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doctor since age 1 RAW - chapter (221)
221화 제5장 연민 (1)
황은우는 물끄러미 이믿음을 쳐다보았다.
이믿음은 여전히 말을 아낀 채 환자의 흉부를 관찰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빛을 보아하니 월경성 기흉 진단을 포기한 눈치가 아니었다.
‘거참, 쓸데없는 데서 고집을 부리네.’
이믿음이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고 황은우는 생각했다.
까짓거 진단 한 번 틀리는 일이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진단이란 맞다가도 틀리고 틀리다가도 맞는 것이었다.
세상에 완벽한 의사가 없으므로 완벽한 진단 또한 없는 것이 당연했다.
따라서 이믿음이 똥고집을 부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앞으로 3분 남았다.”
“네, 선배.”
월경경 기흉의 근거를 찾지 못해 고전하고 있음에도 이믿음의 대답은 시원시원했다.
믿고 기댈 구석이 남아 있는 걸까.
아니면 이미 체념한 상태라서 대답이 쉬웠던 걸까.
황은우는 어느 쪽이 맞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짧지만 지루한 시간이 흘러갔다.
황은우를 포함한 스태프들은 이제 이믿음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수술 방의 시계를 응시하며 이믿음을 위한 기다림이 끝나기를 빌었다.
그리고 정확히 5분이 지났을 때.
가정 먼저 입을 뗀 사람은 황은우가 아닌 이믿음이었다.
이믿음의 목소리가 경쾌했다.
“자궁 내막 세포 찾았어요! 이 환자, 월경성 기흉 맞아요.”
“어디인데? 봐 봐.”
“이쪽이요.”
이믿음이 포셉으로 가리킨 부위는 놀랍게도 횡격막이었다.
기흉의 발생 장소가 일반적으로 흉막이나 흉강 부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확실히 의외의 장소였다.
‘이래서 못 찾았던 건가?’
황은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횡격막을 관찰했다.
횡격막 중앙 부근에 자궁 내막 세포와 자궁 내막 세포가 훼손시킨 미세한 부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보라색을 띤 동그란 형태의 결손 부위가 두 곳 위치했다.
결손 부위의 직경은 각각 5mm, 3mm 정도.
이 정도면 환자가 고통을 호소할 만했다.
다음 월경 때 다시 한번 기흉으로 고통받았을 법도 했고.
월경성 기흉이 사실로 밝혀졌으므로 황은우는 멋쩍게 웃었다.
“이야, 이번에도 완패네?”
“환자를 치료하는 데 이기고 지는 게 어디 있어요. 제 주장이 운 좋게 들어맞은 거죠.”
이믿음이 10분 만에 고개를 들어 황은우를 쳐다보았다.
이믿음의 눈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믿음은 겸손하게 운이 좋았다고 말했으나 이건 결코 운이 아니라고 황은우는 생각했다.
이믿음은 본인의 진단을 굳건히 믿었다.
또한 그 진단에 관한 증거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므로 병변을 발견한 건 운이 아니라 순전히 이믿음의 집념이었다.
자신이 만약 이믿음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흉막과 흉강, 그리고 폐에서 자궁 내막 세포를 발견하지 못한 순간.
황은우는 월경성 기흉 진단을 곧장 폐기 처분 했을 것이다.
그에게는 이믿음 같은 집념이 없었다.
“해당 부위 절제하고 재건술 시작할게요.”
“오냐.”
집도의 자리에 선 이믿음은 어시스트를 할 때와는 또 달랐다.
스태프들을 진두지휘하고 직접 처치하는 모습이 듬직했다.
이믿음은 이미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음을 황은우는 오늘부로 새삼 깨달았다.
* * *
OPCAB과 기흉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
나는 후련한 기분으로 수술방을 나와서 수술모와 마스크와 가운 등을 벗어 던졌다.
근 2년 만에 참여한 수술은 즐겁기도 하고 유익하기도 했다.
역시 나는 흉부외과의 체질이었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수술방이었다.
“너, 뚝심 한번 대단하더라?”
