기는 트레이아의 입가에 복잡미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봐, 봐바······. 이렇게 셀 줄 알았다니까. 이것만 있었으면 대적자님도 그냥 이기는 거였을텐데······.”
무수한 시간선 속에서 트레이아는 초월 병기의 가능성을 봤다.
그래서 유클레스의 클론들을 통해 제작하려던 병기.
대적자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던 무기이나.
어쩌다보니 반대가 되었다.
더욱이, 엑시아는 유클레스 본인의 손을 거쳐 더욱 완벽한 초월병기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에라이, 모르겠다. 지금 마계왕도 가짜라면서!”
트레이아가 조종간을 당겼다. 그에 맞춰 엑시아의 등 뒤에서 고출력의 마력 부스터가 뿜어져 나왔다.
엑시아가 공간을 뚫고 단숨에 또다른 마도 비석 앞에 섰다.
이것이 초월 병기에 내장된 순수한 기동성.
“비켜, 비켜! 마계의 떨거지들아!”
트레이아가 붉은 눈을 빛내며 조종간을 움직였다.
발밑의 마족들이 개미처럼 보인다.
콰아앙—!
엑시아의 손끝에서 솟아난 마력 검날이 마도 비석을 꿰뚫었다.
이로서 남은 비석은 4개.
혼비백산한 마족들은 도망치기 바빴다. 공격 자체가 통하지 않는 적을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엑시아의 등장으로 인류는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어서 엑시아는 압도적인 기동성과 파괴력으로 마족의 전선을 붕괴시키며 전진했다.
마족의 거대 병기도 인류의 초월 병기 앞에서는 상대가 안 됐다.
“우, 우와······. 엄청 멋있잖아.”
전장을 나아가던 진세아가 초월병기를 보고서 잠시 멈춰섰다. 다른 헌터들도 감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초월 병기 덕분에 전장의 흐름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 지금입니다. 몰아 붙여야 할 때에요!
인이어를 통해 백묵의 목소리가 모든 헌터들에게 전해졌다. 초월 병기의 기세에 힘입어 인류의 사기는 더욱 끓어 올랐다.
“마족을 몰아내라!”
“으아아아!”
“가자—!”
인류의 본부 기지.
“으하하하! 그래, 내가 완성했지만 정말 굉장하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유클레스가 호탕한 웃음을 흘렸다.
초기술마도계의 천재 기술자 유클레스.
그는 초월 병기를 넘기고서 본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초월 병기를 완성하느라 쌓인 피곤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꼭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의 행방.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전쟁을 두 눈에 직접 새기고 싶었다.
백묵의 또한 초월 병기의 성능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고비는 넘겼다.’
그러나 이내 미소를 지우고서, 모니터를 바라봤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죠.’
마계의 군대를 몰아낸다고 해도 표면적인 승리다. 한 고비를 넘겼지만, 딱 한 고비를 넘어섰을 뿐이다.
초대형 게이트의 아래.
짙은 마기로 둘러 쌓인 장소.
저곳에 이지한과 마계왕이 있다.
이제 남은 건······.
마계왕과 이지한.
그 둘의 싸움에 달려 있다.
* * *
초월자는 어째서 전능한가.
초월의 좌에 오른 자는 무엇이 다른가?
그에 대한 답은 하나로 결정된다.
그들은 규칙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시스템의 규칙 아래에 존재한다.
그건 벗어나고 싶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주에 속한 존재가 우주의 법칙에 영향을 받듯.
시스템에 속해 있다면 그 규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콰아아앙!
그러나, 초월자는 가능하다.
시스템에 의해 구성된 기존의 법칙을 뒤흔드는 일이.
『 레전더리급 스킬 ‘극(極) : 체술 Lv.12’을 발휘합니다. 』
내가 휘두른 발차기에 실린 새하얀 기운이 마계왕을 덮쳤다. 마계왕은 팔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파직, 파지직—!
