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swordsmanship instructor at the Fantasy Academy RAW novel - Chapter 260
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260)
따스한 빛이 나를 감싸는 느낌과 동시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고양감이 나를 가득 채운다.
세상도 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이고 느껴진다.
사부가 이야기했었던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버려야 닿을 수 있다는 경지.
지금 나는 그곳에 도달했다.
수십… 아니, 수백 번 고민했었다.
혹시라도 감정을 지워 버리면 여기에서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지 의문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니까.
걱정과 달리 그런 마음은 들지 않는다.
애초에 감정을 지운다고 해도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내 곁을 지나쳐 가다 멈춰 선 마신을 향해 다가갔다.
눈앞에 보이는 마신도 아까 처음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온갖 부정적인 사념이 똘똘 몽친 거대한 악의와 심연으로 보이는 건 같지만 지금은 그 심연 가운데에 있는 놈의 진신이 보인다.
꿈틀거리는 거대한 검은 촉수 덩어리 가운데 거대한 붉은 눈.
놈의 영역에 들어서자 여전히 부정적인 사념이 흘러들어 온다.
그래도 아까처럼 두려움 같은 건 느끼지 않는다.
이제 내겐 감정이 없으니까.
놈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지 않고 있다.
거대한 눈도 감겨 있고.
아마 놈이 멈춰 선 건 고민하는 거겠지.
나를 사냥감으로 삼을지 아니면 루시엘을 대상으로 할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루시엘의 격이 대단했던 것 같다고 생각하던 순간 검은 촉수들이 내게로 뻗어 온다.
나로 정한 건가?
원래 처음 계획은 마신의 관심을 끌어 지구와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거였다.
하지만 지금의 나라면 녀석을 해치울 수 있지 않을까?
서걱― 서걱―.
생각으로 촉수를 베었다.
하지만 수십 조각으로 나뉜 촉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내게 다가온다.
이 정도로는 소용이 없다는 건가?
과연 마신이다.
하지만 아예 흔적이 남지 않을 때까지 벤다면?
생각과 동시에 내게 다가오는 촉수들을 의념의 칼날로 수백, 수천 조각으로 베고 또 베었다.
결국 사라지는 게, 아무리 마신이라도 이건 못 버티는 모양이다.
자신감이 생겼지만 아주 잠시였다.
놈의 진신인 거대한 눈 주변엔 조금 전에 봤던 것보다 훨씬 많은 촉수가 생겨나 있었으니까.
살짝 질려 버렸지만 이게 전부라면 가능성이 없진 않아 보인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식으로 무형검을 남발하면 금세 지쳤겠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우주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은 내 기운과 다름없으며 내 의념은 결코 마르지 않을 테니까.
놈의 진신인 거대한 눈동자를 향해 쇄도했다.
계속해서 촉수들이 날아왔지만 모조리 베어 내며 전진한 끝에 눈동자 앞에 도달했다.
촉수는 무한 증식하고 있지만 내 무형검이 베어 내는 속도도 그에 못지않다.
감겨져 있는 거대한 눈을 무형검으로 베어 내려 했지만 그 순간 세상이 회색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자네 지금 뭘 하려는 것인가?”
마신 못지않게 거대한 기운이 느껴지며 아까 경고를 해 줬던 원시천존이 나타났다.
원시천존도 정말 강했구나.
회색빛으로 물든 현재는 마신마저 움직임이 아예 멈췄다.
촉수도 더 증식하지 않고 있고.
이 정도면 마신보다 원시천존이 더 강한 것 같은데 왜 막는 거지?
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보면 모르십니까? 마신을 죽일 겁니다.”
“…기껏 목적을 달성하고 모든 걸 망칠 생각인가?”
“망치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네 조금 전에 저 눈을 공격하려 하지 않았나?”
“저게 마신의 진신이니까요.”
“그래. 하지만 저 진신을 공격하면 마신이 눈을 뜨게 될 걸세.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끝나 버리지.”
“그게 무슨 소립니까?”
원시천존은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순간 주변 시야가 바뀌었다.
내가 보인다.
조금 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촉수를 베어 내며 마신에게 다가가더니 이내 눈을 베었다.
동시에 거대한 붉은 눈에서 새하얀 빛의 광채가 터졌다.
