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337)
337화 패션혁명 (5)
“하…. 열 받네….”
상투는 물론이고 가체까지 계속해서 시도가 좌절되자 향은 자신의 방에서 투덜거렸다.
향의 이름값과 능력은 모두 인정하고 있었지만, 전통의 벽은 향의 이름값과 능력으로는 부술 수 없었다.
“그때는 우스갯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제국주의 열강 시대가 더 편할 수도 있었겠어.”
팔짱을 끼고 앉은 향은 빈 종이를 노려봤다.
* * *
19세기,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제국주의 시대. 상투를 없애는 것은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오랜 시간 웅크리고 있던 시간에서 벗어나 양이(洋夷)들처럼 앞으로 나아가자!”
“저 양이들의 문물과 복식을 보라! 저 양이들이 사는 곳의 마천루들을 보라! 우리도 저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
“우리도 저들처럼 살려면 과거의 구습(舊習)과 악폐(惡弊)를 끊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
그렇게 빠르고 적극적인 문호개방과 근대화를 부르짖던 이들에게 상투는 무너뜨려야 할 구습의 상징이었다.
때문에, ‘위생’을 이유로 단발령을 발표한 다음, 계몽 대신에 강제를 선택한 것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계몽 대신에 강제를 선택하면서 백성들의 불만이 커진 것이었다. 거기에 조선을 차곡차곡 집어삼키는 일본인들이 모조리 단발에 양복을 입고 있었다.
덕분에 조선 백성들에게 ‘단발=친일’로 여겨지면서 거센 저항에 부딪힌 것이었다.
하지만, 독립 이후에 진행된 재건기를 통해 한국인들에게 뿌리 박힌 관념은 ‘상투=미개 & 수구’였다.
* * *
“문제는 지금 상황은 서양이 오히려 뒤처진 상황이라는 것이지. 최대한 잘 봐 줘도 두세 발자국은 뒤처진 상태라는 거야.”
향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며 중얼거렸다.
향의 말처럼 지금 이 시기의 유럽은 조선, 중국과 비교해 모든 면에서 많이 뒤처진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서이들을 본받자는 말은 입이 비뚤어져도 못 하지. 게다가 그 빌어먹을 헤어스타일은….”
그동안 피에트로, 라파엘, 만수르를 통해서 얻은 정보와 이번에 들어온 연금술사들과 수학자들이 말하는 정보를 토대로 따져 봤을 때, 유럽은 막 중세의 끝물이었고, 르네상스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 * *
유럽의 가장 강대국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는 영국과 100년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비록 협상을 위한 전투가 주로 벌어지고 있다고 했지만, 전쟁은 전쟁이었다.
21세기의 영화에서 나오는 헤어스타일을 기억하고 있기에, 향은 빌어먹을 헤어스타일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100년 전쟁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잔다르크’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나오는 남자들의 헤어스타일은 대부분 호섭이 머리(주1) 아니면 앞부분을 일자로 쳐 낸 단발머리였다.(주2)
향으로서는 죽었다 깨도 멋있다고 말할 수 없는 헤어스타일이었다. 특히나, 투블럭 스타일로 머리를 깎는 호섭이 머리로 멋을 부리려면 상투만큼이나 관리가 많이 필요한 것이 이 헤어스타일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기억을 떨쳐 낸 향은 계속 툴툴거렸다.
“그다음 시기도 문제지.”
르네상스 시기 유럽 남성들의 대중적인 헤어스타일은 어깨까지 기른 장발이었다. 대부분 그렇게 기른 장발을 풀어헤치고 다니거나 끝부분을 안쪽으로 둥글게 다듬은 헤어스타일이었다. 조선인들이 봤다면 ‘거렁뱅이나 하고 다닐 봉두난발’ 스타일이었다.
뒤를 이은 17~18세기의 헤어스타일은 그렇게 기른 머리를 뒤로 모아서 땋았다. 관직에 있는 이들과 귀족들은 그렇게 다듬은 머리에 백색 가발을 쓰거나 아니면 분을 뿌려 하얗게 만들어 다녔다. 이 역시나 조선인들이 봤다면 ‘차라리 상투를 틀어라! 그리고 남자 놈이 대가리에 분은 왜 뿌리고 다녀?’라며 혀를 찰 스타일이었다.
* * *
한참을 고민하던 향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썅! 옛날 우두 때처럼 내가 먼저 저질러 버려? 지금은 내가 막 저질러 버려도 걸고넘어질 이들도 없을 것 같은데….”
