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64
064 킴 스탠다드 오일(1)
‘록펠러가 개입했다라······.’
“태선,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왜 뉴저지에 하신 거예요?”
문득 샬롯이 물었다. 태선은 애써 록펠러를 의식하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며 답했다.
“스완 제너럴 일렉트릭도 뉴욕에 있으니 너무 거기에만 집중되어 있으면 뭐랄까···보기 안 좋잖아요.”
“겨우 그런 이유로요? 물론 일리는 있지만 사업 초반에는 집중해서 효율성을 더 높일 수도 있을 텐데요?”
“그렇긴 한데 뉴욕 집값이 비싸고 어차피 가깝잖아요.”
그 말에 샬롯은 “하긴······.” 이라며 납득했다.
하지만 둘러댄 말이고 본래 역사보다 이르게 먼로법이나 독점방지법이 입안될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여기 뉴저지주에서는 그걸 피해갈 수가 있어서···인데 생각해보니 이것도 록펠러가 먼저 걸어갔던 길이었다.
‘하아, 뭘 하더라도 록펠러를 신경 안 쓸 수가 없네.’
문득 태선은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타임 패러독스를 다룬 드라마라거나 영화를 보면 그런 것이 나오지 않던가.
아무리 과거로 돌아가 무슨 짓을 해도 결과가 변하지 않는 불변의 흐름 혹은 마치 필연적 운명과도 같은 것.
‘이건 뭐···록펠러가 석유업을 하는 건 정말로 사주팔자라거나 운명의 불가피성이라도 있나.’
그러고 보니 본래 역사의 흐름에서 존 데이비슨 록펠러의 석유업 시작도 이랬었다.
경매에서 정유회사를 낙찰받으며 시작한다.
다만 본래 역사 흐름에서 그 일은 1865년 2월 2일···아직은 남북전쟁에서 듀폰-모건과 카르텔로 돈을 버는 일에 집중하고 있을 터이거늘.
‘역시 그건가. 내가 개입해서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인가.’
“하아, 태선···계속 그 일에만 신경 쓰고 있을 거예요?”
록펠러에게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는데 그때.
톡 건드리는 샬롯의 손끝이 상념을 깼다.
“하하, 이거 너무 티가 났었나보네요.”
“당연하죠. 여태 우리가 같이 일한 시간이 얼만데 그걸 못 알아차리겠어요.”
샬롯은 그렇게 말하고는 곧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그래서 태선의 생각을 돌려보려고 노력해봤는데 씨알도 안 먹히고··· 에효, 솔직히 저 조금 자존심 상했다고요.”
“에이, 미안해요. 그렇다고 삐지지는 말고요.”
“안 삐졌어요. 그냥 좀 서운하다는 말이죠. 킴 스탠다드 오일 창립 서류를 펼쳐놓고 있는데도 그러니까.”
이어지는 푸념에 태선은 들고 있던 신문을 치웠다.
자신이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하고 걱정하는 기색을 짙게 비춘다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간과했다.
‘사기가 크게 떨어지겠지.’
하지만 또한 그렇다고 이런 걱정을 손에서 완전히 놓아버릴 수도 없다.
답은 하나, 혼자 안고 끙끙 앓지 말고 같이 고민하면 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당연한 이치이거늘 록펠러의 이름이 가진 무게 때문에 잠지 잊고 말았을 뿐.
“음, 샬롯··· 말이 나온 김에 앞으로 일에 대해 우리 좀 더 진중하게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아요.”
“코···콜록! 앞으로 일이요?”
샬롯이 사례라도 들렸는지 기침을 하며 묻자 태선은 직접 일어나서 물 한 잔을 따라서 건네주며 말했다.
“저번에 저스틴 씨 모임에서 록펠러 씨도 왔었는데 혹시 기억나요? 아니, 샬롯의 머리라면 당연히 기억하겠죠.”
“그 태선 만큼이나 키 크고 약간 독하게 생긴 분 말이죠?”
“네.”
록펠러의 면상을 떠올리니 가슴이 새삼 또 먹먹해진다.
하지만 태선은 짐짓 그런 속내를 드러내기는커녕 여유로워 보이는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 입술을 뗐다.
“그날도 말했지만 록펠러는 듀폰 그리고 모건과 연합하고 있어요. 게다가 셋 모두 교활한 사람들이거든요.”
“음, 즉 록펠러 씨가 끼어든 것이 절대로 우연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싶은 거죠?”
“그 정도가 아니라 분명히 철저하게 준비를 했을 겁니다.”
이 말을 하면서도 태선은 어부지리라는 사자성어가 문득 머릿속을 스쳐갔다.
어떤 식으로 정보를 얻었든 석유를 둘러싸고 이런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잠자코 있으면서 타이밍을 재고 있었으리라.
“특히 앤더슨은 유전이나 석유회사는 입수했으면서 윤활유 기술은 없어서 우릴 고사시킬 작전만 짰지만.”
“엄밀히 말하면 샘이나 존 박사님을 스카우트하려고 했는데 태선이 역이용했죠.”
