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swordsmanship instructor at the Fantasy Academy RAW novel - Chapter 4
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4)
기연 말고 기인
답답하다.
서울에서 장수대까지 두 시간 반.
장수대에서부터 주인공이 낙오하는 장소인 대승령까지 올라오는 데 두 시간.
대승령에 도착해서 수색한 지 다섯 시간이 넘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다.
벌써 해도 뉘엿뉘엿 저물고 있어 주변도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명색이 B 랭크 헌터라 그런지 체력은 괜찮지만, 밤이 되니 길이 잘 안 보이고 4월인데도 고지대라 그런지 날씨가 꽤 쌀쌀하다.
빙의한 주인공은 무척 쉽게 찾던데….
역시 아직 포탈이 만들어지지 않은 건가?
힘이 빠지지만 일단 오늘은 이만 내려가고 내일 다시 찾아봐야겠다.
등산로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찾다 보니 많이 어두워져 헷갈린다.
휴대폰을 켜서 지도 어플을 실행해 보았으나 젠장, 서비스 불가 지역이다.
어쩔 수 없지.
조금 돌아가더라도 일단 위쪽으로 가 봐야겠다.
아직 완전히 해가 진 건 아니니 위에 가서 내려다보면 길이 보일지도 모르니까.
빠르게 위쪽으로 향하던 중 잠깐, 저게 뭐지?
커다란 소나무 옆에 하얀색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가까이 가 보니 하얀색 아지랑이가 점점 짙어지더니 커다란 타원형으로 바뀌었다.
기억 속에 있는 것보다 상당히 작긴 하지만 이건 분명한 포탈이다.
게다가 일반적인 포탈과 달리 소설에서 묘사됐던 것처럼 위험도가 제로를 나타내는 하얀색.
드디어 찾았다는 생각에 바로 포탈로 뛰어들었다.
살짝 어지러움이 찾아왔지만 이내 멀쩡해졌다.
“와!”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이국적인 풀과 나무들이 무성한 데다 계절에 맞지 않는 함박눈까지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역시 다른 세계라는 건가?
소설에는 따로 묘사되지 않았지만, 경치가 정말 예술이다.
아니, 지금 팔자 좋게 감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해도 저물어 간다.
산에서 날을 샐 게 아니라면 일단 무공을 찾아야 한다.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팔에 차고 있는 헌터 워치에 입구 위치를 기록하고 그대로 직진했다.
20분 정도 걷자 드디어 저 멀리 작은 동굴이 하나 보였다.
혹시 아니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기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지는데… 뭐지? 갑자기 전신의 털이 곤두서며 몸이 따끔거린다.
이건 살기다.
쿵― 쿵― 쿵―.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갈라져 쓰러진다.
빠르게 엎드리지 않았다면 나도 저 나무들처럼 반으로 잘렸을 거라 생각하니 절로 등골이 오싹해진다.
도대체 뭐지? 이런 일은 소설 속에선 벌어지지 않았다.
일단 바닥에 완전히 밀착해 어디서 공격이 날아왔는지 찾으려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목 바로 아래 새하얀 칼날이 드리워졌다.
“네놈은 인간이군.”
등 뒤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한국어가 아니라 중국어다.
원래 난 중국어는커녕 영어도 잘 못 하지만 강신혁이 중국 파견을 다녀왔다고 해서 그런지 이해가 된다.
“대답하지 않으면 그대로 베겠다.”
지금 해석이 문제가 아니다.
“자… 잠시만요. 저는 적이 아닙니다.”
중국어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정말 중국어가 나온다.
강신혁이 중국 파견을 다녀와서 정말 다행이다.
“말을 할 줄 아는군. 어디 소속이냐? 그리고 이곳엔 어떻게 들어왔지?”
“저는 길드 소속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터 학교 교사입니다. 이곳은 포탈을 통해 들어왔고요.”
“대한민국? 헌터 학교? 포탈? 전부 알 수 없는 말만 하는군.”
대한민국도 모르고 헌터 학교에 포탈까지 모른다니 뭔가 이상하다.