경장이 진행되면서 변화에 익숙해진 조정 대신들을 떠올리며 향은 가능성을 점쳐 봤다.
“지금 조정 대신들의 사고방식을 예전의 그 양반들이나 아니면 내가 알던 유교 탈레반들이 봤다면 ‘이런 사문난적(斯文亂賊) 놈들! 거기 그대로 있어! 내 사약을 들고 가마!’ 할 상태니까 가능성이 있기는 한데…. 역시나 불안하단 말이지….”
향이 개입하기 전 역사에서 단발령이 공표되었을 때, 반발하는 이들이 외쳤던 말이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였다. 때문에, 단발령에 대한 근거를 만들면서 향은 이 말이 나올 경우에 써먹을 반론-배코치기, 손발톱 정리 등-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대신들은 단지 전통과 대안이 있다는 것만 주장했었다.
그렇기에, 향은 가능성을 점쳤지만, 아무래도 불안했다. 상투는 고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이었다. 아무리 향이라도 잘못하면 치명적인 정치적 논란거리를 불러와 최악의 경우에는 폐세자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향은 계속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거기에 무조건 서양 스타일로 가는 것도 좀 그렇고…. 하지만, 위생 문제를 생각하자면 필요하기는 한데….”
한참을 고민하던 향은 입맛을 다셨다.
“역시나 투 트랙으로 가야겠네. 시간이 지나면서 단발도 익숙해지게 만들어서 선택의 폭을 넓혀 나가는 수밖에 없겠어.”
방향을 정한 향은 곧 적당한 대상을 골랐다.
“역시나 군인가….”
* * *
세종과 대신들이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머리의 위생이 문제면 자주 감으면 된다.’였다.
“하지만, 군대, 특히 북방에 주둔하면서 장거리 순찰을 하는 기병들과 장거리 항해에 나서는 수군은 자주 못 감는다는 것이 문제지. 질병으로 인한 비전투 손실을 근거로 단발을 주장한다면 가능성은 높아. 그리고 유품(遺品, 고인이 생전에 쓰던 물건)의 대용으로 한다면 상징성도 되고. 후우~.”
한숨을 내쉰 향은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 나가면 괜찮겠군.”
* * *
투 트랙으로 진행할 방법을 찾기는 했지만, 향은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주 머리를 감으라고 권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호응은 별로 없을 거야. 상투란 놈이 풀었다가 다시 틀기가 쉬운 것은 아니니까 말이지.”
문제점을 이야기하며 머리를 긁적이던 향은 짜증이 잔뜩 섞인 욕설을 뱉었다.
“아 씨! 왜 이렇게 머리는 가려운 거야! 목욕하고 머리 감은 지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목욕….”
내관을 부르려던 향은 순간 그대로 멈췄다.
잠시 고민하던 향은 바로 손가락을 튕겼다.
“이거다!”
* * *
다음 날, 향의 부름을 받아 재경부의 차관들이 동궁전으로 향했다.
“저하! 재경부 차관들이 들었사옵니다.”
“들라 하게.”
“예. 안으로.”
내관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선 차관들은 향을 향해 공손히 예를 올렸다.
“어서들 오십시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응?”
차관들에게 답례를 하던 향은 낯이 익은 이를 보고는 반색을 했다.
“아니, 이거! 임 생원 아닙니까? 오랜만에 봅니다! 그런데 차관으로 승차한 겁니까? 축하합니다!”
세종의 특채를 가장한 강제 입조로 관직에 들어선 임순욱은 어느새 차관으로 벼락출세를 한 상태였다.
반가움이 가득한 향의 얼굴을 본 임순욱은 겸연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주상 전하의 크신 은혜로 못난 이 몸이 벼락출세를 하게 되었사옵니다.”
“하하하! 아바마마께서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언제나 공정하시니, 임 생원, 아니, 임 차관의 능력을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어디를 맡고 계십니까?”
“현재, 재경부 제3차관을 맡고 있사옵니다.”
임순욱의 대답에 향의 얼굴이 더욱 환해졌다.
재경부 제1차관이 맡은 분야는 국가 재정 부분이었고, 제2차관은 해외 교역 부분을, 제3차관은 국내 물가 및 시장 동향을 맡고 있었다.
‘김 대감이 제대로 박아 넣으셨군! 일이 아주 편해지겠는데! 시작이 좋아!’
“신들을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지요?”
제1차관의 물음에 향은 슬슬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본인이 아바마마께 단발령을 건의했던 것을 아십니까?”
“예.”
“본인이 왜 단발령을 주장했는지도 아십니까?”
