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117)
“크흠흠.”
“청청, 아직도 목 안 풀려요?! 촬영 몇 시간 안 남았는데.”
며칠 후, 연습실.
우리는 차율의 [슬로프(slope)>를 한 번씩 연습해 보기 위해 모였다.
오늘은 [탑 오브 아이돌>의 각 팀별 연습 장면을 따는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제는 정말 목이 맛 가고 있었다.
“목 상태가 최상은 아니네.”
나는 습관적으로 백녹하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솜뭉치, 대체 언제쯤 정산해 주는 거야?
느낌상, 이제 정말 곧일 것 같은데 말이지.
아예 연락도 안 되고, 소통할 수 있는 방법도 없으니 그저 답답했다.
그러나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솜 뭉탱이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그 문제가 뭔지는 짐작도 할 수 없었지만.
“그럼 오늘은 연습 안 하는 게 낫지 않아요?”
류보라가 내게 배도라지즙을 건네며 말했다.
“멤버들 연습하는 거 봐주기만 해, 청아.”
“맞아요. 언니 솔직히 라디오 너무 많이 돌았음.”
서백영과 김금도 류보라의 말에 동의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디어 마이 디바> 일정이 밀렸다는 거지.”
“그니까요. 세 달이나 밀리다니.”
들어 보니까 다른 출연자들 일정 조정에 실패했다나 뭐라나.
“단하 선배님이 일정 미룬 거라고 하던데. 소문에는.”
“에엑. 그 FM 선배님이 뭘 미루기도 한대요?!”
그랬구나.
사실 나도 그거까진 몰랐다.
어느 날 갑자기 그냥,
번애쉬 단하 선배님
일정 밀립니다
자세한 건 매니저님께 설명 들으세요
라고 연락 왔을 뿐이지.
그런데 그게 그 인간이 미뤄서 그런 거였다니.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믿지 않았겠지만 서백영이 물어 온 정보라 신빙성이 있었다.
“나는 MC 스케줄 조정 하나에 프로그램이 밀린 게 더 신기해. 그 정도 되면 그냥 다른 사람을 섭외하지 않나? 단하 선배님이 진짜 인기 많긴 한가 봐.”
“이번에 커리어 하이 제대로 찍었잖아요. 사실상 컬러즈는 번애쉬가 먹여 살리고 있다고 봐야.”
“금김. 어떻게 그런 말을…. 우리도 우리 밥값은 해요!”
“그렇지. 근데 이제 거기는 밥값 수준이 아니라 미슐랭 코스 요리 값을 하는 수준이라 그럴 뿐임.”
“….”
연주홍은 또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단단히 삐진 얼굴이었다.
저 녀석은 웃긴 게, ‘너 최고야.’ 이러면 절대 아니라고 하는데.
‘다른 그룹 최고야.’ 이러면 엄청나게 삐진다.
‘나’는 최고가 아니지만 ‘우리’는 무조건 최고라고 생각하는 걸 보면, 가끔은 참 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그렇다.
“청청. 아무튼 오늘은 좀 쉬고 우리 연습이나 봐줘요.”
“그럴까. 편곡은 다 끝난 거야?”
“넴. 일단 1차로는 끝났어요.”
“그럼 다 같이 들어 봅시다.”
김금은 기다렸다는 듯이 노래를 틀었다.
멤버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Run down
너는 끝도 없는 슬로프를
Go down
끊임없이 내려가고 있어
그러나 무섭진 않아
We slope away from slope
We slope away from snow
“우리가 얘기했던 그대로 방향 잘 잡았네.”
“그래요?”
김금은 실실 웃었다.
저번부터 생각한 거지만 의외로 김금은 칭찬에 되게 약한 면이 있다.
평생 칭찬만 받고 살았을 텐데도 좋은 건 숨길 수 없나 보구나.
“다들 어떻게 생각해?”
“다 좋긴 한데 좀 더 반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회성 무대니까 지금보다 더 극적이어도 되긴 하겠다. 그게 더 눈에 띄기도 할 거고.”
“아마 다들 가지고 있는 걸 총동원할걸요. 그러니까 우리도 좀 더 힘을 줄 필요가 있어요.”
다들 류보라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크 어 뉴 컬러>와 달리 [탑 오브 아이돌> 즉, 탑돌은 탈락자가 발생한다.여섯 팀 중 두 팀이 탈락하니까.
“1등은 못해도, 탈락 팀이 되면 안 되죠. 서바이벌 출신이.”
“….”
분하긴 한데 반박할 말이 없다.
“그럼 금아.”
“…예에. 구르고 올게요.”
“도와줄게, 이번엔.”
