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swordsmanship instructor at the Fantasy Academy RAW novel - Chapter 57
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57)
우리 선생님은 큐피드
“자, 그럼 지금부터 우리 헌터 학교 학생들의 끼를 뽐낼 수 있는 시간 설악 장기자랑을 시작하겠습니다.”
MC로 나선 직원의 말에 학생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내지른다.
아까 등산할 때는 힘들어하더니 아주 기운이 넘쳐난다.
하지만 난 죽을 맛이다.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사정을 이야기하고 부탁을 해 봤지만 대신 나가 주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든 안 하려고 궁리하다 등산하다가 발을 삐끗해서 병원에 간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도할 수 없었다.
교관 중에 치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선생이 있고 우리 학교 보건 선생인 김 선생도 여기 있으니까.
“강 선생님, 연습은 좀 하셨어요?”
처음 만났을 때 결투했던 창술사 선생인데, 2학교 측에선 이 사람이 나간다.
“그럴 시간이 있었어야죠. 진짜 죽겠네요.”
“너무 부담 가지시는 거 아니에요? 대회 같은 것도 아니고 점수 매기는 것도 아닌데, 편하게 하세요.”
다른 2학교 선생님들이 말해 줬는데 여기 창술 선생은 원래부터 춤을 좋아하고 학창 시절에는 댄스 대회에 나가서 상도 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여유가 넘친다.
“맞아요. 관객이라고 해 봤자 다 학생들인데 뭐 어때요?”
옆에 있던 다른 2학교 선생이 거드는데 지금 약 올리는 건가?
사실 이미 선택은 했다.
“강 선생님은 노래하신다고 하셨죠?”
“네.”
댄스와 노래 중에 내가 선택한 건 노래다.
방구석에서 글만 쓰던 작가다 보니 클럽이라곤 20살 때 딱 한 번 가 본 게 전부라 댄스랑은 정말 아무 접점도 없으니까.
그래도 노래방은 친구들과 자주 갔었다.
“어떤 노래 하실 거예요?”
교육대장 김 선생이다.
“자작곡입니다. 장르는 락발라드?”
“자작곡이요? 오, 작곡도 하시는 거예요?”
“아, 네. 뭐, 그냥 취미 삼아서….”
“대단하시네요. 기대할게요.”
자작곡이란 말은 당연히 거짓말이고 전생에 좋아하던 가수의 노래를 부를 생각이다.
아는 노래도 없고 새로 연습할 시간도 없는 데다 교감 말대로 애국가를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기대하지 마세요.”
노래방에서 수십 번은 불렀던 노래라 가사나 음 같은 건 전부 기억하는데 세상에 없는 노래다 보니 반주도 없다.
그래도 아예 모르는 노래보단 낫겠지.
한 명 한 명 학생들의 무대가 끝나고 점점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다.
“2학교 김현필 선생님의 멋진 댄스 무대 잘 봤습니다. 1학교 선생님도 질 수 없겠죠? 그럼 다음 차례는 1학교 강신혁 선생님입니다.”
대회 나가서 상 받았다는 게 정말인지 내 바로 앞 차례인 창술사 선생의 무대는 정말 멋있었다.
학생들 반응도 무척 좋았는데 분위기가 한껏 업되어 있어 더 부담이 된다.
차라리 내가 먼저 할 걸 그랬다고 생각하며 무대에 올랐다.
“안녕하세요. 강신혁입니다.”
“우리 선생님 잘생겼다!”
“선생님 멋있어요!”
검술반 학생들인 것 같은데 오히려 더 부담스럽다.
“강신혁 선생님은 부르실 곡은 자작곡이라고 하는데 노래하기 앞서서 간단하게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딱히 설명할 게 없는데….
“장르는 락발라드, 제목은 ‘너에게로 떠나는 여행’입니다. 원래 교관의 참여는 예정에 없던 일이라 반주가 없는 건 양해 부탁드립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가수인 머즈의 노래다.
사실 이 곡보다 다른 곡을 더 좋아하지만 수련회 장기자랑인 만큼 신나는 노래가 좋을 것 같아서 이 곡을 골랐다.
* * *
“와, 대박. 우리 선생님 노래 진짜 잘한다.”
“노래 실력도 실력인데 노래 자체가 너무 좋던데. 가사도 좋고 엄청 신나고.”
“그러게. 이런 노래를 직접 만드시다니, 우리 선생님은 진짜 못하는 게 뭐야?”
* * *
학생들 반응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다.
노래가 끝나기 무섭게 앵콜 요청이 엄청나게 쏟아져서 나도 모르게 한 곡을 더 할 뻔했을 정도였다.
