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871)
871화 세대교체 (2)
임순욱과 한명회의 제안을 놓고 벌어진 설전을 길게 이어졌지만, 결국은 완이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경들의 의견은 참으로 잘 들었소. 짐과 제국의 안녕과 강성을 위해 고심했던 흔적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보이니, 짐은 참으로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소이다.”
완의 칭찬에 대신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과분한 칭찬이시옵니다.”
“그저 신하 된 자의 책무를 다했을 따름이옵니다.”
그렇게 칭찬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 완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짐이 생각하기에 재경부 장관의 의견과 총무부 장관의 의견은 둘 다 일장일단이 있다 생각하오.”
이어진 완의 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재경부 장관의 방안은 견실하기는 하나, 때를 맞추는 것이 어렵다. 만약,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면 제국은 필요 이상의 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문제는 이탈리아와 제국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일이 생겨도 이를 서울에서 듣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총무부 장관의 방안은 과감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하지만, 사분오열된 유럽이 하나로 뭉쳐 제국을 적대시할 가능성도 높다.
-왜냐하면, 유럽인들이 보기에 우리 제국은 이교도에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몽골 침략으로 큰 고초를 겪은 이들이다. ‘타초경사’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지금 우리 제국의 형편을 보자면 명과 일본, 몽골이 내지와 북지를 둘러싼 상황이다. 지금은 이들과 우리 제국이 서로 화친하고 교린하고 있지만, 언제라도 적이 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적의 수를 늘리는 것은 좋은 책략이 아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방안 외에는 괜찮은 것이 없소. 그래서, 짐은 이 두 가지를 서로 합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오.”
완이 밝힌 책략은 이러했다.
-피렌체에 제국의 대사관을 설치한다. 이 대사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이탈리아의 형편을 관찰하고 서울에 알린다.
이렇게 하면 이탈리아에 개입하려는 이들은 제국의 개입을 알고 숨은 패를 꺼내들 것이다.
-절대 처음부터 모든 패를 보이지 않는다. 피렌체의 요청이 있어야만 제국은 움직일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제국은 명분을 얻을 수 있고, 제국을 의심하는 이들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또한, 제국과 피렌체와 함께 할 유럽 국가들을 찾을 수 있다.
-만약, 제국이 군사력을 투입할 상황이 생긴다면 유럽 방면으로 동원 가능한 모든 병력을 동원해 단기전으로 승부를 본다.
-그리고, 이렇게 군사력을 투입할 경우, 출발점은 신지다.
“신지라 하셨사옵니까?”
“그렇소. 이 부분은 이미 짐이 상황과 이야기를 나누어 봤고, 가장 괜찮은 계책이라 판단했소.”
완의 대답에 황보인을 포함한 모든 대신들의 눈이 국방부 장관과 참모총장에게 쏠렸다.
대신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장항선과 참모총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완의 제안을 분석했다.
중간중간 자신들끼리 작게 귓속말을 나누면서 의견을 교환한 두 사람은 마침내 결론이 났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완과 다른 대신들을 바라봤다.
“소신들의 생각에도 신지가 가장 적당한 것 같사옵니다.”
“신지의 역량으로 가능하겠소?”
김종서의 지적에 장항선은 바로 답했다.
“지금 당장은 역부족이오. 하지만, 이는 피렌체는 물론이고 이탈리아에 끼어들려는 다른 이들도 모두 마찬가지. 우리가 예상했던 10년이나 15년이 지난 이후라면, 그리고 신지의 해군력을 정성껏 육성시킨다면, 가능성은 충분하오.”
장항선의 말에 신숙주가 따지고 들었다.
“이미 유럽 국가들 대부분이 신지의 존재는 어렴풋이라도 알고있는 상황이오. 일이 시작되면 당연히 방비를 하지 않겠소?”
“유럽 전체가 신지 방면으로 방비를 할 것이다?”
“그렇소.”
신숙주의 말에 장항선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오. 첫째,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력을 지닌 나라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인데 두 나라 모두 지중해와 아프리카 지역의 이권 경쟁에 해군력을 투입하고 있소. 신지 방면에 투입할 여분의 전력도 없거니와 있어도 투입하지 않을 것이오. 투입하는 순간, 경쟁에서 밀려버리게 되니까. 그리고, 외무부 장관도 알지만, 포르투갈은 우리 제국과 좋은 관계요.”
“잉글랜드와 프랑스도 있지 않소?”
“불구대천의 원수들끼리 손을 잡는다? 오월동주란 말이 있기는 하지만 가능성은 매우 낮소.”
“그래도 만약이란 것이 있지 않소?”
숙주가 계속 물고 늘어지자, 장항선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흥! 우리 국방부라고 눈과 귀가 없는 줄 아오? 유럽인들이 사용하는 전선들의 성능은 어떠한지, 또 어떤 배들을 만들고 있는지 잘 알고 있소! 왜냐? 그 배들을 만드는 조선소 가운데 가장 큰 조선소가 수에즈에 있는 제국의 조선소니까! 유럽인들이 전투에 투입할 배들의 성능을 알고, 우리 전선들의 성능도 알고, 신지에 계신 상황께서 신경 써서 해군을 육성하고 계시오! 우리가 예상한 시간이 지나서 일이 벌어진다면 걱정할 일은 절대 없소!”
장항선의 단언에 신숙주는 창백해진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주변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대신들은 신숙주를 바라보고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인간, 또 저질렀군.’
문제나 의문점을 지적하고 따지는 것은 욕할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신지에는 상황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이 향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향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대신들은 ‘상황과 합의가 끝났다.’라는 완의 말에서 이미 결정까지 내려진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향이라면 국방부가 예상한 시간에 맞춰, 아니, 그 시간보다 빠르게 신지 해군을 제대로 키울 것이 확실했다.
