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원양함대. (6)
도전자급과는 다른 새로운 함선의 개발과 대량 생산이 결정되자, 세종은 다른 안건을 꺼냈다.
“아까 병조에서는 구주도(九州島)를 우리 조선의 세력권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는 실체적인 병합인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세종의 물음에 조말생이 앞으로 나섰다.
“실체적인 병합은 악수(惡手)라 생각하옵니다. 구주도의 북부를 지배하는 대내(大內, 오우치)씨와 구주의 다른 지역을 지배하는 구주절도사가 우리 조선과 친교(親交)가 있는 사이기는 하나, 그들 역시 왜의 호족입니다. 실체적인 병합에 들어가면 그들과 무력충돌을 벌이거나, 아니면 그들에게 이권(利權)을 보장해야 합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습니다.”
조말생의 말에 허조가 질문을 던졌다.
“왜인들의 품성(品性)을 보면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겐 강한 족속이오. 우리 조선이 무력을 동원해 세를 과시한다면 바로 굴복하지 않겠소?”
허조의 말에 조말생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충분한 전력이 없소이다.”
“응?”
“어?”
조말생의 대답에 세종과 대신들이 모두 의문을 표시했다.
그런 반응을 보며 향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 양반들이 진짜…. 까마귀 고기를 자셔서 그새 다 까먹은 건가, 아니면 숫자의 마법에 넘어가 버린 건가?’
조말생 역시 향과 같은 심정이었는지 조금은 거친 목소리로 현실을 설명했다.
“대마도를 정벌할 때, 그 준비를 하면서도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하지만, 그때보다 군의 전력이 크게 강화되지 않았소이까?”
허조의 물음에 조말생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군이 평소에도 지켜야 할 것들이 크게 늘었지요?”
“아….”
조말생의 지적에 허조는 작게 신음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전력이 늘었지만, 지켜야 할 부분도 같이 늘었다.’ 이것이 향이 말한 ‘숫자의 마법’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조말생은 세종에게 읍하며 말을 이어 갔다.
“실체적인 통합은 악수이옵니다. 소신(小臣) 조말생, 전하께서 명하시면 선두에 서서 왜적(倭敵)들을 칠 것이옵니다. 하지만, 전하께 간곡히 청하옵니다. 왜를 무력으로 상대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이옵니다.”
“시기상조라…. 그 이유는?”
“첫째로, 조선은 왜에 비해 땅도 작고 사람도 적습니다. 땅이 작다는 것은 소출이 작다는 말입니다. 이는 전쟁을 벌일 때 전비를 조달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적다는 것은 병력을 충원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무기들로 무장을 해도 전쟁이 벌어지면 병력의 손실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입니다.
둘째로, 왜국의 권세를 잡은 이가 강성하다는 것입니다. 홍무(洪武)의 시기, 둘로 갈라졌던 때와 달리 지금은 일본왕의 권세가 강하니 왜는 한 몸으로 움직일 것입니다.”
“병판의 말이 맞사옵니다! 왜관과 구주도를 오가는 상인들의 말도 비슷했사옵니다.”
조말생의 말에 예조판서도 힘을 실어 줬다. 예조판서의 조력에 기운을 얻은 조말생은 더욱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마지막으로, 전장을 구주도로만 한정을 지어도 쉽지 않기 때문이옵니다. 대내씨와 구주절도사 원(源)씨가 세력이 강하기는 하나, 그들이 구주도를 완벽하게 장악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을 적대하는 호족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하니, 다시 한번 간곡히 청하옵니다. 무력을 동원한 강제적이고 실체적인 합병은 절대 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흐음….”
조말생의 발언에 세종은 심각한 얼굴로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군주의 최대 치적은 강역의 확장이다. 구주도를 병합하는 것은 좋은 기회가 아닐까? 하지만, 병판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니….’
세종의 고민하는 모습을 보던 향은 위기를 감지했다.
‘아직은 아니다! 군사적 모험주의는 안 돼!’
위험을 느낀 향은 바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바마마. 외람되오나 소자는 병판의 말이 지극히 합당하다고 봅니다.”
“합당하다? 설명해 보거라.”
