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951)
951화 코르시카 해전 (7)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
수적 우세를 이용해 제국 함대의 발을 묶은 다음 몰매를 대리겠다는 발상은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발을 묶기 위해 배들을 밀어 넣는다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난전이 벌어져 혼란한 상황이라도 최소한의 지휘통제는 가능해야 했다.
그리고, 적의 발을 묶는 것에 성공한다면 병법의 고전이자 정석인 ‘망치와 모루’ 작전을 써먹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했다.
“바다에서는 ‘망치와 모루’를 쓰기가 힘들다고, 아니, 우리 제국 함대를 빼면 그런 미친 짓을 벌일 정도로 실력 좋은 놈들은 없다고 자만한 것이겠지……”
스스로를 반성한 손일원은 지도를 살피며 입맛을 다셨다.
“쩝. 혹시 몰라 빼놓은 돌격귀선 한 척이 신나겠군.”
필요 이상의 손실을 피하려는 목적에서 피렌체 함대와 호위함대, 수송함대는 제노바로 옮겨놓는 것이 작전의 초안이었다. 하지만, 향의 지적을 받아든 손일원은 작전을 수정해 돌격귀선 한 척을 딸려 보내는 것으로 바꿨다.
“아니, 돌격귀선을 타고 하라는 전투는 하지 말고 후방에서 음풍농월이나 하란 말입니까?”
‘돌격귀선의 선장치고 제정신인 놈들 없다.’
제국 해군 사이에 도는 말이 사실이었던 듯, 작전을 들은 돌격귀선들의 함장들은 격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계급이 법이다.’라는 말이 뜻하듯, 손일원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제비뽑기를 통해 결정된 돌격귀선의 함장과 승무원들은 대놓고 투덜거리며 제노바로 출항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 것이었다. 명령서를 받아들자마자 희희낙락할 돌격귀선의 함장과 승무원들의 모습이 안 봐도 눈에 선한 손일원이었다.
“자! 후회는 여기까지! 페하는 언제나처럼 폐하답게 행하신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도 밥값을 해야지! 이 나라에 혀 차는 소리는 들을 수는 없으니까!”
스스로를 다잡은 손일원은 참모들을 소집했다.
* * *
시간이 지나면서 코르시카와 토스카나 제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제국 함대와 유럽의 함대가 한 판 붙는다!
-지금까지 보고 들은 그 어떤 해전보다 규모가 크다고 한다!
이런 소문이 돌면서 ‘역사에 남을 해전’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었다. 이와 관련된 보고를 받아든 향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시기에도 역시 소문은 빠르다니까……”
지브롤터를 통과해 지중해로 들어온 프랑스 함대는 바르셀로나로 향했고, 에스파냐 함대는 나폴리로 향했다. 베네치아와 합스부르크의 함대를 기다리면서 휴식과 정비를 하는 동안, 많은 선원들이 배에서 내려 나폴리의 술집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술에 취한 선원들은 ‘제국 함대와 한 판 붙는다!’라는 말들을 떠들어댔고, 이를 위해 북상한다는 말까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술집에서 퍼진 소문은 빠른 속도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에 관한보고는 바로 연합 함대의 지휘관들에게까지 올라갔다. 보고를 받은 지휘관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술과 허풍은 뱃놈들과 떨어질 수 없는 일이지.”
“각오한 일 아니겠소? 그나마 이제 터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합시다!”
이제 막 도착한 베네치아 제독의 말에 다른 제독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옛날,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했던 말처럼 ‘주사위는 던져진’ 상황이었다. 선원들도 그것을 알기에 지금껏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연 것이리라. 그렇게라도 떠들고 허풍을 떨면서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려는 것이리라. 그런 승무원들의 마음을 알고 있는 제독들이었기에 소문이 퍼지는데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기밀은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2~3일만 있으면 출항하니까……”
하지만, 이탈리아인들은 예상보다 더 떠들기를 좋아했고, 육지에서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전속력으로 항진하는 배보다 한참 빨랐다. 그렇게 해서 퍼진 소문은 얼마지마지 않아 호사가들의 귀로도 들어갔다. 이미 한바탕 치열하게 싸웠고, 지금도 소규모 전투가 간헐적으로 벌어지는 북부와 달리 대치만 이어지면서 상당히 평화로웠던 중부와 남부 이탈리아의 호사가들은 엉덩이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인생에 한 번뿐인 기회다! 놓칠 수 없다!”