“예,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들었사옵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반려하셨다고 들었사옵니다.”
제1차관의 대답에 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자주 감으면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보통 백성이 머리를 자주 감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향의 지적에 차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향이 공중위생을 강조하고, 실제로도 효과를 보면서 백성들은 예전에 비해 목욕을 자주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목욕을 하지 못하더라도 세안은 매일같이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머리는 그렇지 못했다. 상투를 풀었다가 다시 트는 것은 꽤나 거치적거리는 일이었다. 그것보다 치렁치렁하고, 떡지고, 이리저리 엉킨 머리를 풀어 감는 것은 진짜 귀찮은 일이었다.
차관들의 반응을 확인한 향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해서, 본인이 생각한 일거리가 있습니다.”
“일거리 말이옵니까?”
“예. 백성들의 두발 위생도 좋게 하고,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 생활에도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말을 끝낸 향은 책상 위에 있던 종이를 들어 차관들에게 보였다.
종이에 적힌 글자를 본 차관들이 고개를 모로 꼬았다.
“세발방(洗髮房)?”
향은 차관들에게 세발방에 관해 설명했다.
“목욕을 하면서 머리를 감을 수도 있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해서, 전문적으로 세발만 하는 업소를 만드는 것입니다. 상투를 풀고 감겨 준 다음, 다시 상투까지 틀어 주는 것이지요. 기본적인 세발은 동화 1원, 세발에 더해 이와 벼룩까지 제거해 주면 2원, 배코치기 같은 다듬기까지 추가하면 3원, 어떻습니까?”
향의 발상은 21세기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이용원이나 미장원에서 머리를 감는 것은 기본 서비스였다. 하지만, 집에서 스스로 감는 것보다 한결 개운함을 선사해 줬고, 어떤 이용원이나 미장원에서는 머리를 감아 주고 드라이까지 별도의 상품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었다.
향의 기억으로는 꽤나 중독성이 강한 상품이었다.
* * *
향의 설명을 들은 차관들은 진지한 얼굴로 분석을 시작했다.
처음 세발방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는 뜬구름 잡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난 이후 차관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고민하던 가운데, 가장 먼저 입을 연 이는 임순욱이었다.
“신에게 올라오는 보고들 가운데 비슷한 보고가 몇 건 있었….”
임순욱은 잠시 말을 멈추고 기억을 더듬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은 임순욱은 좀 더 정확하게 대답했다.
“모두 3건이었사옵니다. 수원과 개성, 평양에 있는 목욕탕 몇 곳에서 세발을 해 준다고 했사옵니다.”
임순욱의 대답에 향은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반응은 어떻다고 합니까?”
“나름 괜찮다고 들었사옵니다. 돈을 주고 머리를 감는 것을 이해 못 하는 이들도 많지만, 한 번 경험한 이들은 단골이 된다고 했사옵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러니까, 이를 전국적으로 실행하자는 것입니다. 목욕탕 안에 설치해도 좋고, 따로 점방을 내도 좋습니다. 아니, 머리만 감는 것이니 따로 점방을 만드는 것이 낫겠군요!”
그렇게 해서 향과 차관들은 세발방에 관해 진지하게 의논을 나누었다.
사흘 뒤, 공식적인 문건이 만들어졌고, 이는 바로 세종에게 올라갔다.
“백성들이 돈을 내고 감겠느냐?”
세종의 물음에 향은 바로 대답했다.
“감을 겁니다!”
‘그루밍 좋아하는 것은 고양이만이 아니랍니다!’
향의 대답에 세종은 기획안을 다시 한번 살폈다. 향 외에도 재경부의 차관 3인의 이름이 같이 있는 것을 본 세종은 결론을 내렸다.
“세자만이 아니라 재경부 차관 셋이 다 끼어든 것을 보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군. 허가한다.”
그렇게 해서, 조선의 명물 가운데 하나인 ‘세발방’이 탄생했다.
* * *
처음에는 다들 갸웃하던 세발방이었지만, 곧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세발에 익숙한 이들이 감겨 준 머리에서 느껴지는 상쾌함은 중독성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끔씩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는 머리카락도 별로 없는데 깎아 줘야 하는 거 아녀?”
“그 별로 없는 머리카락 갖고 그럴듯하게 상투 트는 수고비는 생각 안 하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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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ltnrdl1&logNo=221273522170
https://brunch.co.kr/@peopletoday/3
주2) https://news.joins.com/article/8161619
잔다르크 뒤에 서 있는 남성의 머리스타일을 봐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