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90)
90화.
“나는 청이 말이 일리 있는 것 같은데. 보라는 어떤 점이 싫어?”
서백영도 류보라의 단호한 면에 놀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니 플랜대로라면… 내년 말까지 활동을 세 번이나 해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게 싫어요.”
음.
멤버들의 동공이 무한히 흔들렸다.
“활동을 많이 하는 것 자체에는 크게 불만 없어요. 저도 신인인데 찬물 더운물 가릴 형편 아닌 거 알고 있고.”
류보라는 입에 사과를 하나 넣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빠듯하게 일정을 만들어 버리면 앨범의 퀄리티가 높을 수 있나요? 가뜩이나 김 이사님, 자기 입맛대로 만들고 싶어서 난리인데. 그분이 저희 앨범에 뭐 얼마나 큰 공을 들일지도…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서.”
류보라의 말에 멤버들 모두가 숙연해졌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드라마를, 쪽대본 보며 해 본 적도 있고. 촬영 시작부터 완성된 대본으로 해 본 적도 있어요. 그 둘의 차이는 엄청나요. 급하게 들어가는 드라마가 퀄리티 높기 어렵듯이, 급하게 찍어 내는 활동의 퀄리티가 높기도 어렵죠.”
류보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포크로 사과를 찍어, 김금의 입에 넣었다.
“그리고 그렇게 앨범을 줄줄이 뽑아내면, 그 안에 수록곡들 전부 김금이 만들어 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전부 싱글로 낼 것도 아니고, 미니나 정규도 분명히 있을 텐데. 얘 성격상 노래 대충대충 만들 애도 아니고. 그렇게 대충 만든 노래 컨펌해 줄 컬러즈도 아니잖아요. 그럼 결국 외부 아티스트 참여 비중이 높아지거나, 얘가 죽어 나가거나인데. 그럼 김금 잠도 못 잘걸요. 얘 비실대는 꼴 저는 딱히 보고 싶지 않아요. 얘 잠 못 자면 그 성질, 우리가 받아 줘야 할 텐데”
이게 김금 걱정을 해 주는 건지, 아니면 욕을 하는 건지… 조금 헷갈리는데.
뭐, 최소한 김금 본인은 류보라의 말에 매우 감동을 받은 듯했다.
“저는 ‘저희가 직접 만든’, 그리고 ‘훌륭한’, ‘미련이 없는’. 이렇게 세 수식어를 당당하게 붙일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저도 작사 계속 배우면서 적극 참여하고 싶고. 그렇기에 1년간 활동 세 번은… 너무 빠듯해요.”
전부 일리 있는 말이었다.
딱 하나만 빼고.
“그럼 보라는 앨범 퀄리티만 보장된다면, 활동의 횟수 자체는 상관없다 이거지?”
“…우리가 직접 만든 앨범의 퀄리티가 높다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당연한 거다.
나름 싱어송라이터였던 짬밥이 있다.
나도 내 음악, 내 노래에 대한 애착이 있었기 때문에 류보라가 뭘 말하고 있는지 이해했다.
“그런데 금이 혼자 작곡을 하는 게 무리라 안 될 것 같다는 거잖아.”
“그렇죠.”
“나도 작곡할 수 있어.”
“?”
멤버들의 눈에 미묘한 의문이 피어올랐다.
오로지 김금을 빼고.
“아니, 언니가 작곡을 할 수 있다는 건 다들 알죠. 하지만 그건 약간… 뭔가…?”
연주홍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돌 음악 같지 않다고?”
“…그렇죠?”
그렇군.
뭘 걱정하는지 알겠다.
하긴 다들 내가 자기소개 때 공개한 곡 빼고는 내 실력을 볼 기회가 없었겠구나.
김금과 한번 협력을 한 적은 있지만, 그건 김금이 거의 작곡을 주도했으니까 예외고.
“이 노래들. 내가 작곡한 거야.”
나는 핸드폰을 톡톡 두드렸다.
아까 너희들이 들었던 그 ‘아이돌스러운’ 노래들.
그거 다 내가 만든 곡이다.
부디 이 정도로 설명이 되면 좋겠는데.
혹시 그것도 퀄리티가 부족하다고 하면 조금 상처일 것 같다.
멤버들은 내 말에 잠시 핸드폰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청아.”
먼저 침묵을 깬 건 서백영이었다.
“네.”
“…아까 그 노래들, 네가 작곡한 거라고?”
“하나는 공동 작곡이에요.”
“공동?”
“굳이 따지자면 처음엔 편곡으로 시작했는데… 공동 작곡이 된….”
김금의 눈이 커졌다.
“절 버리고 어떤 여자랑…!”
“남자임.”
“그럼 허가.”
뭔가 이상하지만 일단 넘어가자.
멤버들은 모두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그 노래들… 저는 당연히 언니가 회사에서 받아 온 노래인 줄 알았어요.”
“아니면 선배님들께 부탁드려서 받은 거거나….”
이게 그렇게 충격받을 만한 일인가?
“아까 그 노래들은, 그래도 아이돌스럽지… 않았나? 나름대로 아이돌 장르에 맞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별로면 또 만들어 볼게. 마음에 드는 노래들이 나올 때까지.”
“…더 만들어 오겠다고요?!”
연주홍이 입을 떡 벌렸다.
“당연하지. 앨범 만들려면, 수십 개는 만들 각오하고 있어. 전부 수록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 금이도 참여할 테니까. 하지만 최소한 금이가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게 할 생각은 없다는 거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미 각오한 일들이었다.
내 몸 하나 힘든 건 상관하지 않는다.
그만큼 절실했다.
이번 미션은 신인상을 타는 것.
