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633)
633화 지금 북경에서는···. (3)
상단주의 말에 내각수보는 순간적으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벌써? 너무 일러!’
지난 전쟁의 패배는 명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그냥 패전만 당했을지라도 황제와 조정의 권위는 심각한 손상을 입는 것이 상례였다. 하지만, 지난 전쟁은 거기에 더해 매우 심각한 경제적 손실까지 가져온 상황이었다. 제 때에 이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민란이나 지방 군벌들의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상당했다.
하지만, 내각수보가 이르다고 한 것은 전쟁이 끝나고 이제 겨우 2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명의 국정 운영이 삐걱거리는 상황이긴 하지만 완전히 붕괴된 상황은 아니었다.
결국, 내각수보는 상단주를 다그칠 수밖에 없었다.
“자세히 말해보게!”
“예, 대인….”
상단주의 설명에 따르면 강남지역의 많은 농민들과 도시 하층민들 사이에 이런 소문이 돌고 있고, 실제로도 서서히 무장 봉기의 움직임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원인이 무엇인가!”
“미곡 상인들의 농간과 세금 때문이옵니다.”
“이런….”
상단주의 대답에 내각수보는 이마에 손을 얹으며 탄식했다.
‘늦었던 것인가?’
“후우~.”
‘그래도 아직은 늦은 것이 아닐 것이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혼란한 정신을 가다듬은 내각수보는 상단주에게 물었다.
“그래. 그래서,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되는 것인가?”
“아직은 소문만 돌 정도인지라….”
“그래, 그럼 혹시 그런 짓을 벌이는 수괴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가?”
“수괴들이옵니다. 풍문에 따르자면 주윤뮨이라 자칭하는 이들이 네다섯에 주문규라 자칭하는 이들도 예닐곱은 되옵니다. 거기에 주윤문, 주문규 부자라 자칭하며 함께 움직이는 이들도 서너 쌍은 된다고 들었사옵니다.”
“흐음….”
상단주의 대답에 내각수보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사색에서 빠져나온 내각수보는 상단주에게 물었다.
“소문에 관해서 누구에게 말했나?”
“대인이 처음이옵니다. 하오나, 제 귀에 들어올 정도라면 이미 많은 이들에게 소문이 퍼졌다는 것이옵고, 그렇다면 다른 대인들도 아마 알고 있지 않겠사옵니까?”
‘다른 대인들’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내각수보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어용상단의 수는 여럿이었고, 이 상단들의 단주들은 대신들은 물론이고 동창과 금의위에도 선이 닿아 있었다.
‘숨길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군.’
잠시 후, 표정을 정리한 내각수보가 상단주에게 말했다.
“귀한 정보를 알려줘서 고맙네. 폐하께 자네의 공을 아뢰겠네.”
내각수보의 말에 상단주는 급히 포권하며 대답했다.
“과찬이시옵니다! 소인은 폐하의 은덕으로 먹고사는 소인배일 뿐이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옵니다!”
상단주의 대답에 내각수보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만 한다면 이 나라가 이리도 어렵지는 않겠지….”
* * *
다음 날, 내각수보는 입궐하자마자 경태제에게 자신이 들은 것을 아뢰었다.
쾅!
“이런 무도한 일이 있나!”
내각수보의 보고에 화를 참지 못해 황좌의 팔걸이를 내려친 경태제는 바로 명령을 내렸다.
“병부상서와 좌우도독은 지금 당장 군을 동원하여 저 반역자들을 진멸하라!”
경태제의 말에 병부상서가 바로 포권하며 아뢰었다.
“폐하! 소신이 목을 걸고 폐하께 아뢰옵니다! 대역무도의 죄를 지은 저들은 징치하는 것이 맞사오나, 지금 나라의 상황을 살피면 그것은 하책이옵니다!”
“하책이라고!”
