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avior of a Perish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운이 좋은 놈이군 (5)
“미친놈.”
차우재의 입에서 기어코 욕이 튀어나왔다. 내 생각에도 그렇긴 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으로선 달리 도리가 없었다.
“제가 어떻게 스승님을 알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아니면 뭘 전수받았는지.”
“그 전에 내가 네 말을 믿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 건 아니고?”
“안 합니다.”
“어째서?”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걱정을 왜 합니까? 그걸 믿는 건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 팀장님이 결정하실 일입니다.”
나는 자신이 있다. 차우재가 나를 믿게 만들 자신이.
“설령 내가 널 키워 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냐?”
“뭐가요?”
“나도 대표님의 제자다. 근데 널 키워 달라고?”
“선후배들끼리 돕고 사는 거라고 배웠어요.”
“선후배는 빌어먹을,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알면 그딴 소리 안 나올 거다.”
최우재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여러 번 회귀했을 때도 스승님의 제자들끼리 뭔가를 했다거나 돈독하다는 말을 들어 본 기억은 한 번도 없었다.
‘스승님?’
[흠흠, 워낙 개성 있는 녀석들만 모아 놓다 보니까 말야.]스승님도 살짝 찔린 모양인지 헛기침을 했다. 탑에 다녀왔을 때부터 짐작하긴 했는데 스승님은 의외로 방치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 사이가 나쁘거나 한 건 아니잖아요.”
“그게 내가 널 키워 줘야 하는 이유가 되는진 모르겠다만.”
“두 달만 지켜봐 주시죠. 저는 강해질 겁니다.”
“왜 강해지고 싶은데?”
“그야 스승님도, 민아도 구하고 싶으니까요.”
“스승님이 어디 있는지 안다면서?”
“갈 수 있는 곳이었으면 진작 갔겠죠?”
너무 패를 많이 까는 것 같긴 했으나 이 정도는 해야 했다. 아마 지금쯤 차우재의 머리가 복잡해졌을 거다.
“너……”
“제가 얘기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집니다.”
“더 말할 수 없다?”
“아직까지는요.”
차우재가 쓰레기를 버리며 먼저 일어섰다. 그가 몸을 돌려 나를 봤다.
“너 내 번호는 있냐?”
“없을걸요?”
“연수한테 연락해서 받아 가라. 문자 하나 보내 놓고.”
그가 나중에 보자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고개만 살짝 숙이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아마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 * *
나는 청영 길드로 출근을 하기로 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길드에 있는 시설들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대형 길드답게 본사에는 여러 가지 훈련 시설들을 구비해 놓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 건 헬스장이었다. 커다란 건물 한 층 전체가 머신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시설만 놓고 본다면 대한민국에서 여기보다 더 좋은 헬스장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동시에 길드 내에 헬창이란 헬창들은 다 모여 있었다. 일부 간부들을 제외한 시설들을 제외하면 10층 헬스장은 청영 길드 각성자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었다.
내 검은 탑에서 부서졌다. 원래부터 그렇게 좋은 검은 아니었으나, 오래 쓴 만큼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일단 탑을 나오자마자 되는 대로 싸구려 검을 구매하긴 했으나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전에 쓰던 검이 그럭저럭 쓸 만한 검이었다면, 새로 산 검은 정말 연습용 검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싸구려 검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비싼 걸 살 만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당장 생활비 걱정이 없다는 것뿐이지, 사치를 하거나 무기를 살 만큼 여유롭다는 뜻은 아니었다.
해서 나 역시 무기의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다. 공감은 하는데…….
‘왜 거기 앉아서 얘기하시는 겁니까? 대체 왜?’
스승님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레그프레스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안 그래도 무거워 죽겠는데! 눈앞에 덩치 큰 사내가 있으니까 더 산만했다.
[상관없지 않느냐, 무게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눈이 상관있습니다. 부담스럽거든요?’