1년에도 수십 개의 아이돌 그룹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뼈와 살을 모두 내어 줄 각오를 하지 않으면, 당연히 신인상은 꿈꿀 수 없다.
뛰어난 아이돌 그룹이 얼마나 많은데.
당장 내가 알고 있는 미래들만 해도….
“혹시나 퀄리티가 별로면 바로 말해 줘. 마음에 들 때까지 해 올게.”
“아니, 퀄리티가 부족한 게 아니라….”
서백영이 약간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그럼 어떤 게 마음에 걸리는 거야?”
“없어요.”
응?
나는 류보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뭐가 없어?”
“마음에 걸리는 게 없다고요.”
류보라는 내 핸드폰을 켜서, 아까 들려 줬던 노래들을 다시 틀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이 노래들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걸요.”
“맞아.”
김금이 빠르게 동의했다.
“이 노래 중 하나라도 받고 싶어서 줄을 설 그룹들, 많을 거예요. 단순히 같은 멤버라 올려치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정말 진심으로. 아까 들었을 때도, 저는 놀랐어요. 그때는 회사가 준 노래인가 싶어서, ‘아, 그래도 회사가 날 실망시키진 않는구나’ 했는데. 그게 언니가 작곡한 거였다니.”
김금은 매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민망하군.
“아까의 말들은… 김금 하나만 작곡 기계가 될까 봐 걱정돼서 나온 말들이었어요.”
류보라는 날 보며 특유의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작곡 기계가 둘이나 있으니까, 저도 찬성할게요.”
…이거 좋아해야 하는 거… 맞…지?
***
그렇게 합의를 본 우리는, 바로 다음 문제에 직면했다.
“그런데 김 이사님이, 곡 선택권을 저희한테 주실까요? 그분 많이 뵌 건 아니지만 약간….”
“쉽지 않은 사람이지.”
“미친 인성의 소유자시고.”
류보라가 아무도 하지 못한 그 말을 했다.
“사람 면전에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저쪽도 절대 호락호락하게 저희 말을 들어주지 않을걸요. 오히려 청개구리처럼 무조건 반대만 하실 수도.”
“특히나 청청이 만든 거라 하면 대박 싫어할 듯.”
연주홍이 매우 걱정스럽게 말했다.
“어카죠.”
“뭘 어캄. 일단 회사 의중을 파악해야지.”
김금이 머리를 질끈 묶어 올렸다.
“막말로 우리 앞길인데, 우리가 망치겠어? 우리야말로 우리 앨범에 사활을 걸었다 이거야. 어떻게든 설득해야지.”
“그거 말인데.”
“?”
서백영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사실 그때 김 이사님 말을 듣고 계속 생각해 본 건데…. 우리만 그분을 겪어 본 건 아니잖아.”
“아. 그렇네요. 그게 있었네.”
류보라가 바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김금만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해서 식탁을 내리치고 있었다.
“선배님들…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하시지 않으셨을까?”
“헉.”
연주홍이 눈을 빛냈다.
“그렇겠다! 그럼 당장 그분들을 찾아가서 저희 편을 들어 달라고…!”
“그건 말이 안 되지.”
내가 벌떡 일어난 연주홍의 어깨를 눌렀다.
“소속사 선배라는 수식어가 있긴 하지만, 그 사람들은 우리랑 그냥 남이야. 무턱대고 찾아가서 우리 편을 들어 달라고 한들, 들어줄 리가 없어.”
“그렇죠.”
류보라가 드라마의 악역 같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약간의 ‘친목’을 시도해 보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특히나… 바로 얼마 전까지 프로그램을 같이 하신 분들이라면….”
“친목을 시도할 수 있겠지.”
서백영도 싱긋 미소 지었다.
다들 나랑 마음이 좀 통하는군.
“그렇다면 팀을 좀 갈라야겠네. 메뉴컬에 출연해 주신 선배님들은-”
“그레이쉬.”
“번애쉬.”
‘쉬’ 자 돌림이군. 본의 아니게.
“반은 도희영 선배님 찾아가고, 반은 한재이 선배님을 찾아가요?!”
“하… 한재이 선배님이랑 단하 선배님은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데.”
김금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왜요?!”
“눈이라도 마주쳤다가 오해받으면 쌍방 간에 욕 나오는 상황이 되니까.”
“앗.”
그렇긴 하다.
굳이 데뷔도 전부터 남자 아이돌들과 엮여서 좋을 게 없다.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서백영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리더는 아니지만, 한마디만 해도 돼?”
“하세요.”
“당연하죵!”
무슨 얘기를 하려고 저렇게까지…?
모두들 호기심 가득한 눈이었다.
“혹시나 신문 사회면에 나오는 인간 있으면… 진짜 내 손에 확실하게 죽는다.”
오우.
“아이 당연한 소리를 해요, 왜.”
연주홍은 질색했다.
“저 그렇게 도덕심 없는 애 아니에요!”
도덕심이라는 말에 잠시 시선이 류보라에게로 쏠렸다.
“뭘 꼬라봐요.”
“보라야. 사람 때리고 싶을 땐… 네가 아이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줘라….”
“뭐라는 거야. 자꾸.”
“아이돌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어도 폭행은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보라 언니. 본인이 사람임을 꼭 기억하시는 걸루.”
“진짜 뒤지고 싶니.”
류보라는 얼굴을 구기며 김금과 연주홍을 발로 깠다.
하지만 나도 사실 조금은 걱정됐다.
“하나 더.”
또 있나?
모두 침만 삼키며 서백영을 보았다.
어떤 게 나올까.
연습 부족? 펑크? 태만?
“열애설도 죽어.”
“….”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살다 살다 저렇게 정색하는 서백영은 처음 본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처음으로 서백영이 무섭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