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998)
998화 그동안 다른 곳에서는….. (3)
비어버린 국고를 채우기 위해 일본의 관리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들이 제일 먼저 손을 댄 것은 탐광(探鑛)이었다. 제국과 합자(合資)하여 운영하는 이와미 은광이 일개 지방 영주 가문에서 왕가로 올라서게 만들어 준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정식으로 일본왕이 된 오우치 노리히로가 전격적으로 폐번치현(廢藩置県)을 단행한 배경 가운데 하나도 이 탄광사업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전국적으로 벌어진 탐광 작업을 통해 크고 작은 은광과 금광, 철광과 석탄광들이 발견되었다.
“천우신조로다!”
이를 기뻐한 노리히로는 왕궁에 만들어진 신사에 많은 제물을 봉납했다. 광산의 존재를 확인한 노리히로의 일본 조정은 채산성이 우수한 광산부터 선택해 채광에 들어갔다. 그리고 광산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군부대를 광산 주변에 배치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수의 사무라이들이 군대에 재고용되어 광산 경비 업무를 맡았다. 오우치 정권이 사무라이들을 재고용한 것은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가ㅣ 위해서였다.
-지난 대전들에서 많은 손해를 본 일본군이 다시 체력을 회복할 때까지 버틸 징검다리.
-강력한 불안요소인 사무라이들을 직접 손에 쥐고 관리한다.
직접적인 현물 재원(財源)인 금광과 은광, 그리고 백성들에게 판매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철광을 비롯한 다른 광물 광산들이 개발되면서 노리히로 정권은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되는 반동 세력은 여전한 근심거리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던 일본 관리들은 곧 답을 찾아 노리히로에게 보고했다.
관리들이 제출한 기획서를 확인한 노리히로는 인상을 찌푸렸다.
“경시청(警視廳)? 왠지 익숙한 느낌을 주는 이름인데?”
“…….”
노리히로의 물음에 관리들은 바닥에 엎드린 채 머리만 조아릴 뿐이었다.
* * *
제국이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 순항하면서 간판을 바꿔 단 정부지관이 있었다.
포도청(捕盜廳)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한성과 그 주변지역의 치안만을 담당하던 포도청은 경장을 지나면서 전국적인 규모로 덩치를 키웠다. 이후, 제국이 되면서 제국 전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치안기관이 되었다. 이렇게 몸집을 불린 포도청이 안정화되자 향은 포도청의 개명을 추진했다.
“포도청의 임무가 어찌 도적을 잡는 것(捕盜) 하나뿐이겠는가? 또한 백성이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는 불안을 경계하며 미리 살피는 것이 최선이다. 해서, 포도청의 이름을 ‘경계하며 살핀다.’의 뜻을 살려 ‘경찰청(警察廳)’으로 바꾼다.”
향의 결정에 토를 다는 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해서, 제국의 포도청은 경찰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백성들은 ‘경찰서’ 대신에 ‘포청’을, ‘경찰관’ 대신에 ‘포졸’과 ‘나졸’이라는 말을 더 애용했다.
이를 보고받은 향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었다.
“쩝! 이것은 시간만이 답이겠지.”
* * *
이런 배경을 알고 있었기에 노리히로의 인상이 안 좋았던 것이었다.
“이번에도 또 제국의 것을 가져온 것인가? 물론, 제국이 본받을 것이 많은 나라이기는 하지만, 우리 일본도 슬슬 우리만의 것을 가져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조금 전과 달리 대놓고 나온 노리히로의 지적에 관리들은 계속해서 머리만 조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국의 총리격인 수상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전하께서 하신 말씀이 맞사옵니다. 하지만, 우리 일본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아 아직 모자란 것이 많은 나라이옵니다. 전하와 나라의 안녕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배우고 익혀야 하옵니다.”
“그래도 말일세. 이것도 제국에서 가지고 온 것, 저것도 제국에서 가지고 온 것, 사방에 제국에서 가지고 온 제도와 문물 투성이 아닌가?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일본인가, 제국인가?”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듯,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옵니다. 그리고 경시청의 창설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옵니다.”
