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89)
89화.
“이… 노래를요?”
“아, 아뇨.”
단하의 얼굴이 너무 살벌해서 나도 모르게 쫄아 버렸다.
“?”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아니, 말을 해 보세요. 이거 편곡하고 싶다는 거 아니에요?”
“그렇기도 하고 또 아니기도 하고….”
이 망할 놈의 편곡 병에 걸려서.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이놈의 입.
내 노래도 아닌데 그걸 왜 편곡하겠다고 난리를 쳐?
미친 거 아냐, 내 입?
편곡에 참여하면 나한테 노래라도 줄 줄 알았던 건가?
…건가?
어?
편곡해 주고 달라고 해 볼…까?
“한번… 조금 해 보고 싶어서요.”
“작곡 관심 있다는 말은 들었어요.”
애초에 이 시간에 작업실에 오는 놈들이 작곡에 미친놈들 말고 또 있을까요.
“그런데 그 정도로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듣자마자 건드려 보고 싶다고 말할 줄이야.”
단하는 매우 심기가 불편한 눈치였다.
“죄송…”
“해 보세요.”
“예?”
“저도 계속 아쉬운 점이 남았던 노래예요. 남 주긴 좀 그래서 그냥 저희 앨범 수록곡으로 싣거나, 사운드 클라우드에 풀까 했거든요.”
“아…”
본인도 느끼고 있었구나.
하긴 작곡가에게 노래란 자식이나 마찬가지다.
자식에 관한 일을…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지.
“윤청 연습생이 노래를 살리면, 저야 좋은 일이니까. 해 보세요.”
“그러면요.”
나는 바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 노래, 제가 잘 다듬으면 저 주실 수 있으세요?”
***
휴가가 끝나고.
멤버들이 하나둘씩 숙소로 복귀했다.
“헉. 우리 숙소 왜 이렇게 깨끗해요?!”
“내가 청소했으니까.”
“…안 쉬고요?”
“나는 쉬는 게 더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야.”
잠 좀 잔 거 빼고는 전혀 쉬질 못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작업실에 있었으니까.
“언니… 왜 그래요?”
연주홍은 거의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왜.”
“안 쉬면 사람 죽어요…! 벌써부터 송장 되고 싶은 거예요…?! 어차피 활동 시작하면 자동 산송장일 텐데…!”
“….”
상대하지 말자.
“가족들은 잘 만나고 왔어?”
“네! 재밌게 놀다 왔어요. 이번에 보면 한 2년은 못 볼 각오하고 있어서.”
“그렇게까지 길진 않길 바라 보자.”
“아뇨. 전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는데?”
“왜?”
가족들이랑 사이가 안 좋은 건가?
그렇게 보이진 않았는데.
“그 정도로 길게 못 본다는 건, 그만큼 바쁘다는 거잖아요. 바쁘다는 건 스케줄이 많다는 거고. 그럼 인기가 많다는 거니까. 전 인기 많고 싶어요.”
그냥 야망둥이였던 거군.
“부모님은 그래도 괜찮으시대?”
“엄마가 저한테 20년 열심히 벌어서 30년 같이 여행 다니자 했어요.”
“…어머님 쿨하셔서 좋네….”
“저희 엄마도 완전 커리어 우먼이라. 저보다 더 바빠요.”
모전여전이었군.
“아, 배불러 죽을 것 같아요. 오늘 아침까지 먹기만 하다 왔음.”
“뭐 먹었는데?”
“제가 만든 집밥 한 상?”
“우린 왜 안 만들어 주냐.”
“이 집은 재료가 없어…. 제 요리를 먹고 싶다면 장을 봐 오시오.”
묘하게 볼에 살이 토실토실하게 올라와 있는 걸 보니, 다른 멤버들도 휴가를 잘 다녀온 것 같았다.
나만 또 퀭했다.
“다들 앉아 봐요.”
내 말에, 멤버들이 식탁으로 모였다.
류보라는 당연하다는 듯이 사과와 과도를 들고 앉았고, 서백영은 귤부터 까기 시작했다.
연주홍은 과자 봉지를, 김금은 보리차가 담긴 물병을 꺼냈다.
…여기 아이돌 숙소 아니고 여고였나?
일단 뭘 먹지 못할 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멤버들이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오자마자 일 얘기해서 미안한데, 조금 급해서.”
“우리도 급하니까 그냥 편하게 해요.”
류보라가 내 말을 받아 주었다.
그렇게 말해 주면 고맙지.
“지금부터 노래를 몇 개 들려줄 건데, 들어 봐요.”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녹음된 파일 세 개를 연달아 들려주었다.
대략 11분이 지나자, 준비된 노래가 모두 끝났다.
“….”
“어때요?”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멤버들의 의견을 물었다.
멤버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러나 멤버들은 모두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니, 다들 왜 말을 안 해.
