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Haired U.S. Army Marshal RAW novel - Chapter (500)
500_선홍색 연구 (4)
전쟁에 뛰어들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연히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일.
내가 상대해야 할 매카시와 그 친구들, 극단적 반공주의자들은 결국 정치인이다.
군인이 보급을 받아야 싸울 수 있듯, 이들에게 보급을 해주는 이들을 알아내야만 보급선을 자르든 뭘 하든 할 것 아닌가.
가장 먼저 언론.
전설적인 신문왕이자 캘리포니아 최강자 중 한 사람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무수한 언론은 반공 성전을 목청껏 떠들었다.
본래 진보주의자였던 허스트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우경화되었고, FDR과 뉴딜에 대한 지지를 끝으로 이제 완벽한 반공 투사로 변해 있었다. 대공황이 허스트의 기둥뿌리를 뽑아버렸지만 그래도 부자는 부자. 망해도 3년은 가는 법이다.
이 막강한 언론 제국을 위시한 보수 우익 언론들은 매카시의 가장 든든한 나팔수였고, 그렇지 않더라도 매카시와 그 일당의 언행 하나하나가 판매부수와 시청률을 출렁거리게 하는 만큼 언론은 매카시의 가장 큰 무기가 되었다.
내가 수십 년 전 알차게 써먹었던 타블로이드지 또한 포드 영감의 중개로 허스트 왕국의 파워를 빌려 썼기에 그만한 위력이 나왔었다.
그때의 인물들이 죄 저승으로 떠난 지금, 을 내 무기처럼 꺼내 쓰는 건 불가능하다. 애초에 내가 그때부터 언론에 빨판이 있었다는 게 까발려지면 매카시의 저 재미난 개소리보다 몇 배는 더 타격일걸?
종교계는 조금 복잡하다.
보수적 성향이 강한 가톨릭교도들은 반공주의를 강력하게 지지했으며 핵심 표밭이 되었다. 가톨릭 신앙으로도 유명한 케네디 가문 또한 매카시의 지지 세력이기도 하고.
반면 반공 정서에 의해 도입된 ‘주요 관료직, 선출직 임명시 반드시 미합중국에 대한 충성 맹세를 해야 함’ 조항으로 인해 교리상 직격탄을 맞은 여호와의 증인 같은 종파는 하루아침에 사회 주요 직책에서 추방될 판이 되었다.
이들의 교리에 대한 호불호는 둘째치고, 겨우 몇 년 전 유대인들과 함께 가스실로 끌려간 공포가 남아 있는 이들로서는 그야말로 생존의 문제로 느껴질 법했다.
그리고 무신론자들.
공산주의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은 다 알듯, 무신론자들은 이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너 혹시 빨갱이 아니냐는 비방을 밥 먹듯이 듣게 되었다. 이들 또한 내 편이라 볼 수 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참전 유공자 단체와 재향 군인 단체, 보수 성향의 여성단체들 또한 반공주의의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대강의 피아식별이 끝났으면 밥줄을 끊을 시간.
가장 먼저 내가 접촉한 곳은 너무나도 당연히 재향군인회였다.
아니, 접촉할 필요조차 없었다.
“매카시가 킴 대원수를 모욕했다!”
“미친 거 아닌가? 킴 장군님이 빨갱이라고? 차라리 히틀러가 빨갱이라고 하는 편이 더 믿을 만하겠다!”
“대원수께서는 장병들 목숨만큼이나 돈을 사랑했다. 그런 사람이 무슨 놈의 얼어죽을 공산주의자냐!”
“히틀러가 인정한 민주주의자가 킴 장군님이시다! 콧수염 새끼의 유서라도 읽고 와라, 이 빌어먹을 놈아!”
내가… 내가 아무래도, 헛살지는 않은 모양이다.
뭔가 중간에 이상한 말이 섞여 있지만 아무튼 감동이었다.
그 누구보다 반공 정서 강렬하던 이들 퇴역 장병 단체들은 매카시가 군을 향해 칼끝을 겨누기 무섭게 ‘히틀러와 싸운 우리가 새로운 히틀러를 따를 순 없다’며 역으로 매카시를 향해 날 선 공격을 퍼부었다.
장성이나 영관급 인사들이 민감한 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웨스트포인트 시절부터 수십 년간 군에 있었고, 한정된 군 내 인사들 특성상 솔직히 다들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내가 진짜 빨갱이로 낙인찍히는 날엔 미국은 육군 출신 인사들만을 수용하는 교도소 한 채를 새로 지어야겠지.
하지만 몇 년간 전쟁터에서 싸우고 다시 생업으로 돌아간 병사들마저 곧장 반발하고 있었다.
이제 군대는 과거의 추억이 되었을 저들이, 나를 위해 나서주고 있지 않은가.
퇴역 장병들이 돌아서는 사이, 여성단체 또한 선회하기 시작했다.