“예, 그렇긴 했는데 아무튼 록펠러나 모건의 성격으로 봐서는 앤더슨과 달리 확실한 수를 갖췄기에 움직임에 나섰을 거예요.”
샬롯은 고민하더니 표정을 굳히며 태선을 사뭇 쳐다봤다.
“···설마?!”
“예, 어쩌면 석유의 분별증류법이나 윤활유 제작 기술까지 확보했는지도 모르죠.”
“말도 안 돼. 샘이나 존 박사님은······.”
흥분한 탓인지 샬롯의 혀가 꼬여서 뒷말은 뭐라는지 알아듣기도 어려웠다.
다만 함께한 시간이 오래라 샬롯이 자신의 감정을 알아챘듯 그건 태선도 마찬가지.
“워워, 진정해요. 두 분이 배신했다는 게 아니라 그들이 자체적으로 그 기술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자체적으로 그 기술을 확보했다고요? 어떻게···그게 그렇게 쉬울 리가 없는데.”
물론 그게 쉽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태선이 잘 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새뮤얼 그리고 존 박사와 함께 계속 연구해왔으니.
하지만 그렇기에 또 한 가지 사실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려면 어렵지만 만들려는 결과물이 버젓이 있는 상태에서··· 그걸 파헤치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작업이거든요.”
“그러면 먼저 시작한 우리만 너무 불리하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영원한 독점 같은 건 없죠. 설령 얼마 동안 가능하더라도 거기에 의존하면 도태될 뿐.”
“···그러면 어떡하죠?”
아까는 자신더러 너무 그 생각만 한다며 타박하더니 고민을 공유해줬더니 이제는 자기가 더 심각해진 샬롯이었다.
“하아, 그러게요. 석유사업은 이제 접어야 하나. 짧지만 기분 좋은 꿈이었군요.”
“예? 석유사업 접는다고요? 전구사업이 잘 나가고 있기야 하지만 기껏 킴 스탠다드 오일의 창립 서류 준비도 다 했고 또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억울하기도 하고······.”
“하하하하!”
잠깐 장난을 쳐봤는데 자못 심각한 샬롯의 반응에 태선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웃고 말았다.
“···저 놀리신 거예요?”
“아, 미안해요.”
샬롯이 원래는 커다란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가느다랗게 뜨고 노려보자 여기서 잘못하면 정말 삐지겠다 싶어 태선은 얼른 사과부터 박았다.
그렇지만 크게 한바탕 웃은 덕분에 기분 전환만큼 하나는 제대로 했다.
샬롯도 그런 눈치를 보자 한숨을 내쉬며 읊조렸다.
“에효, 그래도 태선의 기분이 나아진 것 같으니 봐드리죠. 그러니 말해주시죠. 늘 그렇듯 대책이 있으니 농담도 하고 그렇게 여유로운 거죠?”
“대책이라. 만약 록펠러가 감압증류나 윤활유 제조법을 개발했다면 그만큼 투자를 했겠지만 우리에 비할 수준은 결코 아닐 거예요.”
그저 원유에서 그런 물질이 나온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 결과를 만들어내려 억지로 짜 맞춘 수준일 터였다.
수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노하우를 축적한 자신들에 비하면 질적으로 견줄 수가 없겠지.
“해서 록펠러도 그 사실을 알았다면 우리보다 낮은 가격으로 승부를 보려 할 겁니다. 어느 정도의 시장을 잃는 건 감수할 수밖에 없어요.”
“잃는 걸 감수한다··· 그치만 제가 아는 태선이라면 손실을 감수하고 그대로 끝내지는 않을 사람인데요.”
“물론이죠. 사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독점하는 것보다 후발주자가 있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아니, 무조건 나아요.”
이 말에는 아무리 머리 좋은 샬롯이라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고 그랬으면서 그게 무조건 나은 결과일 수가 있나?
‘뭐 이건 현대에 가서야 고단수의 기업들이 쓰는 경영적인 수법이니 모르는 것도 당연한가.’
어찌 보면 이 시대 관념이자 상식을 깬 것.
“지금이야 연방정부나 시민들에게 있어서나 우리 인식이 괜찮아서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도 이렇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가 독점하면 사람들이 좋지 않게 본다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법에 위반되지도 않고 또 우리가 경영을 잘하면 되잖아요.”
‘그게 지금은 법에 위반 안 되는데··· 위반되게 하는 법을 만들어버리거든요.’
그렇지만 이 이야기를 하면 점쟁이 아니면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괜히 걱정하는 사람으로 보이겠지.
뭣보다 앞에서 말한 이유 외에도 또 중요한 한 가지 이유가 있기도 했다.
21세기 반도체나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후발주자를 찍어누를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
“그리고 우리는 이제부터 곧 석유를 이용해서 더 수준 높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단계로 넘어갈 거라서요.”
“그래서요?” ···라는 속마음이 샬롯의 얼굴에 그대로 써있었다.
“그 단계가 됐을 때 고도의 기술보다 그저 사람의 노동력이 필요할 뿐인 작업은 그쪽에 넘겨버려야죠.”
“음,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선뜻 안 되기도 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샬롯을 보며 태선은 피식 웃었다.
