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super-class hunter with 10 times the experience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이지한(3)
모든 시간선 속의 이지한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비루한 재능, 미천한 실력.
그럼에도 검을 들었다.
자신의 약함을 알고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모든 불길은 마계왕의 앞에 한 번 사그러들었지만, 그들이 남긴 인과의 불씨는 건재했다.
【 웃기지마라, 이런 일이 가능할 리가······. 】
그 의지와 터무니없는 집념이 지금의 이지한에게 모여들었다.
【 고작해야 하나의 시간선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주제에······. 】
마계왕의 힘에 깃들어 있던 ‘경험’이 이지한에 의해 끌어 올려졌다.
이지한과 연결되어 있는 무수한 인과의 실과 초월력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콰과과과—!
이지한의 주변으로 붉은 스파크가 불길처럼 치솟았다.
그를 꿰뚫었던 흑암의 창 전체가 어느새 금빛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레벨 제한 해제.
거기에 더해진 천문학적인 경험치.
지금 이 순간에도 이지한의 레벨을 끊임없이 상승하고 있다.
『 레벨이 상승합니다! 』
『 레벨이 상승합니다! 』
『 레벨이 상승합니다! 』
···
『 레벨이 상승합니다! 』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고, 초월한 것으로도 모자라 무한을 향해 나아간다.
타앗!
가볍게 땅을 박차고 뛰어 오른 이지한이 검을 뒤로 뻗었다. 그런 그의 눈동자 위로 붉은 이채가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 초월자 이지한이 일자베기를 준비합니다. 』
이지한의 주변으로 무수하게 일렁이는 환영.
도움닫기를 하는 순간에도, 검을 뒤로 뻗어 자세를 취하는 순간에도 이지한의 경험치는 끝없이 오르고 있었다.
시간선에 새겨졌던 무재조정의 이지한들.
그들이 수없이 휘둘렀던 일자베기가 이지한의 경험치가 되어 스며든다.
그것을 바라보는 마계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 이지한——! 】
마계왕은 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더욱더 막강한 마기를 끌어 올렸다.
콰아아아아!
수십의 차원을 능히 멸할 위력을 가진 마기가 마계왕의 검에 맺혔다.
이윽고, 이지한의 일자베기가 발휘되었다. 100만 배의 경험치를 머금은 이지한의 일자베기.
『 초월자 이지한이 ‘일자 베기 Lv.999’를 발휘합니다. 』
파직, 파지직—!
정보를 띄워 올리는 시스템 창이 붉은 스파크로 뒤덮였다.
999레벨을 넘어간 스킬의 레벨이 더 이상 표시되지 않는 것이다.
레벨의 제한이 없는 일자베기가 우주의 공간을 가르고 마계왕에게 쏟아졌다.
【 ······! 】
마계왕의 마기가 일자베기가 새긴 공간의 상처에 잡아 먹히기 시작했다.
콰과과과!
순백의 폭풍이 마기의 안개를 뚫고 미친듯이 퍼져나갔다.
폭풍은 마기를 잘라내고 조각내며 그것의 본질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금빛 가루가 된 마기가 공간 전역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마계왕의 힘을 일자베기가 집어 삼키고 있었다.
이지한은 무수한 시간선을 근원으로 하고 있던 마계왕의 힘을 분해해 자신의 것으로 하고 있다.
【 어째서냐, 어째서 그게 가능한거냐?! 】
분노에 찬 마계왕의 외침을 뚫고서 이지한의 신형이 쏘아져왔다.
초월력을 발에 두른 이지한의 발차기가 마계왕의 얼굴을 강타했다.
콰드득!
그대로 튕겨져나간 마계왕은 끝을 모르고 날아갔다. 흑색의 잔상이 우주 공간 위에 긴 꼬리 그렸다.
【 크으윽! 】
섣불리 마기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이지한은 마기를 분해해, 자신에게로 인과를 끌어다 사용하고 있었다.
이지한에게 기억을 보게 하는 게 아니었다.
아니, 과거의 기억을 잊고자 한 게 문제였던가?
지대한 흑암이 마계왕의 전신을 감쌌다.
그는 아직 초월신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그것이 치명적이었다.
아직 이 세계는 시스템의 규칙 아래에 놓여 있다.