그의 팔 주변부로 스파크가 터져나왔다. 그의 검은 코트는 초월력을 두른 내 공격에도 불구하고 멀쩡했다.
지직—!
마계왕이 조금이지만 뒤로 밀려났다.
‘효과가 있다.’
초월력은 기존의 시스템을 깨부수는 힘.
초월력을 몸에 두른 지금이라면 마계왕이 장악하고 있는 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미미하다.
콰앙—! 콰앙!
나는 연달아 일자베기를 사용했다. 마계왕은 그저 손을 들어 막았다.
서걱—!
새하얀 격류가 치솟았다. 하지만 존재의 본질을 갈라냈어야 할 일자베기는 고작 놈의 옷깃을 잘라내는데서 그쳤다.
“······계속 방어만 할 셈인가.”
내가 초월력을 몸에 두른 순간부터 마계왕은 다시 방어 태세에 들어갔다.
나는 잠시 기감을 확장시켜 바깥의 상황을 살폈다.
고블린들, 신성마법계, 초기술마도계.
거기에 초월병기까지.
인류가 마계의 군대를 몰아내고 있다.
마계왕 주변에 몰려들었던 마족들도 전장에 뛰어들었다.
마족에게 명백히 불리한 상황이건만.
마계왕은 그저 방어만 하고 있다.
그의 능력은 견고하게 잘 짜여 있어 쉽게 뚫리지 않는다.
‘그래도 뚫어낼 방법은······.’
아직 남아 있다.
내가 초월력을 사용하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 이지한. 】
지금까지 침묵에 잠겨 있던 마계왕이.
입을 열었다.
“······!”
그 목소리는 마(魔)에 잠식되어 불분명하고 혼란스럽다. 노이즈가 낀 것처럼 불분명했지만, 소름끼치는 악의가 전해진다.
“드디어 말을 할 마음이 생겼나.”
【 그래. 】
검은 가면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빛은 무감정했다.
【 너는 다르다. 대화를 나눌 가치가 있다. 】
마계왕은 내 손목에 있는 초월의 팔찌를 가리켰다.
【 너는 명백히 다르다. 나에게 대적해 온 무수한 ‘이지한’들과는. 】
전조는 없었다.
이전 시공의 마족을 상대할 때와 마찬가지.
콰아앙—!
마계왕의 발차기가 내가 서 있떤 땅을 내리찍었다.
기교도 없는 단순한 발차기.
그것을 나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피해냈다. 그러나 시스템을 뒤흔드는 충격파까지는 막아낼 수 없었다.
충격파는 내 초월력을 관통했다.
“크윽!”
나는 그대로 튕겨져나가 바닥을 굴렀다. 전신을 뒤흔드는 격통에 제대로 착지조차 할 수 없었다.
쿨럭.
입에서 피가 솟구쳐 올라왔다. 검은 스파크가 내 등허리를 타고 올랐다. 스킬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 ······. 】
마계왕은 그런 나를 내려다보았다. 공격도 없이 그저 내려다볼 뿐이었다.
【 나는 너를 많이 아주 많이 상대해 왔지. 】
단편적인 이야기였지만, 그 말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무수한 시간선 속에서.
마계왕은 나와 끊임없이 대적해왔을 것이다.
그 결말이란 전부 나의 패배였겠지만.
【 따라서 나는 널 몰아 붙일 생각이 없다. 】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마계왕의 간섭을 몰아내고, 초월력을 사용해 몸을 회복 시켰다.
“······내가 성장하는 게 두렵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마계왕도 알고 있는 거다.
내 재능은 궁지에 몰렸을 때.
혹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달했을 때.
그제서야 타오르기 시작한다.
티끌처럼 작았던 재능이 작은 불씨를 품는다.
그것이 무재조정(無材調整)과 결합되면,
작았던 불씨는 거대한 화마(火魔)가 되어 상대를 집어 삼킨다.
눈 앞의 마계왕 또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리라.