말을 하는 걸 보면 영락없는 중국인인데, 뭐지?
“전부 다 설명할 테니 제발 칼 좀 치워 주시죠. 저는 정말 그쪽이랑 싸울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어차피 네 녀석은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까 칼 좀 치우고 우리 좋게 얼굴 보고 이야기합시다.”
내 사정이 통했는지 칼이 거두어졌다.
일어나 뒤를 돌아보니 하얀 장삼을 입은 노인이 보인다.
잠깐만, 어쩌면 이 사람이….
“저기… 어르신 존함이 초유량이십니까?”
“호오, 아직까지 내 이름을 기억하는 자가 있을 줄은 몰랐거늘. 어찌 알았느냐?”
혹시나 했지만 진짜 초유량일 줄이야.
원래 주인공이 포탈에서 얻게 되는 내공심법을 남긴 사람이 바로 초유량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포탈을 발견했을 때는 초유량이 등장하지 않았다.
무공과 함께 남겨져 있던 유언에는 이미 우화등선했다고….
아마 내가 주인공보다 2년 먼저 이곳을 찾아서 이렇게 만난 것 같다.
“그게….”
대충 상황은 이해가 됐지만 책에서 봤다고 말을 할 수도 없고,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혹시 네 녀석은 내 후손인 것이냐?”
“아니, 그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예전에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 내 이야기?”
“아주 오래전 중원에 갑자기 등장해 많은 사람을 해치던 흉포한 용과 맞서 싸우다 사라진 무인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에 나왔던 영웅의 모습이 어르신과 유사해서….”
“허허, 세상에 그 이야기가 전해졌을 줄이야. 지켜보는 자가 없었기에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늘.”
급한 대로 소설에서 봤던 유언 내용을 대충 섞어서 말한 건데, 다행히 통한 모양이다.
적당히 비위를 맞춰 주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다 보니 소설에서 본 유언을 남기게 된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용이 나타나 사람들을 학살했고 당시 유랑 중이었던 초유량이 그 모습을 보고 나서 싸움이 벌어졌다.
일주일간의 사투 끝에 승리를 거머쥔 건 초유량이었지만 용은 최후의 발악으로 저주를 걸었다.
초유량과 접촉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버리는.
그런 상황을 모르고 사람들을 만났던 초유량은 무림 공적이 됐고, 결국 깊은 산에 은거하고 저주를 없애기 위해 수련에 몰두했다고 한다.
끝내 저주를 벗겨 내는 덴 성공했지만, 그 순간 갑자기 나타난 검은 공간에 휩쓸려 이곳에 도착했다나.
다행히 이곳에 오자마자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긴 했는데 다짜고짜 공격을 해 와서 제압하고 정보를 알아내려 했지만, 말이 안 통해 전부 죽였다고 한다.
돌아갈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 실패해 이곳에서 무공을 수련하며 혼자 지낸 것이고.
초유량의 묘사로 봤을 때 제압하고 죽였다는 인간들은 마족인 것 같다.
마족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몬스터로, 약한 개체도 최소 A 랭크 헌터와 맞먹는 실력을 가졌다.
뿔이 여럿 달린 강한 놈들은 S 랭크 헌터와 싸워도 밀리지 않을 정도인데 그런 놈들을 열 마리 이상을 잡았다니, 이 양반 괴물인가?
그리고 유언에 정확한 시간은 안 나와 있었기에 얼마나 오래 있었냐고 물어보니 30년 이후부터는 시간을 세지 않았다고 한다.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처음엔 그랬지. 그래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자네를 보니 아직 내 안에 미련이 남아 있었나 보군.”
“네?”
“아까 일은 내 다시 한 번 사과하겠네. 자네가 의지로 이곳에 온 거라면 다시 돌아가는 법도 알고 있겠지? 부탁하네. 나를 밖으로 내보내 주게.”