[자고로 운동이란 부담스러워야 하느니라. 떠들 힘이 있는 걸 보니 무게를 더 올려도 되겠군.]‘여기서 더 올리면 저 죽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지금도 죽을 것 같았다. 스승님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혀를 찼다.
간신히 열 개를 마친 후, 땀을 닦으며 스승님이 쳐다본 곳을 보았다. 거기에는 내 두 배는 되는 무게를 치고 있는 각성자가 있었다. 근데 덩치도 두 배잖아!
‘에라, 양심이 있으신 겁니까? 제가 저걸 어떻게 합니까?’
[할 수 있다.]‘못 한다니까요.’
[거, 강해지겠다고 내 앞에서 호언장담하는 녀석이 이깟 철 덩이 하나 못 들어서 어쩌느냐?]‘지금은 마력이 없는 상태잖아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건 인정하긴 하지만, 솔직히 나도 이렇게 작정하고 나와서 운동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나마도 스승님이 앉아서 자세를 잡아 줬기에 이 정도지.
[자, 한 번 더 하거라.]‘…….’
[자고로 세상에 안 되는 것은 없다. 안 된다고 말하는 건 다 근성이 없어서 그런 거다. 요즘 것들은 노력해 봤자 안 된다는 말도 하던데, 어디서 그런 고얀 얘기가 튀어나왔을꼬.]스승님이 무게를 올리라 잔소리했고, 귀가 따가웠던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무게를 올렸다.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어, 언제까지 계속 해야 합니까 이거?’
[언제까지가 뭔데?]‘…….’
‘그러다 죽는다니까요. 노오오력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구요.’
[안 죽는다. 내가 다 해 보지 않았느냐?]‘그러다가 스승님도 마지막에 죽……’
[아니, 이놈이? 갈수록 말이 길다?]스승님이 주먹을 들자 나는 낑낑거리며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튼 이래서 요즘 애들은 문제야. 문제.] [마력에 의존하는 버릇을 버려라.] [노력은 생각하고 하는 게 아니다. 그냥 하는 거다.]팔짱을 낀 스승님이 옆에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니이이! 원래 그렇게……. 헥헥, 말씀이 많으십니까?’
몇 시간 동안 굴려진 나는 젖은 수건처럼 바닥에 늘어진 채 숨을 골랐다. 점심시간 전까지는 하라고 했는데, 싀부럴 아직 삼십 분이 더 남았다는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원랜 말이 그렇게 많진 않다.]‘아닌 거 같은데.’
[그럼 내가 뭘 하겠느냐? 말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거늘. 네놈은 진짜 내 제자였으면 열 번은 맞았다. 영체인 걸 감사하게 여겨야 하느니라.]고마워해야 할 부분이 이거냐고,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체력부터 길러라, 아니면 입만 산 타입이냐?]‘으으윽…! 진짜 두고 봅시다! 나중에도 그런 소리 나오나!’
[노오력을 해라 젊은이.]망할 스승님.
그냥 괴롭히는 걸 즐기는 게 틀림없다.
* * *
“각성자가 계속 죽는다고?”
“네. 오전 회의 때 나온 얘기인데, 이 사람이거든요.”
오연수가 태블릿을 차우재에게 내밀었다. 강윤찬, 28레벨 각성자로 청영 길드에 들어온 건 삼 년 전이다. 다른 길드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경력직 채용으로 들어온 듯했다.
“최근 1년 동안 게이트 내 사망 사고기 열 건이에요.”
한 달에 보통 두세 번 정도 게이트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면 달에 한 번꼴로 사망 사고가 일어나는 셈이었다.
각성자들이 목숨 걸고 게이트에 들어가는 건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안전에 대비를 하지 않는 건 절대 아니었다.
“비교적 안전한 이면 게이트에서도 문제가 발생한 것 같아서요. 일단 제가 팀장님에게 보고드리고 결정하기로 했어요.”
“나머지 2년 치는?”
“아직요. 보고받는 대로 전달드릴게요.”
“그래도 열 건은 너무 많은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
“제 생각도 그래요.”
“협회 측에서는 아직 모르는 거고?”