‘시스템이 이지한의 편을 들고 있다’
고유 세계라고 한들 아직까지는 시스템 아래 만들어진 세계.
초월신이 되지 않는 한 거기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문제는 이지한이 짊어진 인과가 시스템의 규칙에 부합한다는 것.
“나는 규칙과 함께 싸우고 있고.”
콰아앙—!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며 다가온 이지한의 발차기가 마계왕을 내리찍었다. 이어지는 일방적인 난타.
【 크허어억······. 】
“너는 규칙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지한은 손에 쥔 동그란 환단을 입에 넣고 깨물었다.
까득.
『 초월자 이지한이 1000년급 재능환을 섭취했습니다. 』
한계 돌파 퀘스트의 보상으로 받은 1,000년급 재능환.
그것은 시스템의 퀘스트로 지급된 인과의 결정체.
수많은 무재조정의 이지한이 만들어낸 노력의 결과였다.
“지금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보잘것 없는 노력들이 겹치고 겹쳐서 만들어낸 기적.
이지한의 손 위로 보랏빛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계왕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친듯이 검을 휘둘러왔다.
【 어째서, 어째서냐! 왜 네가······. 】
마계왕이 만들었던 고유 세계는 어느덧 사라지고, 이지한의 세계가 그 위에 덧씌워지고 있었다.
백색의 공간이 우주의 한 공간으로.
콰아앙—!
이지한의 일자베기가 마계왕의 검과 맞부딪혔다. 낙뢰와 같은 섬광이 우주의 공간을 울렸고, 마계왕은 그대로 날아가 외딴 행성에 쳐박혔다.
【 커허억! 】
막대한 에너지가 집중 되었으나, 행성은 부숴지지 않았다. 황량한 대지는 견고하게 모습을 유지했다.
마계왕의 근처로 보랏빛 섬광이 번쩍였다.
『 초월자 이지한이 ‘공간이동 Lv.50’을 발휘합니다. 』
돌연 허공에서 나타난 이지한의 주변에는 윤서현의 환영이 무수히 함께하고 있었다.
서걱—!
이어서 휘둘러진 이지한의 검이 마계왕의 팔을 잘라냈다. 마계왕은 팔을 부여 잡으면서 뒷걸음질쳤다.
【 네 놈······! 너는 모른다! 】
그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 내가 얼마나,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왔는지.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지, 너는 모른······. 】
촤아악!
그러한 발악에도 이지한은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초월력을 불처럼 두른 순백의 검은 계속해서 마계왕을 베어냈다.
“모를 리가.”
이지한은 짧게 답했다.
이미 그의 기억은 보았다.
【 너도 알지 않느냐! 】
마계왕이 악문 이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회복된 양팔을 벌리고 그는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 이 세계는 근본부터 뒤틀려 있다는 걸! 나는 이 빌어먹을 세계를 되돌리고자 했을 뿐이다! 】
마지막 남은 시간선 하나.
그곳에 남은 유일한 대적자 이지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의 시간선을 제외하고 전부 정복해냈으니까.
초월신에 오르기까지 한발자국조차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되었는가.
어째서 마계왕 자신은 이다지도 소리치고 있단 말인가.
【 노력이 합당한 결과를 낳고, 재능에 미래가 좌우되지 않는 그런 세계를 너도 원하지 않는가! 】
『 초월자 이지한이 ‘시간지배 Lv.50’을 발휘합니다. 』
이지한이 검을 움직이는 경로가 무수하게 나뉘며, 마계왕을 향해 동시에 쏟아져 오기 시작했다.
【 너도 알것이다! 이 세계가 부조리하고 불합리하다는 걸! 】
피할 수도 피할 장소도 없는 절대 명중의 일격.
시스템의 규칙으로 구성된 이 세계의 섭리.
그러한 공격이 마계왕을 향해 날아왔다.
“안다.”
이지한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이 세계를 멸망 시키려곤 하지 말았어야지.”
콰아아아—!
이지한이 만들어낸 일자베기가 수만 갈래가 되어 피어올랐다.
마계왕이 두르고 있던 마기가 일제히 금빛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렇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인과는 다시 이지한에게로 향했다.
【 크아아악! 】
검은 마기가 마계왕의 상처에서 끊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에 의해 미래가 닫힌 시간선들이 미친듯이 휘날렸다.