“전쟁 구경한다고 전쟁터에 간다고? 미친 거 아냐?”
“해전이잖아, 해전!”
“아!”
괜히 가까이 다가갔다가 싸움에 휘말릴 위험이 높은 지상전과 달리 이번 전투는 해전이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지 않는 이상 싸움에 휘말려 애먼 고생을 할 일은 전혀 없었다.
“지금도 돈 몇 푼 쥐여 주고, 수색만 통과하면 얼마든지 북쪽으로 갈 수 있잖아!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않겠어?”
“그렇군! 가자!”
중부와 남부는 물론이고, 심지어 베네치아에서도 호사가들이 피렌체 남쪽의 그로세토와 토스카나 제도, 코르시카로 몰려들었다.
“선원들이 북으로 올라간다고 했잖아! 그렇다면 코르시카 부근에서 해전이 벌어질 거야! 그곳밖에 없어!”
이렇게 몰려드는 이들 가운데에는 화가들도 잔뜩 모여 있었다.
“역사에 남을 대해전이다. 최선을 다해 그린 그림으로 내 이름을 알리자!”
그렇게 해서, 졸지에 ‘서커스’가 되어버린 ‘역사적인 해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 * *
전장에 먼저 도착한 것은 에스파냐-베네치아-합스부르크 연합 함대였다.
“의외로군. 지들도 소문을 들었다면 이미 움직였을 텐데.”
“우리의 대함대에 관한 소문을 듣고 겁먹고 숨은 것일까?”
합스부르크 해군 제독의 말에 다른 제독들은 합스부르크 해군 제독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진지함이 가득한 합스부르크 해군 제독의 얼굴을 본 다른 제독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뭐지? 이 멍청이는?’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아직도 제국 함대를 우습게 보는 거야?’
“큼! 크흠!”
가벼운 헛기침으로 주의를 돌린 베네치아 해군 제독이 본론으로 돌아갔다.
“자! 우리가 만난 행운을 놓치지 맙시다! 여기서 리보르노까지는 약 25리그(약 100km) 밖에 떨어지지 않았소. 아무리 느린 배라도 한나절이면 올 거리지. 황금같은 시간을 날리지 말고 빨리 진형을 구축해야 하오.”
베네치아 해군 제독의 말에 다른 제독들은 진지한 얼굴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렇게 이어진 진지한 회의 끝에 연합 함대는 함선들을 배치해 가갔다. 함대의 전함들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 움직이고 있을 때, 갑자기 몇몇 선원들이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러댔다.
“선장님! 하늘! 하늘! 하늘을 보십시오!”
“응?”
선원들의 외침에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던 선장들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북쪽의 하늘 높은 곳에서 조그마한 비구 하나가 검은 연기를 꼬리처럼 매달고 움직이고 있었다. 멍하니 제국의 자력비행비구를 바라보던 선장들은 곧 정신을 차리고는 선원들에게 명했다!
“신호수! 사령선에 알려라! ‘적 발견! 하늘!'”
“옙!”
선장의 명령에 고물 제일 높은 곳에 올라선 신호수는 사령선을 향해 신호기를 펄럭였다.
“제국의 발광신호기는 문장 단위로 전송이 가능하다는데, 우리는 단어 몇 개가 고작이니…..쩝.”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던 선장은 다시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떠 있는 비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좌우지간 온갖 괴상한 것들은 다 ‘꽃의 나라’에서 만든다더니…..”