“아무튼 절 믿어주세요. 이 이론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잘 설명해줄게요.”
속된 말로 짬처리, 고도화된 단계로 가면 저위의 단계는 손 털고 후발주자에 넘기는 편이 사회적으로도 차라리 더 낫다.
‘그리고 샬롯 정도의 머리면 직접 보면 이해해서 뭘 더 하면 될지 알아차릴 거고.’
“알았어요. 아무튼 새삼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단 말이죠.”
“뭐가요?”
샬롯은 빤히 태선의 얼굴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아시아에서 온 사람이 맞나 싶어서요.”
순간 태선은 속이 뜨끔해서 어색하게 웃었다.
“빼도 박도 못한 증인도 있잖아요. 태경이한테 조선에서 제 이야기도 들으셨다면서요.”
“뭐 그랬죠. 결국 미국 온 다음에 배우고 들은 지식만으로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하게 됐다는 건데······. 정말 태선은 천재가 맞는가봐요.”
‘사실은 역사 치트였습니다.’
이런 생각을 그저 속으로만 하면서 태선은 말을 돌렸다. 어차피 샬롯에게 시킬 일도 한 가득이었으니.
드르륵───!
태선은 서랍에 있던 서류 뭉치에서 한 장을 꺼냈다.
“뭐죠? 그러고 보니 그거 태선이 저번에 알아봐달라고 했던 회사 목록이잖아요.”
“맞아요. 그중에서도 여기 기억나요? 영국 웬즈베리에 코넬리우스 화이트하우스 씨의 글로브워크스.”
“기억나죠. 조셉에 이어서 또 영국이었잖아요. 그래도 한 번 해보기도 했고 조셉도 도와줘서 훨씬 쉬웠지만.”
그렇게 말하곤 샬롯이 옅은 미소를 띠며 눈을 빛냈다.
“정보를 기껏 구해줬는데 안 쓰시나 했더니 드디어 이용하시려나 보네요.”
“슬슬 타이밍이 됐거든요. 파이프 기술 쓸 때가 말이죠.”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때는 1783년이다.
지금 1863년까지 80년밖에 흐르지 않은 시점이라 미국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기술 이론 같은 건 아직 유럽이 우세했다.
특히 철도 같은 신기술이 아니라 유럽에서 예전부터 있었던 산업일수록 그러한데 강관 역시 그런 업종 중 하나였다.
‘물론 미국에도 기술자가 있겠지만 기왕이면 특허 가진 사람이면 더 좋잖아.’
더구나 다니엘 앤더슨의 협잡질을 겪으며 태선은 한 가지 더 때라은 점이 있었다.
미국에 뿌리를 두고 사업을 하던 사람들은 아무래도 도둑 남작들의 수작을 부리면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예 외부 인사가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셉 스완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있군, 화이트하우스는 지금 회사 사정이 어려울 테니까.’
조셉 스완이 그랬듯 끌어들이기가 쉬울 것이다.
“아무튼 파이프 사업을 하는 분에게 연락을 넣을 거라면···예전에 말씀하신 그걸 시작하실 모양이네요.”
그때 샬롯이 몇 년 전에 지나가듯 해준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는지 넌지시 물었다.
“예, 그걸 해야죠.”
그녀의 의미심장한 뉘앙스 풍기는 말투를 그대로 따라해서 태선도 답했다.
“참! 그리고 더해서 저번에 저스틴 씨 저택에서 만난 헨리 웰스 씨와 윌리엄 파고 씨도 기억나세요?”
“물론이죠. 배송업 하는 분들이잖아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태경이에게 붙인 사라도 거기 출신이고요.”
“그분들과도 조만간 한 번 미팅 잡아주세요.”
어째 일이 점점 늘어나자 샬롯은 씁쓸히 웃었다.
“저 킴 스탠다드 오일 창립 서류도 준비하는 건 아시죠?”
‘···맞다, 그랬었지.’
“잠시 깜빡했다는 표정 같은데요.”
“에이, 설마요. 샬롯이 고생한다는 거야 잘 알죠.”
“이 말도 어째 데자뷰처럼 느껴지는데···흐음.”
별말 안 했지만 사실 태선도 비슷한 말을 전에 왠지 했던 것 같기도 했다.
‘뭣보다 저번에 샬롯이 다리 다쳐 입원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이건 그냥 넘길 일은 아니야.’
“···아, 왠지 표정이 뭘 더 시키실 거 같은 표정인데? 이젠 아무리 저라도 정말 무리에요. 일하는 것도 좋은데 그것도 다 했을 때의 성취감이 있어야지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는······.”
일 중독자 샬롯도 저런 말을 할 수도 있다니.
확실히 자신이 너무 부려먹기는 했나보다.
약간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지금만은 태선이 떳떳이 말했다.
“걱정마세요. 지금 꺼낸 말은 샬롯도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일 테니까요.”
“아, 그래요?”
마치 선물이라도 기다리는 소녀처럼 샬롯이 다음에 이어질 태선의 말을 기다렸다.
“이제 킴 스탠다드 오일을 창립하면 우리 사업을 제대로 시작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샬롯을 도울 다른 비서들도 뽑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