【 고작 여기서······. 여기서 나에게 죽는단 말인가. 】
그럴 수는 없었다.
대륙을 손에 넣고, 행성을 정복하며, 차원을 지배하는 것을 넘어.
시간선조차 거둬들인 자신이, 고작 한 명의 인간에게 당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설령 자기 자신일지라도.
콰아아아아—!
마계왕의 모든 상처와 구멍에서 마기가 쏟아졌다. 마기는 자아를 가진 것처럼 꾸물대며 퍼져나갔다.
이지한에게 넘어간 시간선을 되찾기 위해.
『 초월자 이지한이 스킬 ‘일자베기 Lv.999’을 발휘합니다. 』
이지한도 그에 맞서 일자베기를 발휘했다.
황량한 대지 위로 검은 마기와 순백의 마력이 격돌했다.
이지한에 의해 이 세계 자체가 축소되었음에도, 행성의 하늘 위로 폭풍과 지진을 불러오는 막대한 충돌이었다.
마계왕의 마기가 끊임없이 이지한의 힘을 집어 삼키고,
이지한의 초월력 또한 끊임없이 마기를 집어 삼켰다.
허나, 이지한의 레벨은 계속해서 상승한다.
이지한의 일자베기가 한계를 모르고 성장했으며,
그의 레벨은 모든 인과를 집어 삼키며 미친듯이 치솟았다.
고오오오오—!
인간의 형상으로 존재하던 이지한의 모습이 초월력에 휩싸여 타오르기 시작했다.
치직, 치지직!
연신 붉은 스파크를 내뱉던 시스템이 노이즈와 함께 메시지를 내뱉었다.
『 Lv. ∞ – 무한(無恨) 』
이지한의 폭풍과도 같은 초월력이 행성을 휘감았다. 행성을 넘어, 태양계, 태양을 너머 은하계에 닿고서도 멈추지 않는다.
【 이지한—! 】
마계왕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무한에 가까운 마기가, 그가 삼켜온 무수한 시간선을 근원으로한 막대한 힘이 솟구쳐 올랐다.
허나, 그야말로 무한.
이지한의 쏟아내는 압도적인 힘이 마계왕의 마기를 집어 삼키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나는 재능이 없었다.
그건 내가 F급 헌터로 시작해서 멸망이 다가올 때까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치열하게 살았고,
능력은 없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적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멸망한 세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냥 운은 아니었을 거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수를 전부 다 해도 천 명 가량.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는 건, 그래도 생존에 있어서는 조금이나마 재능이 있었던 게 아닐까.
아니면 F급 헌터를 전전하며 그 나름대로의 시간을 겪었기에.
그 시간들을 곱씹으며 나아가고자 했기에, 나는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회귀할 수 있었고,
새로운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초월급 헌터가 될 수 있었다.
【 고작 하나의 시간선이······. 어째서 이런······. 】
상처 입은 마계왕.
아니, 이지한이 보인다.
비틀거리는 그는 더 이상 상처를 치료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 나는 초월신이······. 될 수 있었을 터인데······. 】
저벅, 저벅.
나는 그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무한회귀의 이지한. 그는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 나를 죽여도 소용 없을 것이다. 내게는 무한회귀가 있다. 나는 다시 너를 찾아 죽일 것이다······! 】
그는 왼팔을 올려서 내게 보였다. 일그러진 얼굴로 필사적으로 자신을 죽여선 안된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에게 해줄 말은 이것 뿐이었다.
“마계왕. 너는······. 살아서는 안된다.”
그는 세계를 멸하고자 했으며 실제로 그렇게 했다.
무수한 생명이 그의 손아귀에 짓이겨졌으며,
시간선이 통째로 초월신의 경지를 위한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돌이킬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멸망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그리 하지 않았다.
그건 아무리 마계왕이 나라고 한들 용서되지 않는 일이다.
콰득!
나는 주먹으로 있는 힘껏 마계왕의 얼굴을 갈겼다. 그의 뒤통수가 땅에 부딪혔다.
“여기까지와서도······. 후회조차 하지 않는거냐. 거짓으로 잘못 했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 거냐.”
바닥에 대자로 뻗은 마계왕.
그는 어깨를 들썩이면서 웃었다.
