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997)
997화 그동안 다른 곳에서는….. (2)
반황(半皇)을 몰아내고 진정한 군주를 찾자는 데 뜻을 모은 일단의 신사들은 적합한 후보를 찾기 위해 명의 전역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력한 후보자인 친왕과 군왕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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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번왕(藩王)은 크게 친왕(親王)과 군왕(郡王)으로 나뉘었다. 친왕은 황제의 형제에게 주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형제라고 무조건 친왕에 봉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황제의 결정이 있어야만 친왕에 봉해질 수 있었다.
군왕은 친왕의 자식 가운데 적장자를 제외한 이들이 분봉 받는 것이었다. 당연히 친왕의 수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결정’이라는 필터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군왕은 그렇지 않았다. 친왕의 적장자가 아닌 적자면 군왕으로 분봉 받을 수 있었다.
영락제 집권 이후, 친왕은 정치권력과 군권을 상실했다. 대신, 황제는 친왕들이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살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친왕들은 ‘아이 만드는 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결과로 군왕이 대량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향이 개입하기 전의 역사에서는 이게 큰 문제가 될 정도였다. 명나라 말이 되면, 번왕들과 그 식솔들을 합치면 20만이 넘었고, 명의 재정에 무리가 갈 장도로 부담이 되는 존재들이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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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명의 신사들은 후보를 찾는 일을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었다.
-친왕과 군왕을 찾을 수가 없다!
이렇게 된 것은 건문제가 시작이었다. 아니, 주원장이 근원이었다. 명을 건국한 주원장은 말년이 되어 대규모 숙청을 진행했다. 이 숙청을 통해, 공신 세력들을 정리한 주원장은 자신의 아들들을 번왕으로 분봉해 제국 전역으로 뿌렸다. 그리고 이 번왕들이 건문제 주윤문의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 번왕들에게 통치권은 없었지만, 군사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황권 강화를 위해 주윤문은 번왕들의 숙청-비공식적인-을 단행 했다. 이에 연왕 주체가 ‘금난의 변’을 일으켜 영락제가 되었고, 번왕들에 대한 2찬 숙청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친왕들과 군왕들은 왕부를 열 수는 있었지만, 아무런 권력도 가질 수 없었다. 대신, 먹고 사는 것은 걱정이 없게 지원을 받게 되었다.
1차와 2차에 걸친 숙청에서 살아남은 번왕들은 위 정책에 따라 다시 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중원의 강만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 내전이 다시 한 번 친왕들과 군왕들을 멸종 직전의 상황까지 몰고 가 버린 것이었다.
스스로 건문제 또는 그의 장자 주문규라 칭한 이들은 모자란 군비를 마련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그 가운데 가장 잘 써먹은 방법이 친왕부와 군왕부를 터는 것이었다.
-역적 주체의 후손이니 죄를 물어 벌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
아주 ‘합당한’ 명분을 내세워 그들은 친왕부와 군왕부를 털었다. 그 다음으로 친왕들과 군왕들을 밀어버린 것은 경태제였다.
-저 역적들에게 화를 당한 왕부가 한둘이 아닌데, 저들은 멀쩡하다? 어째서? 혹시 역적들과 손을 잡은 것이 아닌가? 이런 의심을 받고 경태제에게 끌려간 친왕과 군왕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죄를 자백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의 재산은 그대로 환수되어 구멍 난 명의 국고를 채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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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었기에 적당한 자질, 또는, 이용 가치가 있어 보이는 친왕과 군왕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까스로 친왕이나 군왕을 찾아내도 문제였다. 신사들의 제안을 들은 친왕과 군왕들은 사색이 되어 그들을 내치거나 구금했다.
“지금 누구에게 그런 불충한 제안을 하는 것이냐!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 썩 나가라!”
“여봐라! 당장 이 자들을 포박해 구금하라! 그리고, 관에 사람을 보내 병사들을 청하라! 역모다!”
생사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어 살아남은 친왕들과 군왕들은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당금 황제의 군력과 권력이 얼마나 강성한데, 이런 망상이라니! 시류를 읽지 못하는 무능한 자들이로다!”
친왕과 군왕들이 먼저 나서서 고발하면서 다시 명 전역에 피바람이 불게 되었다. 신사들과 백성들 사이를 갈라놓는 것으로도 불안함을 지우지 못하던 성화제와 친위세력에게 이는 최고의 기회였다.
북경으로 압송된 신사들을 취조하면서 이들과 뜻을 함께했던 이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친척들과 지인들까지 모조리 숙청대상에 올라버렸다. 주원장이 시작한, 이른바 ‘십족을 멸하는’ 대숙청이 다시 벌이진 것이었다. 그리고 번왕들도 다시 한 번 수난을 당해야 했다.
신사들을 구금하고 신고한 번왕들은 큰 문제가 없었지만, 단순히 내치는 것으로 끝난 번왕들이 문제였다. 동창과 금의위들은 이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다른 번왕들께서는 이 역도들을 구금하고 발고까지 하셨는데, 그냥 내치셨다고요? 전하께서는 이게 역모라는 것을 잊으신 것입니까?”
결국, 그렇게 물고 늘어진 동창과 금의위들에 의해 이들 역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고, 그들의 식솔들은 모든 특권을 박탈당한 채 서인이 되어 밖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훗날. ‘반황당(半皇黨) 사건’이라 불리게 된 대숙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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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황당 사건’으로 지방의 신사들은 물론이고 번왕들까지 한번 크게 솎아낸 성화제와 친위세력들은 곧 다음으로 넘어갔다.