“무슨 뚝심이요?”
황은우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긴 뭐야. 월경성 기흉이지. 나 같았으면 중간에 포기했을 텐데.”
“아… 그거요?”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나도 수술 당시에는 적잖이 당황했다.
월경성 기흉이라면 마땅히 존재해야 할 자궁 내막 세포와 결손 부위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진단이 의심스럽고 흔들렸을 때 나는 환자를 생각했다.
과연 진단을 포기하는 것이 환자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진단을 밀어붙이는 것이 환자를 위한 것일까.
고민해 보니 이번 수술은 후자가 환자를 위한 행동이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았다.
“치료의 기준을 제가 아니라 환자로 두면 결정이 편해지더라고요.”
“뭔가 있어 보이는 대답이네. 오늘 좋은 거 배웠다, 땡큐.”
황은우가 씽긋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도 황은우를 향해 웃어 주었다.
내가 황은우를 좋아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황은우는 누군가가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해서 질투하거나 시샘하지 않았다.
반대로 상대의 좋은 점을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나와 함께한다면 황은우 역시 쑥쑥 성장하리라.
다음 수술까지 남은 시간은 40분.
우리는 편의점에서 라면과 샌드위치 등을 사서 4층 휴게실을 찾았다.
지이이잉.
가운 주머니에서 불쑥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뜨거운 물을 받고 있던 컵라면을 식탁에 내려놓고 휴대폰 번호를 확인했다.
“선배, 저 바깥에서 통화 좀 하고 올 게요.”
“왜? 여자 친구한테 전화 왔냐? 나 몰래 달콤한 사랑이라도 속삭이게?”
“이상한 소리하지 마세요. 출판사 전화니까.”
나는 휴게실을 나와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나를 담당하고 있는 출판사 편집자였다.
이름은 최대호.
문득 그의 용건이 궁금해졌다.
“네, 편집자님.”
– 안녕하세요, 작가님. 혹시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 다름이 아니라 출간 일정에 대해서 알려 드리려고요. 원고 교정은 한 30퍼센트 정도 됐고요. 다음 달 정도면 출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편집자님이 보시기에 제 글은 어때요?”
나는 노파심에 물었다.
아버지가 이미 호평을 했지만 그 말을 100퍼센트 신뢰할 순 없었다.
자식이 쓴 글을 대놓고 형편없다고 할 부모는 없을 테니까.
– 작가님 글 좋습니다. 대중들이 잘 모르는 흉부외과의의 생활이 잘 묘사되어 있고. 환자와 관련된 감동적인 에피소드도 있고. 그런데…….
‘그런데’라는 접속사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 뭐랄까요. 입소문을 못 타면 많이 고전할 것 같습니다. 의사 분이 쓴 에세이 중에 잘 나간 작품이 없거든요.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의료인이 쓴 에세이가 각광 받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몇 년 뒤의 시점이었다.
그 시작은 ‘바람이 숨결 될 때’라는 에세이로 기억한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외국의 소화기 외과의가 집필한 작품이었다.
그다음 작품으로는 응급 의학의가 집필한 ‘만약은 없을 것이다’가 있었고.
마지막으로 의료 에세이의 화룡점정을 찍는 작품은 이종국 교수의 ‘골든타임’이었다.
전생에 성공한 의료 에세이들에 비해 내 작품은 출간이 너무 빨랐다.
즉 의료 에세이에 대한 독자의 수요가 많지 않은 시점에서 출간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써 둔 에세이를 묵혀 둘 생각은 없었다.
내 책을 디딤돌 삼아 다른 의료 에세이들이 더 잘될 수도 있을 테니까.
“흥행에 너무 부담 안 가지셔도 됩니다. 이런 일은 천운에 맡겨야죠.”
– 하하하, 작가님이야 초연하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저는 그게 안 되죠.
“…….”
– 작가님의 글을 띄우는 게 제 일이니까요.
“편집자님 입장에서 그게 맞을 수도 있겠네요.”
나는 금방 수긍했다.