무수히 많은 다른 시간선의 ‘나’를 상대해 봤으므로.
【 ······. 】
마계왕은 답하지 않았다.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뭐, 사실 두려울 리가 있겠는가.
마계왕은 시간마저 초월한 절대자.
나와의 전투도 그에겐 무수한 싸움 중 하나에 불과하리라.
하지만, 마지막 시간선이라는 것 외에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들이 몇가지 더 있다.
‘그렇게 나온다라······.’
나는 내 주위로 타오르는 초월력을 손끝에 끌어 모았다.
‘방법은 있다.’
『 헌터 이지한이 초월력을 사용해 시스템에 간섭합니다. 』
내게 걸쳐진 인과 ‘무재조정’.
그것은 단순히 경험치를 10만배로 만들어주는 것 뿐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나아갈 길을 비춰왔다.
팅!
내 손짓에 따라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 한계돌파 퀘스트 』
– 목표1 : 사도 트레이아 처치 ( 1 / 1 )
– 목표2 : 마계왕의 화신체 획득 ( 0 / 1 )
– 보상 : 시스템의 최대 레벨 확장, 1000년급 재능환, 초월의 코인 25개, 인과율에 따른 추가보상
모든 초월자들로부터 끌어모은 초월력을 소모해 나는 이 인과의 족쇄를 풀어낼 수 있었다.
이전에 아이템의 효과를 바꾸었던 것처럼.
시스템의 규칙에 초월력을 행사한다.
『 초월력이 한계 돌파 퀘스트에 영향을 미칩니다. 』
『 이계 규율이 주인의 의지에 따라 퀘스트에 간섭합니다. 』
파직, 파지직!
내 주변으로 푸른 스파크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막대한 초월력이 소모되고 있으나 상관 없다.
초월력은 넘칠만큼 있으니.
『 초월력에 의해 목표가 달성됩니다. 』
본래대로라면 눈 앞의 화신체를 처치하고 나서야 달성할 수 있는 보상이······.
『 목표2 : 마계왕의 화신체 획득 ( 1 / 1 ) 』
지금 내 눈 앞에서 달성되었다.
그리하여 완성된다.
달성될 수 없는 퀘스트가 클리어 된 것이다.
『 한계 돌파 퀘스트를 달성하셨습니다. 』
『 보상이 지급 됩니다! 』
첫번째 보상.
『 시스템의 최대 레벨이 확장됩니다. 』
『 레벨업 상한이 Lv.500까지 증가합니다. 』
레벨업 상한 증가.
나는 오른편을 향해 역전의 별을 크게 휘둘렀다.
콰아아아—!
일자베기가 마계왕의 영역을 뚫고 근처의 마족들을 덮쳤다.
『 무재조정과 이계규율 칭호의 효과를 발휘합니다. 』
『 경험치를 100만 배로 획득합니다. 』
막대한 양의 경험치가 나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 레벨이 오릅니다. 』
『 레벨이 오릅니다. 』
『 레벨이 오릅니다. 』
여지껏 한계돌파 퀘스트에 의해 내 레벨은 200.
『 레벨이 오릅니다. 』
『 레벨이 오릅니다. 』
『 레벨이 오릅니다. 』
···
『 레벨이 오릅니다. 』
레벨은 시원하게 기존의 최대 레벨인 300을 돌파했다. 그러나 거기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위로 뻗어나가.
『 최대 레벨(Lv.500)을 달성했습니다. 』
『 해당 시퀀스는 막대한 인과율을 짊어집니다. 』
새로운 영역에 도달했다.
모든 각성자의 레벨은 300을 넘어설 수 없다.
그러한 법칙이 지금 막 한계돌파 퀘스트에 의해 부숴진 것이다.
【 ······. 】
마계왕의 눈빛이 미약하게나마 흔들렸다.
내가 발산하는 격도, 소유한 능력치도 차원이 달라졌다.