“어떤 도움이 있는가?”
노리히로의 물음에 수상은 경시청이 가져다주는 이익을 설명했다.
-가장 먼저 국왕의 지배력이 확고해진다.
영주들이 지배하고 있을 때에도, 도회지가 아닌 시골의 촌락 같은 곳에서는 촌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영주가 파견한 사무라이가 밀릴 정도였다. 특히나, 징세와 관련해서는 영주가 보낸 관리조차 촌장과 합의를 해야 할 정도였다. 촌장이 이렇게 강력한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촌락의 치안을 촌장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시청을 작은 마을까지 설치하게 하고, 치안을 담당하게 한다면 촌장의 권력을 뺏을 수 있다.
-두 번째로 아직도 남아있는 사무라이 세력들을 흡수할 수 있다.
아직도 많은 사무라이들이 주인을 잃고 떠돌고 있다. 조용히 낙향하거나 은거한 이들도 적지 않지만, 패거리를 이뤄 도회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이들도 있다. 이이제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무라이는 사무라이로 상대하는 것이 제격이다.
가장 좋은 예가 ‘발도대(拔刀隊)’다.
“흐음…..”
길게 이어진 수상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불만이 많아 보이는 노리히로의 모습에 수상이 작은 목소리로 아뢰었다.
“따로 시간을 주시면…..”
“알겠다. 그럼 이 문제는 좀 더 고민해 보도록 하겠다.”
그날 밤, 노리히로는 수상과 독대하게 되었다.
“진의가 무엇이오?”
노리히로의 물음에 수상은 조용히 대답했다.
“무단파(武斷派)때문이옵니다.”
수상의 대답에 노리히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 * *
서울로 갔던 유학생들이 돌아오면서 오우치의 가신들은 크게 문치파(文治派)와 무단파(武斷派)의 두 파벌로 나뉘었다. 유학생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문치파가 유서 깊은 사무라이 가문들과 자신만의 재능으로 신분상승을 이룬 이들이 뭉친 것이라면 무단파는 사무라이 가문 출신들만으로 뭉친 이들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문치파가 무단파보다 더욱 강력한 단결력을 보이고 있었다. 유서 깊은 사무라이 출신들이라고는 해도 대부분은 장남이 아닌 자식이라 아무것도 없는 이들-얏카이모노(やっかいもの, 쓸모없는 것)라고 불리던-이었다. 물론, 전란의 시기에는 무예를 바탕으로 출세도 가능했지만, 평시에는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이었다.
자신만의 재능으로 올라온 이들도 비빌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오우치 가문의 가주의 눈에 들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공통의 절박함은 이들을 단단하게 뭉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을 단단하게 묶어준 것은 ‘서울에서 겪은 고생’이었다.
서울의 조정에서 매일 같이 야근으로 시달렸던 고생담을 늘어놓다 보면 출신을 따지지 않고 하나가 되었다.
“야! 그것도 고생이냐? 나 때는 말이야!”
물론, 이렇게 말하면서 훈장질을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들의 결합력은 최강이었다. 그리고 오우치 가문의 가주들은 이 문치파를 이용해 잠재적인 불안 요소이기도 한 사무라이 가문들을 제어했다.
하지만, 내전들을 겪고 나서 상황이 많이 안 좋아졌다. 내전들을 거치면서 많은 사무라이들이 죽었다. 하지만, 이후 복구과정에서 무단파들의 세력이 더욱 강해진 것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우치 가문의 가병에서 일본군으로 변신하면서 1차로 세력이 강해졌고, 내전들을 거치면서 더욱 강해진 것이었다.
이는 어떨 수 없는 일이었다. 가병에서 일본군으로, 이어진 내전을 거치는 과정에서 엄청난 예산을 지원받게 되었다. 그리고 예산을 바탕으로 커진 덩치는 더 많은 권력과 예산을 요구하게 만들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상황이 벌어질 위기가 높아진 것이었다.
* * *
수상은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너무 비대해진 무단파의 힘을 줄이기 위해 군대와 경시청으로 나눈다.
