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809)
809화 별이 지다. (3)
세종이 추진하거나 기획한 계획들의 점검을 맡은 대군과 군들-제국으로 칭제건원 후에는 공작과 후작들-이 가장 먼저 달라붙은 것은 격방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격방, 또는 신지격방이라고 불리는, 현대의 골프와 비슷한 경기였다.
“흐음…. ‘신지격방장을 종합유흥장에 포함시킨다.’라….”
안건의 제목을 확인한 공작과 후작들은 동시에 안평을 바라봤다.
종합유흥장은 유흥청의 소관이었고, 유흥청의 창립 시점부터 지금까지 유흥청장으로 앉아있는 이가 안평이었기 때문이었다.
동생들의 시선을 받은 안평은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지었다.
“쉽지가 않아. 신지격방장의 넓이가 얼마나 넓어야 하는지 잘 알잖아?”
안평의 말에 공작과 후작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 *
신지에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종은 몸이 근질거렸다.
“아… 격방이 하고 싶은데….”
신지에 가기 전에도 세종이 제일 좋아하는 운동이 격방이었다.
-경신일이 돌아올 때마다 상은 종친과 중신들을 불러 모아 밤을 새워 봉희(棒戲)를 즐기셨다.
향이 개입하기 전의 역사의 실록에도 이렇게 기록될 정도로 세종은 격방을 좋아했다.
어차피 태상황이 되어 뒷방으로 물러났기에 세종은 망설임 없이 격방을 즐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세종은 머리를 저었다.
“이게 아냐!”
전통적인 격방에 만족하지 못한 세종은 바로 완을 찾았다.
“황제께 청이 있어 왔소.”
“말씀만 하십시오.”
“땅 좀 내어주시오.”
“예?”
제국법에 따르면 제국의 영토는 모두 황제의 것이었다. 백성들은 황제에게 이 땅을 빌려 생활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백성들이 나라에 내는 세금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이 토지 임대료였다.
물론, 세종과 향은 이 토지임대료를 황제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금제를 걸어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법에 의해 지주들은 소작농들이나 세를 든 이들에게 함부로 높은 세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일종의 토지공개념이었다.
그리고, 법이 그러했기에 세종도 완에게 토지를 내어달라고 청한 것이었다.
그렇게 경기도와 충청도, 삼남 지역에서 적당한 땅을 불하받은 세종은 격방장을 만들어 격방을 즐겼다.
물론, 혼자만 즐긴 것은 아니었다.
가장 먼저 종친들이 불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격방장이 자리한 곳의 유력인사들이 불려와 함께 격방을 즐겼다.
지역 인사들에게 격방장에 초대받는 것은 대대로 전해질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격방장은 곧 새로운 유희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탁 트인 곳에서 호쾌하게 공을 쳐 날리는 쾌감은 중독성이 높았다. 그리고 최소한의 타수로 승부를 가리는 단순하지만, 상당히 머리를 써야 하는 규칙도 재미를 안겨줬다.
결국, 신지격방에 재미를 붙인 이들이 격방장을 개방해 달라는 청원을 넣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돈 냄새를 맡은 재경부에서 완에게 제안했다. 이 제안이 합당하다 여긴 완은 세종에게 물었고, 세종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없더라도 격방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적당한 재물을 내고 사용하게 함이 좋지 않겠소? 온천장들처럼 말이오.”
그렇게 해서, 격방장은 민간에도 개방이 되었다. 세종이 사용하지 않을 때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원하는 이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신지격방이 인기를 끌면서 제국의 영토 여기저기-본지와 신지는 물론이고, 북지, 대설도와 서남도까지-에 새로운 신지격방장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 * *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세종은 신지격방장을 유흥청이 관리하는 종합유흥장에 포함하는 계획을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실무를 담당하는 안평은 이 문제가 쉽지 않다고 난색을 표하는 것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미 안평이 언급한 신지격방장의 덩치였다.
처음 시작한 곳이 땅 넓은 신지여서 그런지 신지격방을 즐기기 위해서는 넓은 땅이 필요했다.
그것도 단순한 빈 평지가 아니라 적당한 언덕이나 야산을 끼고 있어야 했다.
이런 격방장을 유흥장이 있는 곳마다 설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북지나 대설도, 신지라면 모를까… 본지는 무리야. 공간도 문제지만 맹수들도 문제지. 잘못하면 격방을 즐기려면 격방채와 공만이 아니라 활과 화살까지 챙겨야 하는 일이 빈번할 거야.”
착호총사대가 열심히 활동했지만, 본지의 험준한 산맥에는 범과 표범, 곰과 같은 맹수들이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맹수들 또한 이 세상의 일부이니 백성에게 해를 끼치기 전에는 잡지 말라.’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난감한 표정을 짓는 안평을 보며 임영 공작이 살을 붙였다.
“그렇지요. 거기에 필요한 장구들을 마련하는 데도 만만치 않은 재물이 들어가고 말입니다.”
* * *
본지에서 즐기던 격방과 마찬가지로 신지격방도 여러 종류의 채를 들고 다녀야 했다. 장소에 따라 머리가 다른 채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격방채가 재물 잡아먹는 요물이었다.
나무나 대나무를 구부려 틀을 잡고 거기에 천이나 가죽을 씌운 머리에 자루를 단 것이 본지의 격방채라면 나무나 쇠, 구리로 만든 머리에 탄성이 강하고 질긴 나무로 만든 자루를 단 것이 신지 격방채였다.
문제는 채를 만들어 파는 목공장들이 자신들의 솜씨를 자랑하고, 더욱 많은 돈을 받기 위해 채의 자루를 화려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본지 격방의 경우에는 자루에 오행을 상징하는 다섯 가지 색을 칠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신지 격방의 격방채는 자루에 주칠(朱漆)이나 옻칠을 하는 것은 기본에 금사나 은사를 상감해 화려하게 만들었다.