눈을 베어 냈던 나와 아직 파괴되지 않고 반짝이며 빛나던 항성들, 거대한 운석과 우주 공간까지 모든 게 사라진다.
완전한 무(無).
다시 시야가 바뀌며 천존이 나타났다.
“보았나?”
원시천존이 막아서지 않았으면 발생할 미래를 보여 준 모양이다.
“다른 방법은 없는 겁니까?”
“자네 수준에서는 없지. 저건 신이니까. 그나마 자네가 처음에 하려던 계획은 가능하네.”
처음 계획.
마신의 관심을 끌어 유인해 지구와 멀어진다.
그래. 이미 놈의 관심을 내게로 돌렸다.
도망가는 것도 진입보다 어렵지 않을 테고.
이젠 사부, 루시엘, 세진이, 은서 이 모두가 있는 지구의 위치도 인지할 수 있으니 혹여 잘못 유인할 가능성도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물론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우주 어딘가에 나를 넘어서 저 녀석의 관심을 다시 빼앗아 갈 만큼의 힘을 가진 존재가 발견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때가 언제가 될진 아무도 알 수 없다.
저 녀석만 처리하면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나 왜 돌아가려고 했지?
지금 이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나는 감정을 버리고 인연의 굴레를 지웠다.
나보다 현저히 강한 사부나 격이 높은 루시엘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나를 잊을 가능성도… 어?
회색빛이 점점 옅어져 가고 있다.
“이런, 마신이 눈치를 챈 모양이군. 시간이 많이 없네. 어떻게 할 텐가?”
“…처음 계획대로 하겠습니다.”
어차피 다른 선택지도 없다고 하니 별수 없지.
이럴 줄 알았으면 일찍 오지 말고 끝까지 시간을 다 보내고 올 걸 후회가 된다.
“알겠네. 그럼 이제 그만… 응?”
원시천존이 갑자기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왜 그러십니까?”
천존은 대답을 하지 않고 그대로 사라졌다.
마신이 적극 개입해 지금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어서 그러는 건가?
이내 시간 정지가 풀릴 거라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옅어져 가던 회색빛이 더 진해짐과 동시에 검은 틈이 생겨났다.
우주 공간의 암흑보다 훨씬 더 짙은 검은 틈새에서… 뭐지?
정말 깜짝 놀랐다.
“사부? 사부가 여길 어떻게…! 왜 거기서 나와요?”
“무례하게 말도 안 하고 가출한 제자 놈 찾으러 왔지.”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며 씩 웃는데 반가운 마음도 들었지만 이내 걱정이 따라온다.
“돌아가세요.”
사부는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
마침 원시천존도 사라졌으니 지금이라도 돌아간다면….
“오자마자 가라니 지금 그게 노구를 이끌고 먼 걸음 한 사부에게 할 소리냐? 벽 하나 뚫었다고 아주 맞먹으려고 드는구나.”
“사부는 이렇게 나오시면 안 되잖아요. 사부가 포탈에서 벗어나면 원시천존께서 무조건 데려가시겠다고 하셨어요.”
“괜찮다.”
나는 걱정돼 죽겠는데 너무 태연한 표정이라 화가 난다.
“괜찮긴 뭐가 괜찮습니까? 얼른 돌아가라고요!”
“아이고, 귀청 떨어지겠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느냐?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네 녀석 혼자 모든 걸 감당하려 하지 말라고.”
“그건….”
“저기 보이는 게 마신이냐? 흉측하게도 생겼구나. 네가 벽을 부쉈어도 저건 네 수준으로는 상대가 안 될 것 같은데?”
“사부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돌아가시라고요.”
“벽을 하나 깼다고 많이 거만해졌구나.”
“저건 신이라고요. 저 자식이 눈을 뜨면 세상이 멸망한다고요.”
“누가 그러더냐?”
“원시천존께서 저번처럼 미래를 보여 줬습니다.”
혹여 사부가 무작정 공격할까 봐 아까 천존이 보여 준 미래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했다.
다만 해결책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괜히 나 대신 사부가 하겠다고 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이만 돌아가세요. 지금이라면 원시천존께서도 사부를 선계로 데려가시지 않을 겁니다.”
“별거 아니네.”
“뭐가 별거 아닙니까? 허세 부리지 마세… 악!”