“마계왕.”
『 현재 레벨업 당 능력치 증가폭은 3.0 배입니다. 』
그리하여 내가 소유한 실제 능력치는······.
Lv.1165의 헌터와 동일하리라.
차근차근 한계돌파 퀘스트를 클리어하며 쌓아 온 결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방어만하고 있을 생각인가?”
더욱이 높아진 능력치는 다시금 이계 규율에 의해 한없이 치솟는다.
『 2★ 칭호 문명계의 수호자 : 데미지 1,300% 증가 』
『 각종 이계규율의 칭호가 대상을 보조합니다. 』
마계왕이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의 손아귀로 마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방어만 하던 여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
그럴 수밖에 없다.
무수한 미래 중.
마계왕의 화신체와 맞서면서,
한계 돌파 퀘스트를 클리어 한 것은 내가 유일할테니까.
콰득. 콰아아앙!
가볍게 내리 딛은 땅이 그대로 갈라지며 마계왕의 영역을 깨부쉈다. 평원이었던 대지가 요동치며 바깥의 마족들을 휩쓸었다.
그들의 절규와 혼란이 내게도 전해져 온다.
그러나 이제 자세를 가다듬었을 뿐이었다.
『 레전더리급 스킬 ‘태양류 : 별의 발걸음 Lv.12’를 발휘합니다. 』
시공을 가로지르는 발걸음은 전보다 더욱 빠르고 강해져 있었다.
마계왕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 ······. 】
나는 그의 뒤편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법이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 스킬 ‘일자베기 Lv.20’을 발휘합니다. 』
나는 있는 힘껏 역전의 별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
새하얀 빛줄기가 은하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내가 만들어낸 선은 심연처럼 아득한 마기를 헤치고서,
시스템이 만들어낸 방어벽조차 꿰뚫으며,
마계왕을 갈라내고자 했다.
천지를 뒤흔드는 일격 아래 하늘이 반으로 나뉘었다.
마기로 붉게 물들었던 하늘이 순백의 선에 의해 나뉘었다.
폭발의 여파는 주변을 가득 메운 마기조차 몰아낼 정도. 이미 주변에는 마계왕과 나를 제외하면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어 내린 검을 거둬들였다.
【 ······. 】
연기 속에서 마계왕의 모습이 드러났다.
상처는 없었다.
대신 그는 검 한자루를 손에 쥐고 있었다. 여지껏 무기를 사용하지 않던 마계왕이 무기를 들었다.
파직, 파지직—!
흑색의 검.
그 위에 내가 만들어낸 새하얀 억지력의 상흔이 남아 있다.
마계왕은 자신의 검으로 일자베기를 막아낸 것이다.
투둑.
그러나 모든 충격을 막아내지는 못한걸까.
【 ······. 】
그의 검은 가면 위로 금이 새겨졌다.
투두둑.
미약했던 금은 순식간에 두꺼워지더니, 가면을 세로로 가로질렀다.
투욱.
검은 가면에 의해 가려져 있던 마계왕의 얼굴이 드러났다.
마계왕은 떨어진 가면을 주우려다가 멈춰섰다.
【 이제······. 상관 없겠군. 】
그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감정을 담지 않은 표정.
심연처럼 깊게 가라앉은 눈.
그 눈동자는 마족처럼 붉지 않았다. 검은빛을 띄고 있었다.
마계왕은 인간이었다.
반쪽이 된 가면의 사이로.
마계왕은 입을 열었다. 지극히도 무관심한 표정이다.
【 그래. 】
그러나 그런 마계왕과 다르게,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인간이어서? 아니다.
마계의 역사를 지우고, 신으로 군림하는 그라면 다른 종족이어도 특이할 것은 없다. 고블린이건, 엘프이건 상관없다.
하지만, 하지만 이것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마계왕의 얼굴은 ‘나’와 똑같았다.
【 나는 이지한이다. 】
그것만큼은 무시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