사과를 받긴 했지만, 다짜고짜 공격받았기에 솔직히 좋은 감정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이 양반의 무공을 배울 생각으로 온 거니 일단은 협조해 주는 게 맞겠지만 문제가 있다.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무협 소설을 쓴 적은 없지만 읽기는 많이 읽었다.
무협의 배경은 대부분 중국이고 명나라 시대다.
이제 와서 나간다고 하더라도 노인이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아니, 어쩌면 같은 세계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었던 소설에서 무공을 쓰는 헌터는 주인공과 원작의 주인공 딱 둘 뿐이었으니까.
“그렇겠지. 그래도 후손이 살아 있다면 만나고 싶네.”
같은 세계라 해도 13억 중국인 중에 어떻게 후손을 찾는다는 걸까?
게다가 여권도 없을 텐데 중국에는 어떻게 넘어가고.
그래도 일단 알겠다고 말하고 헌터 위치를 작동시켜 포탈 입구가 있던 장소로 돌아왔다.
“여깁니다. 저기 저쪽에 하얀색 원을 통과하시면 됩니다.”
“어디를 말하는 건가?”
“여기 이 하얀색 원이 안 보이시는 겁니까?”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안 보이는 모양이다.
안 보여도 통과만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 초유량의 손을 잡고 포탈을 통과했다.
약간의 두통과 함께 이내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는데 초유량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포탈에 진입하자 허탈한 표정으로 서 있는 초유량이 보인다.
“다, 다시 해 보죠.”
첫 시도 이후에도 계속해서 재시도했지만, 초유량은 포탈을 인지하지도 통과하지도 못했다.
“이제 그만 하지.”
세상을 다 잃은 표정에 목소리에도 힘이 없다.
바깥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를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원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초유량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배꼽시계가 울렸다.
“많이 시장한가 보군. 잠깐만 기다리게.”
괜찮다고 하려 했는데 틈도 주지 않고 초유량이 사라졌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그의 손에는 처음 보는 풀들이 들려 있었다.
“귀한 것이니 꼭꼭 씹어 먹게.”
어차피 배낭에 혹시 몰라 챙겨 온 라면과 주전부리들이 있어 거절하려 했는데… 잠깐, 귀한 거?
이거 혹시 영약인가?
일단 받아서 한 입 씹었는데 무지하게 쓰다.
그래, 몸에 좋은 약은 원래 입에 쓴 법이니까.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걸 참으면서 억지로 꼭꼭 씹어 먹는데 어째 초유량은 손도 안 댄다.
“어르신은 안 드십니까?”
“나는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네.”
“네?”
“나 정도 경지에 도달하면 음식과 물이 필요가 없어지네.”
“그렇군요.”
“신기하게도 자네 입에는 맞나 보군. 경지에 오르기 전에는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먹었지만, 그저 허기를 달래는 용도치곤 너무 써서….”
이런 젠장.
말을 듣자마자 씹고 있던 풀을 바로 뱉었다.
“허허, 자네도 억지로 먹었던 모양이군. 그래도 지금 날씨에는 구하기 힘든 것이네.”
그래서 귀하다고 한 거였구나.
하하….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저 먹을 거 있습니다.”
“그럼 진작 말을 하지 그랬나.”
…지금 누구 약 올리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매서웠던 노인의 공격에 감정을 억누르고 가방을 열었다.
포탈을 발견하면 하산이 늦어질 것 같아 넉넉히 싸 왔다.
김밥 두 줄에 초코바 3개, 산 입구에 있는 매점에서 보온병도 팔아서 컵라면도 하나 사고 뜨거운 물도 담아 왔다.
보온병을 열어 보니 싸구려라 그런지 물이 그렇게 뜨겁진 않다.
그래도 컵라면 정도는 익힐 수 있을 것 같아 스프와 물을 붓고 김밥 포장을 뜯었다.
자기는 안 먹어도 된다더니, 내 옆에 와서 얼쩡거린다.
“그게 먹는 건가?”
“어르신도 좀 드시겠습니까?‘
딱 봐도 먹고 싶어 하는 눈치라 권하자 바로 내 옆에 앉는다.