우리 어머니와 도로시 모두 각종 사회 활동이나 부인회 등에 참여했었고, 특히 도로시가 저런 쪽에 관심이 많았었다. 전국의 여성단체를 모두 유턴시킬 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영향이 없지는 않았다.
우리가 인수했던 ABC 방송국은 이제 대놓고 매카시를 향해 날마다 언어의 총알을 쏴대기 시작했고, 유신이는 허스트와 접촉해 그들을 구슬리기 시작했다. 서로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솥밥 먹던 사이인데, 이렇게 피할 곳도 없이 정면 충돌해버리면 진짜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니까.
하나씩 매카시즘의 지지자들을 전열에서 탈락시킨 뒤엔.
당연히 공세 시간이다.
* * *
군부의 분위기는 극도로 흉흉했다.
육군참모총장으로서의 임기를 마치고 퇴역하는 맥네어의 퇴임사에만 보더라도 알 수 있을 만큼.
[저는 다행스럽게도 나이가 많고 원수직을 달지 못해 외압에 의해 퇴역당하지 않고 무사히 군복을 벗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이런 상황이니 펜타곤의 가장 말단마저도 지금이 어떤 분위기인지 모를 수 없다.
유진 킴은 미국이 공격받고 있다고 했지만, 미국은 잘 몰라도 미군은 확실히 공격받고 있었다.
“어이, 물개들.”
“왜, 땅개.”
“지금 킴 장군님이 저 미친 매카시에게 뺨따구를 맞았는데 너희는 아무 생각이 없어?”
“땅개 싸움에 왜 우리까지 끌어들이려고 해?”
“여태까지 합참의장 하면서 예산 감축하자는 놈들 몸으로 때운 사람이 킴 장군이신데, 너희는 입 닦겠다 그거야? 물개 친구들은 꽥꽥대기만 잘하지 염치는 없나 봐?”
“씨발. 나한테 묻지 마. 윗선에서 어련히 하겠지.”
“킴 장군 밟히고 나면 그다음은 맥아더 대통령이고, 대통령까지 나가리나면 군축 확정인 건 알 만큼의 머리는 있겠지. 너무 땅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 이 자식아. 우리 다음은 너희야. 장남 해군 보내면 뭐 해. 하여간 물개들 비열한 건 알아줘야 해.”
“이 새끼가?”
이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얻어맞은 것은… 해병대였다.
“왜 우리가 욕을 먹어야 해?!”
“킴 장군님은 뭐 하나라도 개병대 놈들 챙겨주겠다고 합동참모본부에 꽂아주기까지 했는데, 개병대는 매카시로 보답했죠?”
“그 새끼가 해병대 나온 거랑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고!”
매카시는 자신을 백전연마의 베테랑이자 잽스와 용감히 싸운 해병이라 스스로를 내세웠고, 당연히 해병대 입장에서야 딱히 그걸 터치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던 해병대가 심심하면 뺨을 맞자, 이들은 불평불만을 터뜨리는 대신 칼을 뽑았다.
“다 뒤져! 조지프 매카시의 복무 행적은 먼지 하나까지 다 털어서 뭐라도 잡아!”
“무조건 손절해야 한다! 그 새끼가 해병대의 위신에 먹칠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조져야 한다고!”
“매카시가 복무하던 때 심심하면 자신이 제대하면 출마할 테니 뽑아달라고 입방정을 떨었댑니다.”
“사전 선거운동? 그건 좀 약한데. 다른 건 없나?”
“매카시가 선거 유세를 할 때 잽스에게 공격당해 부상을 입었다고 떠들어댔는데, 우리 측 기록에는 그러한 사실이 없습니다.”
“부상을 입었다는 문서는 있지만 비전투손실… 그러니까 그냥 다친 거지 전상(戰傷)은 아닙니다.”
“좋아! 그건 확실히 좋구만!”
매카시를 매장하기 위해 온 군이 뭉쳐서 야무지게 총알을 장전하고 있을 때, 다른 이들이라고 가만히 있진 않았다.
뒷방으로 물러난 리히 대원수가 다시 워싱턴 D.C.에서 목격되었다는 증언이 쏟아졌고, D.C.에 자기 집이 있는 퍼싱은 최근 들어 군부 인사들과 함께 회동하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며칠 전에 밥 먹으러 나갔는데, 구석진 곳에 별이 아주 휘황찬란하더군.”
“킴 장군이라도 있었나?”
“아니. 퍼싱 장군.”
“거동은 하실 수 있나? 편찮으시다고 들었는데.”
“근데 같이 있던 사람들이 진국이었네.”
“그분이랑 같이 밥 먹을 사람들이면 당연한 일 아닌가.”
“마셜과 드럼이 같이 있고 옆에서 패튼이 아주 얌전한 자세로 스테이크를 썰고 있더군.”
“눈앞에 별이 16개 있는데 미친개도 눈이 부셨나 보지.”