“네. 문제 있으면 그 전에 처리해 둬야죠.”
협회에서 알면 분명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느니, 아니면 각성자 관리를 제대로 안 했다느니 하면서 시끄러울 게 분명했다.
김도진이 없는 청영 길드.
겉으로는 평범하게 굴러가는 듯 보이고, 실제로도 별문제는 없었다. 김도진이 사라진 게 한두 번도 아니었기에 다들 이제 익숙했다.
게다가 회사 규모가 이 정도쯤 되면 대표 권한으로 돌아간다고 하기도 뭐 하고.
“일단 그 사망 사고 당시에 죽은 각성자들 신원이랑 게이트 로그 정보 같은 것도 정리해서 줘 봐. 그리고 그 녀석 언제 게이트 들어간다고?”
“일단 다음 주에 들어갈 거라고 신청서가 올라와 있어요. 아직 게이트는 미정이고.”
“어느 게이트인지 알아내면 사람 심어 놔, 문제없으면 패스하면 되니까.”
두 사람이 복도를 걸었다. 청영 길드의 건물은 쌍둥이 빌딩이었는데, 헬스장이 있는 층을 지나가면 반대편에는 다른 수련 시설이 나왔다.
회의를 하고 내려가 복도를 지나가던 차우재가 고개를 돌렸다. 옆을 바라보자 거대한 통유리 너머로 웬 익숙한 놈 얼굴이 보였다.
이수혁이었다.
“아, 수혁 씨네요.”
“뭐야. 너 쟤 저기 있는 거 알고 있었어?”
“네. 저번 달부터인가 거의 매일 나오더라구요.”
“매일?”
“주말에도 안 쉬던데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오연수의 모습에 차우재가 눈을 깜박였다. 자길 키워 달라느니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후, 한동안 조용한가 싶어서 내버려 뒀는데 저기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저러고 있으면 있다고 보고를 해야 할 거 아냐.”
“별일 없으면 생략해도 된다고 했던 건 팀장님이시잖아요.”
“내가?”
“네. 그리고 실제로 별일 없으니까 냅 둬요.”
“별일이 없는지 있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오연수에게 이수혁의 감시를 시킨 건 맞긴 한데, 차우재는 확신하는 오연수의 태도를 이상하게 여겼다.
“그야 요즘 저랑 같이 운동하니까요.”
“…뭐?”
“운동할 때마다 눈에 밟히더라구요. 신경 쓰여서 말 걸었는데 같이 하자고 해서 그렇게 됐어요.”
“친해졌다? 주말엔 걔네 집 가서 밥이라도 먹겠어 아주.”
“맞아요.”
오연수의 담담한 말투에 차우재가 사레가 들린 듯 기침하며 그녀를 봤다.
감시하라고 했지 친하게 지내라고 한 건 아닌데 말이다.
“자주 가는 건 아니고 주말에요. 여동생 있잖아요. 가끔 가서 놀아 주고 그래요.”
“그래서 특이한 건 없고?”
“있었음 보고했겠죠? 어떻게 수혁 씨 삼 대 몇 치는지라도 알려 드릴까요?”
“그딴 거 보고하지 마! 아. 강윤찬.”
“네?”
“걔 던전에 감시 붙일 사람 아직 안 정했지? 저 녀석은 어때?”
차우재가 구름다리를 건너며 오연수에게 말했다. 오연수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괜찮겠어요?”
“뭐가?”
“문제가 생기면 강윤찬인지 하는 녀석 죽여야 할 수도 있을 텐데.”
“사망 사고가 정말 사고였다면 해프닝으로 끝. 만약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놈을 게이트에서 처리할지 말지 정하는 건 저놈이 결정할 일이지. 쫄려서 못 하겠으면 다음 사람이 하면 될 일이고.”
“그 얘기도 전해요?”
“미쳤냐, 심심해 보이는데 게이트 하나 들어가라고 하고 던져 줘.”
비싸게 데리고 온 녀석인데 언제까지 놀게 내버려 둘 수도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