초코바나 하나 주려다가 무공 고수라지만 나이가 나이다 보니 치아가 안 좋을 것 같아 큰마음 먹고 김밥 한 줄을 노인에게 건넸다.
처음에는 살짝 미심쩍어하는 눈치였다가 한 입 먹곤 계속 김밥을 입에 털어 넣는데, 누가 보면 며칠 굶은 사람 같다.
생각해 보니 실제로 굶은 사람은 맞긴 하다.
그것도 며칠이 아니라 거의 몇십 년을 굶은.
초유량은 순식간에 김밥 한 줄을 해치웠다.
자기 입으로 안 먹어도 된다고 한 것 치곤 너무 잘 먹는 것 같은데.
원래 라면이 익길 기다렸다가 같이 먹을 생각이었는데 초유량이 내 김밥을 보며 입맛을 다셔서 나도 그냥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김밥을 더 줄 것 같지 않자 이젠 컵라면을 쳐다보고 있다.
“이건 라면이라고 소면 비슷한 겁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면 요리였지.”
이 양반 보기보다 식탐이 많다.
“조금 나눠 드리겠습니다.”
“아니, 양이 얼마 안 되어 보이는데. 난 괜찮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 계속 라면을 쳐다보는 게, 누가 봐도 안 괜찮아 보인다.
한 번 더 권하자 그제야 못 이기는 척 옆에 앉아 밥 기다리는 강아지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라면의 상태를 확인하자 물이 조금 식어서 그런지 약간 설익었지만 그래도 대충 먹을 수는 있을 것 같다.
젓가락은 1개뿐이지만 주변에 널린 나무를 꺾어 하나 더 만들었고 라면 뚜껑으로 그릇을 만들어 라면을 덜어 줬다.
“먹어도 되는 건가?”
그렇다고 하자 바로 크게 한 젓가락 떠서 한 입 먹더니 이내 젓가락을 던져 버렸다.
맛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라면 뚜껑을 기울이더니 그대로 입에 탈탈 털어 넣기 시작했다.
“입에 맞으시나 봅니다.”
“지금까지 먹은 면 요리 중에 가장… 아니, 그게 너무 적어서 맛이 잘 안 느껴지는군. 조금만 더 줄 순 없나?”
한 젓가락 더 덜어 주자 순식간에 해치우고 또 나를 쳐다보기에 그냥 용기째 라면을 넘겨줬다.
“꺼억―. 이거 참 요물이군.”
순식간에 국물까지 싹싹 비워 내고는 아주 만족한 표정이다.
한 젓가락도 못 먹어서 좀 그렇지만, 어차피 허기는 김밥으로 대충 달랬으니까.
게다가 아직 초코바도 남아 있다.
“단 건 좋아하십니까?”
초코바도 2개 있어 1개를 입가심하라고 나눠 줬다.
아까는 이가 안 좋을 것 같아 조금 꺼려졌지만 지금 보니 무쇠도 씹어 먹을 것 같으니까.
“흠흠, 내 나이가 몇인데 애들처럼 단 걸 좋아하겠는가?”
“그럼 이건 저 혼자 먹겠습니다.”
껍질을 까고 한 입 베어 물자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역시 당이 들어가니 좀 살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초유량이 또다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단 거 안 좋아하신다면서요?”
“크흠흠. 아니, 이 사람아, 싫다고 해도 원래 한 번 정도는 더 권유하는 게 미덕….”
노인네가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껍질을 까서 건넸다.
“색깔이 참 이상하군.”
한 입 베어 물어 맛을 보더니 이내 게 눈 감추듯이 해치워 버렸다.
“더 없나?”
너무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먹던 거라도 괜찮냐고 묻자 순식간에 채 가더니 한입에 먹어 치운다.
비닐봉지를 쳐다보기에 이건 먹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도 계속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왜 웃나?”
“아닙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위로할지 고민이었는데.
희망을 잃은 절대 고수를 구원한 건 김밥 한 줄과 작은 컵라면 그리고 초코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