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643)
643화 메디치, 유럽, 도전록. (3)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겠지. 조선, 아니 제국은 내 입맛대로 상대하기에는 그 덩치가 너무 커졌어.”
코시모는 깔끔하게 상황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질질 끌려다니기에는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하지. 그리고, 이익도 별로 얻을 수도 없고 말이야. 인정은 인정이고 이익은 이익이야. 파고들 부분은 파고들어서, 급소를 움켜쥐어야지.”
코시모는 상황을 철저하게 다시 분석했다.
“제국이 이번에 팔겠다고 한 무기들, 속은 쓰리지만 살 수밖에 없겠군. 그거 아끼자고 장기전으로 가면 더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어. 지금 유럽의 상황도 그렇고.”
* * *
니콜라오 5세가 ‘반성과 회개’를 주장하기 전부터, 유럽은 슬슬 충돌을 줄이고 봉합에 들어가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백성들과 귀족들의 ‘피로감’때문이었다.
조선에 도착한 수도승들의 편지들이 불씨를 던지기 한참 전부터 유럽은 교황과 바젤 공의회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분쟁으로 홍역을 앓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에서 향이 던진 질문 하나가 상황을 부채질해 더욱 큰불을 일으켜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벌어진 종교분쟁이 10년이 넘어가면서 위로는 귀족들로부터 아래로는 백성들까지 모두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 * *
거기에 이런 종교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도 봉합을 강요했다.
종교인들과 지식인들의 설전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교리를 믿는 이들 사이에서 치열한 유혈분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런 유혈 분쟁은 점점 더 규모가 커졌고, 이런 분쟁에 휘말려 쑥대밭이 되어버린 영지들도 속출했다.
이렇게 되면서 경제적인 곤란에 직면한 농민들과 귀족들이 종교인들과 지식인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상황이 과연 신이 원한 것이냐!
백성들의 원성은 종교인들과 지식인들을 가장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었다.
흑사병으로 인해 큰 폭으로 인구가 감소하면서 농노들과 자영농들의 입지가 강해졌다. 그리고, 그와 비례해서 불만도 늘어가고 있었다.
이런 농노들과 자영농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영주들과 종교인들이 취한 수단은 축제를 여는 것이었다.
부활절과 성탄절 등과 같은 전통적인 축제에 더해 여러 성자들과 성녀들의 축일(祝日)을 기념하는 축제가 추가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유럽 전역에서 많은 축제들이 벌어졌고, 대목을 노린 상인들이 유럽 전역을 돌아다녔다.
이렇게 축제를 돌아다니는 상인들이 가장 많이 팔았던 것은 조선에서 수출한 ‘뽕수’였다.
한편, 이런 귀족들과 백성들의 움직임은 메디치와 같은 거상들도 원하던 것이었다.
유럽의 귀족들 대부분은 메디치와 같은 거상들의 채무자였다. 귀족들은 작위의 고하와 영지의 크기를 가리지 않고 막대한 빚을 지고 있었다.
때문에, 오랜 시간 이어진 종교분쟁의 여파로 파산한 귀족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고, 이들의 악성 채무는 거상들의 골칫거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 * *
“무기는 어쩔 수 없다 쳐도, 제국이 내건 조건이 문제야.”
코시모는 향이 내걸었던 ‘4할의 지분’을 다시 생각했다.
“제국이 저렇게 나왔으니, 나 역시 다시 생각해봐야겠지. 아쉽게 됐어. 잘하면 최소 1/4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말이야.”
제국에서 돌아온 조반니에게 ‘4국 합자’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코시모의 머릿속에서 바로 하나의 계획이 만들어졌다.
‘이거 잘하면!’
코시모는 그렇게 순간적으로 번뜩인 생각을 놓치지 않고 바로 조반니를 제국으로 다시 보낸 것이었다.
조반니를 제국으로 보낸 다음 코시모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내가 보내는 돈이 없으면 곤란해지는 것은 포르투갈만이 아니지.”
오스만도 코시모의 신세를 지고 있었다.