거동조차 힘든 퍼싱이 편히 집에 앉아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남들 다 보는 곳에서 외식? 대놓고 보여주기식이었다.
그리고 그때쯤.
[유진 킴의 일생을 되돌아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읽어야 할 필독서!]책이 발간되기 시작했다.
* * *
정치판은 결국 이미지로 굴러간다.
현생에 치여 사는 일반 서민들은 후보랍시고 나온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공약 하나하나의 현실성을 살피고, 내게 어떤 영향이 올지 따지고, 이 사람이 공약을 실천에 옮길 능력과 의지가 있는가… 이런 걸 전부 살필 겨를이 없다. 능력의 문제를 떠나 그런 걸 하기엔 이미 세상살이가 너무 힘겹다.
이러한 이미지 경쟁은 비단 정치뿐만 아니라 상품 팔아먹는 데도 적용된다.
내가 왜 이런 말을 주워섬기냐 하면… 책을 팔아먹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 말이다.
같은 거창한 이름을 단 책부터 같은 손발 오그라드는 자기계발서까지, 우리뿐만 아니라 온갖 출판사에서 희한얄궂은 책을 일제히 서점에 던지기 시작했다.
매카시는 살기 위해 나를 빨갱이라고 몰았지만, 참으로 고맙게도 그 덕분에 전국의 신문, 라디오, TV가 입만 열면 유진 킴, 유진 킴을 떠들어주고 있잖은가! 홍보비를 안 써도 광고가 된다고! 숨만 쉬면 광고가 증식한다!!
그리고 샌―프랑코 출판사는 옛날옛적 초심으로 돌아가 한 권의 책을 펴냈다.
[ 합본 지금 발매!] [1914년, 웨스트포인트 교정에 앉아 미래를 내다본 위대한 선지자의 첫걸음! 지금 서점에 입고!]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
해안포대에 짱박힌 폐품 소위로 끝나기 싫었던 나는 하나의 레포트, 그리고 하나의 소설을 썼었다.
그리고 참 감사하게도 그 활자조합물들은 훌륭히 제 역할을 다해 나를 포드사와 연결지어주었고, 심지어 유럽에 파병 가는 데도 크나큰 역할을 했다.
레포트야 대중들보다는 D.C.의 정가와 군부, 외교계 등을 떠돌아다녔고, 소설 또한 판매량은 극히 미미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글 쓰는 재주는 없는 것 같단 말이지.
하지만 지금… 전쟁영웅의 탈을 쓰고 화제의 중심에 오른 나라면 어떨까?
“책 재고 남은 거 없나요?”
“죄송합니다. 다 팔렸어요.”
“이걸 유진 킴이 생도 시절에 썼다고? 전쟁 터진 뒤가 아니라?”
“사람의 발상이 아냐. 그는 신이야!”
물론 옛날 옛적 글인 만큼, 돈 벌자고 펴낸 책은 아니다. 굳이 따지면 내게 신비로운 예언자 겸 통찰력 만땅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함이지.
그래.
결국 이 모든 지랄의 핵심은.
[유진 킴, 수십 년 만에 마침내 신작!] [그가 예측하는 미래! 이것이 미래 전쟁이다!] [인류의 미래를 보고 싶거든 지금 서점으로 오라!]스타 좀 팔아먹고 싶어서 이러는 거다.
몇 번의 반려 끝에 이라는 참으로 멋대가리없는 제목으로 낙찰된 이 시리즈야말로 원래 내가 기획했던 새로운 수금 수단.
[유진 킴의 새로운 책은 SF 소설.] [SF의 신지평을 열다! 전쟁영웅이 직접 집필한 미래 전쟁은 어떤 모습일까?] [향후 애니메이션, 영화, 만화 등 다양한 방면으로 즐길거리 나올 것으로 기대돼.] [이 책을 읽은 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샌―프랑코 관련주를 매수하는 것.]크. 반응 좋고.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서평을 받기 위해 사방에 한국인의 정을 듬뿍 먹여 놨다. 원래 이런 것도 다 홍보의 일환이라고.
그런데.
“킴 장군님!!”
“혹시 외계인과 접촉한 적이 있으십니까?”
“작중 나오는 독재자는 매카시를 뜻합니까?”
“아닙니다. 이 책은 모험심과 꿈이 가득한 어른과 아이들을 위해 썼을 뿐입니다. 어디까지나 소설은 소설로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제 깨달았다. 그는 우리의 상상력을 아득히 초월하는 존재다. 한 명의 머릿속에서 나온 상상이라고는 믿을 수 없다.] [30년 전 대전쟁을 예언한 이가 이제 원숙해져 300년 뒤를 예언하고 있다. 어째서 지금 이 책을 보지 않는 건가?] [이 작품에서 외계인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건 외계인의 위협에 직면한 인류의 모습이다.] [이건 예언서인가? 아니면 작금의 세태를 풍자한 풍자화인가?]아니, 잠깐.
불이 이상한 방향으로 붙는데.
왜… 왜?