세종의 명령에 향은 차분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무릇 한 국가가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후방이 안전해야 하옵니다. 그 예를 보자면 그 옛날 위(魏)의 무황제(武皇帝)가 고구려를 친 까닭이 무엇이옵니까? 촉과 오를 정벌하기 전에 후방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왜를 손보기 위해서는 우선 북쪽의 여진을 안정시켜야 하는데, 아직도 요동의 상황은 불안합니다. 반대로, 여진을 완전히 정벌하자니 명과 왜가 걸립니다. 명은 차치하더라도 왜는 확실히 손을 봐야 하는데, 우리 조선의 전력으로는 무리수입니다.”
“무리수라….”
세종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향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무리수입니다. 수군의 전력이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양과 질 모두 말입니다. 그리고, 전쟁의 최종 종결은 우리 조선의 군사가 적국에 들어가 점령을 해야 하는데, 육수군(陸守軍)의 병력이 충분치 않습니다. 잘못하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우(愚)를 법하게 됩니다.”
“그건 그렇지.”
향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인 세종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세자와 병판의 말이 옳도다. 눈앞에 보이는 강함만 보고 멀리 있는 위험을 생각하지 못했으니, 이는 과인(寡人, 덕이 적은 사람. 임금이 스스로를 낮춰 부르는 말)의 부덕(不德)이로다.”
세종의 자책에 대신들이 일제히 부복하며 대답했다.
“아니옵니다! 이는 전하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신들의 죄이니 신들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벌하여 주시옵소서!”
스스로의 죄를 청하는 신하들의 모습에 세종은 담담히 말했다.
“일어들 서시오.”
“예, 전하.”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 더욱 열심히 일합시다.”
“예, 전하.”
* * *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세종은 향에게 물었다.
“전에 세자, 네가 말하기를 왜국의 시장을 우리 조선의 것으로 하는 것이 왜국을 복속시키는 것이라 했다. 우리 조선의 물건이 왜국으로 건너가면 없어서 못 판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이미 복속이 완료된 것 아니냐?”
“지금 왜국으로 건너가는 물품들의 대부분은 사치품이 대부분입니다. 일반 백성들까지도 조선의 물산을 사게 만들어야 합니다. 왜국의 일반 백성들까지 우리 조선을 흠모하게 만들어야 복속시키는 것이 됩니다.”
향은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지금 팔리는 물건들은 고가의 사치품들이다.
-이런 사치품들을 구매하는 이들은 대부분 왜국의 호족들이다. 그리고, 그 호족들의 수입원은 백성들, 특히 농민들에게서 걷는 세금이다.
-사치품을 구매하기 위해 호족들은 혹독하게 세금을 걷고 있으며, 농민들의 불만이 조금씩 쌓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불만은 그들을 착취하는 호족이 아니라 우리 조선에게 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째서입니까? 우리 조선은 물건만 만들지 않았습니까? 조선에서 사 가는 이들도 왜국 상인들이고, 그들에게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이들도 결국은 왜국 호족들 아닙니까?”
허조의 지적에 예조판서가 향을 대신해 대답했다.
“우리 조선이 그런 물건을 안 만들었다면, 자신들이 고생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 것 아니겠소?”
“아….”
허조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향이 말을 덧붙였다.
“예판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런 불만이 쌓이면 왜국 백성들은 우리 조선을 점점 적대시할 것입니다. 만약, 왜국 호족들의 지배력이 조금만 흔들려도 이들은 다시 왜구로 돌변할 것입니다. 이번에 생포된 왜국 어부들을 보십시오. 어부들조차 배에 도검을 싣고 다니는 것이 왜인들입니다.”
그 말에 세종과 대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세자야. 왜국의 시장을 어떻게 점령하겠다는 것이냐?”
세종의 물음에 향은 바로 대답했다.
“왜국 백성들에게 일을 시키면 됩니다.”
“응?”
향은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왜국에는 우리 조선에 꼭 필요한 물산- 예를 들어 황과 구리와 같은-들이 나고 있다.
-왜국의 호족과 협상하여 광산을 조차하거나 채굴권을 획득한다.
-이런 광산에 왜국 백성들을 고용하여 임금을 지급한다.