꿀밤을 맞았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까지 폭력을 쓰다니.
“고얀 놈. 이 사부를 믿지 못하는 것이냐?”
“믿고 안 믿고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쯧쯧, 다 방법이 있다. 자고로 제자가 칭얼대며 구해 달라고 하는데 어떤 사부가 안 나서겠느냐.”
“칭얼대다니…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제가 애도 아니고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고 오셔서….”
“내 제자가 네 녀석 하나더냐?”
세진이에겐 마왕이라고 이야기했으니 아닐 테고, 설마 시엘인가?
시엘이도 그럴 리가 없는데.
이곳에 오기 전 시엘이에게 이틀간 포탈에서 절대 나오지 말라고 했었는데, 설마….
“시엘이가 알려 준 겁니까? 저는 사부랑 같이 간다고 해 뒀는데.”
“처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되지, 이놈아. 하려면 좀 제대로 하든가. 그 영악한 녀석이 네 한심한 연기에 잘도 속겠다.”
전혀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있었구나.
“….”
“설마 신혁이 너 지금 시엘이를 원망하는 거냐?”
솔직히 그렇다.
루시엘이 사부에게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사부는 이곳에 오지 않았을 테니까.
“예끼, 이놈아! 원망할 대상이 따로 있지. 지가 잘못한 건 모르고. 가서 사과부터 하거라. 시엘이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걱정을 많이 할 거다.”
“아니에요. 정말 괜찮으니까 사부, 돌아가세요. 벽을 넘기 위해 저는 이미 오욕칠정을 버렸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루시엘이 나를 걱정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아팠겠지만 지금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
돌아가서 루시엘을 봐도, 세진이를 봐도, 은서를 봐도 마찬가지겠지….
“쯧쯧. 이 한심한 녀석아, 하나만 묻자. 그럼 왜 자꾸 내게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냐?”
어? 그러게…. 이미 나는 모든 감정을 버렸는데 어째서 사부가 희생하는 걸 막으려는 거지?
“네가 버린 것은 오욕칠정이지 추억이 아니지 않느냐? 감정을 지운다 한들 기억은 남는 법이지. 돌아가서 루시엘이나 네 처들을 만나면 다시 애정하게 될 수 있을 거다.”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다.
“뭐 하고 있어? 얼른 가라. 저기 시공의 틈으로 가면 루시엘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사부는 이제 내 등을 떠밀지만 이대로 갈 순 없다.
“고집 좀 그만 부리고. 지금 이거 천존이 하는 거 따라 해 본 거라 오래 유지하지 못할 거야.”
“정말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그 원시천존마저도 영겁의 시간 동안 유인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는데.
“언제 이 사부가 없는 소리 하는 거 봤느냐?”
“자세히 알려 주십시오.”
“말을 해도 네 수준에선 못 알아먹을 텐데.”
“사부.”
“하여간 고집은, 누굴 닮았는지…. 저놈이 눈을 뜬 순간 이 세상이 멸망해 버린다면 차원의 틈에서 처리하면 그만이지 않느냐? 거긴 애초에 아무것도 없는 곳이니 상관없다.”
…사부 말처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지만 대강 개념은 알겠다.
하지만 저 녀석이 죽는 순간 그 차원의 틈도 사라질 텐데 그럼 사부도 같이….
“익숙하지 않은 기술이라 더는 안 되겠구나. 내가 먼저 가야겠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회색빛이 아까처럼 점점 옅어지더니 원래대로 돌아왔다.
사부가 마신을 바라보자 커다란 검은 틈이 생겨나더니 그대로 마신을 집어삼켰다.
“사부, 혹시 같이 죽는 건 아니죠? 돌아오시는 거죠?”
사부는 대답을 하지 않고 나를 걷어찼다.
버티려고 했지만 사부가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제자란 녀석이… 아주 죽으라고 악담을 하지 그러냐? 당연히 돌아갈 테니 가서 라면이나 잔뜩 사 놓고 기다리거라.”
“사부!”
* * *
차원의 틈으로 빨려 들어가며 사부라고 외치는 녀석을 보니 루시엘 녀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미 가 버린 것 같지만 혹시 몰라서 마음으로만 전했다.
신혁이 네가 내 제자여서 정말 고마웠다고.
행복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