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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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케라브의 규칙
2층에 올라서니 키가 큰 수풀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 위로 드문드문 솟아 있는 가지가 보이고 그 끝에 노란빛을 내는 열매가 달려 있었다.
“처음에는 훨씬 많았는데, 사람들이 다 따서 챙겨 갔어요.”
여울은 다가가서 가지를 꺾어 열매를 땄다. 그러자 달려 있던 가지가 거짓말처럼 쑤욱 말라비틀어지더니 이내 재로 화했다.
이 현상을 통해 열매가 다시 나지 않는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한정 수량이라는 뜻.
이것이 동굴의 유일한 식량이라는 정보에 신뢰가 더욱 쌓였다.
여울은 그 열매를 입에 가져갔다. 한번 씹으니 입안에 상쾌한 향이 화악 퍼졌다. 과즙이 듬뿍 담겨 있는지 갈증이 금세 해소됐다.
세 번밖에 씹지 않았는데 입안에 있던 열매가 모두 사라졌다. 작은 놈이 꽤 포만감도 채워 줬다.
이 열매를 챙겨서 1층으로 내려가 출구를 다시 찾아야겠다. 말없이 걸음을 옮겨 열매를 따는 여울을 보며 진섭이 물었다.
“아저씨, 이제 어디로 가실 거예요?”
여울은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대답했다.
“1층.”
“아…… 아저씨도요? 하긴, 2층에 무슨 괴물이 또 있는지 모르니까 1층에서 레벨 업을 하고…….”
진섭은 그들의 일행도 같은 목표였기에 빠르게 이해했다. 레벨 업 얘기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던 여울은 열매 열 개를 챙기고 계단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진섭은 재빨리 뒤따라붙으며 말했다.
“어엇, 같이 가요!”
“같이?”
여울의 걸음이 멈춰 섰다. 그리고 미간을 좁힌 채로 반쯤 고개를 돌렸다.
“넌 2층까지의 동행을 원했다. 따라오는 건 자유지만 난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아.”
차가운 말투에 진섭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진섭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따라갈 생각으로 발을 떼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금세 무산되었다.
탁!
여울은 1층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이 움푹 패일 정도로 강하게 박차며 튀어 나갔다. 진섭은 그 뒷모습을 보며 눈만 꿈뻑거렸다.
8초? 7초?
단언컨대 저것보다 빠른 움직임은 본 적이 없었다. 진섭은 그의 뒤를 쫓는 것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창대를 강하게 움켜쥐며 2층으로 올라갔다. 두렵지만 자신의 무리 이후로도 꽤 많은 사람들이 올라갔으니 금방 다른 사람들과 합류할 수 있으리라.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수풀이 많은 곳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수면을 취하며 지내 왔다.
식량 대용 열매는 체감상 하루에 두 개로 버틸 수 있을 정도의 포만감과 갈증을 해결해 줬다.
열매가 떨어질 때마다 2층에 올라가서 구했는데 이제 찾기도 힘들었다.
벌써 2층을 4번 다녀왔으니 대충 20일은 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열매를 찾아다니며 3층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울은 백팩에서 노트와 펜을 꺼냈다. 모두 스쳐 지나간 사람들에게 구한(빼앗은) 것이다.
노트를 펼치니 복잡하게 얽혀 있는 미로가 나왔다. 며칠 동안 출구를 찾아 1층을 돌아다니며 만든 지도였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총 네 개.
정확한 비율은 다르지만 동서남북에 하나씩 있는 꼴이다. 노트를 바라보는 여울의 눈빛에는 허탈감이 젖어 있다. 안 가 본 곳이 있을까?
그때.
드드드!
무언가 거대한 굉음이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미세하지만 동굴이 흔들리고 있었다. 안 좋은 예감에 여울은 재빨리 짐을 챙기고 몸을 움직였다.
드드드드드!
그 떨림과 소리의 울림이 더욱 심해졌다. 여울은 정면을 보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동굴이…… 좁아져?”
드드드드드드드드!
“젠…… 장!”
지체할 시간이 없다. 천장과 바닥의 중앙이 부서졌고, 양옆의 벽이 줄어들고 있었다. 여울은 온 힘을 다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닥!
동굴의 습한 기운이 뺨을 때렸다. 눈앞에 당황한 눈빛의 오크가 보였다. 여울은 뛰어올라 놈의 어깨를 밟고 그대로 지나쳤다.
“크룩?”
쿠쿵쿠구구구!
돌덩이들이 머리 위로 떨어지고 바닥이 부서졌다. 높이와 폭이 10미터는 되던 동굴이 지금은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아졌다.
저 멀리 2층으로 가는 계단이 보인다. 다행히 계단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하다.
타닥!
간신히 계단 위로 올라섰다. 이제 동굴은 지름이 1미터도 되지 않아 보인다.
“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네발로 기어 오는 한 여인이 보였다. 그녀는 무릎이 찢어져 피가 나는 것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미친 듯이 기고 있었다.
여울은 코를 찡긋하고는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계단이 있는 곳은 천장이 내려오지 않았다.
계단의 가장 아래로 내려가 그녀가 있는 곳을 보았다. 너무 멀다.
제시간에 빠져나올 수 있을까? 애매했다.
여울과 눈이 마주친 여인은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살려 주세요!”
그 검은 눈망울이 간절함을 담고 흔들거렸다. 그녀의 외침과 함께 여울은 이를 악물고 바닥을 박찼다. 여인과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그사이 동굴의 지름도 20센티미터는 줄어든 듯했다.
여울은 그녀에게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잡아!”
그녀는 다이빙하듯이 두 손을 뻗어 여울의 손을 잡았다. 동시에 여울의 팔 근육이 두툼하게 팽창하며 앞으로 휘둘러졌다.