【 하하, 고작 한 번의 삶을 다시 산 네가 내 생각을 이해할 리가······. 어서 죽여라. 내 죽음은 새로운 시간선을 분기 시킬 뿐이다. 】
딱히 그를 개심 시킬 생각 따위 없다.
【 한 번 보겠다. 아, 이번에는 네가 막아봐라. 무수한 시간선 속에서 뻗어오는 나를. 】
그리고 다시 그 짓을 반복할 생각도 없다. 마계왕의 피가 묻은 왼손 위로 황금빛의 퍼져나오기 시작했다.
천 년급의 재능환.
거기에 무재조정이 합쳐지면, 내가 보았던 이들의 재능까지 펼칠 수 있게 된다.
나는 벌써 윤서현의 공간 능력과 엘리스의 시간 조작까지 사용했다.
그리고 지금.
진세아의 ‘절대 강탈’을 사용하려고 한다. 손을 앞으로 뻗는 것만으로 인과에 새겨진 경험치가 내게로 스며든다.
50이 최대치였던 스킬의 레벨은 어느덧 초월력에 의해 해방되어 있었다.
『 초월자 이지한이 스킬 ‘절대 강탈 Lv.99’을 발휘합니다. 』
츠즛, 츠즈즈즛—!
마계왕의 왼손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던 황금빛 문자열이 나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 뭐, 뭐······? 잠깐, 멈춰라. 네 놈······! 】
마계왕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문자열을 잡기 위해 손을 휘적였다. 그러나, 잡힐 리가 만무하다.
털썩.
그는 몇 걸음 못 가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 ‘이계 규율 – 무한 회귀’를 강탈합니다. 』
금빛의 문자열은 내 왼팔로 날아들어 다시 새겨졌다. 마계왕의 허망한 눈동자가 내게 고정 되었다.
【 아, 이지한······. 】
나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검 역전의 별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새하얀 도신을 타고 별빛이 반짝였다.
“후우······.”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뱉어냈다. 짧은 호흡에 초월력이 입김을 타고 스파크를 일으켰다.
‘각성 일자베기 Lv.14.’
그 스킬을 발휘할 동작을 하는 내 손아귀 위로 막대한 초월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 사부님, 14레벨 일자베기를 사용해선 안돼요!
– 정확히는 각성 일자베기 Lv.14를 써선 안된다는 건가.
이 일자베기만큼은 다른 일자베기들과 다르다.
‘다를 수밖에.’
그야, 일자베기는 내가 어떤 스킬을 배웠고 어떤 상황에서 그것을 연마했는지에 따라 그 성질이 판이하게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세이비어와 여제가 존재하는 미래.
나는 그곳에서 14레벨의 일자베기를 배웠다.
본래라면 닿을 수 없는 다른 시간선 속.
그러한 미래에서 나는 일자베기의 숙련도를 올렸다.
‘그래서다.’
일반적으로 14레벨 일자베기를 사용했을 때엔 원근을 무시한다.
그 의미는 사뭇 의미심장한데, 바로 인과무시다.
14레벨의 일자베기는 인과를 잘라내는 기술이다.
그러니 각성 스킬로 사용하게 된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파직, 파지직—!
붉은 스파크가 검 끝에서 미친듯이 치솟았다.
‘13레벨 일자베기가 내 생명을 소모했다면······.’
각성 14레벨 일자베기는 이 세계에 새겨진 내 인과를 소모한다. 간단히 말해 나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것이다.
‘그래서 쓰지 말라는 거였어.’
인과를 잘라내는 막강한 힘이지만.
사용하다보면 내 존재 자체가 이 세계에서 잊혀질테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지금 사용하기엔 더 없이 훌륭한 기술이 될 거다.
이 세계에서 마계왕이란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을테니.
【 ······이지한! 분명 너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
무릎을 꿇고 쓰러진 마계왕이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마치 지금부터 내가 뭘 할지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이다.
“이미 오래 전에 결정한 일이다.”
나는 마계왕을 없애 멸망을 막기로 작정했으므로.
그 결정에 변함은 없다.
『 스킬 ‘각성 일자베기 Lv.14’를 발휘합니다. 』
나는 검을 휘둘렀다.
숨 막힐 듯한 정적이 찾아온 것도 잠시.
