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swordsmanship instructor at the Fantasy Academy RAW novel - Chapter 122
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122)
고양이
흔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한다.
김 선생과 나는 좋은 동료지만 김 선생이 보는 눈 앞에서 자기 아빠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마음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먼저 말을 걸 줄이야.
“이야기요?”
“학교에서는 좀 그렇고,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으세요?”
“아, 별다른 약속은 없는데….”
박 선생님에게 퇴근하고 상황 봐서 갈지 말지 이야기하겠다고 했으니까.
“다행이네요. 오해를 풀고 싶어요. 그럼 퇴근하고 학교 나와서 연락 주세요.”
“아, 네.”
뭐가 오해라는 건진 모르겠지만 솔직히 지난번에는 나도 조금 욱해서 그런 게 없지 않아 있으니까.
학교를 그만둘 게 아니라면 이야기를 하는 게 맞겠지.
교무실에 들어가니 바로 박 선생님이 다가온다.
“강 선생, 끝나고 같이 가는 거지? 정 선생이랑 연 선생도 오기로 했어.”
“아, 그게… 선약이 있던 걸 깜빡하고 있었네요. 대신 제가 다음엔 한번 끝까지 쏘겠습니다.”
“그래? 뭐, 선약이 있었으면 어쩔 수 없긴 한데… 곧 방학인 건 알지?”
다다음 주 월요일이 방학식이다.
“알죠. 제가 방학 전에 꼭 시간 내서 술 한잔 사겠습니다.”
“약속한 거야?”
“네, 네.”
박 선생님을 겨우 달래고 자리에 와서 업무를 하는 척 시간을 때우다 퇴근을 했다.
주차장에 가서 차를 끌고 학교를 나와 전화를 걸었다.
―벌써, 퇴근하셨어요?
“네. 학교 정문 근처인데 아직 학교세요?”
―저도 주차장이에요. 제가 식당하나 예약해 뒀는데 주소 보내 드릴게요.
“아… 넵,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잠시 기다리자 문자가 왔다.
[화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연화로 11길 11]하하…. 하필 여긴가.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과 주소다.
사부가 제일 좋아하던 동파육을 파는 중식당.
또 먹고 싶다고 했지만 예약이 너무 밀려서 늘 말만 하고 못 사다 줬는데….
우울함이 나를 더 짓누르기 전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식당에 도착해 주차하고 내리니 마침 김 선생님도 도착했다.
“여기 동파육이 그렇게 맛있다는데… 와 보셨어요?”
“네. 전에 한 번이요.”
웃돈을 주고 대리 예약 같은 거라도 했으면 그리 어렵지 않았을 텐데….
언제나 후회는 늦는 법이다.
“정말요? 여기 예약 무지 어렵던데. 일단 들어갈까요?”
“네.”
김 선생을 따라 작은 룸에 들어왔다.
혹시 교감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우리 둘뿐이다.
식사를 하면서 김 선생이 이야기를 했는데 살짝 이해가 안 간다.
“신입 교사 연수 총교관을 맡아도 제가 하게 하지 않을 거라는 게 무슨 이야긴지… 이해가 잘 안 가네요.”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치료해 주지 말걸…. 아니, 그래도 그건 아니지.
“강 선생님이 총교관을 하겠다고 하시면 나중에 아빠가 가서 대신 해 줄 생각이셨대요.”
“네? 아니, 저도 그날 조금 욱해서 그런 거긴 하지만… 교감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결투 신청하진 않았을 거예요.”
이제 와서 구질구질하게 무슨 이딴 변명을….
“그게… 저 때문에 그러신 거래요.”
“김 선생님 때문이요?”
“몰랐는데 아빠가 제가 강 선생님 좋아하시는 걸 눈치 채셨던 것 같아요. 저랑 같이 강 선생님에게 가서 제가 부탁해서 아빠가 총교관을 하는 거로 하고, 대신 저랑 강 선생님이랑 데이트라도 하라고 할 생각이셨다고….”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다.
“아, 당연히 제가 부탁드린 건 아니고 그냥 아빠가 멋대로 한 건데…. 죄송해요.”
“아….”
“아빠가 친척도 없고 가족이 저 하나뿐이라 워낙 극성이시거든요.”
“아닙니다. 저도 요새 일이 좀 있어서, 예민해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죄송합니다.”
“강 선생님이 뭐가 죄송해요. 아버님이 그동안 억지 부리신 거 많다면서요. 이야기 다 들었어요.”
“그렇긴 한데, 결투 때 제가 좀 너무 심하게 했던 것 같아서…. 김 선생님도 많이 놀라신 것 같고….”
“안 놀랐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서로 합의한 결투잖아요. 강 선생님이 치료도 다 해 주셔서 아빠도 멀쩡하니 괜찮아요.”