“하압!”
여인의 몸이 거의 날다시피 앞으로 쭈욱 던져졌다. 계단 코앞까지 도착한 그녀는 잠시간 멍청하게 있다가 다급히 기어 올라갔다. 동굴은 이제 다리를 굽힐 수도 없을 정도로 좁혀졌다.
벽에 긁혀 피투성이인 여인이 이곳에 얼굴을 내밀며 외쳤다.
“빨리! 빨리!”
여울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팔다리를 휘적거렸다. 등에 벽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으아아아아!”
쿠구궁!
요란한 굉음과 함께 1층 동굴이 완전히 닫혔다.
* * *
“후우우…….”
여울은 깊은 한숨과 함께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동굴이었던 곳에 납작하게 찌그러져 있는 자신의 워커가 보였다.
몇 번 잡아당기니 가죽이 지저분하게 찢긴 워커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닥 부분은 멀쩡하니 다행이다. 이곳에서 신발은 매우 중요했다.
“흑, 흐윽…… 고,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여인이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고마움을 표했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에 대조되는 새하얀 얼굴, 갸름한 턱에 가지런한 눈썹과 유독 진한 눈동자.
은서가 후에 아가씨가 된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닮은 얼굴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마음이 흔들렸나? 다시 시간을 돌린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위험한 행동이었다.
여인, 한지연은 여울이 빤히 얼굴을 바라보자 고개를 내려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몸까지 뒤로 빼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머문 지 거의 한 달, 법이 없는 이곳에서 남자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은 한 가지였고, 그것이 유일한 생존법이었다. 그리고 지금 고마움의 표시도 이것 외에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었다.
“거기, 괜찮습니까?”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단 위쪽 2층에서 나는 소리. 지연은 위쪽을 바라봤다가 고개를 돌려 여울을 보았다. 그도 계단 위를 보고 있다. 지연은 절뚝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괘, 괜찮아요.”
2층에 올라서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1층에서 나는 심상치 않은 소리에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지연이 계단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몇몇 사내들이 다가와 그녀의 몸을 살폈다.
“괜찮습니까?”
“어디 다치신 덴 없나요?”
“어쩌다가…… 일단 이리로.”
지연은 자연스레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이동시키려는 손을 거절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벌써 사람들 사이로 멀어지고 있었다. 자신을 원하는 게 아니었나?
지연의 시점에서 그는 목숨까지 바쳐 자신을 구한 사람이다.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 그녀는 절뚝거리며 그에게 달려갔다.
“저, 저기요!”
하지만 그는 이미 인파를 넘어가 저 멀리 사라져 가고 있었다.
자신과는 속도가 비교도 되지 않았기에 지연은 온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 * *
터벅, 터벅, 터벅.
오른손에는 진녹색의 피가 진득하게 묻어 있는 장검, 왼손에는 아직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는 단검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여울의 발걸음에는 분노가 묻어났다.
1층이 사라졌다.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졌다. 이제는, 이제는 이 게임의 끝을 보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괴물들이 출몰하고 인간의 몸이 변하는 이 기괴한 곳에서, 어떤 존재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시스템에 그대로 따라야 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딴 곳을, 이딴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몰라도, 내려갈 수 없으면 올라가 주겠다. 10층이든 20층이든 꼭대기까지 올라가 반드시 이곳을 벗어나겠다.’
타다다다닥!
여울은 예전에 봐뒀던 3층 계단을 향해 달려 나갔다. 1층에 머물러 있는 의미가 사라졌다. 이제는 위만 바라보며 달릴 것이다.
다른 곳도 1층과 동일한 면적이라면 직선 길이는 대략 20킬로미터,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지니고 있다. 아직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지는 않았지만, 대충 올라가는 길을 찾는 노하우가 생겼다.
동서남북 중에 한 곳을 집어 집중적으로 돌아다니다 보면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갈 때 서쪽에는 계단이 없는 것을 보니 층마다 조금씩 다른 듯하다.
1층에서 4층까지 다른 종류의 몬스터는 없었지만 더욱 강하고 출현 빈도수도 더 잦아졌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촤아악!
조잡한 철판에 도끼를 든 오크 전사 두 마리가 바닥에 쓰러졌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시스템 음성이 들려왔다.
띠링!
[2레벨의 숙련도가 완성되었습니다. 3레벨로 진입하시겠습니까?] [특성은 레벨에 비례하여 진화합니다.] [진입 명령어는 ‘케라브 레벨 업’입니다.]잊고 있었던 레벨에 관한 메시지다. 한참 동안 아무런 말이 없기에 2레벨이 끝인 줄 알았다. 동시에 2레벨로 진입할 때의 고통도 떠올랐다.
3레벨이면 더욱 심하지 않을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직 전투에 대한 큰 어려움도 없고 무방비 상태로 오래 머물 수 있는 장소도 없다. 그때는 죽음과 이것밖에는 선택지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울은 레벨 업 메시지를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는가? 아니면 계단이 많거나.
터벅, 터벅.
계단을 오르는 길에 보이는 5층은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밝은 것 같았다. 계단을 비추는 빛이 환했다. 여울은 발에 힘을 주어 마지막 계단을 올랐다.
솨아아아아!
휑한 바람이 부는 듯했다. 바람이 아닌 소리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벽에 부딪치고 부딪혀 이곳까지 전해 오는 것이다.
“음…….”
여울은 다른 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높이의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미로와도 같은 동굴은 이런 형태의 천장이 형성되지 못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시선을 내려 앞을 보았다.
웅성웅성!
축구장 네 개를 합친 크기의 공동이 눈에 들어온다. 중앙에는 어디서 시작되는지 모를 물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여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