“어떻냐고요?”
내가 성격이 급한 건 아닌데, 음악에 관해서는 조금 급해지는 경향이 있다.
“음….”
“엄….”
“그게….”
“아니 왜 말을 못 해!”
조금 나빠지는 경향도 있는 것 같고.
“셋 다 너무 좋아서 뭐라 할 말을 잃은 거예요. 셋 다… 선배님들 타이틀곡이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서.”
“맞아. 대체 언제 이런 노래들을 받아 온 거야?”
긍정적인 반응을 듣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다행이다.
내 음악을 좋아해 줘서.
혹시나 잘 안 맞으면 어떡하나 했거든.
사실 나는 음악 스타일이 이미 정해져 버린 터라, 변하기가 어려웠다.
발전은 계속 해야겠지만, 아예 방향을 틀기는 어렵다.
그런데 다행히도 좋아해 주니까… 잘된 거지.
“그럼 몇 번째 노래가 가장 좋았어요?”
내 질문에 다시 멤버들의 입이 조개처럼 굳게 닫혔다.
나는 곡을 순서대로 다시 틀어 주었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니까.
“아, 어렵다. 세 곡 다 느낌이 달라서… 청청은 이 중 하나를 데뷔곡으로 하고 싶은 거잖아요.”
“그건 또 아냐.”
“…?”
멤버들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내가 계산을 해 봤는데.”
나는 달력을 가져와 그들의 앞에 펼쳐 놓았다.
“지금 9월이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지금 앨범을 내면… 잘되더라도….”
“신인상을 탈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거구나.”
서백영이 바로 내 의도를 알아챘다.
“그거예요. 저는 꼭 신인상을 타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연말에 데뷔 앨범을 내고, 여름에 하나 더 내고, 하반기에 또 내면… 아주 좋을 것 같단 말이죠.”
나는 대충 올해 12월, 다음 해 5, 9월을 찍었다.
“물론 세 곡 다 반응이 좋아야 하고, 또 좋더라도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신인상을 탈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니까.”
내 말에 멤버들은 모두 고심하는 눈치였다.
“다들… 기왕이면 신인상 타고 싶잖아요.”
“타고 싶지.”
특히, 내 말에 반응이 가장 큰 건 서백영이었다.
야망둥이 연주홍일 줄 알았는데 의외네.
오히려 연주홍은 잠잠했다.
아니,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주홍이 뭔가 마음에 걸리는 거 있어?”
“다 좋은데… 그러면 세 달 만에 데뷔를 준비해야… 하는 거죠?!”
그 말에 다시 한번 숙소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아니, 저도…! 저도 신인상 욕심 엄청… 있고 그래서…. 그래서 말해 준 스케줄 너무 좋긴 한데… 회사가… 저희가 원하는 대로 해 줄까 싶어서요…. 컬러즈 유명하잖아요. 앨범… 잘 안 내주는 걸로….”
그건 그랬다.
극악의 활동 텀으로 유명하지.
물론 그건 컬러즈의 의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속 아이돌들도 완벽주의 성향에 불안증이 커서, 본인이 만든 노래가 정말로 완벽하다는 확신이 없다면 활동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체 작곡, 작사를 하는 그룹들에게는 흔한 현상이었다.
“주홍이 지적 잘했어.”
연주홍이 안절부절못하는 눈치여서, 나는 연주홍을 다독였다.
“나도 그 부분이 좀 고민이긴 해. 하지만 그건 해결하려면 할 수 있는 문제 같아.”
“…! 정말요?”
“응.”
“그럼 저야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다행이다. 다른… 분들 생각은?”
김금은 잠시 달력을 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되게 바쁘겠죠.”
“응. 엄청 힘들기도 할 거야.”
“자신 있어요, 청청?”
자신이 있냐라.
음.
“자신이 있는 건 아닌데… 이게 최선이라는 생각은 들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전.”
김금은 씩 웃더니 귤 두 개를 한꺼번에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아 오아오요(가 보자고요).”
그거 되게 신 귤인데. 덜 익어서….
이제 남은 건 류보라뿐이었다.
우리 네 사람의 시선이 류보라에게로 쏠렸다.
류보라는 아까부터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사과를 깎고 있었다.
…그것도 토끼 모양으로.
“뭐야? 자화상, 뭐 그런 거냐?”
김금이 매우 불만스럽게 툭 던졌다.
그러게.
뭔가 약간 험상궂은 토끼 같은 게 좀… 닮았다.
“저는.”
류보라는 그 토끼를 접시에 나란히 놓기 시작했다.
다섯 마리의 토끼였다.
이렇게 놓고 보니까 귀엽네.
그나저나 멤버들을 위해서 사과까지 깎아 주다니. 의외로 꽤 다정한 면도-
“싫어요.”
아니다.
역시 이놈은 깡패 토끼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