“아무래도 번왕제는 너무 위험하다 생각한다.”
“그렇사옵니다. 해서, 제도를 개편할까 하옵니다.”
성화제와 친위세력들은 제국의 제도를 참고해 번왕제를 등작제로 바꿔버렸다.
“그 ‘왕(王)이라는 호친 자체가 화근이옵니다. 이를 빼는 것이 최선이옵니다!”
이런 명분으로 친위세력들은 등작제로의 개편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런 친위세력들의 움직임에 기득권층들은 크게 반발할 수가 없었다. 이번 ‘반황당’ 사건에서 신사들이 번왕들에게 접근한 이유도 그 ‘왕(旺)’이라는 글자가 품은 의미 때문이었다.
-황제의 피를 이은 자.
이 때문에 역모의 주체로, 희생자로 불운한 생을 살다간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또한, 황제의 입장에서도 골칫거리였다. 명의 전역에 퍼진 번왕들을 감시하는 것도 상당한 부담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감시자 한둘을 붙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시자들이 일을 게을리 하거나 변절하지 않을까 감시하는 이들을 2중, 3중으로 붙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기득권층들도 개편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번왕제가 등작제로 개편되면서 ‘친왕’, ‘군왕’이라는 단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 * *
성화제와 친위세력에 의해 등장한 등작제는 제국의 등작제에 비해 더욱 가혹했다.
-새로 도입한 등작은 5등작으로 하되, 각각의 작위는 당대에 한한다.
-작위 보유자의 적장자는 1단계 낮은 작위를 받으며 다른 적자들은 2단계 낮은 작위를 받는다.
-서자들의 경우에는 3단계 낮은 작위를 받는다.
-제일 낮은 작위인 남작의 후예들은 서인(庶人)이 된다.
-서인이 된 이들의 경우, 성인이 될 때까지는 나라의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약간의 지원금과 함께 독립시킨다.
“너무 가혹하옵니다!”
기득권층들은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반발했지만, 친위세력은 바로 반박했다.
“나라에서 언제까지 그들을 지원해야 하오?”
“이 제도를 시행하면서 얻게 될 예산의 여유를 생각해 보시오!”
“그래도 좀…..”
친위세력이 ‘재정건전성’을 명분으로 들고 나오자, 기득권층들의 반발은 약해졌다. 하지만, 기득권층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성화제는 조항을 추가했다.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자, 승작한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큼지막한 당근을 추가했다.
-비록 서인일지라도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자는 그 공을 헤아려 봉작한다. 그리고 해당 작위에 해당하는 혜택을 제공한다. 즉, 여태까지 나온 조항들이 황족들과 관련된 것이라면 이는 황족이 아닌 모든 이들에게 던진 당근이었다.
작위를 가진 이들이 받을 혜택을 생각한다면, 목숨 걸고 황실에 충성할 이들은 수를 셀 수 없게 늘어날 것이었다. 성화제와 성화제의 후손이 이어갈 ‘황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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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피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명의 내부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리고 여러 당근들이 뿌려지면서 명의 사회는 다시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히, ‘반황당 사건’으로 큰 구멍이 뚫린 지역사회는 더욱 역동적이었다.
공석이 되어버린 ‘지역유지’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과거시험에 도전하거나, 군문에 들어섰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상인이나 장인이 되어 더 나은 미래를 목표로 노력했다.
이미 내수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시장을 가진 명이었기에, 다시 궤도에 안착하자마자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보는 제국은 오묘한 표정이 되었다.
“국경이 시끄럽지 않으니 좋기는 한데, 저렇게 다시 힘을 키우다가 또 헛짓거리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
“그나마 당금 명국 군주가 제국을 너무 좋아하는 이라 안심이기는 한데…..”
“명나라 저자에 도는 말을 자금성이 무시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두 차례의 큰 전쟁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이후, 명의 백성들 사이에서는 이런 소문이 돌았다.
‘천자가 미치면 병사들이 동쪽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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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서쪽의 명이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금 성장하고 있을 때, 제국 남쪽의 일본도 만만치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무로마치 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하’를 차지한 ‘천하인’이 된 오우치 가문은 천황에게 ‘선위’를 받고 ‘일본 왕가’가 되었다.
하지만, 이후의 상황은 그다지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구(舊)체제의 부활’을 꿈꾸는 이들이 계속해서 반란을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막부의 부활’을 외쳤던 이들이 준동했고, 이후에는 ‘천황복위’를 주장하는 이들이 들고 일어났었다. 하지만, 이런 반동복고적인 시도는 실패로 끝이 났다. 오우치의 군사력이 이미 그들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기면 관군, 지면 역적’이라는 말이 뭔지 알아?”
“알지, 그런데 그 말을 왜 해?”
“저놈들은 이미 역적이야.”
이미 군사력에서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일본의 백성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우치 정권을 지지했다. 반골로 유명한 교토까지도 반란군을 지원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오우치 정부군도 냉담하게 대접하는 것으로 자존심을 지킨 교토인들이었지만. 비록 승리로 끝을 냈다지만, 오우치의 주머니도 홀쭉해졌다. 그리고 이 빈약해진 호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오우치 정권은 밤을 새워야 했다.
“칙쇼! 서울에서 물리게 하던 야근을 야마구치에서 또 하게 되다니! 이건 악몽이야! 난 꿈에서 깨야겠어!”
“서울에서는 어식이라도 받았지……”
“어식의 ‘어’도 꺼내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