반주도 없는 데다 다들 처음 들어 보는 걸 텐데 세상이 바뀌어도 역시 명곡은 명곡인가 보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노래가 잘 불러졌다.
워낙 많이 부르던 노래이기도 하고 노래 자체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니긴 하지만 고음 파트도 완전 부드럽게 올라가고 전생보다 확실히 쉽게 느껴졌다.
강신혁이 원래 노래 쪽에 재능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아마도 무공을 익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음공을 배운 건 아니지만 명색이 초절정 고수다 보니 육체 스펙이나 호흡도 전생보다 훨씬 좋아졌으니까.
“강 선생님, 노래 정말 잘 들었어요.”
“가수… 아니지, 직접 작곡하신 노래라고 하셨으니 싱어송라이터 하셔도 되겠던데요? 노래 너무 좋던데.”
“하하….”
“죽겠다고 하시더니 완전히 엄살이셨네요.”
2학교 선생들이 다가와 칭찬을 건네는데 우리 학교 실기 선생들은 말 한마디 걸지 않는다.
내가 망신을 당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한 방 먹여 준 것 같아 통쾌하다.
* * *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마지막 알람이라 빠르게 준비하고 기숙사를 나섰다.
어제 수련회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다.
하루 정도 쉬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정상 수업이다.
수련회 마지막 날 일정이 퇴소식뿐이라 오전 일찍 끝나긴 했지만, 사부에게 들렸다 늦게 도착했다.
이번 주말엔 승급 심사도 봐야 하고 김 선생, 홍 선생과 식사 약속도 잡혀 있어 가지 못하니까.
예선전도 아직 2주나 남아서 보강 수업도 계속 해야 하고 예선이 끝나면 기말고사다.
기말고사 끝나면 바로 축제니 축제 준비도 해야 할 테고….
얼른 방학이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식당에 들어왔다.
아침 메뉴도 별로라 대충 허기만 달래고 방에서 챙겨 온 홍삼이나 먹으려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어, 쌤?”
“세진이구나.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요. 수련회는 잘 다녀오셨어요?”
3학년은 실습 갔다고 들었는데 어제 복귀한 모양이다.
그런데 실습 간 곳에서 밥을 안 줬는지 다이어트를 하는 건지, 며칠 사이에 많이 마른 것 같다.
“나름. 그런데 세진이 너 요새 다이어트 같은 거 하니?”
“네? 아니요.”
원래부터 군살이라곤 하나도 없던 녀석인데 지금은 좀 핼쑥해 보일 지경이다.
“며칠 전에 봤을 때 보다 마른 것 같은데. 약은 챙겨 먹었지?”
“그럼요. 하루도 안 빼 먹고 먹었어요.”
흐음, 며칠 안 먹이긴 했지만 다른 녀석들은 약 먹고 나서 키도 크고 살도 오르던데 세진이한테는 약이 잘 안 맞나?
우리 애들과 달리 3학년이다 보니 성장기가 끝나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밥 좀 많이 먹어. 아, 이것도 밥 먹고 먹어.”
먹으려던 홍삼을 건넸다.
“선생님이 드시려던 거 아니에요?”
“난 교무실 가면 또 있거든.”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는 녀석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대단한 것도 아닌데. 이따 보강 때 봐.”
세진이와 헤어져 교무실에 도착했다.
며칠간 못 봤던 다른 선생님들과도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수업 자료를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회의 시간이 됐다.
회의는 별 내용 없었다.
수련회 여파로 들떠 있는 애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분위기 조성 잘해 달라는 이야기 정도?
우리 검술반 애들은 워낙 잘 따라 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검술 훈련장에 도착해 서류 업무를 좀 하다 시간이 돼서 나오니 분위기가 평소와는 사뭇 다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남자애들은 남자애들끼리, 여자애들은 여자애들끼리 뭉쳐 있고 말도 안 섞는다.
단체로 싸움이라도 했나?
아웅다웅하면서도 늘 붙어 있던, 이제는 커플인 진수와 민희조차 아예 떨어져 있다.
대놓고 물어보면 답을 안 할 것 같은 분위기라 일단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민희가 선두에 서서 구보하고 진수는 잠깐 선생님 좀 도와줘. 안에서 가져올 게 있거든.”
“네.”
“네.”
민희가 구보를 시작하자 진수를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쌤, 뭐 들고 가면 돼요?”
“사실 들고 갈 건 없고, 뭐 하나 물어보자. 너희들 왜 그래?”
“네?”