* * *
이슬람 지역의 신흥 강자로 성장하고 있는 오스만이었지만, 그 성장세를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 계속 전역이 확장되어 갔고, 이는 재정에서 전비가 차지하는 부분이 점점 늘어난다는 소리였다. 그렇다고 확장을 멈춘다면, 전쟁을 통해 이득을 얻고 있던 이들이 당장 반란을 일으킬 것이 확실했다.
이 난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더 이상 차지할 땅이 없을 때까지, 혹은 호전적인 기득권의 여력이 없어질 때까지 확장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여력이 없어진 상황에서 외침이라도 발생한다면 바로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영토에 기반한 것이 아닌 또 다른 소득원을 찾아내 술탄의 것으로 차지하는 것이었다. 이 재원을 기반으로 술탄의 정권 장악력-무력-을 강화한 다음, 기득권층을 제압하는 것이었다. 기득권층을 제어할 수 있다면 적당한 선에서 확장을 멈추고 안정적인 국가체제를 갖출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코시모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꽃의 나라’와 오가는 교역로를 차지-독점은 아닐지라도-하게 된다면, 이는 술탄의 새로운 소득원이 될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부유하기로 유명한 카이로의 보물 창고들과 비옥한 나일의 삼각주 공격하는 것으로 시파히와 티마르 제도로 상징되는 기득권층들의 주의를 돌릴 수 있었다.
무라트 2세가 제안을 받아들이자, 코시모는 상당량의 군자금과 조선제 수석총을 카피한 피렌체의 수석총을 대량으로 공급했다. 그리고, 무라트 2세는 그렇게 받은 군자금과 수석총을 이용해 술탄의 친위세력인 예니체리의 전력을 강화해 나갔다.
* * *
포르투갈은 물론이고 오스만까지 목줄을 걸어놓은 상황이었기에 코시모는 자신만만한 것이었다.
“메흐메트 2세가 제국에 호언장담했지만, 그래 봤자 내게서 벗어날 수는 없지.”
메흐메트 2세가 가장 강력한 차기 술탄 후보였지만, 코시모의 재력이라면 이 결과를 충분히 조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메흐메트 2세도 아는 것이었다. 때문에, 메흐메트 2세는 코시모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물론, 술탄의 자리에 오르고 나면 말을 바꿀 수 있겠지만, 제국의 행동에서 좋은 것을 배웠지.”
본격적인 술탄 후보들의 경쟁이 벌어지기 전에 메흐메트 2세에게서 약속을 인정하는 문서를 받아낼 것이었다. 물론, 제국이 했던 것처럼 ‘알라의 이름을 걸고’.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다음, 코시모는 포르투갈과 오스만에게서 각각 5/100만큼의 지분을 얻어낼 생각이었다. 물론, 제국에게 했던 것처럼 다른 나라들에게는 알리지 않는 비밀 협약을 통해서였다. 그들은 분쟁이 생기고 나서야 알게 될 것이었다.
여기에 제국에서 얻어낼 5/100까지 더한다면 코시모의 메디치 가문이 확보한 지분은 전체의 1/4이 될 것이다.
그 정도의 지분이라면 메디치 가문은 3국 사이를 조율하면서 최대의 이익을 챙기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제국의 황제인 향이 이에 제동을 걸어버린 것이었다.
* * *
지금까지의 상황을 분석한 코시모는 빈 잔에 포도주를 채우고 지도를 노려봤다.
“흐음… 제국이 나에게 한 방 먹였으니, 나도 한 방을 먹여야겠지?”
코시모의 시선은 프랑스에 고정되어 있었다.
“포르투갈 혼자로는 오스만과 제국을 상대하기 버거워. 하지만….”
포도주로 목을 축인 코시모는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프랑스라면 말이 달라지지.”
* * *
향의 개입이 불러온 나비효과일까? 향이 개입하기 전의 역사와 비교해 거의 6년이나 일찍 종결되었다.
귀족들-심지어 자신의 아들까지 포함된-과의 항쟁에서 이기기 위한 샤를 7세의 선택이었다.