-이렇게 임금을 지급받는 왜국인들을 대상으로 조선의 상품을 판다.
“백성들이니 고가품을 사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싼 도자기(陶瓷器) 대신에 옹기(甕器)를 팔고, 비단 대신에 면화를 팔면 됩니다. 이렇게 된다면….”
세종이 향의 말을 끊었다.
“점점 더 좋은 물건을 원하겠지! 우리 조선도 그런 단계를 밟았으니까!”
“그러하옵니다. 그리고, 또 왜국 백성들이 조선에 가지는 적개심을 없앨 수 있습니다. 당장 자신들이 먹고살 임금을 주는 고마운 이들이 조선이 되니 말입니다.”
“그리되면 왜국 백성들의 불만은 그들을 다스리는 호족들에게 향하게 되겠구나! 참으로 교묘한 수로다!”
“우리 조선에 필요한 호족들, 대내씨나 구주절도사 원(源)씨 등에게는 미리 슬며시 언질을 주는 것이 더욱 좋겠지요.”
“그렇구나! 특히나 대내씨는 백제의 후예임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니 우리의 대리로 쓰기에는 더없이 좋겠구나!”
향의 설명에 세종은 무릎을 치면서 감탄했다.
그렇게 세종과 향 부자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을 보며 대신들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또! 또! 시작됐다! 자기들만 알고 넘어가기!’
‘미리 짠 것은 아닌데 어찌 저리도 죽이 잘 맞누?’
‘이거야 원…. 머리 나쁜 사람은 서러워 살겠나?’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대신들도 머리 나쁜 이들은 아니었기에 바로바로 이해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해를 하면서 대신들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향을 바라봤다.
‘다시 느끼지만, 세자는 영리함을 넘어 교활하다! 아까 말한 위의 무황제가 환생이라도 한 것인가?’
‘세자가 보위에 오르면 그때 일할 이들은 죽을 맛이겠군!’
‘이거야 원…. 주상께 보약을 드려야 하나? 오래 사시라고….’
어쨌거나, 향이 내놓은 방책이 참으로 마음에 들은 세종은 대신들을 돌아봤다.
“세자가 말한 방책을 기반으로 일을 진행하고 싶은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세종의 물음에 대신들은 앞다퉈 대답했다.
“참으로 명안(名案)이었습니다!”
“일거양득(一擧兩得)의 계책이니 채택함이 합당합니다!”
대신들이 모두 찬성하니, 세종은 결정을 내렸다.
“경들도 찬성하니 제대로 계획을 짜서 실행해 봅시다! 우리 조선의 평안을 위해서는 외우(外憂, 밖의 근심)를 최대한 줄여야 하니 말이오.”
“명을 받드옵니다!”
이 모든 것을 기록한 사관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사관은 논한다.
왜 왜국의 백성들이 불쌍해질까?
* * *
그렇게 회의를 끝내고 근정전을 나온 향의 표정은 조금씩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내가 잘한 것일까?”
고민이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린 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가장 세련된 제국주의’를 내 손으로 계획하다니 씁쓸하군.”
향이 세종과 대신들에게 제안한 것은 ‘21세기 신자유주의’의 열풍 속에서 태어난 ‘국제 가치 사슬(Global value chain)’을 지금 시기에 맞춰 살짝 손 본 것이었다.
* * *
2차 대전을 끝으로 제국주의는 막을 내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전적인 제국주의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제국주의가 탄생하고 진화를 시작한 것이었다.
냉전 시기에 ‘식민자본주의’, ‘매판자본주의’로 불리던 시스템은 냉전이 끝나면서 다시 한번 진화했다.
고전 제국주의가 물리적으로 식민지를 삼아 착취를 했다면, 새로운 제국주의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후발 국가의 노동력과 자원을 기반으로 부품을 만들고 그것을 본국이나 다른 후발 국가에서 조립해 세계 모든 나라에 파는, ‘국제 가치 사슬’이라고 불리는 세련된 시스템으로 진화를 한 것이었다.
이런 시스템 아래서 후발 국가들의 정치가들과 노동자들은 선진국의 자본가들을 적대하지 않고 오히려 환영했다.
고전적 제국주의와는 다른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