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1
11
11. 오우거
진후는 한 손을 들어 웅성거림을 진정시켰다.
“자자, 다들 조금만 진정하시고요. 다음 분 말씀해 주세요.”
그때, 중간에 있던 험악한 인상의 사내, 민철이 손을 들었다.
“속일 수도 있으니, 한 명씩 감정의 돌에 가서 감정하는 것이 어떻소?”
민철의 의견에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후는 입을 한번 강직하게 다물었다가 대답했다.
“우리는 모두 미지의 괴물을 잡기 위해 지원한 사람들입니다. 아주 위험한 일인 줄 알면서도요. 오우거는 아주 무서운 괴물입니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진후는 민철에게 시선을 거두고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저처럼 두 개가 있는 분들도 강압적으로 모든 특성을 밝히실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파티를 짜는 데 유용한 정보만 주시면 됩니다.”
진후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에 비장함이 깃들었다. 장내는 다시금 조용해졌다. 그의 능력을 밝히고 나서 발언권에 힘이 훨씬 더 강해졌음이 느껴졌다.
진후의 손짓에 따라 가장 왼쪽에 있던 청년부터 특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2레벨이고요. 특성은 시력입니다…….”
“저도 같은 레벨입니다. 특성은…….”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특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데 중요한 이능력인 만큼 토벌대 외의 사람들도 가까이 다가와 그들의 발언에 귀를 기울였다.
강민철의 특성은 지구력, 한지연의 특성은 관찰이라고 말했다.
전에 보았던 폐활량이 특성인 소년도 보였다. 여울은 레벨은 말하지 않고 민첩만 밝혔다. 그리고 소짜 수염의 중년인, 백일권의 차례가 되자 그가 머뭇거렸다.
“아, 저…… 저도 2레벨이고, 음, 특성은…… 아직 안 나왔는데 하하, 그게…… 정신 장악이라고 합니다.”
답답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던 사람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정신 장악?”
“그런 특성도 있었나.”
“오…… 유니크하네.”
웬만한 일에는 표정 변화가 없던 진후도 조금 놀란 표정이다.
“그건 무슨 능력이에요?”
토벌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닌, 저 뒤쪽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가득해서 누군지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일권은 살짝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말 그대로 정신을 장악하는 겁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분께 사용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그의 농담에 사람들은 낮게 웃었다.
‘정신 장악, 과연 밝히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후에 그를 의심할 일들이 많을 수도 있었다.
‘생각이 없어 보이지는 않는데…….’
백일권의 특성이 1개임을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백일권 외에는 특별한 특성이 나오지 않았다. 모든 토벌대의 특성 발표가 끝난 후, 김진후는 특성을 적은 노트를 보며 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략 50명 가까이 되는 토벌대는 10개의 조로 나뉘었다. 여울의 조는 강민철과 한지연, 그리고 날쌔 보이는 청년 둘이었다.
조장은 강민철이었다. 백일권은 특성 때문에 그런지 김진후와 같은 조가 되었다.
“자, 모두들 계획을 숙지해 주시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진후의 말을 끝으로 사람들은 파티별로 흩어져서 장비를 점검했다. 몇몇은 그 후에도 진후에게 붙어 이것저것 질문을 해 댔다.
대부분 여인들이었다.
“진후 님, 리덕션 사용하면 트롤의 검에도 안 베이나요?”
“하나도 안 아픈가요?”
“제가 겁쟁이라 아직 직접 검을 몸에 찔러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하핫.”
진후는 너털웃음으로 여인들에게 대답했다. 그들은 꺄르르 웃으며 그 뒤를 쫓았다.
한쪽에는 오크에게서 구한 검과 창으로 투척용 무기를 만든 것이 보였다. 언제부터 준비했는지 100개는 훨씬 넘어 보였다.
대 오우거용 투척 무기다.