“폐하!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나라의 상황이 너무나도 좋지 않사옵니다! 어제 폐하께서 정하신 것처럼 우선 북방과 화친하고 남은 병력을 정리하여 상처 입은 중부 지방의 회복을 명함이 상책이옵니다!”
“저 역도들을 그냥 놔두자는 것인가! 이제 막 싹이 돋기 시작했을 때 뽑아내는 것이 더욱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것이 상리 아닌가! 병부상서는 무슨 생각인 것인가!”
경태제의 말에 병부상서는 바로 답했다.
“폐하께서 단 한 장의 칙서만 내리신다면 저들은 서로 상잔할 것이옵니다.”
“응?”
병부상서의 대답에 경태제는 노기를 가라앉히며 눈을 반짝였다.
“자세히 말해보라!”
* * *
명의 강남지역에서 퍼진 소문으로 북경이 시끄러울 때, 서울에도 그 소문이 들어왔다.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명이 뒤집힐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까?”
향의 물음에 제일 먼저 대답한 이는 김종서였다.
“신이 생각하기에 가능성은 매우 낮사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혜제와 그 아들이라고 자칭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명을 상대하기 전에 그들은 또 다른 사칭자들부터 상대해야 할 것이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될 것이옵니다.”
김종서의 말에 향과 대신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정난의 변’에서 패배한 다음 행방이 묘연한 건문제와 그의 아들을 사칭하고 나온 이상, 다른 이들은 모두 자신을 참칭한 사기꾼들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력들이 맞붙는다면 둘 가운데 어느 하나가 죽어야만 끝나는 싸움이 될 것이었다. 만약에, ‘저이가 참이고 난 가짜였다. 그러하니 저이 밑에 들어가야 한다.’라는 말을 내뱉는다면 자신들을 따르던 이들에게 먼저 죽을 것이었다.
이것은 충돌한 두 세력이 서로 백중세일 경우의 일이었고, 만약, 세력의 우열이 확연하게 드러난 상황이라면 약세 측의 건문제나 주문규는 바로 죽은 목숨이 될 것이었다. 그들을 따르던 부하들이 자신들의 구명을 위한 선물로 써먹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참칭자에게 속았다. 하지만, 이제 장본인을 만나게 되었다. 이에 참칭자의 수급을 바치니 부디 우리를 이끌어 달라!
이런 말과 함께.
* * *
김종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민신이 말을 이었다.
“누가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혜제와 그 아들을 칭한 것은 상책 같아 보이나 하책 가운데 하책이옵니다.”
민신의 말에 황희가 살을 덧붙였다.
“참신한 생각 같았지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참신한 생각이란 것이 함정인 것이옵니다.”
“흐음….”
대신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분석하던 향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명의 조정은 관망책을 사용하리라 생각하십니까?”
향의 물음에 황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답했다.
“그렇사옵니다. 지금 명의 상황을 보면 남쪽으로 병력을 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옵니다. 그런데, 반란을 일으킨 이들의 수괴들이 모두 혜제나 그의 아들을 자칭하고 나섰사옵니다. 그렇다면, 잠시 숨을 돌리며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옵니다. 반대로 상대는 거듭되는 상잔 과정에서 기력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고 말이옵니다.”
황희의 말에 향은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거기에 양념을 쳐볼까?”
향의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황희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되옵니다! 이는 도리가 아니옵니다!”
황희의 말에 향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도리가 아니다?”
향의 표정이나 어투에 숨은 뜻은 간단했다.
‘댁이 그런 말을 한다고? 댁이? 그동안 아바마마와 나와 함께 여기저기 양념 치고 다녔던 사람은 다른 사람이요?’
아니, 황희를 바라보는 모든 이들이 향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표정을 알아챘는지 황희는 향에게 고했다.
“폐하. 사관과 주서들을 잠시 물려주시옵소서.”
“응? 흐음….”
황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향은 사관과 주서들에게 명했다.