한동안은 바빠서 못 도와줬지만 나도 이제는 일정이 좀 나아졌으니까.
사실 그동안 개인 스케줄이 가장 많았던 건 나와 류보라였다.
나는 메뉴컬 1위라 혼자서 불려 다니는 일이 많았고, 류보라는 센터에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 보니 개인 활동이 많았다.
다른 게 있다면 난 사방팔방 불려 다니며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고.
류보라는 화보나 광고 위주의 개인 활동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최근에 OST 발표를 해서인지 내 앞으로는 노래 관련 스케줄이 더더욱 많았던 것 같다.
김 이사가 나한테 칼이라도 간 것처럼 스케줄을 몰아주기도 했고.
다른 멤버들과 함께 나가고 싶다는 제안도, 김 이사가 전부 컷했다.
느낌상 노래를 많이 불러야 한다 싶으면 내게 주는 것 같았다.
내가 매니저를 의심하는 것도 여기에 있었다.
현재 내 목 상태가 나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멤버들, 이솔, 그리고 매니저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 이사가 나를 밀어줄 사람도 아닌데 굳이 노래 관련 스케줄을 줄줄이 잡아 주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목 좀 혹사시켜 봐라 하는 심보일 거다.
솔직히 그럴 때마다 그냥 미션 성공하자마자 바로 비리부터 터트리고 뜰까 하는 충동까지 들었다.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가 겹친 상황이다 보니 더더욱 목이 안 좋아진 것 같다.
하지만 이쪽도 스케줄을 거절할 만한 연차가 아닌데다가, 멤버들도 모두 바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서백영은 톡틱 관련한 광고와 개인 스케줄이 많이 들어왔고.
연주홍은 뷰티 화보와 음료수 광고, 그리고 예능에서 소소하게 활약 중이었다.
김금은 노래 작업을 하느라 죽어나고 있었고.
왜 예능 능력치가 가장 좋은 김금이 방송 활동을 안 했냐고?
‘저 당분간은 음악에 좀 집중해 보고 싶어요.’
‘…예능 나가고 싶어 했던 거 아니었어?’
‘원랜 그랬는데. 아파 보니까 알겠어요. 저는 음악이 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차기 앨범 준비를 좀 해 보고 싶어요.’
본인의 의지가 이렇다 보니, 나도 더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김금의 앞으로 온 예능 섭외는 거절을 하거나 다른 멤버들이 사이좋게 나눠 가져갔다.
덕분에 스케줄이 늘었지만, 불만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저나 문득 느낀 건데.
우리 단체 활동이 탑돌밖에 없네, 지금은.
나는 윤청의 핸드폰을 꺼내, 오랜만에 SNS 반응을 확인해 보았다.
내 멸칭들이 너무 많아서… 찾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메뉴컬 때는 청산가리라는 말이 많이 쓰이곤 했는데, 너무 길어서 그런가 이젠 ‘릅’으로 많이 불리고 있었다.
윤청이 어떻게 ‘릅’이 되었냐고?
윤청-윤블루-윤블-블-릅.
대충 이런 과정을 거친 것 같다.
가끔 나를 두릅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던데.
배고파지니까 그런 별명은 자제해 주면 좋을 것 같다.
★
ㅈㄴ 싫은게 서바이벌 땐 그렇게 관계성 관계성 ㅇㅈㄹ하더니 응 데뷔하자마자 갠활만 존나때려
릅은 리더면 서치 좀 하든가 눈치좀 챙기든가했으면함 갠활 작작하라고 니나 애들이나
탑돌 나가자고 한 거 백퍼 릅 빡머갈에서 나온 생각일듯 기껏 갖고온게 이거니…
오슷 따올 시간에 애들 좀 챙겨
덤덤릅충아 덤덤한게 아니라 그냥 ㅅㅂ 감정이 없는거 아니냐고 난 감정 있는 ATM이라고 몇 번을 말해
다들 많이 화가 나셨군.
나도 대충 예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특히나 내가 OST를 발표한 것에 대해서 팬들의 불만이 가장 많았다.
그나마 김금이 작곡한 노래라, 조금 불만이 수그러들긴 했지만….
타이틀곡 [파란>이 5위와 8위 사이를 넘나들고 있을 때. OST는 15위에서 20위를 넘나들고 있으니까.
화제성을 나눠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도 있겠지.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파란> 활동이 마무리될 때쯤 OST가 발표되었다는 점이었다.
나도 성대결절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성급하게 발표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당분간은 사리자.
정말 피할 수 없는 게 아니라면 개인 활동은 전부 거절하는 게 좋겠다고 매니저에게 말해야겠다.
그렇게 말했는데도 들어먹질 않으면… 조치를 취해야겠지.
