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116)
드디어 [탑 오브 아이돌> 첫 녹화가 끝났다.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멤버들은 모두 차에 타자마자 일제히 이어폰을 꽂고 [슬로프(slope)>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3분 47초 후.
“이거 어케 해요…?”
“다시 생각해 보니 곡 선택을 잘못한 것 같슴다만.”
“막연히 좋은 노래라 선택했는데, 막상 부르려니까 엄청 어려운데요.”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여러분.”
나도 그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한 명이서도 잘 부르는데, 다섯 명이서 나눠 불렀을 때 못 부르면.”
하지만 그래도 잘해야만 했다.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
“….”
내 말에 분위기가 매우 숙연해졌다.
“더군다나 차율 선배님은 여섯 팀 중에서 명실상부 탑이야. 가장 인기 많은 사람의 최고 히트곡을 망쳤다간 어떻게 될지 말 안 해도 다들 알겠죠. 모두 서바이벌 해 봤으니까.”
다들 겪어 본 것이다.
인기 많은 곡의 커버를 실패했을 때의 그 싸늘하고 가차 없는 반응들을.
실제로 우리 미션 중에서도 [컬러즈의 선배 아이돌 커버>가 있었으니까.
여기서 그때 욕 안 먹어 본 사람이 없을 거다.
…너무 겁만 줬나.
“그래도 나도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가 있어요.”
“뭔데요…?!”
연주홍이 아주 작은 희망이 담긴 눈으로 날 보았다.
“난 우리가 그 노래, 잘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
정말로 있었다.
애써 위로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나는 우리가 잘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음역대가 넓긴 하지만… 그건 우리 다섯 명이서 분배하면 충분히 해결되고. 또 애초에 이건 원곡자를 넘어서겠다는 마음으로 하면 안 된다는 거 다들 배웠잖아요, 메뉴컬 때.”
“그건 그렇지.”
서백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이 말이 맞아. 우리는 그저 검증된 명곡으로, 우리만의 매력을 보여 주는 것에 의의를 둬야 해.”
“제가 저희한테 맞게 한번 잘 다듬어 볼게요.”
“좋아요! 저도 이번엔 정말 목숨 걸고 할 준비가 되었어요! 꼭 1등을 해서 다 뿌술 거야…!”
김금과 연주홍도 서서히 기운을 차렸는지 눈이 불타올랐다.
“뭘 부수겠다는 건데…?”
류보라가 미심쩍은 눈으로 연주홍을 보았다.
“헙.”
연주홍은 입을 쏙 다물었다.
뭘 부수긴, 하이하이호랑 김려유를 부수고 싶다는 거겠지.
아까 루미와 있었던 일은 멤버들에게 비밀로 하라고 내가 당부해 두었었다.
멤버들이 알면 다들 길길이 날뛸 게 뻔해서.
사실 내 입장에선 그냥 별것도 아닌 사람이라, 멤버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뭐긴요! 려유 언니용!”
“…흐음.”
류보라는 여전히 수상하다는 눈으로 연주홍을 훑어보았다.
평소에는 남 눈치 절대 안 보면서 이럴 때만 눈치 빠른 거 봐.
“자, 자. 오늘은 다들 가자마자 푹 잠들기야. 내일부터는 죽어라 연습해야 할 테니까.”
“네!”
류보라가 더 캐물을세라 나는 빠르게 화제를 돌렸고, 연주홍도 내 말을 덥석 물었다.
***
“다들 잘 자용! 내 꿈 꾸기!”
“…악몽을 꾸라는 거임?”
연주홍과 김금이 투닥거리며 자러 들어갔다.
류보라야 아까 진즉에 자러 갔고.
이제 남은 건 서백영과 나였다.
“언니.”
“응.”
“잠깐 얘기 좀 할까요.”
아까 다 못 한 얘기가 있었으니까.
서백영은 미소 지으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한숨 쉬고 싶은 쪽은 이쪽이다, 인마.
그러나 서백영은 내 요청을 거절하진 않았다.
우리 둘은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럴 땐 같은 방을 쓰는 게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언제부터였어요?”