사람의 입장이란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많고 다양한 법이니까.
–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혹시라도 맡고 계신 환자 중에 유명 인사가 있을까요?
“연예인이나 정치인, 운동선수 같은 사람을 말씀하시는 거죠?”
– 네, 정확합니다.
최대호의 질문에 나는 없다고 대답했다.
유명 인사를 수술한 적은 전생에서도 없었고 현생에서도 없었다.
굳이 한 명을 꼽자면 현생의 이태선 신부 정도 될까.
내가 이태선 신부를 언급하자 최대호가 많이 아쉬워했다.
– 크으… 아깝네요. 그분 수술 성공하고 나서 에세이 출판했으면 못해도 중박은 쳤을 텐데.
“편집자님, 너무 속물이신 거 아닙니까?”
나는 절반 정도 농담을 섞어 물었다.
– 작가님의 작품에 관해서라면 저는 더 심한 속물이 돼도 상관없습니다.
최대호의 목소리가 더없이 진지해졌다.
“왜죠?”
– 작가님은 흉부외과의의 고단한 삶과 희생 정신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어서 글을 쓰셨잖아요.
“…….”
– 목적을 달성하려면 최대한 많은 사람이 작품을 읽어야겠죠. 그래야 흉부외과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흉부외과의를 꿈꾸는 새싹도 늘어날 거 아닙니까.
최대호의 진정성 담긴 말에 나는 감탄했다.
확실히 그의 말이 옳았다.
에세이의 흥행을 위해 노력하는 행동이 꼭 속물 같은 행동은 아니었다.
내 공익적인 목적을 생각하면 오히려 책을 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게 맞았다.
“편집자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드네요. 저도 책을 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겠습니다.”
–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특이 사항 있으면 중간중간 전화드릴게요.
“네, 수고하세요.”
통화를 끊고 나는 휴게실로 돌아갔다.
통화 시간이 꽤 길었는지 황은우는 벌써 식사를 마쳤다.
소파에 등을 기댄 채 TV를 보고 있었다.
가요 방송에서 춤추는 걸 그룹을 바라보는 황은우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선배, 야박하네요. 저랑 같이 먹어 줄 줄 알았는데.”
“라면 불면 세상 맛없다. 둘 다 맛없는 라면을 먹을 바엔 한 명이라도 맛있게 라면을 먹는 게 낫지 않겠어?”
“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식고 불어 터진 라면을 먹으며 샌드위치도 한 입 베어 물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그마저도 꿀맛 같았다.
“난 쟤네들 마음에 들더라.”
“누군데요?”
“소녀시절. 이번에 데뷔한 친구들인데 앞으로 잘 나갈 것 같아. 춤도 잘 추고 노래도 무난하고 다 예쁘기도 하고.”
“앞에 거추장스러운 이야기는 빼세요. 선배는 솔직히 예쁜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
“어쭈, 이 녀석 봐라? 오냐오냐하니까 기어오르네?”
황은우가 장난스럽게 주먹을 공중에 휘두르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야이 씨, 너랑 말싸움하느라 중간에 놓쳤잖아. 어떻게 책임질 건데.”
“절 빼놓고 혼자 라면을 먹은 벌이라고 생각하세요.”
컵라면 국물을 들이켜며 나는 TV를 바라보았다.
소녀시절이 떠난 무대를 3인조 혼성 그룹이 채웠다.
여자 한 명 남자 두 명으로 이뤄진 그룹의 이름은 너구리였다.
너구리를 무대를 지켜보던 나는 켁켁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그중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몸집이 산만 한 래퍼를 나는 전생에서 본 적이 있었다.
당시 래퍼는 흉통을 호소해서 우리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진단명은 심장 판막의 노후화로 인한 심부전증.
급하게 응급 수술을 준비하던 도중 래퍼는 애석하게 사망하게 되었다.
수술방에 도착하기 전에 사망했던 터라 나로써도 어찌 손을 써볼 수가 없었다.
‘가만 저 래퍼가 아직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건…….’
나는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에세이를 흥행시키고 환자도 살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