“근데 오늘 차율 선배님 왜 오시는 거래요?”
“그러게. 다른 팀은 아무도 원곡자가 방문 안 한다던데. 우리 팀만 방문을 하시네.”
“걱정이 많이 되시는 건가?! 우리 잘할 수 있는데?!”
“….”
…개인 활동 문제는 매니저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셈 치고 맡겨 보고.
나는 이것부터 해결하자.
***
“윤청 씨. 제 노래를 고르신 이유가 있나요? 쉬운 노래는 아닌데.”
“아, 저희 모두 평소 좋아하는 노래여서 골랐습니다. 가사도 사실 많이 와닿았어요. 저희 그룹 컨셉과도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거 제가 작사한 거예요. 윤청 씨도 알고 있었어요?”
“네, 알고 있었습니다.”
“윤청 씨는 작사도 한다고 들었는데.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죠?”
정말 불편하다.
차율은 누가 말을 걸든 결국 나한테로 돌아와서 대화를 나누려 하고 있었다.
마치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는 관심이 없다는 듯.
저 미친 언니가 진짜….
저런 건 사석에서만 하라고 했는데, 카메라 앞에서도 이러고 있네.
그렇게 생각하다 문득 깨달았다.
아.
…여기의 차율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겠구나.
여기는 백녹하가 없는 세상이니까.
“그, 선배님. 저희가 편곡한 거 한번 들어 보시겠어요?”
“아, 네. 누가 편곡했죠? 청 씨가 편곡했나?”
“…제가 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일단 들어 볼게요.”
미안하다, 금아.
어렸을 때의 차율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뒷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4년 차 때부터 친해진 거라, 10년 전의 차율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미처 몰랐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15년 차의 차율도 참 ‘평범한’ 사람은 아니긴 했지만.
그것도 5년 차의 차율에 비하면 양반이었구나.
지금의 차율은 아예 카메라가 있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차율의 팬들은 저런 모습에 더 열광했지만.
“노래 괜찮게 편곡한 것 같은데. 원곡 분위기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 게 오히려 좋네요. 편곡에 감이 있구나.”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전 음악 관해선 빈말 안 해요.”
“녜….”
저 급발진 호랑이 김금도 차율 앞에서는 그저 순둥한 고양이일 뿐이었다.
이상하게 선배들한텐 좀 약한 부분이 있더라.
“편곡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에요. 여기서 좀 더 극적인 분위기를 내려고 합니다. 밴드 사운드를 가미해서 진짜 악기 연주를 넣으면 어떨까 했어요. 더 극적이고 웅장한 느낌을 넣어 볼까 해서.”
난 그렇게 말하고 재빠르게 덧붙였다.
“이건 보라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래요? 아이디어 괜찮은데. 스토리텔링 쪽으로 섬세하게 신경을 많이 써 주시네요.”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에 류보라의 얼굴에 묘한 화색이 돌았다.
연기하는 건 이제 싫다, 싫다 하면서도 스토리텔링이나 시네마틱 사운드에는 엄청 관심 많다니까.
“근데요, 청 씨. 그…”
차율은 또 나를 향해 질문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진짜 끈질기구나.
나는 또다시 내게로 돌려진 시선에, 한숨을 삼켰다.
예나 지금이나 한번 누군가한테 꽂히면 정신줄 놓는 게….
일관성이 있어서 좋다고 해야 할지.
나는 적당히 예의 있게 대답한 후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차율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저… 선배님.”
“네.”
“사실, 저 선배님 팬입니다.”
“!”
차율은 바로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보았다.
“진짜로요?”
“네. 그러니까 좀 더 편하게 계셔도 되세요.”
“나 긴장하고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차율이 정말 놀란 눈으로 물었다.
딱 보면 티 나지 않나?
나만 느끼고 있는 건가.
“팬이니까요. 그 정도는 알 수 있죠.”
“그렇구나…!”
“그러니까 그냥 저희, 더 편하게 대해 주세요. 저희 다 선배님 팬이니까… 그냥 막 대하셔도 돼요.”
“알았어요.”
차율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요. 청 씨가 좀 편하게 느껴져서 자꾸 청 씨만 찾게 되네.”
“감사합니다.”
“이제 방송에 집중할게요. 대신.”
“?”
“이거 프로그램 끝나고 나중에 나랑 밥… 먹어 줄 수… 있나?”
그게 뭐라고 이렇게 어렵게 말하는 거지.
“물론이죠. 저야 좋습니다.”
“진짜? 다행이다.”
차율은 금세 희희낙락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절로 맥이 빠졌다.
이젠 내가 아이돌이 아니라 조련사가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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