콰아아아—!
공간 위에 분명한 순백의 선 하나가 새겨졌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선.
생각해보면 이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신태양에게 일자베기를 배우고, 그것으로 미래의 마족을 쓰러뜨리고, 한계돌파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거대한 흐름이 이 세계를 압도한다.
모든 것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 크아아아아—! 】
그 선을 중심으로 마계왕의 존재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마계왕의 본질 자체를 잘라내며, 그에게 얽혀 있던 원인과 결과를 무너뜨리는 최후의 일격.
모든 것이 무(無)로 되돌아간다.
【 이지한—! 너도, 너도 같이 와라! 】
마계왕이 숨기고 있었던 마지막 힘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왔다.
덥썩!
강력한 마기가 순간적으로 나를 붙잡았다.
콰과과과과—!
내가 만들어낸 백색의 선이 블랙홀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일자베기의 여파가 아니다.
마계왕이 소멸을 앞두고 있단 증거였다.
마계왕이 이 세계에 새겨 놓은 인과의 크기가 너무나 크기에, 거기서 발생한 막대한 균열은 필연적.
초월체의 언데드를 쓰러뜨렸을 때보다 더욱 강대한 인력이 그 빈자리를 메꾸고자 쏟아진다.
【 크아아아아—! 】
마계왕의 전부가 공허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모든 시간선을 호령한 절대자의 최후.
그러나, 감상에 잠길 여유가 없었다.
공허는 나또한 끌어당기고 있었으므로.
콰악!
‘큭!’
나는 땅에 검을 박아 넣고 버텼다. 이를 악물고 공허 속으로 끌려들어가지 않기 위해 발악했다.
마계왕 진정으로 없애려면 이 방법 밖에는 없었다.
놈이 남긴 마기가 질척하게 내 발목과 몸을 잡아 끌고 있다.
‘초월력이 발휘되지 않는다.’
인과의 붕괴 때문이다.
무재조정의 근간인 마계왕이 사라졌으니까.
그로 인한 충격이 극복되지 않는 거다.
‘크윽, 돌아가야 한다.’
초월력은 차고 남을 정도로 충분하건만 내 통제를 듣지 않는다. 명백히 내 의지를 벗어나 있다.
‘젠장······.’
투두둑—!
내 몸의 일부가 블록이 되어 떨어져 나갔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중심이 사라진 듯한 공허감이 몰려든다.
여전히 마계왕의 마기는 나를 잡아 끌고 있었다.
인과의 상실로 인한 충격.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이대로 공허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만약 무한 회귀가 발동하면 다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만큼은 있어선 안된다.
‘이대로 버티기만 하면······.’
무재조정의 이지한들이 쌓아 온 시간선이 나를 수복할 것이다. 그때까지만 어떻게 버티면 되리라.
덜컥!
심장 부근의 신체가 조각처럼 내게서 떨어져나갔다. 초월력은 여전히 내 제어를 벗어나 있다.
“크으윽!”
순식간에 신체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검의 손잡이를 쥐고 있던 손아귀가 스르륵 풀렸다.
무한한 인력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끝을 알 수 없는 공허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여기까지인가······.’
이래선 어렵게 되었다.
몸 자체가 말을 듣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써도 회복될 기미가 안보인다.
하지만 이 방법 밖에는 없었다.
‘······.’
어쨌든 결국 성공하지 않았는가.
마계왕을 없앴다.
멸망을 막았다.
내 목표는 달성되었다.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엔 이뤄냈다.
아니, 아니다.
돌아가는 것까지가 내 목표였다.
그리고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야······.’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건 단순한 부상이 아니었다. 노력한다고 되는 그런 게 아니었다.
‘······.’
공간에 아로새겨진 순백의 선이 점점 다가온다.
여기서 끝인가.
아쉽다. 아쉬웠다.
목표는 달성했는데. 왜일까.
‘돌아갈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그리 생각한 내가 속으로 씁쓸한 미소를 삼키는 그 순간.
백색의 선이 나를 집어 삼키기 바로 직전.
번쩍—!
한줄기 섬광이 눈 앞에서 치솟았다.
끝없는 인력을 뚫고서 내 앞에 나타난 것은 누군가가.
“잡아요!”
내게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