쿨하게 이야기하니 한결 부담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저기, 그런데 절 좋아하신다는 건….”
“에엣, 설마 기억 못 하시는 거예요? 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강 선생님에게 관심 있다고 했는데.”
아… 그랬지.
하지만 솔직히 반쯤은 농담 아니었나?
무슨 고독한 늑대 어쩌고 하면서 오글거리는 말을 하셨던 것 같은데 그 뒤로 따로 표현을 하지도 않았고….
“저는 농담 삼아 하신 말인 줄….”
“조금 너무하시네요. 관심 없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는 여자는 없어요. 같이 사냥 다닐 때 제가 도시락도 싸 가고… 맞아, 작년 추석 때 명절 음식도 가져다드리며 나름 표현했는데.”
그게 표현이라고?
독살 미수가 좀 더 올바른 표현이지 않을까 싶은데….
“혹시 제가 별로예요?”
솔직히 김 선생님 정도면 엄청 미인이다.
피부도 하얗고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긴 생머리에 마법사지만 군살도 없이 늘씬하고 몸매도… 크흠.
아무튼, 학생들 사이에서도 꽤 인기가 많은 거로 안다.
교감도 S 랭크 헌터니 배경도 엄청 좋은 편이고.
어머니가 안 계시는 거야 다른 사람들에겐 흠일지 몰라도 고아인 내가 그런 걸 문제 삼을 처지도 못 되고 삼을 생각도 없다.
하지만 얼굴 예쁜 여자랑은 10년을 살고, 착한 여자랑은 20년을 살고, 요리 잘하는 여자랑은 평생을 산다는 말이 있다.
물론 예쁘면 다 용서가 된다는 말도 있고 요즘 시대에 요리 같은 건 내가 해도… 아니, 돈도 많은데 셰프를 써도 되지.
하지만 본인이 요리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은데….
“왜 대답이…. 혹시 연상이라서 그래요? 저 나이 많다고….”
아, 생각해 보니 김 선생님이 올해 스물여덟, 나보다 두 살 연상이다.
늘 상호 존댓말을 사용해서 잊고 있었다.
김 선생이 그리 나이 들어 보이는 스타일도 아니고.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 보면 2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절대 아닙니다.”
나이는 문제가 아니다.
두 살 정도야 충분히 수비 범위 안이니까.
“그럼….”
“저기, 제가 여태 김 선생을 동료로 생각했지 여자로 생각한 적이 없어서 약간 당혹스럽네요. 저는 첫 만남 때 하신 말씀이 정말 농담이라고….”
“거기까지만요. 바로 답을 주라는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제가 오버했네요. 보기보다 제가 연애 경험이 그리 많지 않거든요.”
이번 생엔 제로고 저번 생은 30년을 통틀어서 딱 3회니까.
애초에 솔로였던 기간이 5년 넘어가면 연애 세포가 다 죽어 모태 솔로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말도 있고.
“저는 아예 처음이에요.”
“네? 김 선생님은 학창 시절 때 인기 엄청 많으셨을 것 같은데….”
학교에서 따로 요리 실습 같은 건 안 하니 괜찮았을 것 같은데.
“저 1학교 출신이잖아요. 지금은 교감이지만 학창 시절엔 아빠가 학생주임이셨어요. 다들 아버지를 엄청 무서워했거든요. 그래서 지금 이름도 바꾸고 관계 공개 안 하는 거예요.”
단번에 이해가 된다.
아무리 예뻐도 근육 몬스터 같은 교감의 딸이라면 쉽게 접근할 엄두를 못 냈겠지.
“그렇군요.”
“강 선생님이 그동안 모르셨다는 건 조금 섭섭하지만 오늘 이렇게 전했으니까 이제부터라도 조금 다르게 생각해 주실 수 있죠?”
“아… 네.”
요리라는 치명적인 단점만 빼면 김 선생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니까.
정말 지금까진 그냥 동료라고 생각했지만… 뭐, 친구에서 연인이 되지 말란 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애초에 내가 따로 만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선 그을 필요는 없지.
“그런 의미에서 저희 내일 데이트 어때요?”
역시 연상이라 그런가? 상당히 적극적이다.
“내일은 선약이 있어서 안 되겠는데요.”
“아, 원래 주말은 항상 학원 때문에 안 되신다고 하셨죠.”
그동안 주말은 거의 사부를 만나기 위해 매번 거절을 해서 그런지 김 선생도 세진이랑 똑같은 이야기를 하네.
“아니요. 이제 학원은 그만둬서 괜찮은데 내일은 세진이 집에 가기로 했거든요.”
“세진이 집에요?”
“제가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마침 녀석이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해서요.”
“고양이 좋아하시나 봐요?”