이는 세종과 향도 책임이 있었다.
처음 시작한 이들이 세종과 향이었기에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채의 머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욱 적은 타수로 와아(窩兒)에 공을 넣는 이가 이기는 것이기에 장타를 치기에 유리한 머리를 가진 채가 필수였다.
그리고, 이런 머리를 만들기 위해 대장장이들은 머리를 싸매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장타가 잘 나오는 채는 비싼 값을 주고 팔 수 있었다.
채 10년이 지나지 않아 본지에는 우수한 채를 만드는 것으로 이름 난 장인들이 나타났다. 자신들이 개발한 채의 머리를 지식재산관리소에 등록한 덕에 장인들의 이름값은 점점 높아져갔다.
채만 비싸진 것이 아니었다.
공 또한 비싸지고 있었다.
본지 격방의 경우에는 단순히 나무나 마노를 깎아 만들었다.
하지만, 한번 치면 수십 장은 기본으로 날아가는 신지격방의 경우에는 찾기 쉽게 화려한 색을 입힌 나무공이나 화려한 줄무늬를 가진 마노 원석을 골라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완벽한 구형(球形)일수록 잘 날아가고 곧게 날아간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공을 만드는 장인들은 더욱 완벽한 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당연히 가격의 상승을 불러왔고, 잘 만든 공은 5개가 들어간 한 상자에 은화 2~3냥은 기본이었다.
물가가 많이 올랐어도 이 정도면 4인 가정이 보름은 생활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 * *
안평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신지격방이 사치와 풍기문란의 주범이라고 상소가 빈번한 상황이야. 누구처럼 격방장에서 격방채는 안 휘두르고 다른 것을 휘둘러서 말이지.”
말을 하는 안평의 시선은 임영 공작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안평의 눈총을 받은 임영공작은 당치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 제가 뭘요!”
“이 자식아, 본지에 이미 소문 다 났어.”
“저만 그런답니까!”
“그래서 문제란 거야… 후우~.”
격방채와 공을 보면 알겠지만, 신지격방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놀이였다. 물론, 저렴한 채와 나무공으로 즐길 수 있었지만, 신지격방을 즐기는 이들 대부분은 지역의 부호들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들은 기생들을 불러 격방을 즐겼고, 당연히 추문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호색한으로 소문난 임영공작이었기에 당연히 이 추문에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었고.
* * *
며칠을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오는 상황에 안평은 결단을 내렸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딱 하나밖에 없지.”
안평은 고개를 돌렸다. 안평의 시선에는 머리를 싸매고 서책을 노려보는 향이 자리하고 있었다.
“상황 폐하, 아니, 형님.”
“왜!”
날이 잔뜩 선 향의 까칠한 목소리에 안평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왜? 무슨 일인데!”
“저 그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안평은 향에게 문제를 설명했다.
“흐음….”
안평의 이야기를 들은 향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잠시 기억을 더듬던 향은 곧 ‘골프연습장’의 존재를 떠올렸다.
‘어지간한 동네에 적어도 한군데 이상은 있었지. 스크린 연습장은 더 많았고.….’
답을 찾아낸 향은 곧 안평에게 대답했다.
-대부분의 종합유흥장은 풍광이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풍광이 좋은 곳은 대부분 큰 강이나 내를 끼고 있다.
-신지격방을 즐기는 이들 대부분이 장타의 쾌감을 즐기는 것이다.
-따라서, 종합유흥장 한 켠에 대(臺)를 만들고 강이나 내를 향해 공을 칠 수 있는 장소를 만든다.
-강이나 내가 없는 곳은 적당한 거리에 막을 치고 그곳을 향해 공을 치게 한다. 막에는 과녁을 그려 정타치는 법을 연습하게 한다.
-종합유흥장에서 격방을 즐기는 자는 자기의 채를 사용할 수 있지만, 공은 격방장의 것만을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격방장의 공은 무조건 나무로 만든 것만 사용한다.
-친 공이 떨어지는 내와 강에는 그물을 설치해 공이 하류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 회수를 쉽게 한다.
-유흥장에 설치한 격방장은 무조건 반 시진(약 1시간) 단위로 사용할 수 있고, 공은 기본적으로 1바구니를 공짜로 제공한다. 시간과 공을 추가하려면 추가로 돈을 지불한다.
“물론, 바구니에 담을 공의 수는 반 시진을 치기에는 살짝, 아주 살짝 모자란 양만 담아야겠지?”
“아! 그렇군요!”
점점 얼굴이 밝아지는 안평을 보며 향은 말을 이었다.
-신지격방장의 수는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살피며 적당히 늘려간다. 이는 종합유흥장에 설치할 격방장 역시 마찬가지다.
-신지격방장의 출입하는 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기생의 동행을 금지한다. 물론, 기생이나 여인들끼리 모여 출입하는 것은 허락한다. 단, 이 경우는 별도의 날짜를 지정해 그날만 가능하게 한다.
여기까지 설명한 향은 안평을 바라봤다.
“어떠냐?”
향의 물음에 안평은 환한 얼굴로 머리를 조아렸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조금 더 손보면 더 좋을 거다.”
“예!”
신이 나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안평을 바라보던 향은 고개를 돌려 눈앞에 놓인 책을 노려봤다.
“도대체 아바마마께서는….”
책에 적힌 내용을 살피는 향의 표정은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였다.
‘여기서 핵물리학이 왜 튀어나옵니까!’
‘잡상록(雜想錄)’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에 적힌 세종의 생각-말 그대로 잡상-은 향을 충격으로 몰고 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