-같은 무단파 출신이라도 조직이 나뉘고 예산의 문제가 생긴다면 군대와 경시청은 서로를 경계하게 될 것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자금원인 광산의 경비를 군대에서 경시청으로 돌리면 무단파의 힘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된다.
-군대의 영역은 국방으로 제한하고, 내부 치안은 경시청으로 제한한다면 무단파는 더욱 운신하기 힘들어진다.
“…..이미 아뢴 이유 외에도 이런 이유가 있기에, 경시청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옵니다.”
“흐음…. 그렇군. 만약, 경시청이 만들어진다면 군대에서 어느 병과부터 빼는 것이 가장 좋은가?”
노리히로의 물음에 수상은 바로 대답했다.
“발도대이옵니다.”
“발도대?”
“예, 이미 전장에서 도검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시대이옵니다. 때문에, 군대에는 필요가 없지만, 백성들에게는 여전히 무서운 것이 사무라이의 칼이옵니다.”
“그렇군.”
“거기에 칼 한 자루에 의지해 적의 총화 앞으로 돌격하던 이들이옵니다. 그 용맹함과 충성심, 그리고 자존심은 확실하옵니다. 아직 밖에서 떠돌고 있는 사무라이들을 끌어들여도 이들이 제어할 수 있사옵니다.”
“알았네. 곧 결정을 내리도록 하지.”
이틀 뒤, 노리히로는 관리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결정을 발표했다.
“경시청의 창설을 윤허한다.”
“명을 받드옵니다!”
* * *
문치파의 의견을 받아들여 경시청을 만든 노리히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조직을 하나 창설했다.
‘어사대(御史臺)’의 창설이었다.
-어사대부를 정점으로 한 어사대는 국왕 직속의 조직이다.
-어사대의 임무는 민과 관을 막론한 감찰이다.
무단파를 둘로 쪼개 서로가 견제하게 만든 것처럼 문치파도 둘로 쪼갠 것이었다. 어사대의 임무인 감찰은 공개 감찰과 비밀 감찰로 나뉘었다. 그리고 이 비밀 감찰이 온갖 전설과 설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비밀리에 움직이는 것이었기에 목숨이 위험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었다. 또한, 확실한 첩보도 없이 무절제하게 비밀감찰에 나서는 것도 문제가 많았다. 때문에, 노리히로는 유능한 닌자집단들을 고용했다. 이렇게 고용된 닌자들이 맡은 임무는 위장신분으로 전국을 돌며 이상을 탐지하는 것이었다.
만약, 이상이 탐지되면 보고를 받은 어사대에서 비밀감찰관을 파견했고, 닌자들은 이 비밀감찰관을 호위했다. 그리고 이상을 확인한 비밀감찰관은 현장에서 자신의 권한으로 해당 관리의 권한을 박탈, 구금하거나 상부에 보고해 대규모 감찰을 진행했다.
어떻게 보면 매우 드라마틱한 것이 비밀감찰이었고, 비밀감찰관과 이를 호위하는 닌자라는 존재 자체도 드라마틱한 존재였다. 때문에, 훗날 일본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각종 창작물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존재가 이들 비밀감찰관과 닌자들이었다.
* * *
민생보다 정치적인 목적이 강했지만, 새롭게 창설된 경시청은 일본의 사회에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하게 되었다. 이렇게 새롭게 나타난 경시청과 거기서 일하는 순사(巡査)들로 인해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촌장의 권위 상실이었다.
자신이 촌장으로 있는 촌락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촌장일지라도 경시청, 그것도 제일 작은 주재소에 머무는 말단 순사 앞에서는 굽실거려야 했다. 나라의 국법과 순사의 허리에서 찰랑거리는 칼 앞에서는 그의 권력은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전통적인 일본의 촌락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골의 촌락이 붕괴되기 시작했다면, 도시에서도 많은 것이 변했다. 사무라이 출신들이 만든 범죄조직과 경시청의 사무라이들이 치열한 혈투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역적의 똥구멍이나 핥는 개들!”
“사무라이의 명예를 버린 자들!”
서로가 서로를 ‘사무라이의 명예를 버린 자’라 여기며 인정사정없는 혈투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