* * *
연합함대를 발견한 자력비행비구는 바로 기수를 돌려 리보르노로 귀환했다. 리보르노의 신호탑을 발견한 자력비행비구는 급히 발광통신기를 조작해 간략히 요약한 정보를 전달했다. 비구가 땅에 닿자마자 비구의 지휘관은 비구에서 작성한 문서를 사령부에 제출했다. 참모들과 함께 보고서를 확인한 손일원은 자신의 결심을 이야기했다.
“지금 출격하면 야전을 치러야 한다. 이는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일 동이 트자마자 출진한다.”
“아군은 소수고 적은 다수입니다. 야전이 더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선임참모의 제인에 손일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좋기는 하지만, 소수로 다수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아군 전선 가운데 한 척이라도 적진 한복판에서 발이 묶여버리면 형편이 어려워진다.”
“아! 소관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닐세, 여기가 우리 제국의 바다였다면 좋은 작전이었겠지 하지만, 여기는 우리에게 낯선 바다야. 겨우 몇 달 머물면서 확인한 것만 가지고 야전을 벌일 수는 없어.”
선임참모의 제안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한 손일원은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일 동이 트자마자 작전을 시작한다. 우선……”
* * *
다음 날 아침.
동이 트자마자 리보르노 항구를 나선 제국 함대는 바로 코르시카로 향했다.
“제국이 움직였다!”
“우오오!”
“일어나! 일어나!”
코르시카 섬의 높은 구릉에서 잠을 자던 구경꾼들은 제국 함대가 움직였다는 소리에 천막을 박차고 나와 높은 곳으로 향했다. 바다가 잘 보이는 높은 곳으로 오른 구경꾼들은 저 멀리 지나가는 제국 함대를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대단하군, 대단해!”
“저기 제일 앞에서 연기를 뿜으며 움직이는 배들이 소문의 철갑선들인가 보지?”
“그런가 보오.”
“철갑선이라…. 뜨기는 뜨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와중에 나름 군사적인 식견이 있는 이들은 다른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국 함대의 진형을 보면 일자진이고, 연합 함대를 보면 밀집대형인데…. 창과 방패의 대결인가?”
“소문에 의하면 제국 해군은 일점돌파 전술을 선호한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소.”
지금 양족의 진형을 하늘 위에서 본다면 ‘변형 일자진’과 ‘중앙을 강화한 밀집 진형’의 대치였다. 적진을 향하는 제국 함대의 선두에는 두 척의 돌격귀선이 자리하고 있었다. 두 척의 돌격귀선은 그 배치가 조금 특이했는데, 전형적인 일자진이 아니었다.
후속하는 돌격귀선은 선두의 돌격귀선 바로 뒤가 아니라 우측 사선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는 돌격귀선에 장착한 선수주포를 써먹기 위함이었다. 돌격귀선에 장착한 화포들 가운데 제일 강력한 화포를 놀릴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자리한 두 척의 돌격귀선의 뒤를 따라 도전자급 전선들이 일자진을 형성한 채 움직이고 있었다. 이를 위에서 보면 마치 작살과 비슷하다고 해서 손일원 제독은 이를 ‘섬(銛, 작살 섬)자진’이라고 이름 붙였다.
맞은편에 자리한 연합함대의 배치는 다음과 같았다. 주력인 다섯 척의 베네치안 갤리어스를 오각형으로 배치한 베네치아 함대가 중앙에 자리하고 그 뒤를 합스부르크 함대가 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좌우에는 에스파냐 함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베네치아와 합스부르크 함대 사이사이에는 용병으로 고용한 해적선들이 빈틈을 메우고 있었다.
좌우에 위치한 에스파냐 함대는 중앙에 자리한 베네치아와 합스부르크 함대를 좀 더 두텁게 보강하고 측면의 함대는 장사진을 펼치는 방식으로 배치했다. 다가오는 제국 함대가 측면을 통과하려 해고 장사진에 걸려 속도를 높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에서 보면 커다란 고래가 북쪽을 향해 머리를 두고 막아선 모양이었다. 고래가 작설을 막아내느냐, 아니면, 작살이 고래를 잡느냐의 전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