“분위기가 평소랑 너무 다르잖아. 남학생이랑 여학생이랑 서로 말도 안 섞고. 무슨 일 있지?”
“아, 저기, 그게….”
녀석답지 않게 갑자기 표정이 심각해진다.
무슨 사고라도 쳤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주 대형사고를 저질렀다.
수련회 때 녀석이 고백했던 게 진짜 고백이 아니었다.
민희를 곤란하게 만들 목적으로 고백한 거라는데, 이 녀석은 진짜…….
솔직히 아예 마음이 없으면 그런 장난 같은 건 하지 않았을 테니 기왕 그렇게 된 거 둘이 잘 사귀면 아무 문제 없었을 거다.
하지만 이 바보 같은 진수 녀석이 고백 직후 옆에 있던 친구들에게 가짜로 고백한 거라고 말을 해 버렸단다.
이런 사실은 민희 귀에도 들어갔고 고백을 받아 준 민희만 완전히 우스워졌다.
진수와 민희 둘 다 반 대표와 부대표로 각각 남자와 여자들의 중심이다.
여자애들은 민희의 편을 들며 진수를 욕했고 남자들은 진수가 장난으로 그런 건데 왜 그리 과민 반응 하냐며 진수를 감싸고 돌면서 이런 상황이 만들어졌다.
“민희에게 사과는 했어?”
“그게… 메신저는 차단당하고, 만나서 이야기하려고 해도 얼굴 보기도 싫으니까 꺼지라고….”
“그래서 안 했다고?”
“아니, 저는 그냥 진짜 장난으로 그런 건데…. 걔도 평소에 저 엄청 괴롭히고 장난 걸고 그랬는데….”
변명을 늘어놓는 걸 보니 아직 정신 못 차렸다.
“이진수, 고백이 장난이야? 민희가 너한테 이런 장난 친 적 있었어?”
장난도 정도가 있지.
사람 마음 가지고 노는 건 진짜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아니요…. 저기, 그럼…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뭘 어떡하기 어떡해?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지.”
“하지만 민희가 아예 저랑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해서….”
“아예 민희랑 절교할 거 아니면 받아 줄 때까지 빌어야지. 남자애들에게도 진수 네가 잘못한 거라고 제대로 설명하고.”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고개를 푹 떨구는데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 좋다.
너무 몰아세웠나?
덩치만 컸지 아직 17살밖에 안 된 애니 실수할 수도 있는 건데.
“선생님도 민희랑 한번 이야기해 볼게.”
“정말요?”
“너무 기대하진 마. 이야기 한 번 해본다는 거지. 강제로 화해하라고 하진 않을 거야.”
용서할지 말지는 피해자가 선택하는 거니까.
“가… 감사합니다.”
진수와 함께 다시 사무실을 나와서 구보를 뛰게 하고 평소처럼 수업을 진행했다.
분위기는 아주 안 좋았지만 그래도 수업은 다들 열심히 참여해서 잘 마쳤고, 뒷정리를 핑계로 민희를 남겼다.
“선생님, 정리 다 끝났어요.”
“수고했어. 민희, 오늘 점심은 선생님이랑 같이 먹을래?”
“네?”
“아침에 보니까 점심 메뉴 별로던데, 급식실 말고 매점 가자.”
“혹시 진수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쩝, 둔한 누구와 달리 민희는 눈치가 빠르다.
“겸사겸사. 진수 이야기 말고도 다른 이야기 할 것도 있으니까 같이 가자. 선생님이 살게.”
탐탁지 않아 하는 표정이었지만 다행히 거절하진 않아서 민희와 함께 교직원 매점으로 향했다.
“아까 진수에게 이야기는 들었는데….”
“저… 선생님, 진수랑 화해하라는 말이면 안 들을래요.”
살짝 떠보려 했는데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 보면 진수 이 녀석 미운털이 박혀도 아주 단단히 박힌 모양이다.
“응? 선생님이 왜? 선생님도 사정을 들었는데 당연히 안 그러지. 선생님을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다니 실망인데.”
“네? 아니, 저는….”
“선생님도 진수가 잘못했다고 생각해. 아까 진수에게 이야기 들었을 때도 많이 혼냈어.”
“정말요?”
“응. 진수 그 녀석은 그저 장난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진짜 선생님밖에 없네요. 제가 잠깐 미쳤던 것 같아요. 그런 애 같은 녀석이 뭐가 좋다고.”
“하하….”
“역시 저는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 나중에 졸업하면 선생님이랑 결혼할래요.”
아니, 왜 이야기가 이렇게 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