* * *
다음 날, 토벌대는 앞뒤로 2개조, 총 4개의 조를 제외한 나머지는 투척 무기를 5개씩 들고 출발했다.
“오우거고 뭐고 다 쓸어버리자!”
“아자아자!”
위층으로 올라가는 토벌대는 필요 이상으로 기세등등했다. 2레벨 이상으로만 구성된 이 정도 인원은 모인 적이 없으니 어느 누가 와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실제로 그 무시무시한 트롤들도 검 한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사냥당했다.
여울이 포함된 3조는 4조와 함께 후방을 담당했다. 어슬렁어슬렁 걷던 조장 민철이 돌연 뒤돌아서서 말했다.
“우리 조 역할 까먹은 사람 없지요? 우리는 근접 공격이에요, 근접. 다리나 등을 치고 빠지는,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쇼.”
“아, 예…….”
지연은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철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앞을 보며 걸었다. 지연에게 치근덕댈 줄 알았는데 그건 처음 봤던 행동으로 인한 선입견인 듯하다.
“왜 우리를 후방에 배치해서…… 심심해 죽겄네, 빌어먹을.”
투덜거림은 많아도 자기 몫은 해내는 민철이었다. 덕분에 올라가는 동안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케라브, 8층입니다.]8층으로 올라서자 사람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미지의 땅, 소수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올라와 보지 못했던 곳, 초반에 들떴던 분위기는 급격히 가라앉았다.
50명의 인원이 이동하는데도 잡담 하나 들리지 않았다.
진후도 이곳에서는 등에 메고 다녔던 방패를 아예 꺼내 들고 앞장섰다.
챙! 챙! 채쟁!
저 멀리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8층에서 사냥을 하는 파티, 최소 2레벨 이상, 3레벨도 존재할 수 있었다.
진후는 발끝을 그곳으로 돌렸다.
“저쪽으로 갑시다.”
100미터 정도 걸으며 2번을 꺾자 한 파티가 모습을 드러냈다. 총 다섯 명의 사내들로 세 마리의 트롤을 상대하고 있는데 그 표정과 몸짓에서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그 파티원 중에는 여울과 마주쳤던 무영이라는 청년도 포함되어 있었다.
진후는 그들이 위험해 보이지 않아 나서지 않고 전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챙! 푹!
마지막 트롤의 목젖이 한 사내의 검에 꿰뚫렸다. 그는 시원하게 검을 뽑아내고는 진후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꺼운 옷을 입었어도 안에 다부진 근육이 짐작되는 짧은 머리의 사내였다.
“뭐지? 떼거지로 와서?”
50명이 넘는 인원이 날카로운 무기를 앞세우고 자신의 파티를 찾아왔으니 경계심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는 물론이고 그의 파티원들도 주눅 들지 않고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후는 검과 방패를 거두고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서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저희는 10층으로 가고 있습니다. 저는 토벌대를 이끌고 있는 김진후라고 합니다.”
“그 유명한 김진후? 직접 본 건 처음이라 신기하군. 강해 보이네. 나는 서한, 그런데 10층은 저쪽인데?”
생략되었지만 왜 자신들을 찾아왔냐는 물음. 진후가 예를 갖췄음에도 서한이라고 밝힌 사내는 반말을 유지했다.
나이는 서로 비슷해 보였지만 진후는 전혀 티 내지 않고 정중한 자세로 대답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5층이 없어지기 전에 10층을 깨야 한다는 건 아실 겁니다. 저희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서한은 한 손을 들어 턱을 어루만지다가 입을 열었다.
“음…… 아직 이르지 않나? 그놈 봤어?”
진후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자신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은 발언이라고 생각된 것이다. 서한은 금세 눈치채고 말을 바꿨다.
“아아, 미안. 봤으니까 토벌대 꾸렸겠지. 나는 아직 무서워, 뭣도 모르고 갔다가 내 동생들 둘을 거기서 잃었거든, 우린 모든 파티원이 3레벨이 되면 합류할게, 아직 나 혼자거든.”