“…어떤 거?”
“모르는 척하지 말고요.”
내 말에 서백영은 그저 고요하게 웃을 뿐이었다.
어둠이 가라앉은 방에서도, 서백영의 눈은 은은하지만 확실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저런 눈을 알고 있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눈.
나는 저런 눈을 어려워한다.
저런 눈을 가진 사람은,
“난 괜찮아, 청아.”
혼자서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려 하기 때문이다.
“사장님이 원하는 게 정확히, 뭐래요?”
“!”
홍연서가 거론되자, 서백영은 적지 않게 놀란 눈치였다.
내가 거기까지 추론했을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던 것 같다.
“언니한테는, 어떤 걸 하라고 한 거죠?”
“…청아.”
“뭐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왜 비밀로 했냐고 책망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걱정돼서 묻는 거예요.”
전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단순히 연차가 높은 연습생이라서 알아낸 정보들이라기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적어도 회사 임원급에게 들은 듯한, 신인으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들.
서백영은 그런 정보들을 누구에게서 얻어 내고 있었을까.
김 이사는 당연히 아닐 거고.
처음에는 성 이사를 의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성 이사와 서백영 사이의 연결점이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홍 사장까지 생각이 닿았다.
“제가 한번 추측해 볼까요.”
본인이 말하기 어렵다면, 내가 대신 말하는 수밖에.
“홍 사장님이 이번에 레이블 분리하겠다고 하신 거, 사실 이사들 좋으라고 하신 건 아니시죠.”
전생에서도 그랬다.
레이블을 분리한 건 맞았지만, 결국 홍 사장이 세 개의 레이블을 모두 다 손에 거머쥐게 되었다.
“….”
“사실. 성 이사님과 김 이사님을 견제는 하고 싶은데. 두 사람이 쌓아올린 실적이 너무 많아서 견제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증거를 모으고 싶었고.”
서백영은 그저 나를 응시한 채 가만히 들을 뿐이었다.
그러나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1년간 두 사람의 실수와 비리들을 차곡차곡 모아서… 시기적절할 때에 터뜨리려 했겠죠. 두 사람을 내보내거나, 혹은 권력을 다시 되찾기 위해서.”
홍연서.
사람이 오락가락하고, 변덕이 심하긴 하지만 멍청한 사람은 아니다.
그저 본인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회사를 자주 내팽개친 사람일 뿐이지.
“연차가 낮은 그룹 위주로 아마 한 명씩 정보원 겸… 본인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을 골랐을 거예요. 아마 우리 중에선 그게 언니였을 거고. 맞죠?”
“사장님은 원래 널 고려하셨다고 하더라.”
그제야 처음으로 서백영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느껴지셨대. 네가 사장님 말에 순순히 따르지 않을 거란 것을. 말씀은 안 하셨지만… 청이 너보다는 오래 봐 온 내가 훨씬 더 안전한 선택이라 생각하셨겠지.”
“솔직히 사장님을 좋아하진 않아요.”
“그래서 나한테 부탁하신 거였어.”
서백영은 눈을 잘게 떨었다.
“청이 너는… 정말로 대단하긴 하다. 어떻게 알았어?”
“언니가 너무 많은 걸 아니까.”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거야 나는 이유가 있으니까….
물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니지만.
“섭섭해? 내가… 청이 너한테 말 안 해서?”
“아뇨.”
“사실 리더… 그래서 못 하겠다 한 것도 있었어. 내가 리더를 맡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사장님의 마음대로 좌지우지될까 봐. 난 그건 싫었거든.”
그래서였군.
홍연서 때문에 내가 팔자에도 없는 리더 노릇을 하고 있는 거였다니.
“물론 그게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서백영은 후련해 보이기도 하고, 또 씁쓸해 보이기도 했다.
“미안해. 말 못 해서. 말하고 싶었는데-”
“그것보다 언니는, 괜찮아요?”
“!”
서백영의 얼굴이 의문과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어둠과 뒤섞인 의문이었다.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팀에 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언니로선 팀을 보호하기 위해 한 선택이었을 테니까.”