‘아니, 제대로 키우시기만 하면 다행이지.’
향의 성격대로라면 돌격귀선보다 더한 것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의심한다는 것은 상황과 황제의 능력을 의심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사려 깊음을 자랑하려던 신숙주는 또다시 대형 사고를 친 것이었다.
신숙주는 자신의 실수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고자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하, 하지만, 신지 해군에게 격침된 유럽의 탐험선들이 한두 척이 아니지 않소? 탐험선들을 보낸 유럽인들도 제국에 의해 사달이 난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을 것이오. 만약, 제국이 움직인다고 판단이 들면 당연히 신지 방면의 방비를 강화하지 않겠소?”
신숙주의 지적에 참모총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럴 것이오. 그럼에도 저들은 방비가 불가능하오. 첫째, 신지와 유럽 사이의 바다는 그 크기가 매우 넓고, 제대로 된 해도도 없는 상황이오. 아! 정정하겠소. 어느 정도 쓸 만한 해도는 제국만이 가지고 있소.”
참모총장의 말처럼 제국은 대서양, 특히, 북대서양 방면을 기록한 해도를 가지고 있었다.
* * *
유럽, 중동과 교역을 시작하면서 가장 열심히 모은 것 가운데 하나가 해도였다.
축척이나 정확도는 엉망진창이었지만,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절, 그리고 이어진 바이킹 시절에 그려진 해도들은 발견되자마자 국방부로 들어왔다.
또한, 신지에서 육성 중인 해군들도 바쁘게 움직였다. 신지의 동쪽과 서쪽 해안선을 측량하는 일과 유럽에서 오는 탐험선들을 제거하는 틈틈이 한두 척씩 배들을 내보내 동쪽으로 가는 항로를 탐색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탐험에 가장 큰 조력자가 바로 유럽에서 온 탐험선들이라는 것이었다.
초반에는 탐험선들을 발견하면 불문곡직하고 격침시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향은 방침을 바꾸었다.
“아무래도 여러모로 아깝단 말이지….”
향의 결정에 따라 신지 주둔 해군은 작전을 변경했다.
-우선 일단 포격을 가해 손상을 입힌다.
-상대가 계속 저항하거나 도주하려고 하면 격침.
-상대가 백기를 들면 선원들과 화물은 모조리 압수하고 탐험선은 격침.
이렇게 해서 적지 않은 유럽인들이 신지의 해군 수용소로 끌려 들어왔다.
수용소에는 향이 보낸 관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은 이 신지를 개방하지 않기로 결정했기에 당신들을 억류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은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 이제 당신들에게 선택권을 주겠다. 문호가 개방될 때까지 철로 공사 현장에서 일하거나 거부하는 것이다.”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남쪽의 메시카 지역에서 강제로 도로 건설과 철로 건설을 해야 한다.”
“둘 다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큰 차이가 있다. 첫 번째는 충분한 급료가 지급된다는 것이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 두 번째는 그런 거 없다.”
“귀국이라는 선택지는 없습니까?”
“그게 가능했으면 왜 당신들의 배를 격침시켰을까?”
“….”
결국, 유럽인들은 진평의 철로 공사 현장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거지….”
하지만, 향이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탐험선에서 확보한 항해 일지와 해도였다.
그 항해일지와 해도를 통해, 제국의 대동양(大東洋)해도는 점점 충실해져 갔다.
* * *
참모총장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어디로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유럽인들이 그 넓은 해안과 항구들을 모두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하오.”
“그렇기는 하지만….”
“그리고 유럽인들은 우리 제국인들의 습성을 알고 있기에 신지 방면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오.”
“우리 제국인들의 습성?”
신숙주만이 아니라 다른 대신들도 이번에는 참모총장의 말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렇소. 우리 제국인들의 습성은 아주 유명하지. ‘조금이라도 더 이익이 많은’,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유럽인들은 아마 이렇게 판단했을 것이오. ‘신지에서 유럽으로 가는 항로가 서울에서 수에즈를 지나 유럽으로 가는 경로보다 빠르고 이익이 되는 경로였다면 벌써 제국의 배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었을 것이다. 돈이 안 되니까 안 하는 거다.’. 그리고, 유럽인들의 행동을 보면 잘 알 수 있소. 보고에 따르면 신지에 접근하는 탐험선의 수는 거의 사라졌지만, 얼마 전에 드디어 발견된 남방 신대륙으로 가는 탐험선의 수는 크게 늘었소.”
참모총장의 말처럼 얼마 전에 드디어 오스트레일리아가 발견되었다.
“진짜였다!”
“가자!”
신대륙의 발견에 흥분한 유럽의 탐험가들은 곧장 배를 몰고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한 탐험가들은 해안선을 따라가며 샅샅이 기록했고, 내륙으로 파고 들어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발견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하는 길에 휴식과 보급이 가능한 곳을 찾다가 남태평양 지역의 수많은 섬들이 발견되었다.
* * *
“남방신대륙 덕분에 유럽의 시선이 남쪽으로 쏠린 상황이오. 지금 유럽 국가들의 국력을 기준으로 10년이나 15년 후를 계산해봤는데, 글쎄….”
참모총장은 말을 흐렸지만, 대신들은 다음 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10년 후나 15년 후에도 유럽은 제국을 감당하지 못한다!’
황보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참모총장을 바라봤다.
‘천생무인일줄 알았는데 나쁜 물이 들었군.’
참모총장이 말을 흐린 것은 훗날 자신의 예상이 틀렸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그렇게 자신하지 않았었나!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물론 그때까지 자신이나 참모총장이 자리에 있지는 않겠지만, 없는 자리에서 먹는 욕이 더 아픈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