“네. 귀엽잖아요. 안 그래도 요새 기말고사라 바쁘고 이런저런 일로 스트레스받는 게 많았는데 내일은 고양이랑 놀면서 힐링 좀 하려고요.”
“저도 고양이 좋아하는데. 집에서 2마리 키우고 있어요.”
“정말요? 저번에 갔을 땐 못 봤던 것 같은데.”
“애들이 워낙 낯을 많이 가려서요. 낯선 사람 오면 제 방에 숨어서 안 나오거든요.”
“그런 친구들도 있죠. 사진 있어요?”
“당연히 있죠. 여기요.”
“페르시안이랑 아비시니아네요. 어쩜 둘 다 너무 귀엽게 생겼네요.”
“요건 말랐을 때고 지금은 둘 다 완전히 뚱냥이예요.”
“고양이는 뚱뚱해도 귀엽죠.”
“나중에 놀러 오시면 제대로 보여 드릴게요.
“네. 애들 좋아하는 간식 알려 주시면 간식이랑 장난감 사서 놀러 갈게요.”
“진짜 좋아하시는구나. 혹시 개도 좋아하세요? 아빠가 1마리 키우자고 하던데.”
“댕댕이도 최고죠. 하지만 전 역시 고양이 파라서.”
“저도요. 세진이는 무슨 고양이 키운다고 하던가요?”
“글쎄요. 사진이라도 좀 보내 달라고 하니까 직접 와서 보라며 사진도 안 보내 줬거든요.”
닳는 것도 아닌데 진짜 치사하다.
* * *
초인종 소리에 나가 보니 현정 언니다.
“언니? 조금 늦으셨네요.”
“미안, 세진아. 엄마가 오늘 내려가신다고 하셔서 터미널까지 모셔다드리다 보니 좀 늦었네. 자, 여기.”
들고 있던 쇼핑백을 하나 건네주신다.
“그건 뭐예요?”
“뭐긴 뭐겠어. 오늘 네가 쓸 무기지.”
“무기요?”
“오늘 D-DAY라며. 내가 다 챙겨 왔으니까 얼른 가서 입어 보자. 침실은 저쪽이었지?”
언니에게 떠밀려 침실에 왔다.
오자마자 침대에 쇼핑백을 침대에 쏟아붓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언니, 이게 다 뭐예요?”
“감동했어? 생명의 은인인 세진이가 드디어 고백하는데 언니가 이 정도는 해야지.”
향초 몇 개와 고양이 귀 머리띠, 실크 재질의 얇은 검은색 원피스다.
향초야 집에도 몇 개 있고 고양이 귀 머리띠도 학교 축제할 때 몇 번 보긴 했다.
그런데 이 옷은 너무 짧은 것 같은데….
“어… 언니?”
“왜?”
“이거 너무 옷이 짧은 것 같은데요. 위에도 너무 파인 것 같고.”
“어휴, 조선 시대에서 오셨어요? 이 정도 가지고 뭘. 가슴이 좀 끼려나? 이 부러운 녀석. 그래도 입으면 다 늘어나. 그리고 이거 봐.”
엉덩이 쪽에 꼬리가 달려 있다.
“이… 이건 또 뭐예요?”
“강신혁 헌터님에게 고양이 보러 오라고 했다며? 컨셉을 정했으면 확실하게 가야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언니가 너무 성화라 옷을 갈아입었다.
평생 이런 옷은 한 번도 입어 본 적이 없는데… 진짜 얼굴이 터질 것만 같다.
“언니, 아무래도 이건….”
“와, 우리 세진이 너무 예쁘다.”
“그래도 너무 부끄러운데… 저 진짜 안 될 것 같아요. 선생님도 문 열면 당황하실 것 같은데.”
“바로 보여 주는 게 아니라니까. 고양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실 거 아니야. 그럼 눈 감고 기다리라고 하고 이거로 갈아입고 나오는 거지. 그리고 귀에 대고 냐옹 하면 끝이라니까!”
“정말 이 방법이 효과가 있을까요?”
“그럼. 이 모습 보고 안 넘어오면 남자도 아니라 고자지. 강신혁 헌터님은 몇 시까지 오신다고 했어?”
“여섯 시 반이요.”
“1시간도 안 남았네. 이거 향초도 분위기 잡을 때 좋은 거니까 여기 올려 두고 써. 그럼 언닌 이만 가 볼게.”
파이팅을 외치며 언니는 떠났다.
정말 부끄럽지만… 언니가 바쁜 와중에도 와서 챙겨 준 성의가 있으니까….
옷을 다시 갈아입고 식사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덧 약속 시간이 됐다.
띵동―.
“누구세요?”
“세진아, 나야.”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선생님이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수십 번도 더 시뮬레이션을 했지만 막상 닥치니 너무 긴장이 된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