자신은 3레벨이라는 것을 밝힘과 동시에 합류는 안 하겠다는 뜻이다. 진후는 얼굴을 살짝 굳히고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다음에 보죠.”
진후가 몸을 돌리자 그의 측근들이 손짓했다. 그러자 토벌대 전원이 소리 없이 발끝을 돌렸다. 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죽기를 빌지! 진심이야!”
그의 말에 진후의 광대가 살짝 떨렸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토벌대가 모습을 감춘 후, 무영이 서한에게 다가와 말했다.
“대장, 나 아까 봤어요. 내가 저번에 말했던 그 아저씨.”
“그래? 어디 있었는데?”
“제일 뒤쪽에, 검은 옷에 양쪽 허리춤에 검 찬 사람, 그거 둘 다 9층에 암살 트롤 거예요. 9층도 혼자 올라가더니…….”
“에이, 설마. 파티원이랑 같이 갔겠지.”
“그랬으려나……. 아무튼, 괜찮을까요?”
서한은 다시금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일러, 너무 일러…… 많이 죽을 거야.”
“그럼,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서한은 무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난 너 잃기 싫어, 그리고 그 아저씨 엄청 세다며.”
“네…… 그렇긴 하죠…….”
무영은 생각했다. 자신의 대장과 그 아저씨 중에 누가 더 강할지…… 쉽게 판단이 서지는 않았다.
* * *
“후욱, 후욱…….”
“스으읍, 후우…… 스읍, 후…….”
50명이 넘는 인원이 한데 둥글게 모여 있는데도 말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숨을 고르며 긴장을 풀려고 노력을 하는 소리만이 장내에 가득하다.
그 중앙에는 새하얀 빛이 은은하게 올라오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진후는 두 손을 털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자, 적당하면 좋지만 극도로 긴장하거나 공포에 빠지면 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근육을 이완시켜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십시오.”
“예.”
“예, 예…… 후우…….”
전혀 목소리가 떨리지 않는 진후를 보며 사람들은 애써 긴장감을 털어 냈다. 진후는 두 손에 깍지를 끼고 위로 쭈욱 올렸다가 내리고는 등에 메고 있던 방패와 검을 들었다.
그러자 다시 공기가 급격히 가라앉았다. 진후의 눈빛도 날카롭게 변하였다.
“다들 기억하시지요? 저희 조가 먼저 올라가면 10초 후에 순서대로 빠르게 올라오는 겁니다. 가서는 편의상 짧게 명령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진후는 그의 파티원들과 한 명 한 명 눈빛을 마주쳤다. 그리고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가장 먼저 마법진에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갑니다.”
후우우웅!
진후의 몸을 새하얀 빛이 완전히 감쌌다. 동시에 그의 파티원들도 빛무리에 휩싸였다.
정적, 그들이 사라진 이후에는 시간이 멈춘 듯이 조용했다. 정적을 깬 것은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10초…… 됐습니다.”
그와 함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법진에 발을 올렸다.
‘용감한 건가 무식한 건가? 아니면 김진후라는 자를 그렇게 믿는 건가?’
자원한 자들로만 토벌대를 꾸린 것이 지금 이렇게 빛을 발하는 듯했다.
여울 역시 중검을 양손에 들고 마법진에 발을 올렸다.
후우웅!
* * *
낯익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들어왔던 진후의 파티원들은 모두 날아가 벽에 몸을 처박고 있었다. 피를 토하거나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정면에는 강철 같은 근육이 번들거리는 오우거의 등이 보였다. 뒷모습인데도 그 거대한 기운에 압도되어 숨조차 쉽게 내뱉을 수 없었다.
맞은편에는 방패를 단단히 고정시키고 홀로 오우거와 마주하고 있는 진후가 보였다. 그의 뒤에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진정한 영웅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