– 노르망디와 칼레가 남아있지만, 그것은 나중에라도 다시 빼앗으면 된다! 지금은 저 귀족들부터 잡아 눌러야 한다!
수도승들의 편지를 통해 알게 된 동방의 왕권정치에 감명을 받은 샤를 7세는 왕권 강화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것이었다.
덕분에 향이 개입하기 전의 역사에서 있었던 상비군의 증가와 같은 왕권강화 정책이 더욱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왕권 강화를 위해 샤를 7세는 교계의 분열도 적극 활용했다.
백성들이 선호하는 개혁파 종교인들과 지식인들을 지지하고 원리주의 및 보수파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보수파들의 전통적인 지지 세력인 귀족들의 세를 약화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계략과 꼼수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돈, 그것도 많은 돈이었다. 덕분에 샤를 7세와 코시모 사이는 아주 돈독했다.
프랑스의 정치 상황을 떠올리며 코시모는 비릿하게 웃었다.
“파리도 혹하겠지만, 브루고뉴도 혹하겠지.”
당시 브르고뉴에는 샤를 7세의 아들이자 가장 강력한 정적인 루이 11세가 자리하고 있었다.
* * *
파리든 브루고뉴든 당시 프랑스는 실전-국가 단위로 붙는 대규모 전투-경험이 많은 병사들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였다.
“여기에 제국에서 사 온 무기들이 들어간다면 저 지루한 전쟁도 빨리 끝을 볼 수 있겠지. 그리고, 포르투갈과 프랑스라면 오스만도 함부로 고집을 부릴 수 없을 것이고 말이야.”
거기까지 나름의 상황을 정리한 코시모는 지도의 수에즈 지역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운하라… 제국의 실수를 이용해야겠지.”
코시모가 생각하기에 제국이 운하를 권유한 것은 실수가 분명했다.
“틀린 것은 아니지. 철마와 철도를 운송해 오는 것도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 맞지. 그리고, 혹시 모를 기술 유출도 걱정해야 하고 말이야. 거기에 배에서 내려서 다시 철마에 싣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다시 배에 싣는 과정이 번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맞는 말이니까.”
빈 잔에 다시 포도주를 채운 코시모는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철로와 철마는 모든 것을 제국에 의지해야 하지만, 운하는 그게 아니라는 것이 문제지. 조반니가 말한 굴착기가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지. 노무자들을 더 고용한다든가, 아니면 노예들을 더 끌고 오면 될 일이야. 굴착기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지.”
코시모의 말처럼 이는 향과 제국의 관리들이 실수한 것이었다.
* * *
세종이 경장을 시작하고 본격적인 상공업 육성정책이 진행되면서 관노비를 제외한 사노비는 거의 사라진 상황이었다.
사노비들의 경장으로 상징되는 개혁정책에 반발하는 지방 기득권층의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조정은 사노비들도 재산으로 취급, 재산세의 세율을 높여 버렸다.
때문에, 대량의 사노비들이 면천되어 양인으로 풀려났다.
이는 단지 지방 기득권층의 세력 약화만을 노린 것은 아니었다. 점점 덩치를 키워가는 상공업에 필요한 노동력이자 중요한 소비시장, 그리고 점점 늘어가는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세원으로서의 임금 노동자를 늘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렇게 사노비들이 멸종 위기종이 되어버리면서 세종과 향, 그리고 조정의 관리들의 뇌리에서 노예의 개념이 옅어져 갔다.
물론, 아직도 엄청나게 많은 수의 관노비들이 남아있었지만, 이들의 절대다수는 정치범, 그러니까 죄수들이었기에 해당사항이 아니었다.
하지만,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에서는 아직도 노예는 일상의 존재이자 가장 손쉬운 노동력 확보수단이었다.
코시모는 바로 이 허점을 파고들려는 것이었다.
“제국의 굴착기가 왜 필요해? 노예가 더 싸게 먹히는데? 그리고 제국의 영향력이 줄면 줄수록 내겐 더 이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