대충 사정은 이해가 됐다.
무려 사장이 직접 지시한 건데, 신인이 그걸 거절할 수 있을 리가.
그리고 홍연서도 아무 대가 없이 시키진 않았을 거다.
정보를 받는 대신에, 또 정보를 줬겠지.
“홍 사장님이 우리한테 뭘 원했든… 그게 무리한 요구였거나 우리에게 해가 되는 요구였다면, 언니가 들어줬을 리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본 서백영은 그런 사람이었다.
조금 서투르고, 또 조금은 어릴지 몰라도.
올곧은 사람.
“…사장님이 원하신 건 단 하나였어. 김 이사님이 우리를 방해하는 일들을 전달하는 것.”
“….”
그런 거였군.
역시나 홍 사장은 이사들을 찍어 누르고 다시 경영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사장님 말을 따랐던 거야. 나도 김 이사님을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우리도’죠.”
“…그래. 우리도.”
서백영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지키고 싶었어.”
서백영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데뷔만 하면, 전부 끝이라고 생각했어. 그 뒤로는 그냥 탄탄대로일 거라고. 회사와 잘 얘기해서 우리만의 비전을 펼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아니었지.
데뷔가 확정되자마자 김 이사가 그 희망에 찬물을 끼얹었던 날.
나는 오랜 시간 데뷔를 꿈꿔 온 서백영의 마음을 짐작해 보았다.
절망스러웠을 것이다.
간신히 큰 산을 넘었더니 더 큰 산이 나타난 셈이었으니까.
“뭐라도 하고 싶었어. 우리를 위해. 하지만 나는… 내 생각보다도 더 작고 별거 아닌 존재더라. 김 이사님이 왜 그렇게까지 나를 하찮게 본 건지 이해가 될 정도로.”
이제 막 데뷔가 확정된 연습생에게 무슨 힘이 있겠는가.
사회에 이제 갓 발을 디뎠는데.
서백영의 무력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사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인 거야. 우리를 위해서… 뭐라도 해 보고 싶었으니까.”
“….”
“난 그게 싫었어. 네가 혼자 짐을 다 짊어지는 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나.
딱히 짐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는데.
처음 듣는 서백영의 진심에, 나는 뭐라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내가 가장 연장자인데… 네게 의지만 하고 있는 것도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고.”
“한심하지 않아요. 애초에 제가 뭘 했다고.”
“청이 너는 누구보다 좋은 리더야.”
서백영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내 선에서 걸러야 할 것들은 적당히 거르고 있어. 걱정할 일은 없을 거야.”
“걱정 안 해요.”
“….”
“적의 적은 또 동지라고 하니까. 사장님이 우리 아군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필요할 때 서로 도와서 나쁠 거 없죠.”
“청아.”
“네.”
나를 부르는 서백영은 정말로… 고통스러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내가 뭐 실수했나?
“청이 너는 어떻게 그렇게… 다 아는 거야?”
아.
나도 모르게 너무 태연했나.
놀란 척을 했어야 했는데.
멤버들에게 너무 익숙해져, 어느샌가 ‘윤청’이 아닌 ‘백녹하’로서 이곳에 있었다.
실수했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 있는데, 서백영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메뉴컬 때부터 정말로… 신기하다고 생각했어. 아니, 사실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어떻게 저렇게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할까.”
서백영은 이제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바닥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어떻게 저렇게 모든 것을 잘하고, 또 모든 것을 알까.”
너무 방심했다.
어차피 길어야 1년 남은 인연이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잠시 마음을 내려놓았었나.
“그리고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강할까.”
아니다.
사실은 그저 마음을 내려놓고 싶었던 것이다.
편해지고 싶어서.
멤버들 앞에서만큼은, 편해도 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그래서 처음에는, 성 이사님이나 김 이사님과 뭔가 커넥션이 있는 건가… 했어. 근데 네 성격에 그럴 리가 없지.”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 사정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다가 결론을 내렸어.”
결론?
“네가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었던 건지.”
대체 뭘까.
섬찟한 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