“잠시 나가있도록.”
“예? 폐하. 하나….”
“쯧!”
향이 혀를 차자마자 사관들과 주서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취한 다음 바로 밖으로 나갔다.
사관과 주서들이 모두 나가자, 황희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전쟁에서 이기고, 우리가 제국으로 탈바꿈을 하게 된 것이 도리를 고집해야 하는 이유이옵니다. 그전까지는 소국이라 생존을 위한다는 이유로 정도가 아닌 외도와 기책을 사용해도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사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명도 압도할 수 있는 대국이 되었으니 도리와 명분을 찾아야 하옵니다. 이를 무시하고 우리만의 이익만 추구한다면 우리 제국과 교린할 나라들은 하나도 없을 것이옵니다.”
황희의 말에 김점이 바로 반박에 나섰다.
“송양지인(宋襄之仁)의 고사를 모르지는 않겠지요?”
김점의 말에 황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모를 리가 있겠소? 하지만, 도리와 명분을 무시하고 대놓고 국익만 추구하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남기면 안 된다는 것이오. 공개적으로! 사초와 승정원일기에 기록되는 순간, 후대도 그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안 한 것이오? 100년 뒤의 제국을 생각해 보시오!”
“그렇다고 국익의 손실을 감내할 필요는 없지 않소!”
김점의 재반박에 황희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심심파적으로 서이들의 경전을 읽어봤는데 좋은 구절이 있습디다.”
“좋은 구절?”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참 좋은 구절 아니오?”
순간, 향은 자기도 모르게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 말이 그 뜻이 아닌데?’
향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희는 말을 이었다.
“제국은 명분과 도리를 우선시해야 하오. 그래야만 제국이 대국으로 대우를 받을 것이오. 적어도 양지에서는 그래야 하오.”
그제야 김점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흐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기는 하지….”
“그리고, 고사를 보면 알겠지만 말이오. 역사는 항상 밤에 움직이는 법이라오.”
황희의 말에 모든 대신들은 황희와 비슷한 미소를 지으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향이 ‘유교 탈레반 초기형’이라 평가한 이사철마저도.
그 모습에 향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으로 눌렀다.
‘여기 어디? 난 누구? 지금 이 자리가 대한 연방 제국의 국정을 논하는 자리냐, 아니면, 악의 제국을 꿈꾸는 악당들이 모인 곳이냐?’
불씨는 자기가 던졌다는 것을 끝까지 모른 척하는 향이었다.
어쨌거나 사관과 주서들을 다시 부르기 전에 결정할 것은 결정을 지어야 했다.
“그렇다면, 명의 강남지역에 양념을 치는 것은 동의하시는 겁니까?”
향의 물음에 황희는 바로 답했다.
“우리 역시 조금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옵니다. 지금은 그 수가 너무 많고, 규모도 작사옵니다. 어느 정도 걸러진 다음이 좋을 것 같다 생각하옵니다.”
황희의 말에 김점이 말을 덧붙였다.
“신 또한 같은 생각이옵니다. 지금부터 양념을 치면 지출이 너무 크옵니다. 적당이 무르익었을 때 양념을 쳐야 하옵니다.”
황희와 김점의 대답에 향은 다른 대신들을 돌아봤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무총리와 좌부총리의 안이 합당하다 생각하옵니다.”
대신들의 대답에 향은 바로 결정을 내렸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내관! 사관과 주서들에게 다시 들어오라 전하라!”
“예, 폐하!”
* * *
얼마 지나지 않아 경태제가 칙서를 발표했다.
– 지난 정난의 변에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이에 짐은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도다. 이에, 짐은 혜제의 연호인 건문을 복구할 것이며, 주문규를 친왕으로 책봉할 것이다. 따라서, 주문규는 짐을 찾아오라.
이 칙서가 중원 전체에 뿌려지면서, 자칭 건문제와 그 아들들이 격렬하게 충돌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